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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2/06/06 12:09:47
Name Neandertal
Subject 1989년 - 바다를 사랑했던 사람들...
딥 식스


레비아탄


어비스


1989년 미국에서는 이례적으로 비슷한 소재를 가진 세 편의 영화가 같은 해에 개봉을 하게 됩니다. [딥 식스 (원제: Deepstar Six)], [레비아탄], 그리고 [어비스]가 바로 그 작품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바다 속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혹자는 이 세 영화를 묶어서 “3대 심해 호러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데 앞의 두 작품은 그렇게 분류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작품인 [어비스]를 호러물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이 모든 일은 바로 우리의 “문제적 감독” 제임스 카메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 내막을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터미네이터][에일리언 2]의 성공으로 제임스 카메론은 할리우드에서 흥행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게 됩니다. 그는 곧 차기 작을 구상하게 되는데 이참에 예전부터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던 심해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됩니다. 바로 [어비스]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실 카메론 감독은 바다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전문 다이버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며 틈나는 대로 잠수를 하면서 바다의 경이로운 모습에 감탄하곤 했습니다. 카메론 감독이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끌어 모으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게 된 20세기 폭스사 측에서도 차기 작에는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카메론 입장에서는 마치 호랑이 등에 날개라도 단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폭스사의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확인한 카메론 감독은 아예 [어비스]를 전용 세트장에서 촬영하기로 마음 먹고 적당한 곳을 물색하게 되는데 마침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짓다 만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곳에다가 전용 세트를 건설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러한 결정은 할리우드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였는데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카메론 감독의 집념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카메론 감독은 건설이 중단된 발전소 내에 두 개의 거대한 탱크를 건설했는데 그것들을 각각 A-탱크와 B-탱크라고 불렀습니다. A-탱크에는 7백 5십만 갤런의 물을 채워 넣어서 1대1 스케일로 제작될 석유 시추선 모형을 집어 넣기로 했으며 약 2백 2십만 갤런의 물을 쏟아 부을 B-탱크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잠수함 몬태나 호의 모형과 각종 미니어처 특수 촬영이 이루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얘들아, 물 채워라...


주연 배우로는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던 에드 해리스와 비교적 신인이었던 메리 엘리자베스 매스트란토니오를 낙점하여 촬영에 들어갑니다. 폭스사에서는 남자 주인공인 에드 해리스가 스타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캐스팅에 반대했지만 카메론 감독은 캐릭터에 딱 들어맞는 적역이라고 주장하면서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이 두 주연 배우들을 포함하여 [어비스]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은 촬영 기간 내내 아주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리얼리티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는 카메론 감독 때문에 배우들은 대부분의 위험한 장면들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해야만 했으며 촬영 내내 거대한 전용 탱크 안에서 잠수복을 입고 지내야만 했습니다. 촬영이 얼마나 고됐던 지 엘리자베스는 촬영 도중에 “우리는 동물이 아니에요”하고 소리치며 촬영장을 박차고 나가기까지 했고 에드 해리스는 매일 촬영이 끝나면 완전히 녹초가 돼서 숙소로 돌아와서는 펑펑 울음을 터뜨렸을 정도였습니다.

내가 탐 크루즈보다 못한게 뭔데...?


제임스, 우리는 동물이 아니에요...


카메론 감독의 완벽주의는 연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촬영을 위한 미니어처 제작에서부터 조명에 이르기까지 영화 제작의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준비되어야만 직성이 풀렸고 어느 하나라도 맘에 들지 않을 경우 맘에 들 때까지 촬영을 중단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완벽주의로 인해 [어비스]의 영화 제작은 계속 지연되었고 (이것은 그 이후에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작품에서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제작비는 당초 예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어 모두가 우려하는 수준으로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어비스]의 진행이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동안 다른 영화사들에서 모종의 움직임이 간파되기 시작합니다.

원래 카메론 감독은 이 프로젝트의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썼습니다. 다른 영화사에서 본인의 아이디어를 이용해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제작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카메론 감독이 심해에서 인간과 괴 생물체가 나오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게 되자 타 영화사들은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여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만들어서 [어비스] 개봉 이전에 단물을 빨아먹자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는 영화들이 바로 조지 P. 코스마토스가 메가폰을 잡고 MGM 영화사가 제작한 [레비아탄][13일의 금요일]시리즈를 만든 숀 커닝햄이 감독하고 케롤코사가 만든 [딥 식스]입니다.

[딥 식스]는 크리쳐물에 잔뼈가 굵은 숀 커닝햄을 감독으로 내세운 나름 해양 공포물을 표방한 영화였지만 기본적인 만듦새가 너무나 허술하여 호의적으로 봐주기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최소의 제작비로 급하게 만든 티가 영화 이곳 저곳에서 묻어나며 애초에 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영화라서 B급 영화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는 독창성마저도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커닝햄 감독님...이건 좀 아니잖아요?...


[레비아탄]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일리언]과 존 카펜터 감독의 [The Thing]을 섞어놓은 심해판[에일리언]을 추구한 영화였습니다. [로보캅]시리즈에 출연했던 피터 웰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며 감독은 [람보2]를 찍었던 코스마토스를 영입하는 등 [딥 식스]에 비해서는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측면이 있었고 제작사인 MGM도 어느 정도 이 영화를 밀어주려고 한 흔적은 보이지만 역시 [어비스]의 제작이 늦어지는 틈을 타서 치고 빠지자는 전제하에 제작된 영화라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두고 제대로 만들었다면 명작의 반열은 아니더라고 괜찮은 킬링타임 용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점이 드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소비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피터 웰러...


자네도 만만치 않아...


이 두 영화는 모드 [어비스]가 개봉하기 이전에 미국에서 개봉했지만 흥행에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영화는 [딥 식스]였는데 미국에서 1989년 1월에 개봉했으며 $8,143,225라는 초라한 박스 오피스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레비아탄]은 1989년 3월에 개봉했고 미국 내에서 $15,704,614를 벌어들였습니다.

비슷한 소재의 만듦새가 별로 매끄럽지 못한 두 영화가 미리 개봉되어 적절하게 초를 치는 바람에 카메론 감독의 [어비스]역시 간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같은 해 6월에 개봉한 팀 버튼의 [배트맨]이 대박을 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어비스]는 더 불리한 위치에서 개봉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어비스]는 1989년 8월에 미국에서 개봉했으며 미국 내 수입은 $54,461,047, 해외 수입은 $35,539,051를 기록하는 데 그칩니다. 폭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생각한다면 (폭스는 이 영화에 약 5천 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요즘에야 제작비 1억불이 넘어가는 영화들이 흔하지만 그 당시에 5천 만불은 정말 영화 제작비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습니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수치였고 [어비스]는 흥행 감독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자 하던 카메론 감독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남긴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폭스사의 강력한 요구로 러닝 타임을 줄이기 위해 많은 부분을 도려낸 것이 영화의 흐름을 방해한 측면이 있었고 제 개인적으로는 영화 중반부의 흐름이 약간 느슨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고 봅니다. 근본적으로는 심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스피디한 액션 전개나 대규모 폭발신 같은 것들을 구성하기가 어려워서 화끈한 여름용 액션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던 관객들과 접점을 잘 찾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모두에게 안 좋은 기억만을 유산으로 남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비스]에서 사용된 물기둥 CG는 당시로서는 정말 센세이셔널 한 것이었고 카메론 감독의 차기작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서 T-1000을 구현하는 데 결정적인 바탕이 되었습니다. CG는 [어비스]이전에도 영화에서 사용되곤 했지만 그때까지는 비 현실적이고 만화적인 배경에서 사용이 되었다면 [어비스]에 와서야 비로소 CG는 현실적인 배경에서 그럴듯한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서 쓰이게 된 것입니다. 역시 “기술의 카메론”답게 남들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 행보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던 것입니다.

내 안에 T-1000 있다...


결국 1989년의 해양의 군주 자리를 놓고 벌인 [딥 식스], [레비아탄], [어비스]의 싸움은 승자 없이 모두에게 상처가 되어 아픔으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아픔은 겪은 사람은 결국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이십세기 폭스사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뱀 다리 1. 3일 동안 [어비스], [레비아탄], [딥 식스]를 몰아서 봤습니다. 시차를 두고 개별적으로 봤으면 뒤의 두 영화들도 킬링타임용으로 그럭저럭 봐 줄만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비스]를 먼저 보고 나서 본 두 영화들은 그 조악함이 정말 참아주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딥 식스]가 더욱 그러했는데 숀 커닝햄 감독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BMW나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던 사람이 중국의 짝퉁 자동차를 타면 이런 기분이 들겠구나 싶었습니다.

뱀 다리 2.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아바타 2]는 판도라 행성의 바다 속을 배경으로 할 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한테는 왠지 카메론 감독이 속으로는 [어비스2]를 찍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멋지게 성공해서 마음속의 짐으로 계속 남아있는 [어비스]의 트라우마에서 탈출하고 싶은 건 아닐까요?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6-1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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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솔솔솔
12/06/06 12:34
수정 아이콘
저에게 레비아탄이나 딥식스는 어비스와 비교하기엔 그냥 푸훗 소리밖에 안 나오는 영화네요.
어비스는 올여름에 개봉해도 어색하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그 때 저런 CG 를 어떻게 구현해 냈는지...

'별거 없네' 라는 생각이 들도록 비슷한 개념의 제품을 먼저 내 놓는것.. 무슨 용어가 따로 있는진 모르겠는데
이 얘기가 나오니 스프라이트와 스프린트 생각이 나네요... 스프린트는 실제로 효과를 제대로 봤다고 들었는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짜증났겠어요
Neandertal
12/06/06 12:43
수정 아이콘
늘푸른솔솔솔 님// [레비아탄]이나 [딥 식스]제작자들도 딱히 [어비스]와 경쟁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겠지요...그냥 시류에 편승해서 돈이나 좀 만져보자 뭐 이런 심리였을 겁니다...[어비스]는 참 안타까운 작품인 것 같습니다...지금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데 말입니다...
봄바람
12/06/06 13:43
수정 아이콘
어비스.... 그 어릴때 느꼈던 마지막 결말은 식스센스나 유주얼서스펙트보다 100만배는 강했지요.
12/06/06 13:46
수정 아이콘
네안데르탈님의 문체는 언제나 읽는이를 기분 좋게 만듭니다! [m]
거간 충달
12/06/06 13:58
수정 아이콘
어비스는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결말도 좋고, 특히 남주의 연기가 역대 제임스 영화 중에서 배우 연기 중 최고 였습니다.
여기웃겨
12/06/06 14:24
수정 아이콘
어비스의 문제점은 나와있는 그대로 지루함입니다.
극적반전이나 긴장감이 부족해 가뜩이나 긴영화가 더 길게 느껴지죠
카메룬의 이름에 기대해 이영화를 챃은 사람들중 상당수 특히 남성들은
당시 이영화에 대해 불평이 대단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인간을 전멸시키려 대륙모두를 강타해가는 거대 해일이 그냥 딱 멈추고
외계인이 봐준다 어쩌고 저쩌고 나오는순간 관객들은 그냥 멘붕상태로 빠져버렸다는 겁니다.
이게 지금 장난치나로...
좀만 손질하고 다시나온다면 그땐 달라질수 있다고 보는데
미개봉작 괴물보다 못하다는 평도 적지 않았죠
12/06/06 19:14
수정 아이콘
근데, 영화계에서 이런 경우는 종종 있는거 같아요.
예를들어서, 벅스라이프 vs 개미 라던지, 딥 임팩트 vs 아마게돈 이라던지...
간혹가다 양쪽 다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구요...
In the end
12/06/06 22:21
수정 아이콘
양쪽다 흥행하는 예로 생각나는건 국내영화로 치면 실미도와 태극기휘날리며가 될까요?
저는 실미도덕분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망할거라고 생각했거든요.
ミルク
12/06/13 22:12
수정 아이콘
소개해 주신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제가 1989년 생이라 저절로 글 제목링크에 손이 가더라구요.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한번 찾아서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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