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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드래곤나이트의 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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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드래곤나이트의 모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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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기침을 하면 인간들이 감기에 걸린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니 드래곤의 심기가 좋지 않은 것은 인간에게 불행한 일이었다. 그 드래곤의 나이가 천 년이 넘은 탓에 무시무시하게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고, 게다가 하필이면 왕국의 수도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고 있을 경우는 더욱 그러한 법이었다.
그날도 드래곤은 기분은 좋지 않았는지, 하늘을 낮게 날아가다 고개를 돌려 옆으로 침을 뱉었다. 강철마저 녹이는 강력한 산을 뒤집어쓴 성탑은 마치 물에 젖은 설탕가루처럼 녹아내렸다. 다행히도 평소 대피훈련에 숙달되어 있던 병사들은 성이 모두 무너지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도피할 수 있었다. 사망자는 없었고 중상자가 세 명, 경상자는 열한 명이었다.
뒤이어 드래곤은 이유 모를 짜증과 함께 불길을 내뿜었다. 그 화염이 마을을 향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그녀의 배려였다. 하지만 그 바람에 나무꾼과 사냥꾼들이 생계를 꾸려가는 터전인 숲의 절반이 불타고 말았다. 그런 나날들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열흘째였다. 마침내 왕은 용사를 불렀다.
“위대한 용사시여.”
위대한 드래곤나이트이자 지상을 구한 영웅, 또한 살아 있는 전설이기도 한 용사에게 왕은 최대한 예우를 갖추어 말했다. 용사는 껄끄럽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전하.”
왕은 행여나 상대를 자극할까 저어하여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근자에 이르러, 드래곤께서 때때로 심기의 불편함을 과도히 표출하시는 듯하오만........”
왕은 용사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결국 물었다.
“혹시 그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시오?”
용사는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더니 발끝으로 땅을 비볐다. 명색이 왕궁에서 쓰는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바닥에 깔린 융단은 올이 굵고 거칠었다. 지금 왕은 사치하는 데 낭비할 돈을 아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한다는 평판이 대륙에 자자했다. 마침내 마음을 정한 용사가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고맙소. 고맙소이다, 용사여. 부디 그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지만 그 가호가 과연 쓸모 있는 것인지는 의문스러웠다.
드래곤은 용사를 위해 설치했던 반중력 마법을 해제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용사는 처음 둥지를 방문했을 때처럼 힘들여 절벽을 기어올라야 했다. 그나마 무거운 갑주를 걸치거나 무기를 걸머지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대신 그는 자루 하나를 어깨에 메고 등반했다.
세 시간 만에 간신히 등정에 성공한 용사는 잠시 쉬며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하늘을 절반쯤 덮을 만한 거대한 덩치의 드래곤이 눈을 감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동안 쳐다보다 용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고귀한 드래곤이여.”
드래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용사는 그녀가 잠들어 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는 재차 드래곤을 불렀다.
“고귀한 드래곤이여.”
드래곤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리더니 거대한 노란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 눈동자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위압감만으로도 약한 동물들은 몸이 굳어버리고 말 정도였다. 용사도 감히 맞서지 못하고 그 시선을 슬쩍 피하며 비스듬히 섰다. 마침내 드래곤이 물었다.
“왜?”
그녀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목소리만으로도 사람을 베어죽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용사는 불안한 듯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다, 강대한 드래곤이여.”
드래곤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눈을 감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해 봐.”
용사는 다시 한 번 망설였다. 그리고 마침내 드래곤나이트에 걸맞은 단단한 결의와 굳센 의지를 가지고 그녀 앞에 버티고 선 채 말했다.
“미안하다, 드래곤이여.”
드래곤이 다시 눈을 뜨더니 용사의 말을 되풀이했다.
“미안하다고?”
“그렇다, 드래곤이여.”
“뭐가 미안한데?”
드래곤의 추궁에 용사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드래곤이 거대한 코웃음을 치더니 가시 돋친 말을 연달아 쏘아붙였다.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과하고 본다는 거야? 지금 날 놀리는 거야? 아니면 간을 보는 거야? 아니면 일단 사태를 수습해야 하니 무작정 미안하다고? 그래, 물어나 보자. 누가! 언제! 어디서! 뭘! 어떻게! 왜! 잘못했기에 네가 지금 사과를 하는 건데? 응?”
그녀의 입에서 지옥처럼 뜨거운 불길이 넘실거렸다. 그녀는 스스로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목을 들어 올려 길게 화염을 내뿜었다. 거대한 불줄기가 하늘을 가르며 넘실거렸고 순식간에 주위의 온도가 몇 도나 상승했다. 용사는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잽싸게 샘물에 몸을 던졌다. 샘이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간신히 용사의 몸을 담글 정도는 되었다.
얼마 후 열기가 그치는 것을 느낀 용사가 샘물에 처박은 고개를 들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드래곤의 얼굴이 자신의 앞에 있음을 깨달았다. 드래곤은 용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아. 어디 한 번 말해 보시지.”
용사는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리고 터벅터벅 걸어가 떨어뜨린 자루를 주워든 후 손을 집어넣었다. 이윽고 밖으로 꺼낸 그의 손에는 열기에 반쯤 익어버리다시피 한 사과가 들려 있었다. 아직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채였다.
용사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사과를 내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이게 뭔데?”
드래곤이 묻자 용사가 더욱 어색한 태도로 더듬거렸다.
“그게, 요즘 사과가 제철이라 맛있다고 해서.......”
드래곤은 손가락을 뻗어 자루를 뒤집었다. 속에서 빨갛게 익은 사과 수십 개가 데구르르 굴러 나오는 것을 보는 드래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설마 이걸로 날 꼬드기려던 거냐?”
용사가 침을 꿀꺽 삼킨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이 어처구니없어하며 길게 포효했다. 그 소리는 왕국 전역에 들려 사람들은 모두 귀를 막으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포효를 마친 드래곤은 씩씩대며 용사를 내려다보았다. 용사는 목을 움츠리고 어깨를 잔뜩 세운 채 머리를 파묻다시피 하고 있었다. 마침내 드래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야. 너......”
그러나 드래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용사가 움츠렸던 목을 살짝 펴면서 위쪽을 곁눈질했다. 드래곤은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 손을 뻗어 손톱으로 사과를 쿡 찔렀다. 그리고 그걸 입으로 가져갔다. 거대한 턱이 두세 번 움직이더니 사과를 으깨고 박살내서 목구멍으로 넘겼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좀 더 긴 침묵이 흘렀다.
침묵의 끝에서 드래곤이 말했다.
“나쁘지 않네.”
용사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잽싸게 행동했다. 재빨리 자루로 뛰어가 너덧 개의 사과를 끄집어낸 후 양손을 쭉 뻗어 위로 받쳐 올리기까지 미처 삼 초도 걸리지 않았다. 드래곤이 다시 사과를 받아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턱이 움직이고, 어금니가 부딪히며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드래곤은 혀를 내밀어 입 주위를 핥은 후 마력을 그러모아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직접 사과를 집어 들고는 그중 하나를 말없이 용사에게 내밀었다. 용사는 냉큼 받아들었다.
두 사람은 벼랑 끄트머리에 앉아 남은 사과를 하나하나 먹어치웠다. 마침내 마지막 사과가 목구멍 너머로 넘어간 후에야 비로소 드래곤이 시선을 벼랑 너머로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다음엔 그러지 마라.”
용사는 목이 빠질까 걱정될 정도로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드래곤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헛기침을 했다.
“그럼 이만 내려가겠다, 드래곤이여.”
드래곤은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어떻게 내려가려고?”
대답이 궁해진 용사는 그저 머리를 외로 꼴 뿐이었다. 드래곤이 말없이 한 손을 흔들어 마나를 엮어냈다. 그리고 마법이 완성되자 다시 입을 열었다.
“반중력장을 만들었어. 타고 내려가.”
용사가 침을 꿀꺽 삼킨 후 과장된 모습으로 허리를 숙여 보였다.
“고맙다, 강대하고 고귀하며 친절한 드래곤이여.”
인사를 마친 용사는 마력장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잠시 후 그의 몸이 아래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드래곤이 무심한 투로 말을 던졌다.
“내일도 사과 가져와.”
물론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