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는 슈퍼마리오 64 (1996, Nintendo 64) 는 스피드런 이야기를 할 때 꼭 언급이 필요한 게임입니다. 2010년대까지의 스피드런은 오락실 게임에서의 최고기록처럼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현재는 GDQ를 개최하는 커뮤니티인 SDA (SpeedDemoArchive) 에서 세계기록을 관리하고는 있었지만 그걸 검증하기 위해서는 SDA쪽에 동영상을 보내서 검증이 필요했으며, 스피드런의 한 축인 일본 게이머들은 니코동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으로, 말 그대로 스피드런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자 취미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트위치를 비롯한 게임 스트리밍 산업의 성장으로, 스피드런 역시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2011년까지 일본이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던 슈퍼마리오 64의 100% 런에 해당하는 120스타 런(슈퍼마리오 64의 런 종류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세계기록의 주도권을 서구권으로 이끌고 온 siglemic 이라는 플레이어가 트위치에서 매일 12시간씩 슈퍼마리오의 스피드런을 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요. (최고 만명이 넘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스피드런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스트리밍 컨텐츠로써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게 되고, 현재 수많은 스피드러너들이 트위치, 니코나마 등을 통해 스트리머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슈퍼마리오 64의 스피드런은 크게 4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최종 보스인 세번째 쿠파를 가장 일반적으로 잡을 수 있게 되는 70스타 런, 그리고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파워스타를 모두 얻는 120 스타 런. 그리고, 위의 만화에서 3번째 컷에 나오는 계단 스킵 글리치 (BLJ 라고 부릅니다.)를 사용하는 16스타 런. 마지막으로 모든 스타를 얻지 않고 3번의 쿠파와의 전투만 골라서 할 수 있는 0/1스타 런으로 나뉩니다. (두번째 쿠파를 잡을때 잠수함 스테이지를 거치는 경우 1스타, 거치지 않는 경우 0스타 입니다.) 이 중 Siglemic이 했던 스피드런은 70/120 스타 런입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가장 빨리 깰 수 있는 스피드런이 가장 큰 인기를 얻는 다른 게임과 달리 슈퍼마리오 64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120스타 스피드런이 가장 인기가 많은데요. 그 이유로는, 일단 스테이지를 화려한 움직임으로 깨는 것이 보는게 재밌고 시간이 하나의 컨텐츠로 보기에 가장 적절한 1시간 30분 - 2시간 사이이며 (대부분의 영화 시간과 비슷하죠.) 이 게임을 즐겼던 일반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이 게임을 깼던 대로, 모든 스테이지를 거치며 파워스타를 모아 쿠파를 한번씩 격파해 나가는 방식으로 스피드런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2012, 2013년을 평정한 siglemic 이후 2014년에 새로운 스피드러너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Devin Blair. Puncayshun 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2014년 5월 22일. Siglemic 이 한달 전에 세운 1:43:53의 기록을 10초 앞당기며 처음 WR 홀더로 등장, 2014년에만 자신의 기록을 11번 경신하며 2014년 말에는 1:42:32라는 기록을 가지게 됩니다. 이후 그가 잠시 주춤한 2015년 초. 2010년 초반부터 슈퍼마리오 64 스피드런을 해 오던 ねろねろ (현재 Twitch에서 Nero_X2로 방송중인 그는 Mega Man X의 Any% 런 WR 홀더이기도 합니다.) 에 의해 1:42:09초까지 기록은 당겨지게 되고, 사람들은 곧 1:42 의 벽이 깨지리라 기대했습니다. 네. 깨졌습니다. 그의 기록은. 무려 1:41:16 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말이죠. 그 기록을 달성한 것은 스페인 출신의 Allan Alvarez, 그리고 아래 글에서 Cheese05 라고 불릴 사람입니다.
이쯤에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요. 바로 슈퍼마리오 64의 기록 변천사입니다. 2010년 이후 연말기준 기록은 다음과 같은데요.
2010 - 2:10:14
2011 - 1:47:10
2012 - 1:44:01
2013 - 기록경신 없음
2014 - 1:42:32
이렇게 기록 경신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지만 그 폭은 점점 감소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러한 경향을 통하면 결국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짧은 기록은 1:40 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1:40 대에 들어가는 것은 약간 먼 일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Puncayshun의 2015년 8월 10일 WR 달성 영상. 언제나 그의 썸네일은 시선집중입니다. 이 영상의 마지막 2분을 보시면 그 이후 흐름을 이해하시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Cheese05 의 등장이 Puncayshun에게도 큰 자극이 된걸까요? 그는 최초로 1:41 의 벽을 깨며 다시 WR 홀더로 등장합니다. 이후 두 플레이어는 서로 WR을 주고받으며 2015년 말, WR은 1:40:44 까지 줄어들게 됩니다. 지난 2년간 2분이 줄어들었던 WR이 1년간 2분이 줄어든 상황. 사람들의 눈은 이제 1:40 에 향하게 됩니다. 숫자적으로도 100분이 99분이 되는 의미 있는 순간. 이 두 천재 뿐만이 아닌, simply 나 일본의 수많은 고수들이 그들을 쫓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들에게 인간 한계의 끝이라고 여겨졌던 1:40이 이제 슬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Cheese05는 무서운 속도로 기록을 경신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2016년 6월 8일 1:40:34 를 기록한 그는 그 다음날 5초를 더 줄이며 1:40:30 의 벽을 깼고, 그로부터 두달뒤인 8월 6일에는 무려 기록을 17초나 줄이며 1:40:12. 이제 정말 1:40에 다 다다르게 됩니다. 정말 1:40은 이제 시간문제에 불과해 보였고, 마침내 2016년 11월 29일..
자동재생이 되지 않으면 1:37:40 부터 보시면 됩니다. 아.. 제목 스포..
위 동영상에서 Puncayshun이 마지막 보스를 한번의 미스에도 불구하고 1:40:59에 깬 것과 반대로, 그는 두번의 실수를 저지르며 1:40:10 의 기록으로 1:40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세계기록을 세웠음에도 Cheese05는 절망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슈퍼마리오 64 발매 20주년이었던 2016년 내 무너질 줄 알았던 1:40의 벽은 결국 무너지지 못한 채 2017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2017년 4월 1일, Cheese05는 다시 한번 1:40:05 로 기록을 줄였지만 어쨌건 1:40 이후 기록임에는 변함이 없는 상황에서 한달이 다시 지나가게 되었고 2017년 5월 4일. 한국 시간으로는 5월 5일 어린이날에 Cheese05는 다시 세계기록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 100분 뒤,
드디어 슈퍼마리오가 6년여간의 1:40분대 여정을 마감하고 1:30 분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2017년 6월 첫째주 주말은 슈퍼마리오 64 팬들에게는 재밌는 주말이었습니다. 토요일인 6월 3일, Puncayshun이 근 1년 반만에 1:39:49의 기록으로 역대 두번째 1:39 대 진입자이자 정말 오랜만에 WR 홀더로 등극하게 됩니다. 사실 Puncayshun 역시 cheese05가 아니면 자기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쉬울 수 있었겠지만 어쨌건 WR 홀더의 자리는 영광스러운 거죠. 그렇게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1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다음날인 6월 4일. Cheese05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시 한번 WR의 기록에 도전하여 1:39:28 라는 기록을 세우며 또 다시 WR 홀더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놀려먹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영상에서 둘이 주고 받는 훈훈한 대화때문에 저는 일반적으로 민감한 정보를 포함하게 되어 체크를 하게 되네요..)
이후 무려 10여년간 슈퍼 마리오 64 스피드런을 해 온 일본의 バトラ까지 포함하여 총 3명이 1:40의 벽을 깬 상황으로 3명은 1:39의 벽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1:38 정도가 인간의 벽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과거 1:43이 그랬고 1:42가 그랬듯이 인간은 위대하고 또 어떤 기록을 해 낼지 모릅니다.
현재 Cheese05와 Puncayshun은 여전히 twitch 의 각자 채널에서 슈퍼마리오 64의 스피드런을 진행하고 있으며, Cheese05는 또다른 슈퍼마리오 64 의 스피드러너인 simply (현재 다음으로 1:40의 벽을 깰 것이 유력한 사람입니다.) 과 함께 Two Dad Show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등, 스피드런 스트리머의 컨텐츠 확장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슈퍼마리오 64가 나온지 오래된 게임이라 요즘 어린 친구들이 하는 게임은 아니고 향후 2-3년간 슈퍼마리오 64의 WR 경신은 이 둘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1:38의 벽이 깨졌다는 말과 함께 올라올 영상은, 어쩌면 이 글에 한번도 언급되지 않을 그 누군가가 될지도요.
가장 최근에 둘이 함께 진행한 스피드런인 2018 SGDQ에서 70스타 런 배틀 영상을 올리며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다음 글의 주제가 될 게임으로는 몇개 떠오르는게 있는데,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사실 스피드런도 결국 많이 하는 게임이 스토리가 많다보니 닌텐도 게임이 쓸 거리가 많은데 이걸 분배를 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쓸지에 대해서 생각중입니다.) 좀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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