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할 것도 없고 해서, 어제 오전에는 <정이>를 보고 오후에 점심먹고 <유령> 을 보고 왔습니다.
세 작품을 본 평가는 역시 아바타가 짱입니다. 아바타를 보세요.
아바타가 그래픽만 좋은 백터맨이라고요? 나머지들은 그래픽도 안좋은 백터맨들입니다.
아바타를 이미 보셨다면, 슬램덩크를 보세요. 까여도 구관이 명관입니다.
[# 유령 : 우리끼리 하는 마피아 놀이와 비슷]
- 유령은 표면적으로는 '추리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누가 스파이 "유령" 인지 밝혀내기 위해 캐릭터 간의 심리적인 갈등과 서사적인 대립이 나올 것을 기대할 수 있겠죠. 문제는 그 심리적인 갈등의 표현이 너무나도 평면적입니다. 우리가 마피아게임을 하기 전, 권모술수와 정치적 모략이 넘치는 짜릿한 심리 게임을 기대하며 시작하지만, 실상 마피아를 해보면 마녀사냥과 여론몰이 위주의 게임을 진행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뻔하게 의심하고, 뻔하게 떡밥을 흘리며, 관객들은 그 뻔한 맛에 그저그런 반응을 보입니다.
- 불안불안하게 그저그런 싸움을 반복하던 추리극은, 중반부 '유령' 의 정체가 밝혀지면서부터 심각하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추리물로 더 이상 호흡을 이어나가기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자, 그냥 진흙탕 싸움으로 넘어갑니다. 마치 마피아게임을 하다가 일반인들이 논리의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 그냥 장기판을 엎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수습이 안되자 액션으로 장르 전환을 시도하게 되는거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비우고 영화를 보신다면, 의외로 액션신은 그럭저럭 볼만합니다. 문제는 그 액션신이 나오면서 앞에 쌓아놨던 빌드업이 모조리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는거죠. 마치 <신의 한수>를 보던 당시와 똑같은 느낌입니다. 어차피 바둑판 엎고 맞짱까고 칼춤 출거면 바둑은 왜 두는지 이해가 안되는거죠. 즉 추리극이 액션신을 보여주기 전에 각오해야 하는 이유, "이럴거면 추리는 왜 한거임?" 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 이번에도 또 다시 나와버렸습니다. 만약에 이 영화가 '추리 스릴러' 을 표방했다면 최소한 추리에서는 무언가를 건졌어야 합니다. 최소한 <신의 한수>는 내기바둑이라는 전제라도 깔렸지만, 이 영화는 그마저도 없는 겁니다. 결국 추리는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지요.
- 다만 독전에서도 나쁘지 않은 비주얼을 보여주었던 이해영 감독답게 미장셴은 훌륭한 편입니다. 배우 또한 설경구, 이하늬, 박해수, 박소담입니다. 어디 가서 연기로 꿀릴 사람들은 아니죠(다만, 박소담의 연기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굳이 세 작품(유령, 정이, 교섭) 중에서 순위를 매기자면 그래도 평작의 반열에는 드는 정도입니다.
[#정이: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기대했는데 이상한게 나왔어요]
- 이 영화의 포스터와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무엇이 떠오르셨나요? 로봇 '정이'가 적들을 무찌르는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드라마를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영화는 적을 무찌르는 모습 따위 거의 없습니다. 도대체 가상의 적국이라는 족속들은 뭐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어요. 내전으로 국가가 엉망이 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이라는데 다들 살아가는 모습이 썩 불행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로 이 영화는 하루종일 드라마에만 집중합니다. 아마 극장에서 개봉했으면 희대의 낚시 작품으로 지적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OTT 라서 명예사 당할 수 있었습니다. 꼬우면 그냥 끄면 되거든요.
- 해외에서는 호평이니 또 우리가 잘못됐다고요? 그런 당신에게 "스토어웨이", "클로버필드 패러독스", "종말의 끝" 을 추천합니다. 특히 종말의 끝을 추천합니다. '다시 보니 선녀같다!'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넷플릭스 SF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얼마나 바닥에 있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퇴근하고 하루종일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를 틀어놓는 저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훘.
- 그리고 해외와 국내의 평이 갈릴 수 있는 이유는, 연기 영향도 있습니다. 우리가 해외 연기에 대해서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듯 해외에서도 국내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해서 자막으로 대부분을 바라보니 확인이 힘들죠. 솔직히 그동안 배우진들이 보여주었던 연기력(특히 류경수)을 보면, 이는 비단 배우들의 실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각본 자체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죠. 류경수 씨가 연기한 상훈이란 캐릭터는 천재 사이코를 하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가짜 광기형 캐릭터입니다. 이 정도의 광기는 가혹한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조소 거리조차 안됩니다. 외에 故강수연 씨, 김현주 씨도 어디 가서 연기로 꿀릴 사람들이 아닌데 아닌데 도대체 뭘하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뿐입니다.
- <교섭>이 사상에 대한 불필요한 논리가 포함되어있어 불호에 가까운거지, 순수하게 만듦새로 보자면 <정이>는 거의 최악에 가깝습니다. 스포일러를 배제하기 위해서 상세한 내용을 설명하기 힘든데, 굳이 안보실꺼면 꺼라위키에 논리적 공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놓은 내용이 많으니 보시면 될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작년의 K-넷플릭스 중에서 <지옥>을 가장 인상깊게 봤었는데, 갑자기 또 이렇게 빅-똥을 날리시는거 보면 연상호 감독님의 퐁당퐁당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올해 설 영화들이 저에게 보여준 결론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