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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1/22 14:52:43
Name 시드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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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1 https://www.nullable.cc/channel/short-novel/article/Apx1NxMrofIZrafTAXN7
Subject [일반] [자작 단편소설] 스스로 날개를 꺾은 새






수 천마리의 새가 큰 새장에 갇혀 있었다.



큰 냉동창고 쓰던 것 같던 공간을 개조해 새들을 가둬두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창고로 사용했던 게 확실했는지 창고에는 쓰다 남은 박스들과 여러 목재로 된 선반과 상자들이 있었다.





창고 같은 새장에 갇힌 새들은 힘차게 날아오르곤 했지만 차가운 천장에 머리가 닿았다.



이들 중 몇몇의 새들은 새장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려 천장 유리창에 머리를 박곤 했다.



유리창은 새의 머리보다 너무나도 단단했고,



밝게 빛이 들어오던 유리창은 용감한 새들의 핏자국만 남기고 얼룩졌다.



그중엔 용감한 새들과 함께 날아올라 유리창 주변을 누비던 하얀 새가 있었다.



그러나 몇몇의 용감한 새들이 깨지지 않는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하얀 새는 용감한 새들에게 그만하라 말했지만 그들은 하늘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들은 피를 흘리며 유리창에 돌진하기를 반복했다.



하얀 새는 그들에게 다른 길을 찾아보자 권유하고, 말렸지만 그들은 만류를 뚫고 날아갔다.



하얀 새의 깃털엔 용감한 새들의 피가 조금씩 묻어갔다.



죽음의 돌진이 끝나고 나서 하얀 새의 온몸은 붉게 얼룩져있었다.



붉은 새가 되었다.



그리고 검붉게 얼룩진 천장의 유리창을 보았다.



유리창엔 단 하나의 흠집도 생기지 않아 있었다.











새들이 유리창에 들이박으며 죽음의 비행을 하자 날지 못하는 늙은 새들은 밑에서 소리쳤다.



그러다 하나 둘 용감한 새들이 죽어가자 늙은 새들은 그만하라 외쳤다.



날지 못하는 10마리의 늙은 새는 용감하지만 무모하게 죽은 새들의 시체를 모았다.



그리고 모든 새들을 불러 모으고 외쳤다.





"우리는 갇혔습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저 깨지지 않는 유리창에 들이박아선 안됩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 모두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늙은 새는 모두 이 새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협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들 중 한 늙은 새는 더 이상 날아올라 유리창에 머리를 박지 말자고 주장했다.



이미 머리가 깨져 죽어버린 새들을 봐온 새들은 모두 동의했고,



그러자 새장 안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하나 둘 없어졌다.



조금이라도 날기 시작하면 모든 다른 새들의 눈빛이 자신을 향했기 때문이었다.



새들은 새장을 최대한 걸어 다녔고, 도리어 날아다니는 새가 있으면 날지 말라 가르쳤다.



그렇게 새장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규칙이 생겼다.







[규칙 1. 새장 안에서는 날지 말 것]





이제 새들은 날지도 않았고,



날개를 퍼덕이며 깃털을 날리지도 않았고,



천장의 유리창을 향해 돌진하지도 않았다.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새장에서 죽은 새의 시체에는 파리가 꼬였고,



머리가 깨지면서 까지 새장을 탈출하고자 한 새가 남긴 핏자국은 새들을 동요시켰다.



새들은 함께 새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날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한 편으로는 유리창에 묻은 핏자국 뒤에 있는 하늘을 보았다.



그중 가장 능력 있던 파랑새는 유리창이 아닌 다른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유를 꿈꾸는 젊은 새들은 자유를 찾아 다른 새들이 잘 때 새장의 빈틈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새장 벽의 약한 부분을 찾아보기도 하고,



부리로 찍어 깨 보려고도 했다.



젊은 새들은 다른 새들을 깨우지 않으면서 새장을 부수려 했으나,



새장을 부리로 칠 때마다 소음을 만들었다.



이 소음이 너무 컸기에 잠을 자선 새들을 모두 깨어났고,



젊은 새들에게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훈계를 했다.



그리고 모두의 동의 아래 두 번째 규칙이 만들어졌다.





[규칙 2. 새장을 쳐서 시끄럽게 하지 말 것]



그리고 젊은 새들이 무리를 지어 새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지 못하게 봤던 새들은 이어 다른 규칙을 만들었다.







[규칙 3. 3명 이상 무리를 이뤄 움직이지 말 것]




세 번째 규칙이 만들어지자 젊은 새들을 이끌던 파랑새는 힘을 잃었다.



그는 함께 새장을 조사하진 못하지만 혼자라도 새장에서 탈출하기 위해 새장 이곳저곳을 외롭게 조사했다.



무리를 이끌던 젊은 새가 혼자 다니기 시작하니 그를 따르던 젊은 새들은 다른 늙은 새들과 비슷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푸드덕 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모이를 먹으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 3번씩 나오던 모이가 나오지 않았다.



아침 모이 시간이 지났을 때 새들은 주인이 밥 주는 걸 깜빡했나 보다 하고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점심때가 되니 다들 괴로워하기 시작했고,



저녁 모이 시간에도 모이가 떨어지지 않자 새들은 분노했다.





그동안 새장에 대해 불만 없이 지내던 새들은



"이대로는 모두 죽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모두가 빈틈을 찾아야 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새장을 부숴야 한다"



등으로 크게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이 늦도록 싸움과 토론이 오가고 나서 모든 새들은 피곤함에 잠에 빠졌다.



그러고 나서 다음날,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아침 시간이 되자 모이를 뿌려주었다.



아마도 주인은 하루정도 자리를 비우고 먹이 주는 걸 깜빡한 모양이다.







주인의 발걸음이 들리고, 모이통에 모이가 들어오자



모든 새들은 어제의 토론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기쁘게 모이를 받아먹었다.



몇몇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제의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또 어떤 이들은 배고픔에 평소보다 몇 배를 억지로 먹기도 했다.



다들 모이를 먹고 나서 늙은 새들은 회의를 했다.



"어제와 같은 일이 반복되선 안된다"라고 말하며,



언제 모이가 떨어질지 모르니, 모이의 일부분을 비축해 두자 말했다.



모든 새들은 찬성했다.



그들은 새장에 있던 나무판자들을 이용해 큰 창고를 만들었다.



모이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1/3을 이 창고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규칙이 늘어났다.







[규칙 4. 매일 들어온 1/3의 모이는 창고에 보관할 것]








1/3의 모이는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평소엔 모두가 먹을 양이었지만 1/3이 창고로 가자 적게 먹는 이들이 생겼다.



먹을 양이 부족해지니 힘센 새와 덩치 큰 새, 그리고 새들을 이끄는 늙은 새들은 여러 명목으로 모이를 더 먹었다.



늙은 새들은 모이를 힘세고 덩치 큰 새들에게 조금 더 쥐어주어야 한다 주장했고,



체구가 크니 배고픔도 더 클 것이라 말했다.



작은 새들은 배가 조금 고팠지만 동의했다.



새로운 규칙이 추가됐다.







[규칙 5. 덩치 큰 새는 작은 새보다 모이를 더 먹어도 된다]






그날이 지난 후 늙은 새들 주변엔 덩치 크고 힘센 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늙은 새들은 덩치 큰 새들을 자신들의 호위병처럼 보이게 했다.







새장 안에서 규칙이 하나 둘 늘어가는 동안 젊은 새들을 이끌던 파랑새는 새장의 빈틈을 찾아다녔다.



그는 새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장의 틈새로 빠져나가는 길 뿐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몸집이 작아야 했다.



아니 많이 작아야 했다.





처음에 그는 모이를 적게 먹으며 살을 모조리 빼기 시작했다.



다른 새들은 드디어 파랑새가 미쳤다면서 모이를 먹지 않는 그를 이상하게 여겼다.



모두가 모이가 들어오지 않은 날 싸우던 때에도 그는 홀로 새장을 조사했다.



그의 몸은 새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초췌해졌고, 건장하던 체격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모든 새들이 잠든 밤 조심스레 새장의 빈틈으로 머리를 집어넣어봤다.



성공이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파랑새의 머리는 쉽게 들어갔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머리에 비해 큰 날개.



날개가 빈틈을 비집고 나갈 수 없었다.



날개는 뼈와 수많은 털로 이뤄져 있기에 살을 빼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빈틈을 빠져나가려는 사이 한 새가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붉은 새였다.



붉은 새는 총명하고 젊은 새를 이끌던 그가 빈틈에 끼여 있는 줄 알고,



부랴부랴 뛰어 파랑새의 머리를 꺼내 주었다.



그는 파랑새에게 말했다.



"지금 이 시간에 뭐 하고 있는 거야?"



파랑새는 말했다.



"나는 이 새장을 벗어날 거야."



붉은 새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떻게 이곳을 벗어나? 우리는 덩치가 커서 이곳을 벗어날 수 없어."



파랑새가 말했다.



"날개를 자르면 돼."



붉은 새는 경악해 말을 잇지 못하자 파랑새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날개를 자르면 이 사이로 나갈 수 있어."



날개가 잘린 새라니 붉은 새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뼈와 살이 붙어버린 파랑새의 눈빛에서는 희망이 보였다.



붉은 새는 파랑새에게 말했다.



"날개를 자르고 이곳을 나가면, 새장 밖에서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어."



그는 말을 이어갔다.



"날개 없는 새가 어떻게 먹이를 구하고, 어떻게 집을 짓고 살 수 있겠어."



파랑새는 말했다.



"너는 날 수 있어?"



붉은 새는 당연하다며 말하려 했다.



"당연히 날 수... 있지..."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날아본 게 언제였더라.



파랑새는 말했다.



"날아봐."



붉은 새는 말했다.



"규칙 때문에 날 수는 없어. 하지만 난 날 수 있어."



파랑새는 그를 보며 말했다.



"날 수 없는 건 이곳이나 새장 밖이나 똑같아."



"적어도 새장 밖에선 내가 직접 먹이를 찾아다닐 수 있고, 말도 안 되는 규칙들을 들을 필요도 없어."



붉은 새가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파랑새는 말을 이어갔다.



"만약 지난번처럼 모이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며칠 동안 모이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린 모두 죽어"



붉은 새는 그의 말이 모두 맞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날개를 자른다니,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새가 되겠다니 너무 끔찍한 말이 아닌가.



아니 우리는 모두 날지 못하는 새인데, 더 끔찍한 것은 우리들이 아니었었나.



붉은 새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 파랑새는 말했다.



"이제 나는 날개를 꺾고 새장을 나가려고 해. 모두에게 비밀로 해줘."



붉은 새는 충격과 혼란에 빠져있었지만 비밀로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잠자리로 돌아갔다.











다음날 새장에는 충격적인 뉴스가 퍼졌다.



파랑새의 푸른 깃털이 모두 빠져있었고, 날개마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새장의 날카로운 부분에는 떨어져 간 날개에서 나온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새들은 파랑새를 찾아다녔지만 그의 떨어진 날개만 보일 뿐 아무 곳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한 가지 흔적은 새장의 작은 틈새였다.



그곳에 파랑새의 푸른 깃털과 핏자국이 구멍을 따라 묻어있는 게 보였다.



늙은 새들은 파랑새가 이 구멍을 통해 빠져나갔다 깨달았지만,



다른 새들이 똑같이 이런 짓을 벌일까 두려워 구멍을 새장에서 죽어간 새들의 시체로 막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 얼씬 거리지 못하게 덩치 큰 새들을 보초로 세웠다.



새들은 그 빈틈에 분명 푸른 깃털이 붙어 있는 걸 봤었지만 모두의 기억에서 잊혔다.



그저 파랑새는 어느 날 날개를 잃고 죽은 것으로 그렇게 모두에게 잊혔다.



하지만 파랑새의 마지막 메시지를 들었던 붉은 새는 잊을 수 없었다.









파랑새 사건이 지나고 나서 또 며칠이 지나자 다시 주인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침 모이통은 비어있었고, 새들은 또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몇몇의 새들이 아침이 비었으니 창고에서 모이를 꺼내 먹자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늙은 새들은 점심까지 기다려보자며 겨우 한 끼를 굶었다고 창고를 열어선 안된다 말했다.



그 말에 모든 새가 동의하고 점심을 기다렸으나 모이는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이 지나 저녁이 됐다.



여전히 주인의 발걸음 소리도, 모이통에 모이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새들은 늙은 새들에게 말했다.



"창고에 있는 모이를 조금 나눠 먹읍시다."



늙은 새는 말했다.



"하루정도 굶었다고 창고를 열어선 안된다. 언제 모이가 들어올지 모르니 최대한 아껴야 한다." 하며 새들을 훈계했다.



비록 새들은 배고팠지만, 그동안 모은 모이가 어마어마하게 많을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잠에 들었다.





모두가 잠들었을 때 늙은 새들은 덩치 큰 새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창고에 모아둔 모이를 먹으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이 되자 모이통은 비어있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다들 배고파 괴로워 원성이 자자한 순간에도 늙은 새들은 창고를 열 생각은 없었다.



새들이 모이를 달라 말할 때마다 "고작 이 정도로 창고를 열어선 안 된다." 앵무새처럼 말했다.



그리고 덩치 큰 새들을 앞세워 창고 앞을 지키게 하고 시끄럽게 하는 이들이 있으면 부리로 찍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규칙을 추가했다.







[규칙 6. 그 어떤 새도 창고에 있는 모이를 달라고 요청해선 안된다]






새로운 규칙이 생기자 새들은 부리로 찍히는 게 두려웠기에 그 누구도 모이를 달라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늙은 새들이 '때가 되면 다 모이를 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안타깝게도 늙은 새들은 아침마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견뎌야 한다!"라고 말할 뿐 모이를 풀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왜인지 모두가 굶어 살이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늙은 새와 그들을 지키는 덩치 큰 새들은 건강해 보였다. 기분 탓이겠지 새들은 생각했다.



주인이 한 주 가까이 모이를 주지 않자 모두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 되었다. 반면 늙은 새와 덩치 큰 새들은 오히려 더 건강해진 것 같았다.



몇몇의 새들은 아침이 돼도 눈을 뜨지 못했다.



몇몇의 새들은 한 밤중에 창고를 습격하려 했지만 빈번히 저지당했다.



늙은 새들은 아침이면 창고를 몰래 노린 이들을 모두가 보는 곳에서 부리로 쪼아 버렸다.



그리고 이런 도둑놈들이 있어 더욱 우리가 모이를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늙은 새들은 창고의 모이를 아주 조금씩 풀어 모두가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 말했다.



늙은 새들은 덩치 큰 새들을 시켜 몇 알도 안 되는 모이를 새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새들은 얼마 만에 먹는 모이였는지 게 눈 감추듯 모이를 먹고, 늙은 새에게 감사를 전했다.







시간이 흘러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났다. 아니 보름이 아니라 한 달이었을까.



모두가 배고픈 나머지 시간 감각이 무뎌졌고,



새들은 굶주림에 새장을 벗어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쯤일까.



늙은 새들을 따르던 덩치 큰 새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모든 새들이 잠들어 있던 시간 늙은 새들과 덩치 큰 새들은 창고에 모여 있었다.



덩치 큰 새는 화가 났는지 늙은 새를 찍어버렸고, 늙은 새 한 마리는 한 번에 죽어버렸다.



덩치 큰 새들 중 가장 덩치가 큰 검은 새가 말했다.





"이제 늙은 새는 끝났다. 우리가 이 새장을 이끌어야 한다."





검은 새의 외침에 따라 그를 따르던 덩치 큰 새들은 자고 있던 남은 늙은 새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모든 새들은 충격에 빠졌다.







새들을 이끌던 늙은 새 10마리의 시체가 새장 중앙에 있었다.



그리고 검은 새가 모든 새들에게 말했다.





"우리를 이끈다던 늙은 새들은 밤마다 몰래 모이를 먹어버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모이는 며칠 버틸 수도 없는 모이뿐이다."



"먹이를 몰래 먹어치우던 늙은 새들은 모두 죽어버렸으니 이제 내가 모이를 관리하겠다."







말라비틀어진 새들은 늙은 새들의 시체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남은 모이가 거의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검은 새는 창고를 열어 모이가 대부분 사라졌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정말 늙은 새가 모든 모이를 먹어치운 것일까.



왜 덩치 큰 새들의 덩치는 줄어들지 않았을까.



새들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검은 새가 말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이 지옥 같은 새장을 벗어나야 한다."



"새장을 벗어날 길은 오직 피로 물든 유리창뿐이다."



"저 유리창에 돌진해 유리창을 깨부수고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모두 이곳에서 죽게 된다."





그는 천장의 유리창을 가리키며 선포했다.



유리창은 검붉은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어 끔찍했지만, 배고픈 새들에게 희망은 그것뿐이었다.



이 새장에서 벗어난 새가 한 마리라도 있던가?



그들은 생각해 봤지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한 파랑새가 뭔가 했던 거 같은데...' 하며 기억을 더듬는 새도 있었지만,



그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저 검붉은 창을 깬다.



그것뿐이었다.











붉은 새는 먹이를 먹지 못해 목구멍이 달라붙어 있었지만,



저 유리창은 깰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유리창의 단단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달라붙은 목구멍을 찢어내는 심정으로 외쳤다.





"저 유리창을 결코 깰 수 없습니다."





검은 새를 비롯해 모든 새들은 붉은 새를 노려봤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수단이 쓸모없다는 말을 하다니.



검은 새는 바로 뛰어와 붉은 새를 한쪽 눈을 찍어버리며 말했다.



"다시는 그런 말을 입에 담지 마라."



그리고 선포했다.



"앞으로 누구라도 유리창을 깰 수 없다는 말을 하면 내가 반드시 죽이겠다. 알겠나?"



모든 새는 공포와 배고픔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검은 새의 말을 곧 법이었다.







[규칙 7. 유리창을 깰 수 없다는 말을 하면 사형에 처한다]






한쪽 눈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붉은 새는 이제는 모든 게 끝났다 생각했다.



그에게 한 가지 남은 게 있다면 바로 파랑새의 길이었다.



새들의 시체들로 입구가 막혀있는 그 길로 날개를 꺾고 들어가는 방법뿐이었다.







그 사이 검은 새는 모두에게 말했다.



"남은 모이를 풍족하게 나눠주겠다. 이걸 먹고 내일부터 10마리씩 저 유리창을 향해 돌진한다."



마지막 만찬이자, 자살 공격을 하라는 명령이었다.



새들은 자살 공격은 두려웠다.



하지만 여기 있는 수많은 새들 중 10마리에 뽑히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겠냐며 오래간만에 모이를 즐겼다.







그날 밤 붉은 새는 찢어진 눈으로 흘러나오는 피를 견디며 자신의 날개털을 뽑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한쪽 날개 털을 다 뽑았을까.



다음날의 해가 떠버렸다.







검은 새는 아침부터 10마리의 돌격대를 뽑았다.



마음에 보이는 아무 새나 유리창을 향해 돌격하라 지시했다.



새들은 주저했지만 명령을 듣지 않으면 자신도 부리에 찍혀 죽을지 모르니 날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날아보지 않았기에 날개는 굳었고,



천장까지 올라가지도 못한 채 추락하기 일쑤였다.



검은 새는 분노했다.



천장의 유리창에 도달하지 못하고 추락한 새들은 본보기로 온몸이 찍혔다.



겨우겨우 천장까지 닿아 머리를 박고 추락한 새들이 10마리가 되기까지는 하루 종일 걸렸다.



10마리의 새들은 머리가 깨져 의식을 잃거나 시체가 되어 지상으로 낙하했다.



검은 새는 한밤중까지 되는 죽음의 비행이 끝나자 말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희생은 불가피하다. 유리창을 깨고 모두가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리곤 창고의 모이를 새들에게 풀어주었다.



새들은 모이를 받아먹으며 내일이 오지 않기를,



그리고 내일이 와도 자신이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한편 밤이 되자 붉은 새는 다시 반대쪽 날개의 털을 뽑기 시작했다.



이 고통스러운 일을 파랑새는 어떻게 금방 해낸 걸까.



생각해 보니 파랑새는 털을 뽑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날개를 잘랐다.



파랑새의 날개가 떨어진 곳에는 분명 뽑힌 깃털도 있었지만,



날개가 떨어져 있었다.



그는 털을 뽑다가 깨달은 것이다.



날개를 자르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



물론 그도 처음엔 털을 뽑아 나가보려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비좁은 틈새를 지나갈 순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 새벽 고민 중에 날개를 잘랐던 것이다.







붉은 새는 날개를 자를 새장 안 날카로운 모서리를 찾았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시간이 한참이나 걸렸다.



파랑새가 사용했던 날카로운 모서리에는 그의 푸른 깃털 일부분과



굳어버린 핏자국이 보였다.



그는 말했다.



"이제는 영영 날지는 못하더라도 자유롭게 살 수 있겠네."



날카로운 모서리에 어깨를 들이밀어 날깨를 잘라내는 건 고통스러웠지만,



금방 끝나는 일이었다.



붉은 새의 붉은 깃털은 더 붉어졌다.





붉은 새는 날개의 힘줄을 끊어내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도 해냈던 것이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틈새로 들어갈 수 있을까?'



파랑새는 통과했지만 나는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엄습했다.



붉은 새는 날카로운 모서리를 지나 시체가 쌓인 파랑새의 빈틈으로 향했다.







파랑새의 빈틈은 새들의 시체가 가로막고 있어서 들어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냄새나는 시체들이 오물처럼 길을 막고 있었다.



새들의 굳은 시체와 털에는 날파리와 구더기가 들끓었지만 붉은 새의 마음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새장 밖의 자유인지 아니면 지옥에서 죽음인지를 결정짓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옥의 문처럼 보이는 저 작은 틈새를 바라보며 시체를 비집고 나갔다.



다만 그가 시체를 비집고 나가자, 시체를 지키던 덩치 큰 새들이 그를 보게 되었다.



거기 멈추라는 말을 무시하고 시체들 속으로 숨어들어 빈틈을 향해 나아갔다.



붉은 새의 머리는 파란 새의 머리보다 작았나 보다.



빈틈에 쉽게 머리를 들이밀고,



잘려나간 어깨가 틈 사이로 쓸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짧은 고통의 순간이 지나고 틈새를 벗어 나오자,



붉은 새의 눈앞엔 달빛이 내려 반사된 풀들이 보였다.



새장의 지독한 냄새와 비교할 수 없는 새벽 풀 냄새가 가득했다.



벌써 달은 하늘 끝자락에 걸려 있었다.



붉은 새는 풀 잎에 매달린 조그마한 이슬을 마셨다.



자유였다.



















한편 다음날 해가 뜨자 검은 새의 명령으로 새장은 시작됐다.



모두들 검은 새의 눈에 들지 않기 위해 몸을 숨기려 했다.



덩치 큰 새들은 보이는 대로 잡아 유리창을 향해 머리를 박으라고 명령했다.



죽음의 비행이 다시 시작됐다.



안도하는 한숨,



추락하는 새들,



가족의 죽음으로 비명을 지르는 새들이 모두 섞인



아비규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오직 하늘이 희미하게 보이는 유리창을 향해 돌진하는 것일 뿐.



남은 모이도 거의 없었다.



남은 새들도 거의 없었다.



모두가 죽거나 모두가 살거나.







두 번째 죽음의 비행이 끝나고, 20마리의 새는 시체가 됐다.



날지 못해 부리에 찍혀 죽은 수많은 새들도 많았다.



과연 이게 희망이 있는 일일까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었지만 새들에게는 생각할 자유는 없었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은 곧 죽음이었으니.





그러나 사실 덩치 큰 검은 새는 알고 있었다.



그는 유리창이 결코 깨지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고,



이들 모두가 덤벼도 저 유리창은 깨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효과적으로 새들을 줄여야 남은 새들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덩치 큰 새들을 이끌어 쓸모없는 새들을 먼저 죽음으로 내몰도록 했다.



분탕을 일으키거나 약하거나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될 새들을 유리창으로 내던졌다.





그는 남은 모이의 양을 숨겼다.



1/3씩 저장하던 모이의 일부분을 자신의 둥지 뒤에 모으도록 부하들을 시켰다.



어느 순간부터는 창고에는 모이를 보내지 않고, 자신의 창고에만 모이를 쌓았다.



늙은 새의 창고에는 모이가 항상 가득해 보였지만 더 이상 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늙은 새들은 덩치 큰 새들에게 몰래 모이를 주며,



자신들이 부려먹는다 생각했지만 반대였다.



놀아나고 있었던 것은 늙은 새들이었다.









검은 새는 새들이 100마리도 안남을 때까지 이 일을 반복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적어도 몇 달의 시간은 벌 수 있고 그 시간이면 주인이 돌아와 다시 모이를 줄 것이라 여겼다.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새가 있어 모두 전멸할 수밖에 없기에



최대한 많은 입을 줄여야 했다.









검은 새가 지시한 죽음의 비행은 매일 이어졌다.



매일 10마리씩 죽어갔고,



그 많던 새들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도리어 산처럼 쌓인 시체들이 가득했다.



몇몇의 새들은 몰래 시체를 뜯어먹기도 했다.



시체를 뜯어먹기 싫은 이들은 다른 새들을 죽여 잡아먹기도 했다.







낮에는 죽음의 비행, 매일 밤에는 생존을 위한 싸움이 이어지며,



검은 새가 원했던 100마리도 안 되는 새가 남았다.



그는 100마리도 안 되는 새를 모아두고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유리창을 깨지 않아도 된다. 우린 이제 자유다."





그러자 남은 새들은 혼란스러웠지만 기뻐했다.



적어도 죽음의 비행에 참여하진 않아도 되니 말이다.



검은 새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모두를 살리기 위해 오래전부터 늙은 새들의 창고의 모이를 따로 빼두었다."



"이제 100마리도 안 남은 우리가 이 모이를 나눠 먹으며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새들은 당황했지만 그가 모아둔 모이가 많다는 말에 그를 따라 그의 창고로 향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검은 새의 모이들은 먹을만한 게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래된 모이들은 벌레들이 먹어 사라졌고,



그의 창고로 모이를 옮기던 이들이 그가 죽음의 비행을 독려하며 하루종일 자리를 비울 때마다,



창고의 모이를 몰래 빼먹었던 것이다.





마지막 남은 100마리의 새는 희망만큼 큰 절망에 빠졌고,



그의 계획을 믿던 덩치 큰 새들은 검은 새를 찢어 죽였다.



남은 새들은 공포로 새장 안을 도망치기 바빴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희망도 없고,



모두가 죽어야 끝나는 순간이 왔다.















시간이 지나 창고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새들의 시체들에는 더 이상 날파리도 꼬이지 않았다.



검붉게 얼룩진 창고 유리창만 햇빛을 머금고,



거대한 창고 바닥으로 햇빛의 통로를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주인은 창고를 버려둔 것일까.



아니 주인은 왜 새들을 가둬두며 모이를 주었을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검붉게 얼룩진 천장의 창문 위로 햇빛을 가리는 그림자가 생겼다.



작은 물체가 창 위에 올라선 것 같았다.



물체일까.



아니면 주변을 지나가던 한 마리의 새였을까.





창으로 내려오는 햇빛을 뚫고 그림자의 주인을 보았다.



새라고 보기엔 이상한 외형의...



그러나 분명히 새였었던...



날개 없는 새가 창 위에 있었다.



그건 착시였을까.



잠깐의 그림자는 지나가고,



다시금 검붉은 창에는 환한 햇빛이 가득 내려왔다.











---------------------------------






살면서 처음으로 소설을 써봤습니다.

딱히 깊게 생각하고 쓴 글은 아니라 일필휘지에 가깝게 후루룩 적어봤습니다.

['스스로 날개를 자르는 새가 있을까?']라는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해, 드넓은 새장에 갇힌 새를 중심으로 생각을 펼쳐봤습니다. 새장은 낣은 폐건물의 냉동 창고 같은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과수원 냉동창고 쯤 되는 곳에 수천마리의 새가 갇혀있는 모습이죠.

어렸을 때 종종 아버지께서 까마귀를 새를 잡아 가두는 방법을 이야기해주곤 하셨습니다. 지금도 있지만, 과수원 사이에 새 덫을 두곤 한답니다. 새 덫의 구조는 먹이를 그물망 아래에 두고, 입구는 윗쪽에 둔다고 합니다.

경사진 입구를 따라 먹이를 먹으러 새가 들어오면, 입구로는 절대 나갈 수가 없는데, 이유는 나가려면 날개짓을 해야하지만, 날개짓을 해서는 입구보다 넓어 나갈 수 없는 것이죠. 결국 나가기 위해선 산처럼 쌓인 새들의 시채를 밟고, 날개를 접고 탈출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새 덫에 갇힌 새들은 주어진 먹이를 다 먹고 나면 배가 고파 서로를 찢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두가 죽고나면 상처 뿐인 최후의 새 한 마리가 남겠지만, 그 역시 새 덫 밖으로는 나갈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 글은 한 두번쯤 더 손보고 싶긴 합니다. 좀 더 매끄럽고, 재밌게 이야기가 진행되게 하고 싶은 욕심이 듭니다. 그런데도 올려보는 이유는 퇴고를 딱히 거치지 않아 느껴지는 투박할 수 있는 표현들도 첫 작품의 묘미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긴 글임에도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혹시라도 새장에 갇혀있는 분이 있다면 자유를 얻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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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제프
24/01/22 19:26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안군시대
24/01/23 12:09
수정 아이콘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희생해서라도 자유를 얻을 것이냐 vs 현실에 적당히 순응하며 그냥 살아갈 것이냐..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자주 나오는 주제지만, 글의 전개가 흥미로워서 한번에 쭉쭉 읽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로메인시저
24/01/23 18:22
수정 아이콘
큰 비가역적 손상을 댓가로 얻을 수 있는 자유라니 소설이지만 조금 무섭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비가역적 손상으로 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봅니다. 다만 가역의 경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넓혀지고 있기에, 의식의 흐름 끝에 뭐시 중헌디가 떠오르게 되네요. 잘봤습니다.
천연딸기쨈
24/01/25 09:50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파랑새보다 오히려 붉은새가 인상깊네요.
판을흔들어라
24/01/25 23:11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필력이 좋으시네요. 다만 너무 꿈도 희망도 없어서인지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밝은 글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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