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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2/09/25 11:25:01
Name happyend
Subject 한가위는 왜 8월 15일인가
1.
곧 한가위입니다. 모든 축제들이 과거 농경사회에 그 근거를 두고 있어서 의미를 알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것이 바로 한가위가 아닐까 합니다.

한가위를 추수감사제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모든 추수감사제들은 음력 10월에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도 그렇고 삼한의 시월제도 추수를 끝내고 곡식을 창고로 옮기고 난 뒤에 열렸습니다.
하지만 한가위는 음력 8월 15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과거에도 추수를 끝낸 집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한참 바쁜 추수철이기도 하고 지독한 농번기이기도 합니다. 삼베길쌈이 이때에 비로소 끝나고 추수철이 시작되거든요.

왜 이토록 바쁜 틈에 온 나라가 축제를 벌여야 했을까요?

2.
한가위가 시작된 것은 신라 3대 유리이사금(노례이사금)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의 이사금시대는 6부의 부족연합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6부를 두 편으로 나눠 길쌈을 하게 한 뒤 한달간의 성과를 결판짓는 날이 8월 15일(음력)이었다고 합니다.

길쌈은 이시기에만 해야 하는 일입니다. 길쌈의 재료인 삼의 줄기는 이때 잘라 껍질을 벗겨 삶아내야 가장 질겼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의식주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시기를 놓치면 말그대로 헐벗고 지내야 합니다. 삼베는 내구성이 좋지 않은데다 인구는 늘어나고 그렇다고 어디서 수입해다 쓸 수도 없고 더군다나 대체할만한 옷감도 거의 아니 전혀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 길쌈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견우직녀’설화에도 나타납니다. 고대에는 지금과 같은 달력이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특별한 농경달력을 알려줘야 하는데 절기의 개념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삼국시대 중반 이전까지는 계절을 알려주는 천문달력으로 별자리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별자리는 꽤나 복잡하고 외우기 어렵습니다. 날짜를 맞춰 의식을 주관하는 제사장은 이걸 후대에게 기록으로 남길 수도 없고 가르치기도 번거로운거죠.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설화입니다. ‘견우직녀’설화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따라서 대부분은 모를겁니다만...) 장마가 끝난 뒤 그 번성한 풀을 뽑는게 한해의 마지막 김매기입니다. 뙤약볕에 앉아 김매기를 끝내고 겨우 숨돌릴 때가 바로 칠월칠석(음력).이때에야 여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남자들과 여자들이 만나 놀 수 있는 날은 이때 뿐인거죠. 그것도 비가 와야만이....

이날이 지나면 남자와 여자는 다시 바빠집니다. 여자들은 지독한 삼베길쌈의 중노동을 시작해야 하고 남자들은 길고긴 휴식을 끝내고 수렵의 계절이 시작되거든요. 이때가 바로 동물들의 번식기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수렵이 금지되는 번식기는 3월부터 8월(양력)입니다.

따라서 견우와 직녀성이 가장 빛나는 그 밤. 남자들과 여자들은 달콤한 만남과 슬픈 이별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당연하겠지만 이 설화는 수렵전통이 강한 북부지방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로, 한가위의 전통을 만들어낸 신라와는 조금은 무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어떻든 고대의 제사장은 <견우직녀설화>를 통해 계절을 별자리를 이용해 훌륭하게 재구성했고 사람들은 이 설화가 가르치는대로 칠월칠석을 분기점으로 하여 길쌈을 하고 수렵을 합니다. 이때 벌어지는 칠석제는 고대에는 꽤 중요한 의식이었던거죠.

수렵의 전통은 없었으나 길쌈은 신라에서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바로 이 길쌈이 시작되는 때가 칠석이후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아마도 편의를 위해 7월 보름달이 뜬 날부터 대결을 시작했겠지요. 7일 상현달이 뜬 날은 좀 애매하니까요.게다가 이날은 비가 올 확률도 많았고요.

이렇게 한달간 6부에서 벌어진 길쌈대결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고 진 팀이 이긴 팀을 위해 술과 떡을 준비하는 것이 한가위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3.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남습니다. 왜 길쌈대결이 민족적 축제일까요? 아무리 옷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걸로 민족명절을 결정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가을 축제는 추수감사절이고 그나마도 추수가 끝난 뒤 치러집니다. 하지만 왜 신라에서는 길쌈이 끝난 8월 15일이 명절이 되어버린 걸까요?

이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단 하나! 바로 이 때가 첫 수확기라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에게 천재지변이나 전쟁 그 이상으로 가장 무서운 일은 창고가 비는 것이었고, 그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바로 ‘씨앗’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창고가 비는 것은 현재를 굶는 것이지만 씨곡식이 사라지면 미래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미래를 담은 씨앗은 특별한 곳에 넣었는데 이것이 달 모양으로 만든 '붉은색 토기'입니다.


(붉은색토기-ⓒ 중앙박물관
보통 붉은간토기라고도 합니다. 붉은색을 내기 위해 철분이 많이 들어간 흙으로 문질러서 만들기 때문이지요.)


붉은색 토기는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씨앗을 담아 '신주단지 모시듯' 모셨던 이 토기에는 붉은 색을 칠해서 액운이 감히 다가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마을의 미래를 지켜주길 바라는 염원도 담겨있었습니다. 마을 공동의 씨앗은 특별한 날 특별한 의식과 함께 이 토기에 담겼다가 다음 추수 때 다시 쓰였을 것입니다.

붉은 색 토기는 고인돌의 등장과 함께 깜쪽같이 사라집니다. 신석기시대에 의식은 ‘씨앗’의 안녕을 비는 것이었던 것입니다만 이후 고인돌과 함께 시작된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주체가 변하게 됩니다. 하늘과 그 대리자, 바로 왕입니다. 물론 이때 하늘의 대변자다운 토기가 등장했습니다. 그것이 '검은색 토기'입니다.

왜 하필 검은색 토기여야 했을까요? 거기엔 특별한 물건, 씨앗을 대체하여 왕의 권능을 나타내는 특별한 물건을 보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술입니다. 술을 마시면 몽롱해지는 상태를 하늘과 접신한다고 여긴 것이지요. 의식이 끝난 뒤 술을 마신 사람들은 왕이 하늘의 대리자임을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검은색토기 ⓒ 중앙박물관
검은색토기는 붉은색 토기처럼 얼기설기 조직이 큰 흙이 아니라 매우 작은 입자를 가진 흙으로 구워서 겉을 흑연이나 숯으로 문질러 만듭니다. 이렇게 하면 물이 새지 않는 토기가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축제는 '음주가무'의 시대로 접어드는데요, 그것은 다른 문화를 가진 중국인들 눈에 그렇게 비친 것이고 원래는 이렇게 하늘과 우주와 혼연일체가 되는 의식이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이었으니 그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는 것은 농경인들로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지요. 제천의식을 마친 후 며칠간 술마시고 춤을 췄는데, 손은 하늘을 향한 어깨춤이었지요. 하늘을 향한 경배의 몸짓이 우리민족의 춤사위였던 것입니다.

이때  붉은색 토기와 함께 ‘씨앗’ 숭배의식도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토기 자체는 사라졌지만 그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신줏단지 혹은 달항아리입니다. 달을 닮은 토기 혹은 도자기의 형태로 만들어진 씨앗그릇은 마을 공동의 창고와 제사상에서는 쫓겨났지만 한 집안을 지켜줄 '신주'로서 모셔지게 됩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첫 수확을 한날 특별한 정성을 들인 씨앗 교체의식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신주항아리에 담긴 묵은 곡식은 모두 함께 모아서 떡을 만듭니다. 묵은 쌀로 만든 떡은 냄새가 좀 나는데다 그나마도 토기로 만든 시루에 넣어서 쪄야 합니다. 흙냄새가 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냄새 제거용으로 솔잎을 넣습니다. 솔잎에는 강력한 살충효과가 있어서 더운 초가을에 대규모 인원이 모여서 떡을 먹어도 탈이 날 염려가 적습니다.

물론 술은 빠질 수 없지요.지배자는 정치적 지배자이기도 한 이사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때의 이사금은 그렇게 부자가 아닙니다. 적어도 마립간 정도가 되어야 힘깨나 쓰는 부잣집 소리를 들었지 이사금은 말그대로 동반장 혹은 마을 이장격이라서 돈이 별로 없었습니다. 유리(노례)이사금이 길쌈놀이를 통해 진팀에게 비용을 부담시킨 것은 대대로 내려온 방식이기도 하겠지만 가난해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4.

한창 바쁜 8월에 한가위를 선택한 까닭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요. 그것이 8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숫자기 때문입니다. 옛날 동양인들은 우주를 숫자 4와 8로 이해했습니다. 땅은 네모지니까 숫자 4로, 하늘은 둥그니까 숫자 8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8은 완전하다 둥글다는 의미였어요. 고조선 시대의 법률이 다른 어떤 숫자도 아닌 '8조 법금'이었던 것은 '완전한 법률'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일 년 중 가장 완전하게 꽉 찬 달이 뜨는 날 즉 가장 풍요로운 날은 8월 15일인 셈입니다.  가장 완전한 달인 만큼 소원도 잘 들어주지 않을까요?

모두들 행복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10-1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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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2/09/25 11:4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이런 유래가 있었군요~
감모여재
12/09/25 11:5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정리해주셨네요.
12/09/25 12:57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키스도사
12/09/25 12:59
수정 아이콘
와 신기하네요.
12/09/25 13:07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거리 감사합니다 ^_^
키르아 조르딕
12/09/25 13:3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좋은 글 추천 하네요. 외국사람에게 추석을 한국의 Thanks giving day 라고 설명했을 때 들었던 위화감을 잘 해결해준 글이 되었거든요, 감사드립니다^^
12/09/25 14:09
수정 아이콘
근데 궁금한건 민족 최대의 명절이 설날일까요 한가위일까요?
매번 뉴스에서 둘다 쓰는거 같은데...
happyend
12/09/25 17:54
수정 아이콘
간단하게 종묘와 사직, 하늘과 땅의 개념이 설날과 추석입니다. 하늘이 없으면 땅도 의미가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이듯이 둘에게 우열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농경국가의 개념으로는요. 현재적 개념으로 이것은 조상과 자연(평화)의 개념으로 다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고 있으므로 뭐가 더 중요하다거나 더 최대의 명절이라거나 하는 건 정말 무의미해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농경국가를 탈피하면 한가위(추수감사제)의 개념이 먼저 상대가치가 낮아지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콜록콜록
12/09/25 16:13
수정 아이콘
아 이런 글 너무 좋아요!
계속 계속 남아서 글 써주세요 해피엔드님!
누렁쓰
12/09/25 17:47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롱리다♥뽀미♥은지
12/09/25 17:49
수정 아이콘
재미지고 유익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12/09/25 19:10
수정 아이콘
추게로...!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루크레티아
12/09/25 19:30
수정 아이콘
진짜 왜 그럴까 항상 잠깐 의문을 가지다 말았는데, 저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글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12/09/25 19:33
수정 아이콘
중국은 중추절이라고 하고 일본은 오봉이라고(양력8월15일) 하는데
중추절 오봉 한가위의 상관 관계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나루호도 류이
12/09/25 20:47
수정 아이콘
내용도 좋거니와 무엇보다 글을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혹시 이런거 관련해서 책을 내신적이 있는지요?
happyend
12/09/26 07:57
수정 아이콘
쪽지보내드리겠습니다.
Courage0
12/10/17 09:36
수정 아이콘
글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아랏 책 쓰신적 있으세요 블로그는 잠시 운영 하셨던 걸로 알고 있긴한데...
저도 쪽지좀 부탁드려요 ㅠㅜ
happyend
12/10/17 17:08
수정 아이콘
블로그는 말그대로 잠시 인터넷 게재 글들 모아놓는 용도로 열었었고요,지금은 거의 자료수집용외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라 소개할만한것이 못됩니다.
그리고 위의 나루호도 류이님에게 보낸 쪽지의 내용은 관련자료에 대한 것이라 별거 없고요.
이 내용을 직접적으로 수록한 책은 발매된 것이 없습니다. 시간되는 대로 피지알에 조금씩 소개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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