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삶은 태어나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행복의 시작점, 행복레벨의 시작점은 모두 다릅니다. 노력으로 각자 나름대로의 행복은 만들 수 있지만, 삶의 근본적인 행복레벨의 shift는 또 가능한걸까요? 삶을 관통하는 인생의 법칙중에 하나가 행복질량보존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불행한 만큼 행복할 수 있는데, 불행을 마이너스(-)라고 하고 행복을 플러스(+)라고 한다면 이들의 적분은 0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0을 만들기위해서 노력이란걸 합니다. 근데, 이는 절대적인 기준이고 상대적인 기준은 또 다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만 바라보며 시작하는 절대적으로는 0이지만, 멀리서 서로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는 모두 똑같이 0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불행과 행복의 총합이 0이지만, 누군가는 100이고 200입니다. 시작 레벨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 모두 각자 개인적으로는 0이라고 느낍니다. 우리 모두는 현재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서 미래에 기다리고 있는 행복을 또한 찾아서, 불행과 행복의 총합을 각자 나름의 최대수치인 0이 되게 하거나, 100이 되게 하거나, 200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행복레벨의 이동은 가능한걸까요? 0인 사람이 100인 사람이 되거나, 200인 사람이 될 수있을까요? 그리고 꼭 이동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어떨 때 행복감을 느낄까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때? 아니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자주 느낄 때? 세상이 행복과 불행의 중간 기준점이 계속 올라가는 쪽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중에 하나가 존버, 버티기라고 생각하는데(존버는 승리한다고하지만,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음), 삶은 신기하게 상황이 바뀌기도 합니다. 버티면서 내가 달라지는 건지, 진짜 나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버텨서 각자의 행복질량보존의 법칙을 누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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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신은 신경계의 항상성으로 유지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항상성은 국소적 안정 상태에 불과하고, 이데올로기나 권력 구조와 같은 사회에 깔려 있는 집단 무의식 속 밈은 행복/고통 분포를 강제적으로 재배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인간의 육체가 가지는 생물 단위로써의 예측 모델이 앞서 언급한 밈(상위 질서의 예측 모델)에게 압도되면서 발생하게 됩니다.
폭증하는 정신 질환과 자살 문제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되겠지요.
사람은 죽어나가지만 그들을 갈아넣음으로써 상위 질서의 예측 모델은 안정화되므로, 오히려 체제는 안정화된 것처럼 보여지고 사람들은 저항보다는 학습된 무력감에 빠집니다.
그렇기에 노력과 행복의 합은 마이너스인게 현 상황이라고 간주할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한병철은 자기착취라는 말까지 꺼냈으니 더 논할 것도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