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구석탱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냥 평범한 17살일 뿐이다. 다만 내가 약간 특별한 것이 있다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겠지.

우리 학교는 성적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하다. 흠. 일반적인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 '보통인 학생' '노력이 필요한 학생' 정도로 나눈다면, 우리학교는 '상위 8%'와 'etc'의 두 분류로 학생들을 나눈다. 상위 8%에 속하지 않은 학생은 etc에 속한다. '기타 등등'이 학교에서 그들(학생의 92%)의 존재다.

내게 충격적이었던 세 가지 사건이 있다.
1. 심화반만 들을 수 있는 방과후가 존재했을 때. --> 우리학년 시험문제를 담당하는 모든 선생님들은 심화반'만' 들을 수 있는 방과후에 편성되어있었다. 방과후에 쓰인 지문이 그대로 시험에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수학 같은 경우 심화반 방과후에 썻던 교재에서 비슷한 문제가 나왔다.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시험문제를 직접 내는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에 제한을 둔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2. 심화반 자습실에 심화반이 아닌 학생이 들어온 사건이 있었다. 화가난 심화반 학생들이 심화반 담당선생님께 항의를 했고, 선생님께서는 심화반 교실문 앞에 벽보를 붙였다. "일반학생 출입금지"

3. 학교에서 선착순으로 진로체험을 신청해야했다. 수강신청급으로 아이들이 많이 몰렸는데, 하필이면 신청시간이 야간자습시간과 겹쳤다. 그런데 일반자습실 선생님께서는 야자를 빼고 컴퓨터가 있는 집에서 신청을 한다면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일반반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신청을 했다. 하지만 심화반은 그날 아침에 컴퓨터가 30대 비치되어있는 전산실에서 몰래 진로체험을 신청 할 수 있게 마련해주었다. 원하는 강의를 신청하지 못한 학생은 많았지만, 그중 심화반 학생은 한명도 없었다.


1번 사건때, 나는 반 회장의 권한을 이용해서 심화반 방과후 수업에 관한 내용과 시험에 나온 힌트를 매주 반에서 공유했다. 그리고 같은 반 심화반 친구들한테 불려가 하루종일 갈굼을 당했다. '너가 그런식으로 행동하면, 우리가 학원가는 것 대신 심화반을 선택한 메리트가 없어지지 않냐고.'

2번 사건때, 나는 심화반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문 앞에서 서있었다. 두시간정도 지나니 감독을 보시던 선생님께서 안들어오느냐 하고 물으셨고, 나는 '내가 일반 학생이어서 들어갈 수 없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대문에 있는 코팅된 '일반학생 출입금지' 종이를 떼어버린 다음 내 자습실 자리에 붙여놓고 밑에 썻다. "그럼 심화반 학생은 특별한 학생이냐? xx" 그 프린트는 아직도 내자리에 붙어있다.

3번 사건때, 나는 반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면서 '전산실이 열려있으니 거기서 진로체험 신청하면 돼~'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된 심화반 담당 부장쌤한테 불려갔다. 전산실에 컴퓨터가 30대밖에 없는것 알지않느냐. 애들이 다 몰리면 어떡하려고 하느냐. 그래서 나는 내 생기부를 관리하는 선생님 앞에다 대고 말했다. "그러면 심화반 학생이 아니면, 우리학교 학생이 아닌겁니까?" 라고.



나는 중학교때까지 크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우리 중학교는 고입 아웃풋이 아주 좋아서 명문중학교 대열에 이름올리고 있는 학교였고, 나는 그 곳에서 은근 존재하는 '공부 잘하는 애'에 대한 편애를 많이 봤다. 그리고, 부당한 차별과 편애에 분노하면서 살았다. 그러면서, 훗날 내가 저 위치에 올라가게 된다면, 나는 이 모든걸 바꿔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내 행동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6월달 정도까지만 해도, 나는 내 행동에 대한 굳건한 확신이 있었다. 이것은 '절대 선'이다라는. 하지만, 내 행동이 심화반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보다. 그들은 이러한 특혜를 아주 당연하게 여겼다. 그들은 이것이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라고 말했다.


차별은. 그것을 개선하려면, 먼저 차별 받는 쪽에서 문제인식이 되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차별 받는 '일반반' 학생들도 차별을 대단히 당연하게 여긴다. "억울하긴 하지만, 걔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올라간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개중에서, 가끔씩 나서는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은 '루저' 취급을 받는다. 심화반 아이들은 그들을 비웃는다. "그럼 너네가 성적을 올려서 심화반에 들어오렴. 그럼 되지않니??"


회의가 느껴진다.

도대체 내가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싸운것인가.
이제는 어디까지가 차별이고, 어디까지가 차등인지 구분하지 못하겠다.
그래, 심화반 아이들은 아마 초등학교때, 중학교때 모두 공부를 잘했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아이에 대한 편애를 받으며 살아서,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겠지. 아마 내가 특수한 계기로 명문 중학교에 가서 (성적으로서) 평범하게 살지 않았다면, 나도 저런 편애에 익숙해졌겠지. 또한, 일반반 학생들도, 지속된 편애에 이제는 무감감해졌겠지. 9년동안, 한쪽에서는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다른 한편에는 '루저 인생의 평범한 일반학생' 취급을 받았다.
이제 그들은 이 모든 것에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곧 나도 무감각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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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한달 되었을때 썼던 일기의 일부입니다.

초등학교에서 막 중학교에 갔을때, 어느날 나는 내가 수많은 수행평가에 짓눌려 지금 나의 밝음을 잃어버릴것 같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중 3이 되었을때, 어느날 문득 내가 그때의 밝음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밝은 성격을 잃어버릴 것 같다고 인지했는데도, 나는 그것을 잃어버렸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다른 '인지'를 하고있다. 내가 고3이 되었을때는, 지금의 내가 놀라고 있는 행동들을 직접 하고있을 것이라고. 나는 인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순수했던 시절... '로 시작하는 글을 쓰고있겠지.
이에 나는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건 멍청한 짓이니까. 평범한 학생의 눈을 갖고 상위권으로 살아가며, 언제나 상위 10퍼센트가 아닌 하위 90퍼센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될꺼다. 그리고 지금의 내 생각과 느낌을, 이제는 절대 잃지 않겠다.
중학교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이곳에서 최상위권이 된 것은, 내게 아무런 보상심리도 주지 않으면서 나를 완전히 반대되는 위치에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내가 다른 사람의 상황과 입장을 더욱 깊게 이해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실수를 다시 할까봐 무섭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괜히 오버떨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랬동안 옳다고 믿었던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혼란스럽네요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