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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23 16:02
세 가지가 생각나네요.
1) 왕정이라서 진 것이 아니라, 순수 나라가 막장이라서 진 것 -> 무기의 차이가 나도, 그 나라가 건국초라던가 그러면 다른 힘으로 극복할 수도 있지만, 청말기는 왕정으로써도 이미 많이 맛이 갔지요. 세도정치를 겪은 조선도 그렇고... 2) 총은 물량으로 극복 불가능 -> 총균쇠에 나왔던거 같은데 총, 특히 강선총 정도는 다른 요소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3) 병사의 사기 문제 ->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이 대규모 군대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군대 편재를 개혁했기 때문도 있지만, 공화정으로써 프랑스의 높은 애국심을 바탕으로한 사기가 상당한 힘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징병제를 운영할 수 있었고 탈영병이 적었으며 전투에서의 사기가 높았으니까요. 왕정이라 졌다, 라면 3번이겠네요.
12/02/23 16:07
우선 아편전쟁의 경우에는 계속해서 대외무역이 쇠퇴하면서 그와 함께 근대적인 해군이 존재하지 않은 청 왕조로써는 이길 수 없었던 전쟁이었습니다. 그에 반해서 식민지 개척 등으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영국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고요. 무기에 대해서 몇마디하자면 영국이 사용하던 배는 증기선인데 비해서 청 왕조는 목재 갤리선 수준이었습니다. 상대가 될 수가 없죠.
정확히 말하면 왕정 자체가 문제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권력이 부패화되면서 사회 시스템 자체가 낙후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양무 운동 등으로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더라도 그걸 활용하는 시스템이 떨어지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이지요. 당시 청의 군 체계는 이후 분열화되는 군벌 체계였기 때문에 어느 함대는 일본군에 맞서서 싸울 동안, 다른 함대가 중립을 선언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을 정도니까요. 다시 말해서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몰락했다는 이야기는 왕정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모순적이고 비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걸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가 왕정에서 벗어나 민주정으로 바뀌는 것이고요.
12/02/23 16:38
공화정에서도 대통령 잘못뽑으면 이 난리인데 왕정에 무능하면 답이 안나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머릿수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제일요소는 아니죠 게다가 왕 같은경우 대부분 용인술은 알아도 병법은 어둡습니다 장군들이 멀리있는 왕눈치를 살펴야하죠 선조가 대표적이겠군요 왕이 절대적인 천재이고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혈연에 연연하지않고(로마 오현제) 이런 인물이 계속 나타나서 장수한다면 왕정도 괞찮은 제도입니다 그러니 유사이래 가장 오랜 지배체제였지요 [m]
12/02/23 16:41
왕정에서 최고 사령관은 무조건 왕이니까 지는 거죠 민주정에서 최고 사령관은 변화가 가능하죠
왕이 똑똑하면 전쟁에서 왕정이 민주정에 밀릴 이유는 없죠 실제로 그리스의 민주정이 그 당시 다른 정치체제에 비해 효율적이지 않죠
12/02/23 17:00
반대로 세계적인 정복군주들은 전부 왕이잖아요..
히틀러 역시 왕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고.. 왕정이 왕만 똑똑하면 의사결정의 속도나 자원 분배의 과감함 같은 측면에서 전쟁에서 더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할 이유가 없죠. 민주정은 기본적으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문제 때문에 일정 이상의 효율이 나올 수가 없다고 봅니다.
12/02/23 18:16
아편전쟁은 중국이 근대화를 추진하기 전에 중화사상만을 가지고 치룬 전쟁이라
병력숫자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 우리에겐 20만 대군이 있다.. 한줌 오랑캐에 밀리랴 ? " 결과는 시즈모드된 탱크 2부대에 마린 200마리 돌격 ? 좁은 입구에서 공 3업 아칸 1부대에 저글링 400마리 돌격 ? 배틀 1부대에 질럿 10부대 돌격 ? 아편전쟁후에 충격을 받고 양무운동을 추진하면서 조선소도 만들고 병기공장도 만들고 했지만 메이지 유신으로 힘을 키울대로 키운 일본과의 전쟁에선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자기나라를 지키는 전쟁이 아니라 조선에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이었죠. 침략을 막는 전쟁이었다면 이렇게 일방적인 패배는 당하지 않았을수도 있을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위에도 언급하셨지만 북양함대가 출동했는데 남양함대는 출동하지 않았고... 서태후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이화원을 개축하느라 군함의 포탄을 살돈을 다 써버렸다는 그런 뒷 얘기도 있구요. 힘이 넘칠대로 넘쳐서 조선 침략으로 힘을 발산한 일본과 다 무너져가는 청나라의 전쟁은 이길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 청일전쟁 이후에 입헌군주제의 일본에게 졌기때문에 입헌군주제가 왕정보다 우세하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고 왕정을 압박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고 하네요.
12/02/23 18:27
아편 전쟁의 경우 청이 워낙 막장 상태라 질 수 밖에 없었죠. 전쟁 형태도 함대폭격 후 주요 도시 약탈이었기 때문에 병력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죠. 그리고 사실 왕정이라기 보다는 봉건제와 국민국가 제도의 차이가 군사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국민국가 제도 아래 군대는 몇십만까지 동원이 가능해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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