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5/12/12 21:51:34
Name phoneK
Subject [공모] Fly High -7화- 'seoul to pusan'

같은 시간, 경상남도 부산 IC근방, 날렵한 오토바이 하나가 질주하고 있었다. 마침 한가한 시간이어서 고속도로는 텅비어있었고 그 오토바이는 전속력으로 도심 한복판을 향했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거의 수시간에 걸친 강행군 끝에 부산에 도착한 그는, 잠시 헬멧을 벗고 숨을 몰아쉬었다. 서울과는 전혀 다른 풍경과 휴게소 곳곳에서 들려오는 부산 사투리가 그의 피곤함을 달래주는 것같았다.

"그래, 여기가 김주혁이 살던 곳이란 말이지?"

기욤은 가죽 잠바 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어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 11-1번지라..."

3번의 방송경기로 기욤이 직감한 것은, 김주혁과의 연관성이었다. 만약 K가 사람의
혼백이라면, 살아생전 주혁과 인연을 맺은 사람일 수 있다는게 기욤의 생각이었다. 협회는 기욤의 9번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지만, 사실 기욤은 그리 주관적인 판단을 내린 게 아니었다. 방송 사태가 일어난 직후, 가장 먼저 컴퓨터를 살펴본 것은 기욤이었다. 컴퓨터 천재이기도 한 그가, 긴급상황이 일어남에 따라 PD들에게 추천되어 맨먼저 컴퓨터를 손 본 일을, 의장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기욤이 살펴본 결과, 바이러스나 해커의 침투는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손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 메세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만약 귀신이나 유령같은 게 아니라고해도, 주혁의 주변사람중에 그에게 앙심을 품은 자 또한 있을테니, 이번 부산원정은 결코 헛수고가 아닐 터였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김주혁의 인간성이 매우 더럽다는 것이겠군. 용의자가 꽤 많을지도 몰라..."

기욤은 오토바이에 기름을 채운 뒤 사직동으로 달렸다. 사직동에 도착한 뒤로는 그야말로 백사장에 바늘찾기식으로 노가다를 해야했다. 결국 사람들에게 물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 푸른 눈의 사내를 보고 기꺼이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무리 올림픽 개최지라고 해도 아직은 외국인을 두려워하는건가 하는 생각에, 기욤은 부산이 고향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정석아, 부산 사직동인데 여기..."

'머라카노, 니가 거기 왜있는데?'

"무얼 좀 찾아야겠는데, 사람들이 말야..."

'좀 있다 전화하자 마, 지금 음층 바쁜기라 주말이라서!'

고기체인점을 운영한다는 정석은 무척 바쁜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기욤은 이리저리 길을 헤매다가 지친 나머지 근처 피시방에 들어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직 해가 지기까진 시간이 있으니 배부터 채우고 볼 요량이었다. 피시방의 라면은 정말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옛날 생각이 들게 했다. 세계를 평정한 게이머 기욤의 시작도, 역시 이런 초라한 피시방에서부터였다. 기욤은 라면의 면발을 빨아당기며 주변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주말이라서 빈 자리는 거의 없었고 그 중 약 절반의 사람들이 스타를 하고있었다.

기욤은 라면을 금방 해치운 뒤 다른 사람들의 스타게임을 구경하였다. 프로의 눈으로 보기엔 너무 늦고 더딘 운영이었지만, 나름대로 즐겁게 게임을 하고있는 듯했다. 기욤은 그 모습과 K의 메세지가 오버랩되는 걸 느꼈다. 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그렇게 주혁과 스타를 미워하게 된 걸까.

"야, 파벳 50마리만 뽑아!"

"아저씨 여기 메딕 20마리 추가요!"

"일부는 시즈모드, 일부는 통통포로 덤벼!"

즐거워보였다. 한없이 즐거워보였다. 기욤은 현역시절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차피 게이머란 직업은 협회로 향하는 통과점일 뿐이라고 여겼지만, 이제와서 미련이 남는 건 무엇일까.

"저기, 혹시 기욤패트리 선수 아니세요?"

생각에 잠겨있던 기욤이 고개를 들자,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눈 앞에 서있었다.

"괜찮다면, 저하고 게임 한판만..."

"game? starcraft game?"

갑작스런 영어에 그는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기욤은 씩 웃으며 자기 자리로 가 앉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영어를 말하는 건 기욤의 습관이다, 기분이 무척 좋을 때는 영어로 말을 하곤한다.)

"come on,korea boy. i'll make you good journey!"

전혀 이해가 안된 그 고등학생은 다만 그렇게 외칠 뿐이었다.

"쥐 쥐"


뜻밖에도 아직 기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 곳엔 많았다. 5-0으로 깨끗한 승리를 거둔 기욤이 주위를 돌아봤을 때는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기욤이 약간 당황하는 사이, 피시방 주인이 기욤에게 악수를 청하며 다가왔다.

"한창 스타가 유행할 무렵에 여기서 상금을 걸고 스타를 많이 했었더랍니다. 지금은 조금 사그라들었지만요."

"그랬었군요. 그럼 혹시 박정석이란 게이머도 이 곳 출신인가요?"

"가끔 오긴 했었어요. 하지만 박정석 선수는 다른 피시방에서 더욱 이름을 날린 걸로 알고있어요. 여기보다 더 큰 피시방은, 그만큼 상금도 클테니까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때만 해도 바로 옆에 엄청나게 크게 연 피시방이 있었거든요."

주인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피시방을 둘러보았다. 정말, 수년전만해도 지존급 피시방이었을 듯한 이 곳은, 지금은 그저 중간 정도가는 피시방이 되버린 것이다.

"그래도 며칠전에는 경사가 있었지요. 설마 이 작은 피시방에서 스타리그 우승자가 나올줄은 몰랐습니다."

"우승자라고요? 설마 김주혁 선수를 말하는 건가요?"

순간, 기욤의 푸른 눈이 반짝였다. 까마귀잡으려다 배떨어진다더니만!

"김주혁 선수가 이 피시방에 왔었단 말인가요?"

"상금은 모두 그의 독차지였죠, 한 일 년간은요. 그러더니만 어느 날 프로로 전향하겠다고 서울로 갔습죠. 그 뒤로 한동안 소식을 알 수 없었는데 어느 날 게임방송을 보는데 아는 얼굴이 나오는게 아니겠어요?"

주인은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더욱 기쁜 것은 기욤이었다. 의외의 실마리가 이 곳 피시방에 있었던 것이다. 기욤은 내친 김에 피시방에 온 사람들에게 혹시 개인적으로 주혁과 친한 이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스무살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주혁이는 왜요?"

음침한 목소리였다. 기욤은 첫 눈에 그의 악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외국인이라서일까, 아니면 게이머라서 일까. 하지만 가장 귀중한 단서가 될 이 사람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기욤은 이 순간 가장 확실한 거짓말을 해야했다,

"주혁이 어머니하고 좀 아는 사이입니다. 전해야할 중요한 물건이 있어서 꼭 좀 만나야하겠는데 집이 어딘지 잘 찾지 못하겠군요."

"주혁이 집은 제가 잘 알고있습니다. 물건을 주시면, 제가 전해드리죠."

"밥도 좀 얻어먹고 싶은데요. 직접 만나뵙고 싶습니다 오랜만이라서요."

기욤의 임기응변은 그러나 뜻하지 않은 반응을 일으켰다. 그 말을 들은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기욤을 노려보았다.

"밥이라고? 당신 정체가 뭐지? 주혁이 어머니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거지!"

당황한 기욤이 그게 아니라는 투로 손을 내저어보았지만, 사내는 막무가내로 기욤을 멱살을 쥐고 흔들 뿐이었다. 덕분에 피시방은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었고, 커플로 피시방을 찾은 남녀들은 서둘러 밖으로 도망치고, 얌전히 게임을 하고있던 사람들조차 벌떡 일어나 두 사람를 둘러싸고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기욤은 멱살이 조여와 숨이 터져나갈 듯했다. 피시방 주인이 중간에 막지 않았으면 뼈가 한두개 부러지고도 남을 정도로 사내의 완력은 대단했다. 겨우 두 사람을 떼어놓은 피시방 주인은 숨을 헐떡이며 사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바보녀석아!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아냐!"

알고보니 그 사내는 주인의 아들이었다. 주인은 사과 겸 저녁식사로 짜장면을 시켜주며 거듭하여 미안하단 사과를 하였다.

"이것 참, 하나 있는 아들놈이 이렇게 성질이 급해서야. 하지만 거짓말을 한 기욤 선수도 잘못한 거에요."

기욤은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난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주혁의 어머니는 지금 병환중이셔서 기욤에게 밥을 주기는 커녕, 스스로 밥숟가락도 들기 힘든 상황이란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해, 그 충격으로 그렇게 되었단다. 하는 수 없이 기욤은 그간 있었던 일과, 자신이 주혁을 의심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주인과 주인의 아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주혁이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적어도 그와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그럴테지요. 주혁의 게임은 늘 재미가 없었습니다. 병원비를 벌기위해 상금이 걸린 경기에 참가한 것이니까요. 이기기 위해서라면 안해본 것이 없을 정도였지요."

"그렇군요. 그의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저 역시 한국에 온 초기에는 이기기위한 경기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이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김주혁 선수역시 돈을 벌 수 없게 됩니다. 다시 한 번 기억을 되짚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로 원한을 가진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을 말입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라..."

한참 후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주인의 아들쪽이었다. 그는 다 죽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기욤에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정말 미안한 일이 있었어요. 김주혁이 프로로 데뷔하기 바로 전에 이 곳에서 대회가 있었는데요. 결승 상대가 조금 어린 꼬마였어요. 그래서 주혁이는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왠 걸, 그 아이는 아주 강했어요. 주혁이보다 프로란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기욤은 그에게서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겨우, K의 실루엣이 조금이나마 드러나는 듯했다. 그러나 기욤의 가슴을 한없이 무겁게 하는 것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 K의 정체가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이형, 그 이야기 들었어?"

"알아. 김주혁을 위한 이벤트경기라더군. 역시 협회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강민과 용호는 그간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김주혁과의 게임에서 K의 모습을 본 뒤 그는 전혀 공식경기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K는 김주혁이 참가하는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민은 그 한가한 시간동안에, 주혁과의 게임에서 들었던 그 효과음을 계속해서 되살려보고 있었다. 분명히 그 효과음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이 있었다.

"용호야, 너는 어릴적에 로봇같은 거 좋아했어?"

"그거야 남자라면 다 어느 정도 하지 않나?"

강민은 그 효과음이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의 소리와 같다고 느꼈다. 그것이 K의 정체와 무슨 관련이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게임상에 구체화된 K의 유닛에 대한 정보는 줄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요환이 형이 늦는군. 프로그램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던가?"

"앗, 저기 오는데."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은 임요환은 말쑥한 양복차림이었다.

"미안, 기봉이 결혼식이 있어서 좀 다녀왔어."

"햐, 벌써 결혼을 다하네 그 형."

"금방이야 금방. 삶의 시간은 그야말로 fastest mode라니까. 너희들도 지금부터 준비를 잘 해두지 않으면, 곧 빌드가 꼬여버릴지도 몰라."

"뭐, 답안나오면 캐리어 띄우는거지 하하."

"버로우해버리지 뭐, ㅋ ㅋ"

요환은 강민과 용호의 보기드문 익살에 빙긋 웃으면서 들고온 007가방을 열어젖혔다.

"일단 나름대로 전략을 짜와봤는데, 역시 쉽지는 않겠더라. 공격력이 그 정도면 체력과 방어력은 얼마일까.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적어도 풀업 울트라 풀업 배틀크루져이상일 거야. 게다가 이 녀석은 기본적으로 클로킹모드라는 것이 민이 말에 따르면 정설인 거같다.
하지만 다크 템플러와는 조금 다른 거같아. 옵저버로도 볼 수 없는 녀석을 어떻게 공략하느냐는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인데,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전체적인 사고회로를 바꾸어볼 필요도 있어."

요환의 긴 설명에 용호와 강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언제나 기발한 전략으로 상대를 놀라키던 요환이 이번에는 어떤 전략을 가져온 것일까.

"우리의 상대를 정체불명의 게이머라고 가장하자. 우리는 맵핵켜고 미네랄핵까지 쓰는 게이머와 대결하고 있는거야. 그러면 너희같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배넷에서 직접 만나게 되면, 물론 처음엔 실력으로 이길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동등한 실력일 경우엔 달라. 공평한 승부는 바로 패배와 직결되지."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그를 설득하는 게 옳을까?"

"아직 해답까지는 구하지 못했어. 하지만 녀석은 자존심이 강하다구. 아마 50:1로 싸워도 이길거라 생각하고 있을거야."

요환은 강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민아, 녀석을 설득해 봐. 어떻게 해서든 8:1싸움을 유도해봐라. 우선 거기서 부터 시작하는거야."

요환의 빛나는 눈에서 강민은 그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현역 시절, 저런 눈빛의 요환에게 얼마나 많은 경기를 내주었던가. 미네랄이 남아있는 한 포기하지 않는 요환의 정신력은 강민 역시 수십번 인정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용호는 조금만 참아라. 이 일이 정리되고 나면 주혁에게 꼭 복수하는거다 알겠지?"

"물론이지. 이미 목동자격증은 따 놓았다구."

용호 역시 눈을 빛내며 요환을 향해 브이를 그려보였다. 한 때 떠올랐던 '은퇴'란 두 글자는 두 올드게이머의 열정에 휩싸여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용호는 우선 K와의 일전을 치루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나서는 주혁과의 리턴매치-

그러나 용호의 생각과는 달리, 그 리턴매치는 머지 않은 시간의 흐름에 있었다. 강민과 요환과 헤어지고 난 뒤, 익명의 전화가 한 통 걸려온 것이다. 그는 협회의 의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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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3
05/12/13 00:03
수정 아이콘
헛; 제가 개인적으로 정석선수 팬인데
고기집을 하고 있다니T_T
정말 그렇다면 전 매일 그 가게 가겠는데요 ~ 후후;
역시 사투리가; 멋있네요;
파벳 50마리, 메딕 20마리, 역시 무한맵의 묘미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슬픈비
05/12/13 00:33
수정 아이콘
민아, 녀석을 설득해 봐. 어떻게 해서든 8:1싸움을 유도해봐라. 우선 거기서 부터 시작하는거야."

..저 재밌게 보다가 이 부분이 좀 걸려서요^-^; 수정 하시면 더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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