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2/01/01 16:45:20
Name VKRKO
Subject [청구야담]병자호란을 예언한 이인(覘天星深峽逢異人) - VKRKO의 오늘의 괴담
서울의 한 선비가 함경북도에 갔다가 산 속의 지름길로 와서 하루만에 강원도 이천 즈음까지 이르렀는데, 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 쌓이고 큰 나무가 높이 솟아 아직 낮인데도 호랑이와 표범이 으르렁대고 이리와 여우가 뛰어다녔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봐도 사방이 고요하고 인적이 없었다.



선비가 사람 사는 집을 찾아 돌아다니다 문득 큰 돌을 보게 되었는데, 돌 가운데가 열려 있어서 마치 돌로 만든 문 같았다.

큰 강이 그 가운데에서 흘러나오며, 때때로 부추 잎이 떠내려 왔다.

선비가 말했다.



[이 안에 반드시 사람이 살 것이다. 아마 무릉도원이나 신선이 사는 곳일게야!]

선비가 시종에게 헤엄쳐 들어가도록 시켰다.

한참 있으니 시종이 작은 배를 타고 왔다.



선비도 그 배에 타서 노를 저어 강을 거슬러 가다 물이 그친 곳에 배를 세우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 어떤 곳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민가 수백채가 있었다.

산은 높고 골짜기는 깊어 세상 모습과는 전혀 달랐고, 마을이 맑고 깨끗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왔는데 옷이 옛날 옷이었고 얼굴은 세속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노인이 선비를 맞이하며 말했다.

[이 곳은 깊숙하고 조용한 곳이라 인간 세게와 통하지 않은지 벌써 백년이 넘었소. 세상에서 이 곳을 아는 자가 없을 터인데 그대는 어떻게 이 곳에 오셨소?]



선비가 산길을 걷다 길을 잃었다고 말하자 노인은 그를 맞아들이고 저녁밥을 먹였는데, 산나물과 채소 등은 결코 세간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과 선비는 같은 방에 누워 잠을 자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인이 말했다.



[나의 몇대 선조님이 더럽고 시끄러운 세상을 싫어하여 동지 5, 6인을 거느리고 이 곳에 자리 잡은지 거의 백여년이 흘렀소. 한 번도 이 산 밖으로 나가본 적 없이 아들, 딸 낳고 서로 시집, 장가보내서 지금은 수백채의 집이 있는 마을이 되었소. 밭을 갈아서 먹고, 베를 짜서 옷을 입으며, 서로 싸우지도 않고 세금도 없소. 다만 나뭇잎이 떨어지면 가을이구나 하고, 꽃이 피면 봄이구나 할 뿐이지요.]

밤이 깊자 함께 뜰을 거닐었는데, 갑자기 별 하나가 지는 것을 보고 노인은 놀라며 말했다.

[평구에 사는 박진헌이 죽었구나.]



그리고 노인은 또 탄식했다.

[가까운 시일에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이를 어찌할꼬?]

선비는 이상하게 생각해서 행랑 속에 있던 책에 그 날짜를 적어두고 노인에게 물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화를 피할 수 있습니까? 부디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이 말했다.

[강릉이나 삼척 쪽으로 피난가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오.]



다음 날 선비가 석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 평구에 들러 박진헌이라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자 마을 사람이 말했다.

[이미 죽었습니다.]

죽은 날짜를 물어보니 과연 별이 떨어지던 그 날 밤이었다.



그 후 병자년 겨울에 청나라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선비는 노인의 말을 생각해내서 아내를 데리고 삼척으로 피난을 가서 온 집안이 무사하였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4









영어/일본어 및 기타 언어 구사자 중 괴담 번역 도와주실 분, 괴담에 일러스트 그려주실 삽화가분 모십니다.
트위터 @vkrko 구독하시면 매일 괴담이 올라갈 때마다 가장 빨리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 VK's Epitaph(http://vkepitaph.tistory.com)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유리별
12/01/03 16:49
수정 아이콘
역시 청구야담이 재밌습니다.^^ 어디서 보고 가져오시는건가요?
12/01/03 19:10
수정 아이콘
야담은 비슷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본 것 같은데 그때는 배경이 중국이었어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26 [번역괴담][2ch괴담]신문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275 12/01/13 5275
325 [번역괴담][2ch괴담]사람이 적은 단지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294 12/01/11 5294
324 [번역괴담][2ch괴담]속삭이는 목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167 12/01/10 5167
323 [번역괴담][2ch괴담]모르는게 좋은 것도 있다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5746 12/01/09 5746
322 [청구야담]귀신에게 곤경을 당한 양반(饋飯卓見困鬼魅) - VKRKO의 오늘의 괴담 [6] VKRKO 5736 12/01/08 5736
321 [번역괴담][2ch괴담]옥상의 발소리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711 12/01/07 5711
320 [번역괴담][2ch괴담]썩은 나무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241 12/01/06 5241
312 [청구야담]우 임금을 만난 포수(問異形洛江逢圃隱)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5027 12/01/05 5027
311 [번역괴담][2ch괴담]한밤 중의 화장실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5324 12/01/04 5324
310 [번역괴담][2ch괴담]간호사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503 12/01/03 5503
309 [번역괴담][2ch괴담]제물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502 12/01/02 5502
308 [청구야담]병자호란을 예언한 이인(覘天星深峽逢異人)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798 12/01/01 5798
306 [번역괴담][2ch괴담]안개 낀 밤 - VKRKO의 오늘의 괴담 [7] VKRKO 5621 11/12/31 5621
305 [청구야담]원한을 풀어준 사또(雪幽寃夫人識朱旂)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5492 11/12/29 5492
304 [번역괴담][2ch괴담]코토리 - VKRKO의 오늘의 괴담 [9] VKRKO 5778 11/12/28 5778
303 [실화괴담][한국괴담]내 아들은 안된다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6307 11/12/27 6307
302 [번역괴담][2ch괴담]칸히모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231 11/12/26 5231
301 북유럽 신화 - 티얄피와 로스크바 [4] 눈시BBver.28889 11/12/25 8889
300 [청구야담]바람을 점친 사또(貸營錢義城倅占風)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6267 11/12/20 6267
299 [실화괴담][한국괴담]원피스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6663 11/12/19 6663
298 [청구야담]이여송을 훈계한 노인(老翁騎牛犯提督) - VKRKO의 오늘의 괴담 [7] VKRKO 6877 11/12/14 6877
297 [번역괴담][2ch괴담]친구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6314 11/12/13 6314
296 북유럽 신화 - 토르와 알비스 [7] 눈시BBver.27298 11/12/13 729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