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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1/21 02:51:06
Name 은수저
Subject [일반] 피 묻은 깜장바지
깜장바지에 피 얼룩이 안빠진다.

연말 밤길에 흥얼흥얼 주책맞게 밤거리를 쏘다니다 횡단보도앞 기둥에 다리를 부딪혔는데..
그때 왼쪽 발목 위가 음푹 패여서 피가 흘렀는데 몇일 방치하고 세탁기에 바지를 빨았더니 대 참사가 일어났다.
분명히 상처는 발목 아래였는데 깜장바지 전체가 핏빛 방울로 얼룩 덜룩 하다.

하지만 당황 할 필요 없다.
내가 누구냐? 지난 연말부터 신년까지 5박 6일동안...아 갑자기 슬퍼지려고 하네.

얼른 주위 주부님들에게 도움의 까똑을 날려보았다.
약국에서 오백원주고 과산화수소를 사면 거품이 뽀글 뽀글 일어나는데 찬물로 쓱쓱 닦아주면 쉽게 피 얼룩이 빠진다고한다.
별거 아니잖아? 간단한 일이네.

혹시 몰라서 인터넷에 몇가지 피 묻은 옷 얼룩빼기를 몇개 더 쳐봤는데 무를 갈아서 싹싹 비벼주면 역시 피 얼룩이 빠진다고 한다.
무에있는 뭐래더라 무슨 효소가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피만 쏙 빠진대나 어쨌대나.

약국에서 오백원짜리 과산화수소를 사 들고 왔다.
그리고 완벽히 피 얼룩을 빼기 위해서 냉장고를 뒤져 국 끓이다 남은 반쯤 남은 무토막을 꺼내왔다.
일단 과산화 수소를 붓고 무를 벅벅 갈아서 깜장바지에 열심히 비볐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한가지...주문을 외워야지.
아브라카타브라 얄리얄리 얄랴셩 에네르기 파
얼룩은 빠졌을까?

아니요...

알고보니 피 묻은 옷을 처리할때 절대 하면 안되는게 있는데
더운 물에 절대 옷을 불리면 안된다는거다.

일단 피와 더운 물이 반응하면 옷을 아예 먹물과 물감같은 것으로 페인트질을 하지 않는한
얼룩과 피를 말끔하게 빼내는 방법이 정말 힘들다고 한다.

후...정말 아깝다.
정녕 방법은 없는 걸까?


매일 애용하는 변기도 아니고 그깟 깜장바지 하나에 뭘 그렇게 아쉬움을 표할까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혹시 그 바지에가 이태리 밀라노에서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바느질해서 만든 명품이라서?
그럴리가...그냥 일반 옷가게에서 파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깜장 바지다.
조금 다른점이 있다면 바지 길이가 약간 길어서 천값을 조금 더  받는 다는 점?
소수생산 한정수량 그리고 유전무소유...
돈 있어도 소유할 수 없는 서글픈 깜장바지. 저주받은 이백센치




깜장바지에 얼룩이 크게 번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깜장바지를 입고 촐랑 거리다 횡단보도 기둥에 다리를 부딪혔을때?
집에와서 바로 처리하지않고 몇일씩 묵혀두었기 때문에?
뒤늦게 아무 생각없이 몇일 방치한 피흘린 빨간바지를 세탁기에 돌렸을때?
뒤늦게 처리해보겠다고 과산화수소를 붓고 무를 갈아서 뻘짓을 했을때?
그냥 애초부터 이벡센치를 갖고 태어나서 깜장바지 한벌에 벌벌때는 원죄?


모르겠다. 모르겠어.

발목위가 음푹패여서 피가 철철흐르는데도 별로 아픈지도 모르고 히히덕 노래나 부르고...
병원에서 뜨거운 수건으로 물리치료 받다가 살짝 화상입을때까지 그냥 뜨끔구나.
이렇듯 무신경하고 무감각하고 무를 갈아다 깜장바지에 덕지덕지 쳐바를 줄 아는
나에게도 세상에서 딱 한명 무신경할 수 없는 존재가 있는데...

첫사랑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깜장바지
이것도 소수생산 한정판매 유전무소유격인 존재일까?

깜장바지를 보고 첫사랑의 연락 그래봤자 한달에 한번씩은 하는거같지만...
얼굴보고 또 밤새 술이나 먹자고 놀아달라는 제의에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깜장바지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놀러오겠다는 그녀의 말에 이렇게 까톡을 보냈다.


뭘 그런걸 물어보고 놀러 오냐? 올거면 그냥 오던지...
지금 우리 관계가 딱 괜찮고 만족스러우면 굳이 보러오지말고...
뭔가 답답하고 꽁기꽁기한 관계를 업다운 시킬 의향이 있으면 놀러오고...
인생은 고스톱 아니겠음? 너님이 결정하셈.

숫자 1은 사라졌지만 더이상의 까톡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금요일 밤 11시 30분 나 홀로 심야 영화를 보러 나갔다.
그녀가 만약 놀러 온다면 터미널에 도착할 시간이 12시쯤 되는것은 우연이다.
터미널과 극장이 바로 붙어있는것도 역시 우연이다.
우리집에서 젤 가까운 극장이 바로 여기다
어차피 영화는 12시30분 넘어서 볼려고 했었고 어차피 시간도 남는데 터미널에서 기다린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음 그 뭐랄까 그래 심심하잖아.
12시 30분에 우리동네 시외버스 터미널이 문을 닫는다는것을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천만이 넘었다는 영화를 보러 갈까 하다가 그냥 집에 갔다.
그리고 다음날 이태원에 깜장바지를 사러 갔다.
다행히도 똑같은 제품의 옷이 딱 한장 남아 있었다. 아싸!

진짜 못났다. 못났어.
그리고 진짜 진짜 피 묻은 깜장바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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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튀르크
14/01/21 09:33
수정 아이콘
2메다요? 유전자의 힘인가요?
sparkplug
14/01/21 12:18
수정 아이콘
삭제, 광고 댓글 개재(벌점 5점)
리뉴후레시
14/01/21 13:37
수정 아이콘
왜 자꾸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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