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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2/21 02:38:34
Name 푸파이터
Subject [일반] 나의 노무현에 대한 추억
편의상 반말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느낌표란 프로그램을 기억하는가?
그 프로그램에 노무현 대통령이 게스트로 나왔었다. 방송 도중에 음식에 관해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유재석이 '자기는 고구마를 꼭 우유랑 같이 먹는다' 고 말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맞장구를 치며 카메라를 보고 "여보 고구마는 우유랑 같이 먹어야 해!"라고 외쳤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저런말을 서스럼 없이 던진다는 게 어린 나로서는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고 또 미친듯이 웃었던거 같다.


2.중학생때 사회시간에 노무현 탄핵 소추 사태를 가지고 자기생각을 적는 숙제가 있었다. 난 정치는 쥐뿔도 몰랐지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함부로 탄핵시켜선 안된다고 나름 소신(?)을 가지고 적었다. 다행히 탄핵은 무효가 되었다.


3. 난 머리가 좀 커진 고딩이 되었고 고등학교 동아리 토론시간때 제법 심도깊은 주제인 '참여정부 평가'라는 주제로 열띤(?)토론을 펼쳤었다. 그래도 나름 참여정부 편을 들어가며 열심히 내 의견을 말했지만 아뿔싸, 회원 20명 중에 내 편은 아무도 없었고 그날 난 내 자신이 노무현이 된 것마냥 여권을 지지하는 친구들에게 속된 말로 '개털렸다' 더욱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 중에선 내 첫사랑도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10대는 그렇게 끝이났다.


4.난 대학생이 되었고, 노무현은 퇴임했고 이명박씨가 당선되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는 야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역대 대통령중에 아무도 그런 이가 없었기에 날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특히 난 매일매일 노무현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그분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개소문 닷컴에 들어가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산책나가고,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물고 불지피는 사진에 대한 2ch의 반응을 보며 무한한 우월감을 느꼈다. '니네들은 이런 지도자 없지. 앞으로도 없을거다'


5. 집에서 김해까진 1시간이 좀 걸렸다. 봉하마을은 딱 우리 할아버지 시골마을이었다. 그곳에서 그를 보았다. 할아버지를 약간 닮은 그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멋졌다. 뒷산에서 본 황금들판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6. 터졌다. 분노하지는 않았다. 오해겠지. 아닐거야. 실망 중에서도 약간의 희망을 남기며 기다렸다. 그럴리가. 아냐 아니라고


7.레포트 제출 기한을 넘겨 아침일찍 컴퓨터를 키고 열심히 자료를 찾다가, 엄마가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티비를 키셨다. '뉴스속보' 지독하게 현실감없었다. 에이설마...설마는 현실이 되었고.... 이상하다. 별 느낌은 없었다.


8.울었다. 사진보다가. 동영상 보다가. 결국 터졌다. 바보처럼 울었다. 왜갔어요. 왜...? 결국 1학기는 2개과목 F. 미련없이 지워버렸다.


9.유시민이 있었다. 울분을 참고 있었다. 문재인이 있었다. 그는 사과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을 뒤로한 사진은 한동안 유머거리였다.


10.넷만 전쟁터가 아니었다. 온통 전쟁터였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정해져 있었고, 아는 후배가 il모 사이트회원에다가 대놓고 그곳을 한다고 광고하고 다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누구뽑는게 중요하니 투표하는게 중요하지" 고인드립 하는 와중에 넌지시 한마디했다.


11.졌다. 마치 지난 여름 분대전투 과목에서 떨어져 임관종합재평가장으로 끌려감이 확정 났을 때의 충격이었다. 두개 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무언가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던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12.그는 떠났다. 나도 곧 학교를 떠나지만 다이아몬드 하나와 함께 새 인생을 시작한다. 삶이란 그런거 아니겠나. 이 길의 끝에는 또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비록 골 D 로저는 아니지만 명왕 실버즈 레일리가 되어 우리들의 루피를 키워줘야 할 것이 아닌가. 에이스는 죽었지만 명왕은 다시 루피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부탁합니다. 제발 떠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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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내고 우중충한 마음으로 뻘글 적어봅니다. 박근혜 당선자님 축하드리고 당신을 지지한 1500만표만 보시지 마시고 당신을 반대한 1400만표도 꼭 봐주세요.

* Tob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2-12-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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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21 03:07
수정 아이콘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저는 정치를 전혀 몰랐던 어린 아이였습니다.
5년이 지나고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분은 이미 제 마음속에 최고의 정치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유는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에 끌렸을 수도 있고,
5년 내내 보았던 모습이 꼭 아군 없이 전쟁터에서 홀로 있는 모습처럼 보였어서 안쓰러웠을 수도 있구요.

현실에서 이런 말 하면 정치성향 비슷한 친구조차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라구요. 하하;
그 뒤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꺼내진 않지만, 이 글을 보고 공감이 가서 커밍아웃하게 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12/12/21 03:27
수정 아이콘
언젠가는 사람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올겁니다..
SigurRos
12/12/21 03:54
수정 아이콘
임관하시는건가요 축하드려요
공무원이 짱이죠!
comesilver
12/12/21 08:02
수정 아이콘
학군장교 후보생인 모양이네요.
저도 같은 길을 걸었고, 당시에 노 대통령 앞에서 임관식을 치뤘죠.
(육사 동기들은 사상 초유의 대통령 없는 임관식을 치루고 몇 주 늦게 초군반에 입교했지요.)
군 복무 시절 느낀 병사들의 사기는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고, 자기들과 같은 길을 걸었던 군 통수권자가 있어서 그랬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라크 파병 장병들을 깜짝 방문했을 때 군의 사기가 절정이었던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하면, 보통 사람들이 경험했던 것을 했던 유일한 대통령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후배님, 군 생활 몸 건강히 잘 하세요!
많이 부대끼고 느끼고 경험하고... 특히 중대원들한테 맛있는 거 많이 사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도 마지막 휴가때 소대원들한테 짜장면을 곱배기로, 시켜주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되네요.
도깽이
12/12/21 08:03
수정 아이콘
사실 노무현에대한 향수랄까? 추억이 잘 이해가 안돼요. 노무현은 대통령 되고나서 좌측깜빡이를 키고 우회전을 킨다면서 지지자들을 많이 실망시키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그 지지자들은 아직도 노무현 전 대통령님에 대해 좋게 생각? 하고 있는거 같아서 의외라고 생각해요.
저같으면 제가 지지했던 후보가 내가 생각했던것 과는 다른 정책을 펼치면 쌍욕을 했을거거든요
단빵~♡
12/12/21 08:47
수정 아이콘
비명에 가신게 크다고 봅니다. 도깽이님의 말씀대로 임기중에는 등돌린 지지자분들이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비슷하게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박정희 향수도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암살당하지 않고 국민에 의해서 전두환처럼 끌어내려졌다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12/12/21 11:11
수정 아이콘
절대선과 절대악이 아닌 상대선과 상대악을 선택하는 게임이니까요.
이명박정부가 집권하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거죠.
설마 10년 전으로 역사를 되돌릴 줄을 몰랐거든요.
12/12/21 08:45
수정 아이콘
제 생각입니다만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최고의 정치인이었고 그야말로 대통령의 자격을 오롯이 갖췄던 사람이었죠. 그 전까지 민주투사 2김의 그림자였던 지역감정이나 제왕적 기질도 없었고 그가 선택한 길마다 명분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보긴 힘듭니다. 거의 전 세대가 노무현의 정책에 조금씩은 피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솔직히 저는 대통령 노무현에 쳐지는 실드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건 맞는데 노무현에 의해 야권에 등을 돌린 중도층이 장난이 아니라는게 이번 선거에서 밝혀졌구요.

그래도 전 노무현같은 사람이 대통령한다고 하면 찍습니다. 예전에 너같은 노무현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사람이 실패했으니 넌 안돼라고는 못할 겁니다. 노무현대통령이 실패했을지언정 노무현에게 대통령을 주었던 한국의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단빵~♡
12/12/21 08:49
수정 아이콘
노무현 대통령들이 했던 정책을 지금 현재 야권 지지자들이 보면 학을뗄게 많죠. 말랑님의 생각에 많이 공감합니다.
12/12/21 11:08
수정 아이콘
진보정책을 원했던 지지자들은 중도보수성격의 참여정부 정책들이 못마땅했을 거라는 거 이해합니다.
저 같은 경우, 참여정부의 정책들을 보고 이들이 유일한 합리적, 정상적 보수라고 생각해 지지하게 되었구요.
그런데 저 같은 케이스가 아주 많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보수의 주류는 여전히 한나라세력에 있었고, 진보는 참여정부의 정책에 실망해 떠나가 버려,
결국에는 지지 기반이 너무 약해지고 말았죠.
단빵~♡
12/12/21 11:15
수정 아이콘
저도 노무현정부가 합리적이고 괜찮은 보수정권이었음에는 공감합니다. 안보면도 뜯어보면 무능한 안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군국주의자 노무현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넷상에서 퍼질정도로 잘했구요 그래서 보수진영이 노무현 정부까는건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ㅠ 진짜 말그대로 노무현이 해서 깐다는거 말고는.... 제가 선거게시판에서 끝나고 올라오는 우클릭을 해야한다는 말씀에 절대 동의 할 수없는 이유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올표였으면 노무현정부는 좋게 평가 받았을겁니다.
12/12/21 09:58
수정 아이콘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다른 행보를 보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딱 그럴거 같다고 생각한 행보를 보였죠.
OvertheTop
12/12/21 11:18
수정 아이콘
대통령이 되기 전까진 좋아했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구체적이진 않지만 뭔가 기분이 좋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꺼 같고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임기 끝날때까지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놓기 싫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우여곡절끝에 그가 임기를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어느새......제가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이 되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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