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A가 여로모로 친한 여사친 B와 A에게 구면인 B의 친구인 여자 C를 만나는 자리에 나를 불렀다. 불려나갔으니 조금 늦게 나는 합류했다. 이니셜로 시작했으니 나는 자연스레 D가 되어야되겠군. 여튼 고마운 친구 A는 나로 하여금 오늘 처음보는 여자가 있는 술자리에 나를 끌고나와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했고, 이내 술이 몇차례 돌고나니 B,C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술집을 가득 메웠다. 분위기 좋네. 나도 이내 그 분위기에 적응해서 나와도 편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 주고받고 있었다. 그렇게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내가 오기전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갑작스레 물어보더라.
B: "D오빠! 오빠오기전에 사실 우리가 오빠 이상형이 뭐냐고 A오빠한테 물어봤는데~"
A와 B가 만나는 자리에 서로 아는 동성친구를 불러서 2:2를 만든거니 '오는 사람은 (그러니깐 나)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었을테고 또한 그 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도 물어봤나보다. 일단 내가 오고나서 그 이야기가 다시 화제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대충 몇개중에 하나인걸 알고있다. 얘는 맨날 내가 어떤 여자 좋아하는지 누가 물어보면 대답하는 다양한 대답들이 있는데 정상적(?)인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B의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답을 예상하면서 나의 반격 래파토리를 꺼내려고 준비했다.
나: "응? 얘가 나도 모르는 내 이상형을 알어?"
C: "네 엄청 잘안다던데요.,,크크크 자취하는 여자라던데요? 크크크크크크!"
B: " D 오빠 그렇게 안봤는데 그렇다면서? 크크크크"
그러면서 B와 C가 깔깔대며 웃는다. A는 뒤늦게 무슨 이야기했는지 듣고는 같이 웃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가 좋다는거 자체가 좋다는거다. 이 이야기를 보는 누군가는 A가 나를 멕이려했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전혀 아니고 오히려 반대다. 처음 보는 나를 위해 그래도 나보다 친숙하고 나보다 잘생긴 니가 미리 색드립을 쳐놓았구나. 오늘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 또한 A가 물꼬를 텄지만 그걸 이용해서 B가 A의 색드립을 활용해 날 공격했다. 최소한 동일수준의 색드립은 나에게 있어 정당방위. 이 모든 것은 A의 공로다.
나 : " A랑 나랑 친하다고 혹시 들었어?"
B" : " 응 오빠들 완전 친하다며! 완전 친한 친구 온다던데?"
나 : " 얘가 날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내가 자취해서야."
반격기 한방에 바로 B와 C가 구르더라. 그런 B와 C를 보면서 계속해서 A에 대한 디스를 이어나갔다. A는 집에 고양이는 안키우면서 길고양이는 귀여워하는데 그건 길고양이가 자취해서 그런거라고 했더니 B가 대굴대굴 구르며 A가 길고양이 귀여워하는거 보고 자상한줄 알았었는데 이제보니 응큼한거였다고 말을 받았다. 색드립은 친한 사람을 타겟팅으로 펼쳐주는게 여러모로 좋다. 위계가 없는 관계에서 해야되는건 너무나 당연한거고. A가 나에게 한 말이 나를 멕이는 것이 아니듯, 내가 하는 말도 A를 멕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더구나 A를 까마귀 만들고 나혼자 백로 될 생각도 더욱 없다. 친구야 기다려라 까마귀가 간다.
나: "뭔가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자취하는 여자 좋아하는건 A라고. 나 완전 반듯한 사람이다? (이상형) 따로있어."
C : "그럼 D오빠 이상형은 뭔데요?"
나 : "나? 잘취하는 여자~"
멍석을 깔아주니 A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얘는 자취하는 여자 좋아하는 본인보다 더한 놈이라고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은 비록 길고양이지만 얘가 좋아하는 동물은 코알라라며 '길고양이 vs 코알라' 구도를 만들어냈다. B와 C는 그런 A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했고, C는 '오빠 변태~'라면서 어깨빵을 한대 날렸다. 이 글이 교재는 아니지만, 여기서 스피드웨건이 한마디 해보자면, 내가 색드립을 날리는 목적이 바로 이거다. 변태나 응큼이 소리 듣고싶어서다. 어깨빵치면서 해주면 더 좋다. "오빠 변태~ 응큼해~"라는 말은 여자에게 들을수 있는 최고의 찬사 아닌가. (반대로 최악은 좋은 사람) 모든 드립이 그렇지만 색드립도 마찬가지로 호감도를 높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이지 색드립 날린다고 뭔가 해보겠다는거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남녀가 만나 서로 호감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 이야기를 벗어나 오늘의 이야기를 쓴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내가 문득 내가 가진 무기는 무엇일까라고 곰곰이 생각해본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말을 잘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아주 잘하냐면 어디가서 내몸하나 지키는 정도지 말로 밥벌어먹는 사람들에 비해 한참 모자란건 사실이다. 그냥 모임에서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 본게 아주 드문것도 아니고. 글을 잘쓰냐라고 생각해봤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로 나보다 잘쓰는 사람 널렸다. 그러다 떠오른것이 그것이었다. '이것'만큼은 누굴만나도 내가 잘한다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나는 술을 잘먹인다. 권주를 아예 안하는데도 술을 잘먹인다. 권주를 안한다고 하면서 권주하는거 아냐? 라고 생각할수 있는데 정말 나는 내가 먹어야되니 넌 먹지말라 그런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꽐라되서 업고다닌게 한두번이 아니다. 항상 나를 만나면 과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 업보려니하고 뒷수습도 잘해준다. 평상시 술 거의 안마시던 남자인 친구들도 나를 만나서 실려간게 한두번이 아니다. 오죽하면 여친 친구 처음소개 받는 자리에서 여친 친구 하나 꽐라되서 집에 업고와서 재운적이 있다. 걔도 처음보는 친구남친네 집에서 친구도 없이 자다깨서 엄청 놀래서 도망가려했지만, 도망치다 나한테 걸려서 해장국 억지로 나한테 사주고 탈출할수 있었다. 그런 일들을 자주 겪어서 친구들이 나에게 붙혀준 별명은 꽐라메이커. 친구들이 술먹이고 싶은 사람들 자리에 나를 이용한건 당연!
오늘의 이야기는 사실 알콜에 관한 이야기였다. 근데 술이야기지만 술을 기분좋게 적정량을 상대들에게 먹게 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건 설명을 잘 못하겠다. 처음부터 되었기때문에 왜 그런지 잘모르겠어서 설명을 아예 못하겠다. 오빠만 만나면 술많이 먹는다고 나에게 핀잔을 주던 B에게, 내가 술을 먹으라고 한적이 한번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하니 B도 대답을 잘 못하더라. 대충 조사해본 바로는 내가 빨리마셔서라는게 자주 나오던 대답인데, 그게 맞다는 전제하에 분석하면 상대의 호감을 사서 내 행동을 따라하도록하는 미러링유도다. 뭐 그치만 그게 맞는지도 잘모르겠다. 망가져도 될거같은 분위기는 좀 만들어주는거 같기도하고. 여튼 언젠가는 알콜에 관련된 글을 한번쯤은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글을 쓸때는 반드시 나는 알콜을 마시고 쓰리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바로 지금 알콜을 마시고 쓰는중이다. 이 글은 철저히 알콜을 마시고 쓰며, 마지막 글 올리기 전에 퇴고만 말짱할때 할것이다. 다만 술을 남녀관계에 이용하면 술을 마실땐 좋은데 술을 깼을때 역효과가 날수있다. 그 부분에 대해선 겪은것도 많고 쓸만한 이야기가 많으니 그것에 대해 글을 써보려했다. 그렇게 알콜의 사후 뒷처리에 대한 스킬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옮겨보고 싶었는데.. 문제는 내가 지금 너무 많이 마셨다. 그냥 서론으로 꺼낸 '잘취하는 여자' 드립이나 마무리하고 자야겠다.
술에 관한 글을 술먹고 쓴다는건 내 전략이었지만 ㅠ 너무 많이 마셨다 ㅠ
마무리 해야되니 다시 A,B,C와의 술자리로 돌아가보자. "A의 자취하는여자 vs 나의 잘취하는여자" 구도는 일단 B,C에게 큰 웃음을 줬다. 한번 성공한 드립이 나오면 그것을 변주만 해도 빵빵 터지게 되어있다. 다시 스피드웨건이 출동하자면 그게 바로 앵커링이다. 배가 어딘가에서 닻을 내린다는거지. 드립을 성공하면 굳이 다른걸로 더 웃기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성공한 드립에 대한 닻을 단단히 내리고 그에 대한 변주만 해줘도 (그게 설령 재미가 없더라도) 빵빵 터지게 되어있다. 재미가 없으면 왤케 재미없냐며 웃는다. "자취하는 길고양이 vs 이름부터 코알라" 같은게 전형적인 앵커링이다. 예능프로들도 앵커링을 많이 해서, 항상 예능팬들이 계속봐야(공부해야) 더 재밌게 볼수있단 이야기를 하는거다. 여튼 그날도 그렇게 먼소리를 해도 서로 웃으면서 달리면서 술자리가 무르익었는데 갑자기 C가 별 생각없이 한마디 꺼내더라.
C : " 오빠 나 취한거 같아요"
연신 벌개진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나한테 이야기했다. 찬스 왔다! 놓칠수야 없지.
나 : " 지금 너 나 꼬시는거야?"
C : " ?????? 갑자기 ?? "
나 : "너 지금 내 이상형이라고 어필하는거 아냐? 나 완전 설랬잖아~"
기분 좋은 술자리에 남녀가 섞여있을때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이런 멘트 나오면 주변에서 호응을 자연스레 잘해준다. C도 앵커링이 되어있어서 듣자마자 빵터졌다. A,B는 사겨라 사겨라 하면서 지들끼리 건배하고 난리다.
나 : " 내가 진짜 불리하네. 난 내 이상형도 다 오픈했는데 쟤는 하나도 오픈안해서 이 전투 내가 완전 불리하네.~"
C : " 오빠가 안물어봤잖아요.~"
나 : " 나 이쁜여자만 보면 말 잘 못해서.. (야유) 못물어봤지. 그래 이상형은 뭐야?"
C : " 저 재밌는 사람이요!"
이쯤이면 걸렸다고 봐도 된다. 연신 빵빵터진 상대가 재밌는 사람 좋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러니깐 상대드립을 찰진 접수로 받아드려야지.
나 : " 아깝다 ㅠㅠ 난 안되겠네ㅠㅠ"
둘이 사귀라며 연신 박수치던 A,B까지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C도 마찬가지.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 : " 이상형이 잘생긴 사람이면 내가 어필해볼랬는데 난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잖아. ㅠㅠ"
C : " 크크크 읍읍읍 (너무웃다가 사래들려서) 아니에요. D오빠. 오빠는 절대절대 절대 절대 안잘생겼고, 대신 엄청 재밌는 사람이에요. "
나 : " 그래? 몰랐는데 그러면 너 진짜 지금 나 꼬시는거네?"
얼굴이 갑자기 더 빨개지며 살짝 부끄러워하는 C는 나로하여금 제대로된 접수였음을 느끼게 해주었었다. 그 시간 이후로도 웃으면서 즐거운 술자리를 계속 했었는데. 건배하며 신혼여행은 콸라룸푸르로 가기로했었는데. 그녀의 빈잔채워주며 내가 지금 니 콸라룸푸르행 비행기 티켓팅중이라고 했었는데. 문제는 오늘 하려던 이야기가 이게 주가 아니었을뿐. 깔라만시 같은 그녀는 다음에 써야겠다. 언제 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