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상 높임말은 생략하겠습니다.
:: 어려운 텍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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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텍스트가 잘 이해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특히 예전에는 읽고 이해하기 힘들었다면 그러하다. 자신의 발전을 확인하고 있기에 즐거움이 커진다. 그때는 책의 10%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즐거움의 또다른 원인은 그 책을 읽고 소화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란 생각이 들 때이다. 그 이유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희소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창의의 모든 재료가 희소할 필요는 없다. 일부 재료는 희소해야 한다.
다수의 사람들과 동일한 것들만 보았는데, 자신만 뭐 대단히 특별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선 곤란하다. 넓은 분야의 독서를 할 수 있으면 유리한데, 어려운 학술서의 경우 사람들은 대개 좁은 분야에서만 독서하기 때문이다. 경계를 넘어서 독서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정리하면 어려운 텍스트가 잘 이해될 때, 과거의 발전을 확인하게 되어 즐겁고, 미래의 창의를 기대하게 되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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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실력을 넘어서는 책을 읽을 때에는, 박물관 견학한다고 생각하는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박물관에서는 모든 사물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일부만 이해해도 좋다. 다음에 또 오면, 다른 것도 이해될 것이다. 또한 박물관에서는 사물을 놓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 책이 잘 이해가 안 되어도, 그 책을 읽는동안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았다면, 훌륭한 독서라 할 수 있다.
생각을 넓혀두면, 이제 시간이 흘러, 이런저런 경험도 하고, 다른 자료도 보면서, 생각이 더욱 풍성해진다. 그때 다시 읽으면 책이 보다 쉬워졌을 것이고, 보다 많은 걸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들을 늘려둘 때에는, 그 생각이 틀렸을까봐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틀린 생각조차도 넓혀두면, 그것이 나중에 이해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방적 태도만 갖고 있으면 된다. 틀릴까봐 두려우면 생각을 안 하게 되고, 그러면 실력도 안 좋아지고,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때로는 책의 급소가 되는 일부분, 또는 책의 근본이 되는 일부분만 놓고, 스스로 생각을 많이 해본 것으로 훌륭한 독서가 된다. 시간이 흘러 그 생각이 뿌리처럼 자라나고, 더욱 더 번성해나갈 때, 이제 책을 다시 읽으면, 뿌리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일부분이란, 5% 때로는 고작 1페이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게 돌파할 때, 그것은 마치 송곳으로 북을 찢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과거로 거슬러 내려가, 저자의 생각과정을 상상해보자. 그 저자의 생각도 고작 1페이지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저자의 생각 여정과 유사하게, 독자가 생각 여정을 갖는 건 자연스럽고 유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AI가 있기에 어려운 텍스트에 도전하기 수월해졌습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 그걸 중요하게 여기는게 좋다고 봅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농사짓듯 읽는 것보다는, 수렵 또는 채집하듯 읽는게 좋다고 봅니다. 학교안에서는 시험을 잘보기 위해 농사가 미덕이더라도, 학교밖에서는 사냥 또는 전쟁이 미덕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