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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25 16:58
광해군에 대한 과소평가는 지금의 평가가 아니라 당대의 평가를 말하는 겁니다.
당연히 광해군을 내쫒고 왕위를 차지한 인조와 서인세력은 자신들의 반정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이전 왕이었던 광해군의 업적을 깎아 내릴 필요가 있었던 거죠. 광해군이 실시한 전후 복구사업이나(성의 수리나 재축조, 국방력 강화, 민생안정을 위한 대동법 부분실시 등) 동의보감 편찬, 또다른 전쟁을 피하기 위한 중립 외교 등의 업적들이 상당부분 왜곡되어 실록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광해군 자신이 적자 출신의 왕이 아니라 후궁의 둘째아들이었던 까닭에 반정에 대한 우려는 할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만약 반정이 일어난다면 가장 유력하게 왕으로 추대될 영창대군을 제거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죠. 영창대군은 완벽히 적자이기 때문에 왕위에 대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실제로 광해군 자신이 직접 영창대군의 살해를 지시하진 않았고, 북인측에서 임의로 살해한 것이며 광해군은 그것을 묵과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정권에서 밀려난 서인에게는 충분한 반정의 구실로 보여졌겠죠. 지금의 시각으로 당대 사람들을 평가하는 건 의미가 없겠지만 그 당시에도 인조의 반정은 백성들에게 그다지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광해군의 무리한 토목공사로 백성들의 원성이 컸지만 그에 못지 않게 대동법의 실시 등으로 칭송 받는 바도 많았거든요. 음..... 대학다닐때 광해군 주제로 레포트를 쓴 적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기억이 안나는 군요....ㅠ.ㅜ
06/03/25 16:58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부족한 지식으로 간략히 말씀드리면..
일단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조선은 수도까지 함락 당하죠. 당시 명나라와 조선은 각별한 관계였기 때문에(사실 우리나라가 지위상 아래였죠) 명나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군사를 파견합니다. 의병들과 명나라 군사들, 조선군의 활약으로 겨우겨우 왜구는 막아 내었습니다만 조선은 이미 황폐화 되고.. 전쟁이 일어나자 도망부터 간 관리들은 다시 돌아와 백성등에게 횡폐나 부리고 기껏 싸운 의병들의 구성인 백성들은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죠. 나라가 완전히 초토화 되어 망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권력을 줜 광해군의 활약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명나라 또한 여러가지 복합적 이유가 있었지만 임진왜란의 타격으로 나라가 쇠퇴해져 갔습니다. 대신 청나라가 일어났죠. 청나라는 유교적인 측면이라던가 문화 양식에서 명나라와는 많이 틀렸습니다. (황비홍변발 아시죠?) 그래서 융합될 수 없었죠. 앞으로 명나라의 시대는 가고 중국 대륙이 청나라가 석권하리란것을 직감한 광해군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쟁에서 명분상 명나라를 도와줘야 하는데 실리를 위해(당시 조선은 중국에 비하면 소국이었는데다 전쟁의 여파로 힘이 극도로 약했습니다. 망하기 직전에 다시 일어나는 중이었으니까요) 도와주는 둥 마는둥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광해군의 중립외교정책입니다. 당연히 청나라 입장으로는 조선이 적도 아군도 아니니깐 당장은 적의가 없었겠죠. 하지만 전국의 유생들이 광해군 외교정책이 의리도 명분도 없는 치졸한 정책이라고 들어 일어납니다. 현대로 따지면 일종의 여론이죠. 당연한 것이 명나라는 조선을 도와줬는데 정작 명나라의 위기때 조선이 도와주질 않으니 그런 여론이 생기는건 자연스러웠겠죠. 결국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쫒겨나가고 인조가 왕위에 섭니다. 그뒤로 인조 세력은 적극적으로 명나라를 지원해 줬습니다. 대의명분을 위해서요. 유생들도 적극적으로 옹호해 나갑니다. 하지만 대세는 청나라였죠. 우리나라같은 당시 약소국이 도와줘 봤자 흐름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고 다음 target은 자신들에게 적이 된 조선이 됩니다. 그후로 병자 호란이 일어난거죠.. 청나라는 임진왜란으로 초토화되어 겨우 살아나려고 하는 조선을 다시 때립니다.. 결국 인조는 청나라 장군한테 굴복하고 머리를 몇번?? 땅에 박는(청나라 황제도 아닌 장군한테 일국 국왕이..) 역사에 길이 남을 굴욕적인 수모를 겪게 됩니다.. 당시 상황으로 왕이 그런 수치를 당한 것은 백성들 전체가 당한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조선은 두차례의 큰 전쟁으로 망국의 길로 걷게 됩니다. 그 결과는 일본에게 국권을 피탈당하죠. (물론 중간에도 많은 사건이 일어나죠) 광해군 사건은 외교는 실리라는걸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참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대의명분.. 대의명분만 지키면 모든게 다 해결되면 외교는 정말 쉽겠습니다만.. 외교라는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나 봅니다. 세상일 하나의 대 원칙만 가지고 간단히 돌아가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이때의 예를 가지고 실리 외교를 해야 된다고 주장하시면 수구꼴통 소리를 듣기 쉽습니다. 조심하세요.. 이상 부족한 답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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