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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2/12/25 23:26:07
Name 한니발
Subject DAUM <5> 下 (完)
  5경기, 파이썬 (김준영 2: 2 변형태)

  "그런 식이라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뭐요?"
  "수백 페이지 뒤에 일어날 일을 위해 새 단어를 씁니다. 오직 그뿐입니다. 내가 쓴 단어가 묻혀버릴지도 모르지만,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이기를 바라며 힘껏 쓸 것입니다."

                                                                                                                                                                                 - 전민희,『 룬의 아이들 : 데모닉』中



  2007년 7월 21일
  DAUM 스타리그 2007 S1
  그 마지막 경기
  변형태 VS 김준영 in 파이썬

  사람들은 이전 경기들과 똑같이 환호하고, 힘차게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GGplay」와「Iris」가 새겨진 반다나를 쳐들지만, 그들 가운데 감도는 이상하리만치 강한 긴장과 흥분은 분명 이 결승이 시작될 때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 누구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테니까.
  테란은 저그에게서 몽환을 빼앗았고, 저그는 테란에게서 몬티홀을 빼앗았다. 그와 함께 파이썬과 히치하이커를 거쳐, 지금 이 마지막 경기에서 한 명의 저그가 스타리그 결승 리버스 스윕에 도전한다. 지금껏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에. 그래서 있을 수 없다고 여겨졌던 일에.
  도전자 김준영은 그리 크게 동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를 막아야만 할 변형태 또한 그렇다.
  놀라운 일이다. 두 사람 모두 이전에 결승을 밟아본 경험이 없음을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되레 가슴을 졸이는 건 바라보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마치 기도하듯 움직이지 않는 김준영의 아버님과 스크린에 시선을 못 박은 채 눈을 떼지 못하는 변형태의 어머님이 인상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교통편을 걱정하던 목소리들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날씨를 걱정하던 목소리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도 이제는 무의미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결정한 것이다. 무엇이 있건 간에, 저 두 사람과 이 레이스를 완주하겠노라고. 머리 위로 비가 쏟아진다 해도, 시간이 자정을 넘겨버린다 해도.



  나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본다.
  유리와 판넬로 차단된 타임머신 박스 속에서, 그들도 알 수 있을까.
  지금 이 무대를 바라보는 모두가 그들의 뒤를 버린 싸움에 끝까지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이 무대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했다. 김준영과 변형태의 대결이 충분히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동의했다.
  번뜩이는 조명을 향해, 옆 사람들과 함께 팔을 위로 치켜든다.
  다섯 번째의 What I Want를 뚫고 관중들의 함성이 귀를 울린다. 모두가 저 유리너머까지 들리도록 외친다.
  김준영 파이팅-.
  변형태 파이팅-.



  변형태 7시. 김준영 2시.
  1, 4경기의 김준영과 2, 3경기의 변형태 모두 필살의 승부수를 들고 나왔다. 과연, 2:0에서 따라잡은 저그와 따라잡힌 테란으로서 다시 한 번 마지막에 승부수를 준비했을지,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러나 변형태는 배럭 더블이었고 김준영은 12앞마당을 택했다.
  변형태는 가볍게 벙커링 페이크를 넣었지만, 말 그대로 페이크일 뿐이었다. 김준영의 드론들을 잠시 방해한 것에 만족하며 곧 취소시켰다.
  김준영 역시 한 차례 저글링을 몰아가봤지만, 변형태의 방어가 철저하자 주저 않고 병력을 빼냈다. 그것은 모두 다만 인사치레였다.

  김준영의 본진에는 이미 3해처리 이후 스파이어가 올라가고 있었다. 뮤탈 짤짤이 - 저럴 중앙 회전 - 하이브 - 울트라로 이어지는 바로 그 패턴이었다. 저 이영호도 한 번은 깨뜨렸지만, 두 번째에는 알고도 박지 못했다. 김준영은 변형태 역시 이영호와 같으리라 생각했을까. 이미 2경기 몽환에서 변형태에게 낱낱이 꿰뚫린 궤적이지만, 결국에는 변형태도 이영호처럼 김준영 자신의 짊어진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리라 생각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영호와 변형태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두 사람 모두 테란답게 콧대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에 넘쳐흐르지만. 변형태의 플레이는 이영호의 그것보다 몇 배는 흉폭하다. 이영호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을 결정하지만, 변형태는 때때로 야성이라 할 만한 감각에 이끌려 움직인다. 즉, 변형태는 냄새를 맡으면 그에 따라 움직일 수도 있다.
  이영호는 끝끝내 피하지 않았던 칼이라도, 변형태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피할지도 모른다.
  김준영의 뮤탈리스크가 변형태의 본진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이미 이영호가 증명했듯이, 김준영의 절대 승리 공식을 깨뜨리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레어 테크에서 김준영의 제 3가스 지역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그리하면 김준영의 하이브로부터 시작되는 피니싱 무브에는 반드시 제동이 걸린다. 이 과제, 이영호는 파이썬에서 완벽한 뮤탈 방어 이후 카운터 어택으로서 해결했고 변형태는 몽환에서 허를 찌르는 최속 행군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김준영의 뮤탈리스크가 변형태의 본진에 막 도달한 그 순간, 변형태는 김준영의 멀티 대신 본진만을 노리고 있었다. 베슬을 늦추면서까지 빠르게 확보한 탱크. 일촉즉발, 틈새를 노려 내찌르는 흉폭한 타이밍 러시. 그것은 틀림없이 4경기에서 쌓인 분노의 되갚음이리라.
  주고받는 응수타진으로 이 게임을 풀어나가기에는 이미 변형태는 임계점이었던 것일까. 정면으로 단번에 뛰어들어 물어뜯고 찢어발기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분노였던 것일까.
  맥이 풀렸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이라서야, 변형태의 장점이라 생각했던 흉폭함은 오히려 단점이 된다. 변형태의 병력은 곧바로 김준영의 본진을 향해 일직선으로 진군했다.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그야말로 들짐승처럼.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고서. 그리고 짐승처럼 내달린 그 끝에 기다리는 건 -

  "어어어어어! 스탑 러커! 스탑 러커! 당하네요, 당하네요!"

  - 덫.
  수많은 머린 메딕이 썩은 과일처럼 형편없이 으깨졌다. 김준영은 12시에 확보해둔 제 3 가스기지를 지키던 두 마리 러커까지 데려와 변형태의 진출 병력을 압박했다. 뒤이어 본진에서 생산된 다수의 저글링 - 러커 - 뮤탈이 아우성을 치며 쏟아져 나오면서 변형태의 탱크들을 남김없이 전멸시켰다.
  남은 바이오닉만으로는 러커 방어선을 뚫을 수 없다. 변형태의 일격, 회심의 본진 공략은, 이 시점에서 명백한 실패다.
  김준영에게 찬탄을. 변형태에게 장탄을.
  그러한 결론이 내려진 순간, 끊어질 듯 팽팽하던 긴장감은 일시에 깨졌다. 사람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지켜볼 준비를 했다. 이것이 변형태의, 변방에서 자라난 흉포한 재능이 한계일 것이다.

  물론, 그 안정감은 채 5초도 지속되지 못했다.

  

  무대의 습격자, 파란의 리그브레이커는 관객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탱크 파괴 직후 자신의 패잔병들을 몰아세워 12시로 향하고 있었다. 김준영의 제 3 가스 지역. 김준영식 승리 공식의 열쇠.
  12시를 지키던 두 마리의 러커는 방금 전의 방어전을 위해 이미 차출되었다.
  변형태는 무방비의 12시를 향해 질주했다. 이번에야말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그의 광포한 질주였다.
  12시, 김준영의 제 3가스 지역은 드론이 전멸당하는 타격을 입었다.
  김준영은 마른 침을 삼켰다.



  센터는 곧 테란과 저그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변형태는 몰아치는 듯한 특유의 움직임으로 계속해서 병력들을 공세에 동원했다. 물론 초반의 본진 공략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막강한 병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면 대결이었다면 저그의 물량이 간단히 테란을 찍어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변형태는 그야말로 기민하게, 아슬아슬하게 들이대고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빠져나갔다. 파이썬의 넓은 중앙이 그러한 테란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공세의 테란과 수성의 저그가 벌이는 대결답게, 테란과 저그의 입장은 여기서도 뒤바뀌어 있었다. 변형태의 달란트가 발휘되고 있었다.
  그 후각은 승리의 냄새를 제대로 쫓고 있었다.
  저그는 제 3가스 지역에 타격을 입었다. 이미 김준영이 자랑하는 '패턴', 그리고 '무적의 후반'은 깨졌다. 저그가 가진 병력의 강점도 베슬이 쌓이면서 곧 사라질 것이다. 디파일러가 생산되어 발악하겠지만, 그뿐일 것이다.
  센터는 천천히 테란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었다. 스파이더 마인이 조금씩 센터 전역을 조여 나가고 있었다. 드랍쉽이 저그의 후방을 교란했으며, 테란의 병력은 점점 큰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 2경기 몽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
  김준영은 느끼고 있었고, 결단을 내렸다. 디파일러를 동원한 김준영의 한 무리 저글링-러커가 변형태의 앞마당으로 파고들었다.
  다크스웜이 연달아 펼쳐진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몇 기는 스웜 속으로 뛰어들던 도중에 죽었고, 몇 기는 탱크의 스플래시 데미지를 견디지 못했으며, 몇 기는 컨슘에 동원되었다. 그러고도 살아남은 마지막 몇 기는 이레디에이트에 몸부림치며 죽었다.
  그리고 그 러쉬가 막힘과 거의 때를 같이 하여, 변형태의 본대가 다시 12시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나이더스 커널이 순식간에 깨져갔다.
  절망적인 목소리로 해설진이 울부짖었다.

  "여기는 - 마지막- 희망이에요, 김준영 선수-!"
  "베슬이 -, 베슬이 - 너무 - 많아요 - !"

  다크스웜이 연달아 펼쳐진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 여기, 구하러 구원군을 보낼 수가 없어요! 중앙을 내줬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변형태의 바이오닉이 다크스웜 속으로 짓쳐들어왔다. 그 말대로, 응원군은 오지 않을 것이다.




  - 여태껏 단 한 사람의 프로게이머도 2:0으로 뒤지던 결승을 뒤집은 바 없다.

  네 번.
  다섯 번.
  필사적으로 다크스웜을 내뿜던, 12시를 지키던 단 한 마리 디파일러에게 이레디에이트가 내려 꽂혔다. 이제, 더 이상의 다크스웜은 없을 것이다.

  - 김준영은 자신의 패턴이 분쇄당한 게임에서 여태껏 단 한 번도 뒤집어본 적이 없다.

  변형태의 바이오닉이 큰 곡선을 그리며 다크스웜 라인을 우회한다. 이미 미네랄 필드가 코앞이다. 하늘에는 베슬들이 건재하고, 스팀팩의 효과음이 쉬지 않고 울려 퍼진다. 몇몇은, 지극히 변형태답게, 겁도 없이 다크스웜 속을 가로지른다.
  마지막 하나 남은 러커가 몇 기인가의 머린을 긁어내지만, 그럼에도 테란의 병력은 아직 충분하다.

  -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 모든 병력이 해처리와 드론으로 목표를 고정한다.
  시시각각 숨 막히는 공방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비춰진 변형태의 앞마당에서는, 예닐곱기의 탱크 위로 바이오닉 병력을 가득 채운 두 기의 드랍쉽이 관중들의 함성 속에 선회 비행하며 출발을 준비한다.
  다시 12시.
  변형태의 병력이 마침내 해처리가 사거리에 들어오는 영역 안으로 진공한다.

  -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섯 번.
  그 순간, 있을 리 없는 여섯 번째 다크스웜이 해처리를 감쌌다. 한 마리의 러커가 재빨리 스웜 안으로 기어들어가, 테란의 진공을 저지했다.
  숨 막히는 공방 동안 다시 생산된 디파일러가 그 뒤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변형태의 중앙 본대를 우회하여 본진부터 쉴새없이 달려온 김준영의 구원군이 12시의 언덕길을 타고 올라서고 있었다.
  변형태의 바이오닉이, 물러섰다.
  막아냈다. 김준영이.

  



  다크스웜 일곱 번째. 변형태의 병력이 코너로 내몰린다. 그 위로 플레이그가 혈우처럼 내뿌려진다.
  다크스웜 여덟 번째. 변형태의 바이오닉이 전멸당하고, 달아나던 베슬을 스커지 떼가 추격한다. 12시에 발들인 테란 병력은 베슬을 포함하여 단 한 기도 생환하지 못했다.

  변형태의 맹습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두 기의 드랍쉽이 김준영의 본진을 교란하는 사이, 대규모 탱크가 포함된 변형태의 주력 병력이 다시 중앙을 빈틈없이 장악했다. 더욱이 8시에는 이 게임의 마침점이 될 테란의 멀티가 완성되었다. 테란과 저그의 멀티는 그로써 동수가 되었고, 주력 병력으로 따지자면 한데 집결하여 움직이는 변형태의 병력이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12시 싸움을 위해 쉬지 않고 병력만을 찍어내 소모한 김준영에게는 여기저기 흩어진 한 줌씩의 병력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게임은 이어진다.
  변형태의 육중한 창이, 김준영의 그 한 줌 병력들의 몸을 던진 방어를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크스웜 속의 한 두 기 러커, 채 한 부대가 되지 못하는 저글링들을 짓밟지 못하고 있었다. 김준영이 혼신의 힘을 짜내 베슬들을 떨어뜨린 결과였다. 땅 위의 수 부대 바이오닉이 지키는 그 틈을 파고들어, 스컬지들은 제 몸을 들이박았다. 그로써 디파일러들이 살아남았고, 디파일러가 더해진 한 줌 병력들은 일당백으로 저그의 생명선을 사수햇다. 김준영은 거의 무아지경이 되어 싸우고 있는 듯 보였다. 미친 듯이 베슬을 떨어뜨리고, 다크스웜을 깔고, 저글링과 러커를 돌격시키며 신들린 방어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성공시키고 있었다.

  그 분투는 보는 이들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마재윤을, 김택용을, 송병구와 이영호를 잊었다. 본좌를 잊고, 이 싸움이 본좌론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번외 경기라는 사실도 잊었다. 오로지 김준영과 변형태가 맞붙는 지금 이 순간만이 그들의 눈과 마음을 빼앗았다.
  그리고 김준영과 변형태 또한 그러했다.
  지금 이 순간이 끝나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어쩌면 정말로 그 누구도 이 순간을 기억하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 마재윤과 그의 신도들이 장담하듯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것처럼 본좌론이 써나가는 약사 속에 묻히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여름의 오리온과, 그 여름의 스타즈가 그랬던 것처럼,「지금까지의 그 모든 것」이 아닌, 기적처럼 새로운 내일을 열어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되던 간에, 결국 그들은 알지 못하는 내일의 일을 두려워하느니 오늘 지금 이 순간만을 온 힘을 다해 싸워나가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택할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다만 부탁할 것이다.

  부디 기억해주십시오.

  그 때, 곳곳에서 분전을 벌이던 김준영의 병력 가운데 두기의 울트라리스크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몇 명인가의 사람들이 홀린 듯 꼼짝 않던 몸을 뒤척였다.



  중앙 장악, 병력 우위, 자원 우위, 공격 속도, 심리 상태. 그 모든 것을 들어 변형태의 우위를 설명하던 해설진의 목소리는 김준영의 싸움이 길어질수록 점점 단조로워졌고, 이윽고 변형태의 우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압축되었다.
  8시 멀티.
  어느새 변형태가 유리할 수 있는 이유는 8시 멀티, 그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그 곳이 테란 최후의 보루였다. 방어에만 급급할 뿐 공격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김준영의 병력들은 서서히 8시로 기수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중 한 무리가 변형태의 8시 방어선을 뚫어내고야 말았다.
  그것이 신호였다. 12시, 3시, 8시, 맵 사방팔방에 각기 흩어져 싸우던 한 기 한 기의 울트라리스크들은 마치 부름을 받은 것처럼 천천히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실개천들이 모여 맹렬히 흐르는 강물이 되듯, 테란을 휩쓸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다크스웜은 그 곳에도 어김없이 펼쳐져 울트라를 보호했고 - 마침내 한 떼의 울트라리스크가 화면을 채우자 사람들은 승부의 행방을 직감했다.
  우레 같은 환호와 박수 속에서 몇 명인가의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승리의 고함을 내질렀다.
  기억해주겠느냐고?
  그것이 대답이었다.
  폭풍처럼 몰아쳤던 변형태를, 산처럼 견뎌냈던 김준영을, 사상 최초의 결승 리버스 스윕을, 이 싸움을,

  여기 김준영이 있었다.
  여기 변형태가 있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그들의 이름을 소리친다. 그들의 승리를 향해 환호하며 그들에게 응답한다. 펜 대신 기억으로 가로질러, 종이 대신 가슴에 아로새겨.
  DAUM을 기억하겠노라고. 당신들을 기억하겠노라고.




「아아 - 천재도 못했고,」

  과연, 이 모든 것은 이미 시대의 이름이 되어버린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고

「본좌도 못했던, 누구도 못하는,」

  영원히 마재윤의 오늘만이 반복되기를 바랐던 그들도 물론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게 왠일입니까, 황제도 못했던-,」

  황제와 그의 사람들이 이끌었던 낭만 시대 이후 멈춰있던 시간은,

「-----」

  어쩌면, 그제야 비로소 다시 흐르기 시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 G, G -!」





Epilogue  :  오늘 ……에 비가 내립니다, 오늘 ……에 비가 내립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사람들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 살바도르 아옌데, <최후의 연설> 中



  


  부스 밖으로 걸어 나온 김준영과 김준영의 아버지가 부둥켜안았을 때, 하늘에서 천천히 물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였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결승전이 끝나고 나서야, 그때서야 부슬부슬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비는, 울먹이는 부자와, 엷은 미소를 띤 감독과, 고개 숙일 줄 모르는 당당한 패자와, 끝내 자리를 지킨 관중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비는 그렇게, 멈추지 않고 내렸다.

  한 번의 비가 모래를 적신다고 해서 사막이 숲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염수가 담수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비가 내렸다.
  이제 사람들은 오늘과 함께 그 비를 기억하고, 소망할 것이다. 오늘이 있었음을 기억함으로써, 언젠가 다시 따스한 비가 사토를 적실 내일을 기다리면서, 돌아올 숲을 놓아버리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야기의 첫머리는, 이것이면 족하리라.

  "……그 날도 비가 내렸었다…."


  




  -  스타리그 삼부작 :  2부 DAUM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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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편까지 참고한 모든 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정석, 강민, 그리고 송병구와 투팩」- Judas Pain
「송병구, 무결점을 향한 충동」- Judas Ppain
「'거장' 최연성」- Judas Pain
「마재윤, 김준영, 그리고 3해처리 - 하이브 운영」- Judas Pain
「축제를 선택한 OSL, 투기장을 포기한 MSL」 - Judas Pain
「조용호, 기억하고 계십니까」- Judas Pain
「이영호 + 송병구 / 김동수」- Judas Pain
「진영수, 이종족에게 겨누어진 인간의 칼날」- Judas Pain
「김택용, 강요된 평화가 부른 혁명의 철검」- Judas Pain
「박정석, 그의 '멋진' 6년 간의 커리어는 아직 진행 중」- 회윤
[스타리그 8강 2주차 후기] 4세대 프로토스, 송병구의 역습」- becker
[sylent의 B급 칼럼] 공군의 임요환」- sylent
「최연성의 왜곡된 유산」- 김연우
「테란 킬러들의 슬픈 승리 공식」- 김연우
「마재윤의 테란전 소고」- Felix
「3.3 혁명의 진정한 의미」-  不平分子 FELIX
「김준영의 우승, 그것은 역사의 필연」- 不平分子 FELIX
「택뱅리쌍에 대한 소고」- kimera
「변형태의 압승(DAUM 스타리그 4강 변형태 VS 송병구 관전평)」- Is
「씬 스틸러(scene-stealer) 변형태」- ipan
「T1의 지장 주훈 감독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재균 감독과 조규남 감독...」 - 다크고스트
「이영호 선수에 대한 분석글(스갤펌)」 - Artstorm
「본좌론에 대처하는 택빠들의 행동강령」- 다다다
「Zergology 13.0」- 이악물기

  
  포모스의 당시 사진들과 기사들을 활용했습니다.
  스플래시 이미지와, 잭필드스포츠닷컴님의 짤방들을 활용했습니다.
  임&콩통합빠-_-)님의 재기발랄한 짤방들에서도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글 분위기상 몇 장 사용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완결까지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So1보다 어깨에 힘을 팍 주고 쓴 나머지 보다 중2스런 글이 되어버렸습니다만,  그래도 후회없이 즐겁게 썼습니다.
  일단 2부 DAUM은 끝입니다. 이후 마지막 3부에서 뵙겠습니다.
  좋은 성탄절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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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stana
12/12/25 23:30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올라왔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사티레브
12/12/25 23:38
수정 아이콘
저골로지의 저자는 이악물기 로 쓰는게 아마 좋을듯해요 흐흐'

언제고 그랬든 잘 감사히 읽고갑니다 :)
12/12/25 23:43
수정 아이콘
진짜 오랜만에 올라오네요!!!
잘 보고 갑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김준영의 울트라가 나올때의 그 감동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2/12/26 00:01
수정 아이콘
그냥 강심장이여선 안되요~ 대인이 되야합니다.

갑자기 생각나네요 흐흐
감전주의
12/12/26 00:18
수정 아이콘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결승전이네요..
제가 응원하던 선수들은 아니었지만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던거 같습니다..
12/12/26 00:3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한니발님 글은 명불허전이네요
트릴비
12/12/26 00:50
수정 아이콘
정말 잘 봤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경기들이네요
토어사이드(~-_-)~
12/12/26 00:54
수정 아이콘
김준영 선수의 열성팬은 아니었지만 호감 가는 선수였는데..
전역 하고 나니까 은퇴 했다고 해서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뭐하고 살려나 흐흐
12/12/26 01:00
수정 아이콘
아 3부 빨리써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아 진짜 한니발님의 문재는 진짜..............................대단해요.
12/12/26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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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랄까.... 양선수가 서로 경기를 해가면서 그 안에서 성장하는듯한 결승전이었다 생각합니다. 5경기때 그 절정을 봤구요. 마지막 3부도 얼른 보고싶네요 ㅠㅠ
안수정
12/12/26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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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가 정말 재밌었는데....
이젠 나이도 먹고 그런지 아.. 저때가 더 그립네요 2007년
알킬칼켈콜
12/12/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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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반이 지난 이야기 ㅠㅠ
제레인트
12/12/2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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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님 글 때문에 최근에 다음 스타리그 챙겨보고, 마지막 결승전 안보고 남겨놓고 있었는데 드디어 볼 수 있겠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리니시아
12/12/2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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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오클랜드에이스
12/12/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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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결승전에 걸맞는 5전제였죠. 흐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노래하는몽상가
12/12/2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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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김준영 선수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천성이 착한 분이라..
도움주는이
12/12/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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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좋은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피와땀
13/01/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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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ternity
13/01/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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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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