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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한 드래곤이여.”
드래곤은 짐짓 못 들은 척하며 딴청을 피웠다. 용사가 자신을 부를 때 강대하다느니, 위대하다느니, 고귀하다느니 같은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 때는 대체로 뭔가 부탁할 일이 있을 때임을 그녀는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용사는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들러붙었다. 마침내 드래곤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모험을 떠나지 않겠는가?”
그녀는 오른쪽 앞발의 발톱으로 왼쪽 뒷발톱 아래쪽을 후벼 파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건 왜?”
용사가 허리에 손을 얹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드래곤나이트이자 또한 용사이기 때문이다! 용사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생명을 건 모험을 통해 명예와 보물을 쟁취하지 않는다면 이 무슨 어불성설이란 말인가!”
그녀는 콧구멍으로 유황 증기를 내뿜으며 냉정히 지적했다.
“네 말에는 지금 세 가지 문제점이 있어. 첫째. 내가 있는데 네가 생명의 위험을 느낄 일이 있을까? 둘째. 명예라면 현 시대의 유일무이한 드래곤나이트가 된 것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지 않아? 그리고 셋째. 보물이 필요하면 그냥 저기 가서 대충 챙겨 가라고. 이미 잔뜩 있으니까.”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둥지를 가리켰다. 드래곤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그녀 또한 무수한 금은보화를 그녀의 이불 삼아 살고 있었다.
용사의 얼굴이 억울한 듯 일그러졌다.
“하지만 모험을 하지 않는 용사를 어찌 용사라 일컬을 수 있단 말인가!”
“그야 네 사정이지.”
그녀는 귀찮음을 잔뜩 실어 크게 하품을 했다. 그쯤 하면 그만두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알다시피, 용사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끈질기다는 것이었다. 그는 드래곤의 하품에서 비롯된 거센 광풍에 맞서 고래고래 고함질렀다.
“나의 모험은 용사로서의 의무다! 거리의 음유시인들이 나의 모험담을 노래로 만들어 전파하고 출판업자들이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도록 할 신성한 의무가 내게 부여되어 있단 말이다! 이건 그대처럼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무릇 용사란 인간의 미덕을 상징하는 존재이니, 안으로는 불굴의 의지와 끝없는 노력을 함양하고 밖으로는 시련과 고난에 맞서며 마침내 이름을 떨치고 타인의 모범이 되어.......”
저 녀석을 닥치게 하고 싶다는 음습한 욕망이 드래곤의 심장에서 꿈틀거렸다. 죽이는 건 너무 심하고, 혀를 뽑는 것도 좀 지나치고, 그냥 침묵의 절대 마법을 걸어 평생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어떨까. 하지만 그런 행동이 드래곤나이트의 맹약에 어긋나지 않는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드래곤나이트의 맹약이란 상상하기조차 힘든 수많은 사항과 그에 대한 대처법을 천여 쪽에 걸쳐 빽빽하게 나열한 거대한 계약서류였다. 자칫 그중 하나의 조항에라도 저촉되는 행동을 했다가는 마나의 원리와 대자연의 법칙에 따른 반대급부가 적용되기 마련이었다. 함부로 용사에게 마법을 걸었다가 날개 한 쪽이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일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용사는 여전히 자신이 모험을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었다. 마침내 참다못한 드래곤이 말했다.
“그만. 그만둬. 잠시 생각 좀 해 보자.”
용사가 말을 그치자 드래곤은 방금 전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잘 검토해 보았다. 나름대로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일단 용사가 제시한 모험의 요소, 그러니까 남들이 가보지 못한 지역과 생명의 위험과 그에 합당한 보상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용사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당분간은 용사의 지겨운 수다를 듣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녀는 결정을 내린 후 용사를 은근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 모험을 떠나게 해 줄게.”
“정말인가?”
뜻밖의 흔쾌한 대답에 용사가 놀라서 되물었다. 드래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가락을 하나 세워 보였다.
“다만 나는 안 따라갈 거야. 괜찮지?”
“무방하다, 드래곤이여! 나의 오롯한 힘으로만 이루어내야만 진정한 모험이 아니겠는가!”
용사가 흥분하여 침을 튀기며 말했다. 드래곤은 싱긋 미소를 지은 후 양 손을 들어 주문을 엮기 시작했다. 마나의 흐름이 교차되고 낭랑한 영창이 그곳에 힘을 실으면서 보이지 않는 힘이 실체화되더니 마침내 시공간과 차원을 넘어선 연결로가 열렸다. 그 너머에서 익숙한 얼굴이 그녀를 돌아보더니 반색했다.
“얼레. 웬일이시오, 누님? 이렇게 거창한 마법까지 써 가면서.”
“오랜만이야. 꼬맹이.”
드래곤이 마왕을 마주보며 손을 흔들고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너 전에 지옥에서 별 재미있는 일이 없다고 했지? 그래서 내가 재미있는 꺼리를 하나 주려고.”
마왕이 흥미롭다는 듯 입술을 오므렸다.
“그거야 반가운 일이지. 어떤 거요, 누님?”
드래곤이 미소 지었다.
“태초 이래 처음으로 인간 용사가 지옥으로 모험을 떠나는 거야. 마왕을 이기면 전례 없는 영광과 어마어마한 보물을 얻게 되겠지. 하지만 실패하면....... 글쎄. 그것까진 잘 모르겠네.”
그녀의 의도를 짐작한 용사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그러나 드래곤의 행동은 재빨랐다. 그녀는 두 손가락으로 용사의 목덜미를 잡아서 들어 올린 후 시공간의 관문 앞에 들이댔다.
“인사해. 서로 구면이지?”
용사의 얼굴을 알아본 마왕의 입이 크게 찢어졌다. 그것은 비유법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였다. 뺨 위쪽까지 찢어진 입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가운데 마왕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거 재미있겠는걸? 좋소, 누님. 기분전환이 되겠어.”
용사는 다리를 버둥대며 무어라 외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미처 목청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그녀는 가볍게 손을 저어 그를 차원문의 저편으로 내던져버렸다. 용사의 몸이 비명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일별한 후 그녀가 말했다.
“그냥 적당히 노는 거야. 죽이면 안 돼.”
마왕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드래곤나이트의 맹약이 있으니 이해는 하오만....... 그럼 팔 하나쯤 자르는 것만이라도 어찌 안 되겠소?”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잘못하면 내가 곤란해지니까. 몸 성히 돌려보내 달라고.”
마왕이 픽 웃더니 응낙했다.
“알겠소. 아무튼 고맙소. 이렇게 여흥거리를 챙겨 주다니.”
마왕이 흥겹게 어깨를 들썩이며 저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지옥과의 연결로를 차단했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고요함을 만끽하며 머리를 날개 아래에 파묻고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드래곤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날짜를 계산해 보았다. 그녀가 잠들어 있던 기간은 대략 석 달하고도 열흘쯤이었다. 생각보다 다소 늦잠을 잔 모양이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둥지의 모습은 그녀가 잠들기 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누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자리 잡은 강대한 드래곤의 둥지를 침범하겠는가? 그녀가 그곳에 살기 시작한 후로 감히 침입해 온 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용사 녀석. 아직 지옥에서 못 돌아왔나?’
그녀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외로 꼬았다. 드래곤나이트와 드래곤 사이에 이어진 정신적 연결에 따라, 그녀는 용사가 죽지 않았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다. 용사가 지금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건지, 아니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숨만 붙어 있는지까지 알 방도는 없었다.
‘잘 있겠지?’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다. 서너 시간 가량 눈만 끔뻑이고 있던 그녀의 시선에 물건이 하나 보였다. 벽에 걸려 있는 미스릴 등긁개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그것을 쳐다보다 마침내 신경질을 내며 벌떡 일어났다. 그 서슬에 배 밑에 깔린 금은보화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후 샘물로 갔다. 그리고 몸에다 물을 끼얹었다. 차가운 물이 그녀의 피부에 닿으며 김을 피워 올렸다. 그녀는 상쾌한 느낌을 만끽하며 손바닥으로 피부를 문질렀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던가. 그녀가 씻는 것을 즐기게 된 것이.
‘그 녀석이 나타난 이후부터였지.’
그녀는 세차게 머리를 털고 옷을 주워 걸쳤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녀는 용사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떨쳐버리려 해도 용사의 넙죽한 낯짝이 기억의 한켠에 생생하게 떠올라 떨어지지 않았다. 무사한 걸까? 마왕 꼬맹이한테는 몸 성히 돌려보내라고 다짐했는데. 하지만 녀석의 부하들이 지나치게 행동했을 수도 있잖아? 인간의 몸이란 연약하기 짝이 없으니까. 혹시라도 뱃가죽이 갈라졌다든지, 피를 너무 흘려서 인사불성이 되었다든지 그럴 수도........
그녀는 벌컥 화를 내며 발을 굴렀다. 강대한 드래곤인 자신이 어째서 한낱 인간 따위를 걱정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움직여 마나를 엮어냈다.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 다시 한 번 열렸다. 그러나 뜻밖에도 마왕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가 자리에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옥의 마왕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데.
그녀는 이를 질끈 깨문 후 또 하나의 마법을 엮어냈다. 어마어마한 마나가 집중되자 주변의 공기가 점차 달아오르는 가운데, 그녀가 열어 놓은 통로가 점점 더 확대되었다. 마침내 그 크기가 인간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까지 커지자 그녀는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녀의 발 아래로 수천 겹의 차원이 겹쳐지며 그녀의 몸을 지옥으로 인도했다. 그녀는 끝없는 암흑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의 몸은 지옥에 있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들은 것은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크하하핫. 네 마음 이해한다. 자, 한 잔 더 해.”
그녀는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그녀가 지옥으로 온 것이 아니었나? 실수로 무슨 선술집에라도 온 것인가? 그러나 그녀가 있는 곳은 분명 지옥이 확실했다. 그녀는 동굴 한쪽을 파서 만든 어두침침한 방 구석의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그녀에게서 서너 걸음쯤 떨어진 앞에는 흑요석으로 만든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악마 하나와 인간 하나가 등을 돌린 채 나란히 앉아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어깨동무?
그녀가 살아온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당황해하며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아까의 그 목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분명 그 꼬맹이의.......
마왕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말도 마라. 내가 어렸을 때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데. 만날 번개를 뒤집어씌우고, 불길을 내뿜고, 손톱으로 할퀴고 말이야. 한시도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니까.”
“그래. 걔 성깔이 좀 더럽긴 하더라.”
혀가 잔뜩 꼬인 채 맞장구치는 목소리 또한 귀에 익은 것이었다. 뒤이어 두 남자가 앞다투어 잔을 들이켰다. 사방으로 퍼지는 냄새로 미루어 보아 지옥의 몇 안 되는 명물인 용암주(酒)가 틀림없었다.
용사가 탁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더니 흥얼거리듯 말했다.
“고귀한 존재인 드래곤이 그렇게 성질머리 더러운 줄 알았으면, 내가 드래곤나이트 따윌 했겠냐? 그 땐 아무것도 몰랐으니 그저 무작정 들이댄 거지.”
마왕이 낄낄 웃더니 용사의 어깨를 연신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고생이 많다. 그런데 나도 놀랐다고. 누님이 드래곤나이트를 받아들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거든. 너 대체 무슨 수로 누님을 꼬드긴 거야?”
그녀는 동굴 벽에 걸려 있는 미스릴 등긁개를 떠올렸다. 그리고 용사가 딸꾹질을 섞어 가며 하는 말을 들었다.
“내가 또 남자다운 매력이 있거든. 내가 절벽에 올라가서 이렇게 딱 섰어.......”
용사는 실재로 보여주겠다는 듯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양 손을 어설프게 허리에 얹으며 혀 꼬부라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말이야, 딱 말한 거야. 야! 너 이제부터 내 드래곤인 거야! 알겠지!”
용사가 킬킬 웃다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다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마왕이 시시덕거리며 잔을 번쩍 들어 보였다.
“너 진짜 죽여준다! 그래. 남자가 그 정도 가오는 있어야지!”
용사가 잔을 들어 거칠게 맞부딪혔다. 다시 목구멍으로 술이 꿀꺽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한동안 들리더니, 이윽고 용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걔가 막 머리를 굽히면서, 아이고 알겠습니다, 용사님, 저는 이제부터 용사님의 드래곤입니다, 막 이러는 거야! 캬하하하하하!”
용사는 그럴듯하게 드래곤의 목소리를 흉내 내다 마치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어댔다. 마왕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치면서 신나게 맞장구쳤다.
“그 말괄량이가! 그 괴팍해 빠진 누님이! 너한테 설설 기었단 말이지! 너 진짜 최고다! 내가 그 꼴을 한 번 봤어야 하는 건데! 야, 더 마셔! 더 마셔!”
마왕은 술병을 들어 내용물을 절반쯤 흘리면서 용사의 잔을 채웠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다 술을 따르다 내용물이 떨어진 것을 확인한 후 혀를 찼다.
“아 씨, 벌써 다 마셨나? 잠깐만 기다려 봐. 한 병 더 가져올게.”
마왕은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뒤로 돌았다. 그리고 드래곤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대로 몸이 대리석처럼 굳었다. 그의 머리에서 취기가 마치 수증기처럼 순식간에 증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입을 쩍 벌렸지만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드래곤은 단지 눈빛만으로도 그의 몸뚱이를 뚫어버릴 듯 그를 응시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용사가 뒷덜미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자고로 말이지,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거든? 너도 인마, 질질 끌려 다니면 안 되는 거야. 나처럼 확 휘어잡고 이렇게.......”
“어떻게 할 건데?”
드래곤의 차가운 목소리에서 절대영도에 가까운 냉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용사가 잠시 멈칫하다 이윽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드래곤의 냉혹한 시선과 맞닥뜨린 그의 눈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손에서 잔이 빠져나와 땅으로 떨어지더니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용암주의 짙은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는 가운데 드래곤은 양 팔을 천천히 들어 팔짱을 꼈다.
“너, 모험을 하러 떠난 거 아니었어?”
용사가 입술을 핥으며 재빨리 마왕을 훔쳐보았다. 방금 전과 비교하면 거의 다소곳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태도로 서 있던 마왕이 변명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아니 누님, 그게 그러니까 남자들이 서로 친해지다 보면 이렇게 술도 한 잔 하고.......”
“뒈지기 싫으면 닥쳐.”
마왕은 즉시 그 말을 따랐다. 드래곤은 말없이 용사를 노려보았다. 마력이 담긴 눈빛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사의 몸은 마치 얼음이 녹는 것처럼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드래곤은 성큼성큼 두 발짝 다가서더니 용사의 멱살을 잡고 손쉽게 들어올렸다. 비록 인간의 몸이었지만 그녀의 완력은 본래 모습이었을 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돌아간다.”
“조, 조심해서 가시오, 누님.”
마왕이 여전히 뻣뻣하게 굳은 채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인사를 했다. 그녀는 한손으로 용사를 든 채 다시 차원관문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차원을 건너뛰는 동안 용사가 간신히 입을 열어 목 졸리는 소리를 냈다.
“강대한 드래곤이여, 그게.......”
그녀는 용사를 차원의 틈새 사이에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일단 닥쳐. 돌아가면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하니까.”
물론 시간은 충분했다. 해야 할 이야기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