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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2/16 01:48:57
Name kimera
Subject [정치]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니(탄핵 관련) (수정됨)
토요일 오후, 여의도에 다녀왔습니다.

영등포 구청역에 주차하고,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역에 내려, 수많은 사람과 모여서 콘서트장에서 사용하는 응원봉을 흔들었습니다.

한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원하던 소리를 듣고, 함께 했던 이들과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함께 했던 이는 피곤해서 먼저 잠을 자러 들어갔고, 저는 혼자서 영화 한 편 봤습니다.

‘변호인’

이 영화의 주인공 송우석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모델로 만들어진 가상 인물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법정에서 강한 목소리로 정의를 외칩니다. 정말 법정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속이 시원해집니다. 내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그 사람이 처음으로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청문회 속의 그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 송우석은 변호인이 아닌 불의와 압제에 대항하는 인물로 성장합니다. 그런 그에게 부산 지역 수많은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립니다.

주인공은 성장했고, 동료들은 그를 지지합니다.

참으로 멋있기 그지없는 영화의 마무리며, 마침표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눈물이 계속 납니다.

저는 영화 뒤의 송우석, 아니 노무현의 삶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의 미래를 어느 정도 알기 때문입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그 무도한 세력은 직선제로 바뀐 뒤에도 승리합니다.

노무현은 국회의원이 됩니다. 무도했던 5공화국에 대한 청문회에서 스타가 됩니다.

그러나 그가 속해 있던 정당은 그 무도한 세력의 정당화 합당합니다.

노무현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의 노무현의 삶은 굴곡 그 자체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겨우 서울 지역구에서 당선하고도, 또다시 험지로 가서 낙선합니다. 바보가 됩니다.

어렵게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지만, 자신의 정당에서도 지지받지 못합니다. 겨우겨우 다른 정당의 후보와 연합합니다. 선거 하루 전날 그 연합한 후보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선, 사사건건 아마추어라고 비난받습니다.

고졸이라고 무시당하고, 무도한 자들의 조리돌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탄핵소추를 받습니다.

겨우겨우 그것을 이겨냈지만,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합니다.

그래서 퇴임 후에 친한 이들이 무너져 가는 것을 보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영화 뒤에 이어질 그의 서사를 알기에,
그 서사 뒤에 고생할 국민을 알기에,

눈물이 났습니다.

조용히 앉아 새벽녘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창밖의 도로를 봅니다.

나이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봅니다.

아마도, 오후에 만난 친구의 딸이 한 말이 생각나서인가 봅니다.

“이제 탄핵 되었으니까 끝이죠?”

오늘의 모임은 그 친구의 딸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평소 비슷한 정치 성향을 보인 아빠와 그 친구들의 대화를 어깨너머로 보던 그 아이는 아빠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과거 무도한 이들이 벌인 것과 같은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에게 반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오늘은 탄핵이 될 것 같으니, 그 마지막에 꼭 가서 응원봉을 흔들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친구가 만나게 된 것이고요.

그 아이에게, 과정에 관해서 설명하려다 말았습니다.

말이 너무 많아질 수 있고, 그 과정이 지난하고 지칠 수 있어서 말이죠.

그런 일이 있었기에, 영화 변호인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것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180일 이내에 헌법재판소에서는 대통령의 탄핵을 심의할 것입니다.

아홉 명의 재판관 중 여섯 명의 재판관의 선택으로 탄핵의 가부가 결정됩니다.
문제는 현재 헌재의 재판관이 아홉이 아니라 여섯 명이란 것입니다.
세 명을 추가로 임명해야 하고, 헌법재판소의 소장도 결정해야 합니다.
심리가 들어가는 중에 추가 되어야 합니다.

일이 빨리 처리될 수도 있다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벽이 많은 상황입니다. 거기에 다행히 탄핵이 인용되어 무도한 행위를 한 대통령이 파면된다면, 60일 안에 선거해야 합니다.

무도한 자를 처리하고 그를 복구하는 데 최장 240일이 걸립니다.

일 년이 365일이니, 무려 1년의 2/3가 사라질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있을 다양한 힘든 일들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성가시고, 귀찮은, 마치 여름날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귀에 거슬리는 모깃소리 같은 상황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광화문이나 여의도나 아니면 다른 곳 어디선가 모여서 무도한 행위를 한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시위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 무도한 행위를 고도의 정치 행위라고 무죄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상당히 비겁합니다. 국민의 분노가 높아서 감히 어쩔 수 없을 거 같을 때는 숨습니다. 다들 일상이 바빠, 신경 쓰지 않을 때만 나와서 소리 지릅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서 신경 거스르게 합니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10% 남짓인 것 같은데, 그 목소리는 거슬리기에 충분합니다.

무도한 짓을 한 그 대통령은 자기가 스스로 헌재에 나가서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고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들으면서 혈압이 오를 것을 생각하니 답답해집니다.

아마 위의 10% 남짓인 그들과 시너지를 일으키겠지요.

영화 속 나름의 해피엔딩 같은 탄핵 가결을 듣고서 환호하고 춤을 추고 즐거워한 그 아이에게 남아 있는 지난한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응”이라고 말해줄 뿐이죠.

저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사족이지만 좀 긴 이야기를 더 적어 보려 합니다.
이왕 길게 적게 되었으니 아예 다 적어 보려고요.

저는 총을 무서워합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전 군 복무를 공군 헌병대에서 했습니다. 수사계 헌병이었고, 다양한 군범죄를 수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총으로 자살한 병사의 시식을 직접 본 적도 있습니다. 총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 너무나도 잘 압니다.

누구나 그럴 겁니다. 영화 속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처참하기 그지없는 시신을 보고 나면 말이지요.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방문했던 친구 아버지의 집에서 다양한 총기를 구경했었고, 총들을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총구가 저를 향했을 때 저는 제가 총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도한 계엄령 상황에서도,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고, 당황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닌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영상을 보면서 실제 경험하는 것처럼 그랬습니다.

국회 창문을 부수고 들어온 특전사 병력이 버릇처럼 자연스럽게 총구를 들어 조준했다가 내리던 장면이 있습니다. 그를 찍는 카메라를 향해서 총기 아래에 달린 플래시가 반짝였지요. 아마도 실전 상황이었다면, 그 빛을 보는 순간 카메라를 든 당사자는 죽었을 겁니다.

그 화면을 보는데 절로 욕이 나오면서 몸은 긴장으로 경직되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그 뒤에 실제 국회에 들어온 병사들의 총기엔 실탄이 없었다고 주장이 있긴 합니다만, 그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위에 언급한 모깃소리를 내는 이들도 그렇게 주장합니다. 빈총으로 몇 명 되지도 않는 이들이 들어온 건데, 국회와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고, 거기에 바보 같은 국민이 휘둘리는 거라고요. 진짜 거슬리는 소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장비를 한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들이닥치는데, 그들의 총에 총알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두려움이 앞설 뿐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공포심이 떠오르는 저와는 달리 그들은 직접 경험하면서 두려웠을 겁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도, 그 보좌관들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항했고, 방어했고, 해야 할 일을 해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공포에 기죽는 대신 투쟁을 선택했으니까요.

그날 국민에게 국회로 와달라는 호소를 들었을 때, 저는 가지 못했습니다. 제 친구는 갔습니다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함께 하는 이가 다칠까 두려우니 가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저도 두려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날 국회에 갔던 이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지난 토요일 12월 14일 있었던 영화 같은 마무리는 그 용기의 결과니까요.

이제부터 많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그 끝이 온전히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했던, 사랑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때 슬픔과 후회가 떠오르는 것 같은 일은 이제 없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정리합니다.
더 단단히 하려고요.

이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니….



from ki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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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산바라기
24/12/16 02:0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지구 최후의 밤
24/12/16 02:06
수정 아이콘
박근혜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국힘을 위시한 기형적인 보수는 사라지는게 아니라 잠시 숨어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약간의 틈새만 있으면 본인의 10원의 이득을 위해 국가와 민족의 피해를 얼마든지 신경쓰지 않을, 공리를 최악의 가치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출몰할 겁니다.
그래서 이게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부끄러운줄알아야지
24/12/16 04:37
수정 아이콘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오랜시간 피지알을 떠났다가
이번 계엄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도 답답한 나머지 다시 이곳을 찾았다가
차마 글을 남길 자신은 없고 계속 눈팅만 하다가
키메라님의 글을 읽고 급 울컥해져서 한마디 남깁니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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