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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1/08/24 22:25:44
Name The xian
Subject [쓴소리] 정신승리법
거부하다가, 돈을 안 주겠다고 어깃장을 놓다가, 주민투표라는 대형 사고를 치면서 그 결과에 100% 따르겠다고 했던 다섯 살짜리 어른이 있었습니다. 그 어른은 상황이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내년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재탕이라 약효가 없자 이번에는 '애들 밥 더 주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 내 시장직을 건다'라는 식의 괴이한 선언을 하면서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찔찔거렸습니다. 사상 초유의 개그쇼였습니다. 결국 자신이 만들어 놓은 분탕질이 아예 봉인을 당하자 물러나겠다는 이야기 대신 다섯 살짜리 어른은 책임을 지기는 커녕 나라의 미래와 바람직한 복지 등의 각종 괴이한 '드립'을 시전하며 대변인을 통해 하루 이틀 뒤에 거취를 말하겠다고 하고는 도망갔습니다.

다섯 살짜리 어른의 편을 들어 준 어느 무리들이 있습니다. 서울시의회 의결로 시행하게 된 전면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말합니다. 선관위에 의해 법적 하자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투표 불참 운동을 문제삼아 '투표율이 33.3%를 넘지 않으면 당신들의 탓'이라는 남탓을 달고 다닙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얻은 정보인지는 몰라도 '시민들 사이에서 단계적 무상급식 찬성이 훨씬 많은데'라는 식의 공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보니 '현실성,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인기에만 영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행태'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게 포퓰리즘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서울시의 무상급식 문제는 서울시의회의 의결로 이미 작년에 결론이 난 문제입니다. 그리고 다섯 살짜리 어른이나 그 어른의 편을 들어준 무리들이 그 결정사항에 한 행동은 한마디로 땡깡이고 어깃장이고 징징거리는 일 뿐이었지요. 예산 집행을 못하겠다고 어깃장을 부려서 시행되기로 한 무상급식을 반토막 내버렸습니다. 소송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안 되니 선택한 것이 주민투표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주민투표 자체가 무효, 즉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그 '없던 일'로 돌아간 것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피곤함과 피로함을 안긴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 밥 주는 일을 비롯해 시민과 국민을 위해 써야 할 아까운 세금은 세금대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피곤함과 피로함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전부터 조금씩 싹이 보였던 자기합리화가 노골적으로 횡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말이 있다고 하지만 오전 10시까지 투표율 20%를 달성한다는 '1020 전략'을 공언했던 분께서 상황이 안 좋아지고, 막바지까지 개선될 여지가 없자 "투표율 25%만 넘으면 패배는 아니다"라고 말을 슬그머니 바꾸고, 막판에 25% 맞춘 게 자랑이라고 대변인을 시켜 "서울시장과 애국 서울시민이 사실상 승리한 것으로 본다"라는 평가를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습니다.

그보다 윗선의 고위 관계자께서는 한술 더 뜨십니다.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될 때 득표수보다 훨씬 웃돌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서울시내 4개 구청을 제외하고 민주당이 모두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청 공무원이나 통, 반장들이 투표를 제대로 못했다", "오늘 주민투표에서 총 투표수와 곽 교육감이 선거에서 얻은 득표수 차이만큼 서울시민들이 곽 교육감의 정책에 대해 'NO'라고 말한 것"이라는 소리들이 나왔습니다.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만큼 격이 낮아서 어안이 벙벙할 뿐입니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리들이 그들 자신에게는 '자기객관화'라도 되는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위안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방진 행동을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시선으로 봐주기보다는, 그분들에게 '닥터 깽'이라는 드라마를 다시금 보십사 하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 한가인씨가 드라마의 힘을 빌려 자기 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말이 나오지요.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너무 예뻐? 너무 예뻐서 눈을 못 떼겠나? 하하하~
내가 좀 예쁘긴 하지. 어쩔 때는 거울 보다가 깜짝 놀랠 때가 있다?
'너무 예쁜 거야!! 이게 뭐야? 인형이야? 사람이야?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생길 수가 있어?'
하하~ 참 우리 엄마, 아빠도 대단하시지.

근데 내가 더 예쁜 건 뭔지 알아? 나는 말야. 이 자기객관화라는 게 된 사람인데.
나는 객관적으로 내가 봤을 때 너무 예뻐. 근데 그거를 너무 신경 안 쓰는 거야.

왜? 사람들이 너무나 다 알 수 있는 사실이거든. 나를 처음 봤을 때 말이야.
처음 봐서 딱 보면 그냥 '예쁘다. 어우 너무 인형같다. 너무 예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제 나랑 같이 지내는 시간이 한 달, 두 달, 세 달 되면 이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구..
매력이라고 할 수도 없어. 이 김유나의 마력이지. 마력.
마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너는 큰일났다. 이제. 평생 헤어나올 수가 없어."



자기객관화 수준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지금 하는 짓은 자기객관화가 아니라 자기위안이고 넷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 내 ◆◆를 건다'라고 했다가 상황이 뜻대로 안 되니 내빼는 잡배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하기야, 시에서 밥을 줘야 하는 아이들을 가지고 시민들을 굴려먹고 장난친 그들의 수준을 '잡배'라고 하면 오히려 양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짓들을 자기합리화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점잖은 말이라 좀 더 적당한 말이 없을까 찾아 보니 보통 인터넷에서는 이런 것을 다섯 글자로 말하더군요. '정신승리법' 이라고요.


마지막으로, 지금 25% 넘은 것을 가지고 자기합리화에 열심이신 어떤 대표님께서 1년 전에 대표님이 아니었던 시절, 그 당시 대표님에게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A 대표는) 지지하지 않은 80% 당원의 생각을 반영해야 한다. 20%의 지지를 받은 대표가 독선적으로 당 운영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 The xian -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8-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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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glow
11/08/24 22:29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쓴소리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말 정말 적절하네요 흐흐흐
무적 신마
11/08/24 22:31
수정 아이콘
오늘 저녁 뉴스 보면서 떠올랐던 첫 단어는 역시나 정신승리였죠...;;;;
레지엔
11/08/24 22:33
수정 아이콘
오세훈 시장이 이번 일로 사퇴하면 저는 그 사람을 어쨌거나 언행이 일치했던, 그럭저럭 볼만했던 정치가로 기억할 겁니다. 아 물론 정계은퇴까지 같이 해줄때 한정...
XellOsisM
11/08/24 22:33
수정 아이콘
진것 같지? 우리 안 졌어! 진거 아니라고!
11/08/24 22:35
수정 아이콘
한나라당은 당명을 한자위당으로 바꿔야 합니다.
무슨 정신승리를 당 대표부터 번갈아가며 계속 하는지...
오세훈시장 이제 속좀 후련해졌을까요.
자기가 원하는대로 투표도 했고 지기도 했으니까요.
내일 꼼수에서 출연요청 할텐데 거부하지 말고 가서 비싼 저녁말고 백반한끼 하면서 이번 투표에 대한 소감이나 잘 말했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이제 사퇴시기를 놓고 고심중일텐데 내년 대선은 무리고 내년 총선 바라보고 8월 안에 관두던가 아니면 뭉개면서 버티다가
내년 4월 전에 관둘텐데 늦게 관둘수록 이미지는 나빠질거라 봅니다.
물론 당에서야 내년 4월에 같이 시장선거 하는게 이슈화도 덜되고 좋을거라 생각해서 못관두게 할것 같고요.
어차피 당 생각 안하고 자기 뜻대로 막하던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빠른 결단으로 8월안에 관뒀으면 좋겠네요.
절름발이이리
11/08/24 22:41
수정 아이콘
그러나 정치인의 정신승리는 정치인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동력이 됨은 물론, 정신승리하고 싶어하는 지지자들에게 근거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며, 따라서 경우에 따라는 리더십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니 욕을 먹고 격이 떨어져도 그들은 계속 승리할 것입니다.
연휘가람
11/08/24 22:41
수정 아이콘
엄마 이번 시험 나 25점 맞았어! 난 승리자야!
11/08/24 22:43
수정 아이콘
인용하신 파란 부분은 사실 아닌가요? 화나지만 반박할 수 없었던 ㅠㅠ 사실 화도 잘 안났던 -_-;
11/08/24 22:48
수정 아이콘
와 연전연승이네요
몽키.D.루피
11/08/24 22:49
수정 아이콘
엠팍에서 본 희대의 정신승리..
"엘지 5위니까, 뭐 사실상 우승한겁니다."

엘지팬 여러분 죄송합니다..
11/08/24 23:15
수정 아이콘
20시 30분 오세훈시장 인터뷰를 YTN을 통해 시청했을 때.. 이곳 공지사항에 걸려 있는 사과문이 생각났었습니다.. 쩝...
김익호
11/08/24 23:21
수정 아이콘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지난 하남시장 소환 선거때 그렇게 투표하지 말자고 외쳐대던 자들이 투표는 민주시민의 의무라고 주장하는 모습에서 어찌나 그토록 뻔뻔할 수가 있는지...........
헝그르르
11/08/24 23:27
수정 아이콘
전 오세훈이 당의 뜻과 다르게 독단적으로 8월중 사퇴는 하지 못할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뜻을 거스르며 국민투표까지 진행한것은 어려움을 딛고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던 프라이드가 많이 작용했을걸로 보이는데
이제는 모든 싸움에서 지고 서울시장 자리마저 내놓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현실이 보이기 시작할겁니다
현실인식을 한다면 이제라도 한나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당에 순종적인 모습을 보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퇴시기는 한나라당이 원하는 시기가 될걸로 예상해 봅니다
11/08/25 00:01
수정 아이콘
그렇게라도 해서 자위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정말 아큐보다도 불쌍하고 비루해 보입니다.
무승부 드립을 뛰어넘어 사실상 승리 드립은 정말 꼴불견이네요.

홍준표가 주장하는, 25%의 서울표를 얻었다는 엉뚱함은 대체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상대측은 75%의 서울표를 얻게 되는 걸까요?
생선가게 고양이
11/08/25 00:1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양정인
11/08/25 00:28
수정 아이콘
참... 여당이던 야당이던...
길게는 몇 년전... 짧게는 몇 개월, 며칠전에 했던 자신의 말고 행동들을 뒤집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철면피 신공 몇 레벨이면... 저런 스킬이 발휘되는건지...
11/08/25 00:38
수정 아이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한모나라당 지도부는 x줄 타고 있는 꼴은 한 십여일간 봐 왔죠.
사퇴회견때 뒷통수까지 맞고..
계파간 오시장의 지원여부를 왈가왈부하며 결국엔 팽시키던 모습까지...

홍준표대표가 발언은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나름대로 자기 입지가 부족한 상황에 오시장측을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보이니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이제 1년여 남은 대선구도는 점덤 미궁속으로...


대세와 달리 어느 누구가 나와도 박근혜대표가 당내 경선통과도 힘들 뿐더러....
행여나 나와도 더 힘들겠죠.

개인적인 느낌은...
" 홍대표 이쯤되면 당신이 나와보는 건 어때???
적어도 전임자가 싸놓은 x는 잘 치울것 같은데.... "
Dornfelder
11/08/25 00:44
수정 아이콘
8월 중에 깨끗하게 사퇴하고 내년 총선에 출마하면 그나마 언행일치는 되는 정치인으로 인정하고 한 표 던져줄 의향은 있지만 지저분하게 질질 끈다면 그 정도 수준의 정치꾼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겠죠. [m]
승리의기쁨이
11/08/25 08:19
수정 아이콘
제가 존경하는 정치가 한분이 계시는데 그분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렇게 될까바 겁나네요
켈로그김
11/08/25 08:55
수정 아이콘
아홍정전.. 아홍홍홍홍~;;
몽키.D.루피
11/08/25 10:59
수정 아이콘
심리적인 반값, 마음으로 하는 복지, 사실상의 승리........... 여권이 하는 말은 너무 형이상학적이라서 당최 알아먹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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