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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7/20 20:41:50
Name Cannavaro
Subject [일반]  인간본성에 대한 생각, 그리고 깊은 반성
안녕하세요? 눈팅한지는 10년, 글 게시자격을 얻은 건 7년이나 되었는데도
PGR의 글쓰기 버튼은 무겁기만 하네요. 깃털보다 가벼운 인터넷 공간 속에서
진중하고 무게감있는 지성인분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그런가봅니다. ^^
필력이 모자람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최근에 크게 느낀 점이 있어서 나누고자 함입니다.

얕은 지식이지만, 제가 알기로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크게 세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성선설, 성악설, 그리고 성무선악설. 이 중에서 감히 맞다고 개인적으로 확신한 것은 성악설과 성무선악설의 사이였습니다.
즉, 인간의 본성은 정해지지 않았으되 대부분은 이기적이고 악하게 변해간다. 사회는 그런 무리들의 집합체이므로 항상 의심하고
조심해야된다. 온세상은 사기꾼 천지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성립하는 불합리한 공간이다.

이렇게 확신하게 된 계기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중학교 시절 친구의 친구가 급우들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가해자들은 단지 고위계층
(국회의원, 대기업사장 등)의 자녀였다는 이유만으로 조사 몇시간 받고 풀려난 일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대학교 입학 후 원만한 대인관계 형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성'도 '성격'도 아닌 '학벌', '외모', '집안'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일입니다.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자면, 신입생 생활을 마치고 2학년이 되어 신입생을 환영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여러 선배들이 이뻐하는 후배는 '착하고 인간성 좋은' 후배가 아니고 '집안 잘사는, 훈훈한' 후배라는 사실이 왜 그렇게
거슬리던지요..

  세번째는 군입대 후 빽의 중요성에 대해 절실하게 느낀 점입니다. 저는 빽은 없었지만 하늘이 도와서인지 군사령부급 부대
인사처와 비서실 모두에서 근무했습니다. 나름 정부기관이라는 곳에서 병사를 뽑거나 장교 보직을 정할 때 제일 중요한 요소가
빽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는 분이 장성이면 군생활이 풀리는 건 당연하다는 사실은 말그대로 '사실'입니다.
공적인 기관이라는 곳에서 저러는데 사적인 기관인 회사는 어떨까요.. 아버지 친구분이 대기업 인사부장이시라 저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항상 조명되는 사회적 이슈는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소위 지하철 무개념녀, 지하철 막말남, 오늘자 뉴스
'시신 성폭행' 등.. 사회는 어찌나 삭막하고 '악'으로 가득차 있는지.. 정치인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고, 흉악범죄는 나날이
증가하고.. 심지어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목사라는 사람들은 천민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서서 'jesus'가 아닌 'money'를 외치고..


  이러한 이유들로 저는 사회를 삐딱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한가지 생각나는 일화가 있네요. 군복무시절 어느날 신병이 저에게
그러는겁니다. 'xxx상병님 웃으시는 모습 처음봅니다.' 그 친구가 100일 휴가 다녀온 후에 한 말입니다.

  사회에 대해,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자 온통 부정적인 모습들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도덕시간에 배운 정의, 공동선은
어디에 있을까. 왜 이렇게 세상은 더럽고 혐오스러울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기적인 것일까. 정치인들은 도대체 뭐하는 작자들일까.
전공이 경제학이라는 사실 또한 이러한 인격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저는 더욱더 차갑고 냉소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제게 그러셨습니다. 사람이 변한 것 같다고.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같지 않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일어나서 무표정으로 고개만 까닥이고 학교가서 밤 11시에 지친 표정으로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하는 생활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죠. 여러차례 나간 소개팅에서도 '너무 차갑다', '냉소적이다', '내 이상형은 집에서 사랑받고 자란 아들인데, xxx 오빠는 그
반대인 것 같다'라는 소리만 듣고 번번히 허탕치기 일쑤.. 밝게 지내보려고도, 웃으려고도 해봤지만 한 번 형성된 인격은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사고가 '인간은 이기적이다, 나는 그런 존재들과 상종하기 싫다' 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 노 전대통령이나 문재인씨 같은 분들은 어떻게 살았길래 정의로울까, 테레사수녀나
슈바이처 박사는 도대체 왜 그렇게 일평생을 봉사에 힘썼을까. (사족이지만 저는 '봉사'에 대해 크게 부정적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봉사란 '내가 너보다 낫기 때문에 도와주는' 일종의 오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갑디 차가운 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애(愛)란 무엇일까.. 정(情)이란 무엇일까.

  그러다가 EBS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별 것도 아닌데 왜 눈물이 나던지.. 아마 일종의 카타르시스
였던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퍼즐 한조각을 찾았던 느낌일까요. 사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제가 이해가 안가실 겁니다. 길 잃은
외국인에게 길 알려주는 게 도대체 뭐가 감동적이라고.. 지하철 미는 게 뭐가 그리 감동적이라고.. 하지만 저는 모두가 외면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그저 이기적이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정의감이라고는 희박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느끼셨나요? 저는 이 사소한 동영상 속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철없던 시절 가졌던 제 확신, 신념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릴 것이라는 희망.. 여태까지 너무 부정적으로만 살아왔기에, 의심의 눈초리로 사람들을 바라보았기에 이 동영상은
제게 큰 충격과 환희를 동시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물론 동남아인을 무시하고 지나간 80%의 사람들은 어쩌면 제 확신을 굳건히 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령을 외치며 철근덩어리를 미는 수많은 사람들과, 길 잃어버릴까봐 타지에서 온 소위 '우리보다 열등한' 동남아인을 걱정해주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모습, 태안반도로의 자발적인 행렬은 제게 큰 가치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선하게 태어납니다. 다만 경쟁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사느라 이를 잠시 깜빡한 것일 뿐...
하지만 이를 깜빡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아직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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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20 21:10
수정 아이콘
글을 잘쓰고 싶다면 "진심만을 쓰면 된다"라고 말하는데요. 이런글이 이 말에 딱 맞는 글 같네요.
오랜만에 (심지어 진에어 스타리그 16강 중인데...) 긴글을 좌라락 읽었네요.

그리고 칸나바로님의 결론에 적극 동의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착하게 살면 되더라구요.

감사일기라는거 한번 시작해 보세요. 하루에 감사한일 5가지씩 매일 적는건데, 세상이 달라집니다
아야여오요우
11/07/20 21:15
수정 아이콘
긍정적으로 변화하신 거 같아서 좋네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선악이니 성선이니도 개인따라 케바케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성무선악설이 맞는 거 같아요 저는
코뿔소러쉬
11/07/20 21:40
수정 아이콘
칸나바로님의 성장기를 솔직담백하게 써주셨네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사람이 모두 선하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악하게 태어나지도 않습니다.
이기적으로 태어나는 아이도 있고 넉넉한 마음을 지니고 태어난 아이도 있습니다. 이건 아주 어린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는거 같아요.
아이들마다 가지고 태어나는 본성은 제각각이더라구요. 위의 영상에서 금화를 넘겨주는 갯수가 아이들마다 제각각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본성은 변할 수가 있지요.
인간은 선하다, 악하다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단정짓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되는거 같더군요.
코뿔소러쉬
11/07/20 21:48
수정 아이콘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자면, 저는 무기력+약간의 냉소+오만함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위하여 노력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저는 그 고민을 하던 당시 '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 제 2부 도덕성'을 보고 꽤 강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올려주신 '인간의 두얼굴'은 나름의 답을 찾은 후에 보게 되었더군요.
칸나바로님도 답을 찾고 힘차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시길 빕니다.
Cannavaro
11/07/20 22:09
수정 아이콘
충달님 / 감사일기라.. 왜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꼭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아야여오요우님 / 아야님 의견도 당연히 맞습니다. 저는 불과 최근까지도 성악설이 맞다고 주장하던 사람이었는걸요..아무튼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코뿔소러쉬님 / 장문의 댓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본성이 변할 수 있다는 말.. 적극 동감합니다. 사실 저는 사람은 절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최근들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무튼 진심어린 댓글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11/07/20 23:13
수정 아이콘
마지막영상.. 괜히 콧등이 시큰해지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단 하나
11/07/21 00:07
수정 아이콘
자비심과 배려, 헌신, 관용, 겸손, 평등 같은 것들이 선입니까?
그저 선이라고 배운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까?
지극히 약자의 입장에서 원하는 노예근성은 아닙니까?
영원한초보
11/07/21 00:52
수정 아이콘
인간본성을 선악의 관점으로 바로보는 자체가 너무 편협합니다.
선이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이기심을 왜 악이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모든 생명체는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운동하는게 당연한거 아닐까요?

본문에서 두번째는 너무나도 개인의 편협한 경험아닌가요?
제가 봤을때는 사실을 왜곡해서 기억했다고 까지 생각이 드네요.
저는 선후배를 대할때 외모, 집안 전혀 신경쓰고 대한적이 없네요.
외모가 신경쓰일 정도로 끔찍한 사람을 아직 못만나봐서 그럴지는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집안이 좋거나 외모가 준수한 편이 절대 아닌데
선배나 후배나 모두 저를 좋아했습니다.(모든 사람은 아닐테니 약간 오바일지도)

세번째, 이걸 왜 악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재는 게편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게 세상의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네번째, 이 또한 너무 편협한 경험을 일반화 시킨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에 나쁜 일도 참 많이 일어나지만 훈훈한 일도 생각보다 많습니다.(지하철 무개념녀 수준의 사건과 대비하여)
정치는 원래 밥그릇 싸움으로 누가 어느쪽의 이익을 잘 대변해 주느냐가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흉악범죄가 오늘날 많이 일어난다고 하시지만 과연 오늘날 범죄률이 중세시대때 보다 더 높을까요?
Cannavaro
11/07/21 01:15
수정 아이콘
FIAT님 /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저도 항상 먼저 다가가야지.. 생각하지만 실천하기가 왜그리 힘든지요..
명심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cure님 / 제가 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단하나님 / 지극히 타당하십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영원한초보님 /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전달드리다보니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무튼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무한낙천
11/07/21 10:36
수정 아이콘
글도 영상도 좋네요
당장 내가 힘들때 나한테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은
그래도 사람이 선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겠죠

그게 비록 어릴떄부터 배워서 생긴 착각이거나
이기적인 본능과 당연한 세상의 이치에 거스르는 착각이더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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