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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3/04/24 01:06:23
Name 요슈아
Subject 정신재활중인 이야기
편의상 반말체로 작성해 봅니다.
약간 알콜이 들어가기도 했고 글로 표현하는게 익숙치 않아서 좀 이상할지는 모르겠어요.
다음날 보면 부끄러워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각오를 다시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해놔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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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약이 하나 추가 될 거에요. 혹시라도 2주일 동안 먹다가 뭔가 몸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오시면 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추가된 약 하나가 내 인생을 바꾸는 시작점이 될 줄은 몰랐다.


원래부터 게임(LOL)을 하다가 나 혼자 열받아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짜증내고 울부짖으며 가끔 키보드나 휴대폰을 부숴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분노가 있었다. 일상생활에선 전혀 그러지 않는데 유독 게임할 때만 저랬지.

알아서 고쳐지겠지 했는데 나이 먹어서도 전혀 나아질 기미는 없었고 고육지책이랄까 트롤링에 지쳐 롤을 그만두었지만(약 2년차) 결국 내가 뭔가 시도하는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면 또 다시 터져나오는 분노.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원룸에서 나 혼자 표출하는 분노가 다른 층 사람의 분노를(문이 쾅 열리더니 어떤X새끼야 XX!!!!) 불러일으켰을때의 공포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혹시 내가 원인인걸 알까 내 방 앞에 와서 지금이라도 문을 쾅쾅쾅 두들기지 않을까 하는 미안함과 공포 복합적인 죄책감이 밀려오는 그 때 정신과를 가보기로 했다.

나중에 혹시라도 유명해진다면 정신과를 일반 내과처럼 두려움 없이 쉽게 갈 수 있게 홍보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는데 정작 내가 가볼 생각이 없었던게 아이러니.

한 2주간은 화가 올라오지 않았다. 근데 어느날 술을 마시고 자제력을 알콜이 자제할 때 또 다시 조금이나마 분노가 올라온다.

그리고 근무하다가는 휴대폰만 보다가 사람을 또X100 놓치고 상사에게 아주 크게 혼났다. 계약처에서 날 아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면서. 다음에 또 이러면 다른데로 보냈으면 좋겠다고.
여기에서 일 했던 모든 시간들이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일시적인 우울증이 왔다. 나는 잘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에게 직접 말 하지 않았을 뿐. 모르는 채 쌓여가던 실수가 지층을 이루어 등 위에 내리눌러버린 것이다.

이 고민을 -휴대폰에 과몰입해서 주변을 아예 신경쓰지 못 하는- 정신과에서 털어놓았더니 날아온 대답이 위의 그것.

그리고 나는 그 2주일동안 최고의 반전을 맛보게 되었다.
저 추가처방된 약은 ADHD약이었고, 나의 휴대폰 의존증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알수없는 희열감과 고양감과 근자감에 몸을 떨고 있는 내가 있었.....
딱 1주일 갔다. 저 기분들.

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는 확실하였고 아주 많은 외부와 내면의 발전을 이루어 내었다 -현재 진행중인-

저 멘트가 딱 설날 연휴 직전이었으니까 3달 남짓 되었을 것이다.
물론 저 도중에도 나의 분노조절장애 -정신과에선 간헐적폭발장애 라는 용어를 쓴다- 가 다시 재발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탄산리튬 추가처방이 약 2달째. 리튬도 중금속 아닌가? 했는데 정신과 필수 약물이었네. 뭔가 점점 나아지는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부작용이 있지만 그것이 안 오는 선에서 적절하게 처방해주는 것이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건 맞는 거 같네.


이제는 정신과에 2주일에 한 번 가게 되었고(토요일밖에 시간이 안 나는 흔한 주 5일 직장인)
약은 2달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게 하나 없고
점점 옛날 버릇이 나오는 것 같다.

[평생 갖고 있던건데 1년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병원이 있으면 제가 당장 거기로 보낼겁니다.]

그래서 약간 답답한 마음에 1년정도 치료하면 되지 않겠냐는 물음에 답한 의사의 말이다.


그리고 얼마전에 야구 중계를 보다 캐스터의 물음에 해설이 했던 잡담.
[재활은 말이죠 비유하자면 1년 내내 똑같은 밥반찬이 나오는 거에요. 그걸 견뎌내야 하는 겁니다.]

시간....아니 세월과의 싸움이려나?
유년기에 부모님이 관심을 가지고 치료해볼까 하던 찰나에 터진 IMF 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나고 잊혀진 나의 문제는
스스로 방법을 갈구하면서 30년만에 전진하게 되었는지.

처음으로 기억이라는게 생겼을 때부터 활자중독이었던, 세월이 쌓여야 가능한 추리소설도 과학책도 SF소설도 활자로 모조리 다 이해하고 적용가능했던 애늙은이 어린이는 몇년 후 오락실이라는 신문물을 접하고 책에서 게임으로 그 대상을 바꾼 것 뿐이었는데 그때서야 게임중독이라면서 치료해야할 문제라면서.

나는 항상 똑같았는데. 하지만 그걸 아무도 몰랐지. 활자중독이 이미 문제였던 것인데 책이라고 놔뒀던거야.

지금 후회해봤자 무엇하나. 걱정이나 후회라는건 하지 않는 게 맞다. 어차피 이미 지나간 일이고 해결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어쨌든 나는 드디어 인생의 삐걱거림, 오차, 차이점, 이벤트호라이즌을 찾아내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앞으로 살아갈 날이 조금 더 많아. 지금이라도 찾아낸게 어찌나 다행인건지 모르겠어. 왜 다른 사람들이 항상 나에게 휴대폰 그만 해라 라고 했는지 이제 알았어. 다 나같은 줄 알았지.

항상 똑같은약 들과 비슷한 문답이 오갈지라도. 1년 내내 이럴지라도. 전혀 변화라는게 없어보일지라도. 너무나도 지루해서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재활이라고 생각하자. 견뎌내면 된다. 여하간 점점 변하고 있잖아 나 자신? 그렇지 않아??

어렵게 찾은 인생의 전환점을 어떻게든 이어가도록 해야죠. 그리고 언젠가 이 길의 끝에 설 때 몇뼘은 더 성장할 나를 기대하며.

ADIOS.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10-22 14:06)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 게시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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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yFood
23/04/24 01:27
수정 아이콘
응원합니다
지하생활자
23/04/24 09:17
수정 아이콘
먼저 글쓴분의 행보에대해서는 응원합니다

정말궁금해서 하나 여쭤보고싶은건 분노조절장애라는게 정말 화내는 충동이 어떤것으로도 억제가 안되는 상태인가요?

본능적인 두려움- 상대방이 나보다 큰 덩치 등- 에도 충동이 조절이안되나요?
요슈아
23/04/24 09:42
수정 아이콘
종류가 여러가지에요. 며칠쉬면 낫는 감기이거나 독감이거나 코로나라거나 같은.

사람 대 사람으로는 발동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애초에 최대한 사람 사이에선 감정을 죽이면서 살아온 것도 있긴 하지만요.

단지 제 경우엔 트리거가 하나 있는데 [내가 X라는 걸 해서 Y라는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어그러졌을 경우] 라고 해야되나.
특히 나는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의지대로 컨트롤되지 않는 다른 요인에 의해 게임이 박살나거나
난이도가 좀 어려워서 여러번 트라이해야하는 그런 상황을 못 견뎌하고 화가 쌓이고 쌓이고 쌓이다가 넘쳐버리는 그런 거죠.

물이 가득 찬 냄비를 팔팔 끓이는데 물은 계속 공급되고 냄비 용량은 한정적이고.
결국 다 넘쳐나오는거죠. 아무리 혼자서 악쓰고 소리지르고 짜증내봐도 가라앉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이성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감정제어가 아예 안 되는 그런 상황. 결국 나중에 어떤 결과가 일어날 지 아는데도 참을 수 없어지는....틱장애 비슷한?
그래놓고 조금 씩씩거리고 있으면 현자타임 비슷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좀 참아야지 분노 올라오면 다른거 해야지....라고 해 놓고 또 반복.

지금까지 저걸로 깨먹은 휴대폰 액정만 한 4개 되고 수없이 부서져간 키보드와 마우스와 컴퓨터책상. 뜬금없는 소음으로 고통받던 내 주변사람들과 이름모를 사람들. 나아지겠지 했는데 결국 의학의 힘을 뒤늦게나마 빌리게 되었고....

어쟀든 저 이후로는 아직 뭐 부수는정도까지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조금 짜증나고 화나는 감정을 입으로 씨부리는 정도 선에서 해결이 되거든요 이젠. 볼륨이 나도 모르게 커지면 또 옆방에서 쿵쿵대긴 하지만 1주일에 한번에서 2달쯤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빈도로요?
애초에 게임 자체가 좀 재미없어졌다고 해야되나 덜 잡게 된 것도 영향이 있겠죠.
그레이파스타
23/04/24 09:32
수정 아이콘
아우 이 중독이 저도 조금 있는데 고마운 글입이다.
토마스에요
23/04/24 09:46
수정 아이콘
약이 효과를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러시다가 또 약이 효과가 없는 시기가 오실거에요.
당황하시거나 병원에 안가시거나 약을 부정할 수도 있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러면 또 다른 약을 쓰거나. 용량 조절하면 되니.
의사에게 말씀만 해주세요.
약빨이 안받는거 같다고. 아님 이거 병원 소용없는거 같다고.

그러다가 또 좋아지는 시기가 오고. 반복.

완치하시길 바라진 않겠습니다. 쉽지 않거든요.
대신 잘 방문하셨습니다. 용기가 많이 필요하셨을텐데.
-안군-
23/04/24 11:25
수정 아이콘
약을 통해 중세가 완화된다고 해도, 그게 치료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정신과 약은 거의 대부분이 정신적 진통제에요. 증세를 억누르고 있는 것 뿐이죠.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서 자신에게 내제된 문제가 무엇인지, 해당 증세의 근본적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의사 선생님과 잘 커뮤니케이션 하시고 계실테니, 더 이상 간섭하진 않을께요. 건투하시길..
23/04/24 13:37
수정 아이콘
응원합니다. 화이팅.
무한도전의삶
23/04/24 15:23
수정 아이콘
약이 안정적인 활력을 준다면 꼭 인지치료 쪽을 찾아가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수년을 약에 의지하다가 인지행동치료로 스스로의 행동과 감정에 내재된 모순을 직시하게 되니까 많이 달라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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