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Left?'라는 질문은, 어떤 사건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때로는 어떤 사건에 대한 여파일 수도 있고, 혹은 지나가버린 이후에 말 그대로 남겨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혹은,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꾼다면, 또 다른 의미의 다른 말이 되어버리겠죠.
저는 <리얼 페인>을 보면서 저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할머니의 죽음과 그리고 남겨진 여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맨 처음 서두에 둔 문장에 대해서, 물음표와 마침표를 동시에 품고 있는 영화 같다고 해야할까요.
영화는 두 유대인계 사촌이 할머니가 떠나온 폴란드에서 홀로코스트 투어를 떠나는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공항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아요. 제시 아이젠버그의 데이비드가 말 그대로 '잠시' 떠나온 사람이라면, 키에런 컬킨의 벤지는 남겨진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집에서 공항까지의 데이비드의 여정은 보여줄 수 있지만, 반대로 벤지의 시작 지점은 그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보면, 영화는 따뜻하고 잔잔하면서도 그 시선이 유지되는 영화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은 어느 시점에서, 두 인물은 상황과 성향의 차이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 엇갈림의 시작에서 영화가 끝나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여행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만, 묘한 비감이 들기도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폴란드와 홀로코스트라는 소재 때문일지도, 혹은 영화 내내 흐르는 쇼팽의 피아노 곡 때문일지도요.
그 기묘한 비감에 대해서 저는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드라이브 마이 카> 였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상처가 아무는 이야기를 빼고, 미국식 힙스터 이야기를 가미한 영화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딱, 뺀 만큼, 영화가 짧기도 하구요.)
동시에, 영화는 기억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놓는 것이기도 하고, 혹은 지나간 무엇인가가 남겨놓은 것들이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구요. 때때로 어떤 것을 남겨놓으려고 하지만, 마지막 여정의 장소에서 처럼 남기기 어려운 무엇이 되기도 합니다.
벤지라는 인물은 일정 부분의 클리셰가 있는 인물이긴 합니다. 어느 정도는 주인공이지만 기능적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키에런 컬킨의 연기가 되게 좋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가지고 있는 슬픔과 인물이 가지고 있는 (혹은 배우가 표현해내는) 슬픔이 약간은 공명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를 보는 동안, 약간의 웃음과 약간의 눈물이 났습니다. 이해나 공감의 차원이 아닌, 조금은 다른 이유라고 생각이 들어요. 실은 이 영화를 볼까 말까 하는 동안, 어느 분이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한 글을 잠깐 봤거든요. 그리고 그 영화의 결말과 이 영화의 결말이 비슷한 감상이라고 하는 글을 보고서 이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담담한 벤지의 얼굴로 끝나지만, 그 얼굴을 보는 제 감정이 '웃으면서 울게 되는' <퍼펙트 데이즈>의 결말과 비슷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