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모두가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유머글을 올려주세요.
- 유게에서는 정치/종교 관련 등 논란성 글 및 개인 비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5/10/04 18:00
조선왕 평균수명을 보면 일찍죽은건 아닌데 후사가 너무 늦었죠. 단종의 어머니도 일찍죽어서 왕을 지켜줄만한 대비의 존재도 없었으니... 크킹에서 자식을 빨리 봐야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5/10/04 17:42
전 세조도 별로던데.. 조선의 분위기가 아예 싹 바껴버린데다가 세종-문종-단종이라는 역대급 정통성 계보까지 박살낸데다가 발암물질인 훈구파 육성까지.. 정말 별로에요.. 음..
15/10/04 17:48
세조를 제가 처음 언급했으니 기냥 댓글달면
세조가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라 형의 아들 죽여가면서까지 먹은 왕위를 저정도밖에 못해먹었는데 인조는.. 이라는 의미에서!
15/10/04 17:52
아아 저두 저격성으로 단건 아니고 그냥 인조만큼 세조도 싫어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세조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 쿠데타 정부 당시의 영향으로 과대포장을 받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정이 안갑니다.
15/10/04 17:53
선조는 유능한 사람들 잘썼죠
아무리 사화가 일어나도 유능한사람은 남겨두죠 그러니 왜란 7년을 버틴거죠 사람들 못 썼으면 인조처럼 삼전도 굴욕당했죠 인조는 아무리 봐도 김자점 도원수는 너무했죠
15/10/04 18:05
이순신 팽하고 원균 쓰는 인사를 보면 그것도 고평가가 아닐지... 원균이 경상 우수영에서 함대를 말아 먹지만 않았어도 왜는 추가 드랍 못하고 망할전쟁이였는데 이순신 견제한다고 원균을 끝까지 쓴걸보면 왜란때 사람를 잘썼다기 보다는 무능한 사람은 도망가거나 다죽어서 유능한 사람만 남은걸로 봐야되지 않을까요
15/10/04 18:08
그런데 이순신을 엄청나게 승진시켜 전라좌수사 자리에 앉힌것도 선조였거든요.
이순신 이전에없던 엄청난 승진을 시키니까 신하들의 반대가 어마어마했지만 이걸 다 씹고 그 자리에 이순신을 올린게 바로 선조라서 전쟁나고 유능한 사람만 남아서 유능한 사람을 쓴게 아니라 전쟁전에 파격적인 승진을 시켜 이순신을 쓴게 선조였어요
15/10/04 18:16
공적없는 원균을 경상우수영에 앉힌것도 선조라... 원균이 왜란때 말아먹은 배만 200-300척이 될껀데 이순신 장군님 같은 명장이 아니더라도 범장이라면 왜란피해가+커지지도 않았을걸로 봐서요. 무능하다고 찍힌장수를 꾸준히 밀어준걸보면 인물보는눈은 정말 없다고 봅니다. 이순신장군님은 로또 터진경우고
15/10/04 18:24
당시 인재가 무슨 이순신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제갈량도 마속을 쓴 마당에 선조가 원균 좀 쓴 거 가지고 뭐라하기 힘들죠. 세상에 모든 인사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존제하지 않습니다. 목릉성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15/10/04 18:29
전쟁에서 꾸준히 말아먹는 장수를 계속쓰는게 이상한거 아닌가요? 마속이야 크게 말아먹기 전까지야 어느정도 했다지만 원균은 낙하산 인사에 전공도 조작한다고 말이 많은데다가 전쟁초에 병력, 함대 다 버리고 다닌 장수를 계속 기용한다는게 말이 안되는 인사라서
15/10/05 00:02
누가보면 이순신은 무슨 엄청난 전공이 있어서 좌수사가 된 줄 알겠어요.
원균이 우수사가 된 건 그만큼 당시 인물이 부족하여 군공이 부족함에도 억지로 끌어 올려 앉혔다고 생각해야죠. 낙하산으로 따지면 이순신 이상가는 낙하산이 없습니다. 그 전까지 개판이었던 인사 시스템 때문에 인재가 부족해 불차채용이라는 강수까지 써가며 인재를 발굴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노력의 결과 중 하나가 이순신이었는데... 님의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원균밖에 없죠. 이거야말로 이유가 있어서 까는 게 아니라 난 저놈이 싫으니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까고야 말겠다는 의지..
15/10/04 18:11
이순신을 쓴것도 선조였습니다
이순신을 팽한것 자신의 위치를 위협해서 였죠 그리고 이순신이 경상우수영에 있더라도 일본본국에서 오는 추가 병력은 못 막습니다.
15/10/04 18:21
이순신장군이 운용했던 배가 최대 80척 정도고 원균이 전쟁초에 버린 배만 최소 70척인데 배만 안전히 지켰으면 전황이 바꼈을꺼라고 봐서요.
원균을 낙하산으로 쓴것도 선조고 망할때까지 꾸준히 밀어준걸보면 도저히 사람보는 눈이 있다고 보기가 힘드네요
15/10/04 18:29
그래도 건너오는 배는 못 막어요
부산을 점령하면 몰라도 수백척식 오는 배를 느린 판옥선으로 상대하면 망망대해에서 둘려쌓여서 전멸해요 그게 가능하면 칠천량에서 지지도 않았고 이순신이 건너오는 가토를 막으라는 명을 어기지도 않았어요 이순신이 이긴 싸움은 섬과 섬 또는 섬과 육지에서 싸움이예요 그리고 이순신이 로또가 아니라 원균이 실수인겁니다 류성룡은 딴 왕이였으면 정여립난때 진작 죽었고 건저로 서인이 실각할때 윤두수 만큼은 남겨났죠 이 두사람 왜란에서 활약한거 보면 선조의 인재 기용능력을 알수 있습니다
15/10/04 18:44
추가드랍을 막는거야 제가 봐도 좀 낙관적인 관점이지만 전쟁 피해는 훨씬 줄어들었을꺼고
정여립의 난의 피해를 키운것도 선조 아닌가요. 정철 주도 하에 엄한사람들 다 죽이이게 한 사람이 선조인데
15/10/04 19:02
그 엄한 사람들보다 류성룡이 더 죽일명분이 있었죠
정여립이 작성한 명단에 류성룡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정철이 류성룡도 죽이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선조가 류성룡은 끝까지 지켜줬죠 그 당시 동인세력이 앞도적으로 많은때라 선조 입장에서 동인세력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죠 정여립난을 핑계삼아 동인세력을 정리했지만 전부정리 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은 남겨 놓았습니다. 그래서 서인하고 균형을 맞췄고요 그뒤 왕들보면 거의 한세력에게 몰빵 해줬다면 선조는 세력을 균형시켜 모든 세력의 인재들을 다썼죠
15/10/04 19:31
정황상 진짜 모반을 일으켰는지가 논란이 되는 사건에다 배후에 선조가 있다는 말도 많은 사건에서 선조가 죄 없는 사람을 덜 죽였다는게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아야할지도 의문이고 선조가 붕당을 심화시킨 정여립의 난의 키운 왕이 여러세력의 인재를 썼다는게 고평가받을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집권세력을 견재하기 위해서 다른 세력을 키워주는건 왕들이 자주쓰는 일이고 선조때 붕당으로 세력이 갈라져서 여려세력의 사람을 쓸수 있었던거 뿐인데 그게 잘한일인가요?
숙종도 여려세력의 사람도 썼는데 환국으로 신나게 사람 죽인것도 잘한건가요? 분당을 촉발시키고 서로 죽이도록 판을 키운 선조의 인사가 좋다고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네요
15/10/04 19:45
숙중은 환국 할때마다 싹쓸이 했고 남인 쓸때면 남인만 서인 쓸때는 서인만 썼고요
선조랑 비교하시면 안됩니다. 선조는 사화 뒤에도 동,서, 남, 북 인사 다 같이 썼어요 광해군, 인조 뿐 아니라 탕평책을 쓴 영, 정조 시대에도 한세력으로 쏠렸던건 사실입니다. 애초부터 분당이 생길 당시부터 동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고요 분당 생길 당시 선조는 전통성도 약했고 나이도 어려 분당을 막을수 없었습니다. 동인의 독주는 많은 폐혜를 나왔고 그 폐혜를 견제하고자 분당하고 전혀 관계 없는 율곡 이이를 중용 해봤지만 동인에서는 이이 조차도 자기세력이 아니라고 서인으로 몰고간 판이죠 (그 유명한 정철도 처음부터 서인이 아니였죠) 사화를 통해서 견재하는게 잘못된 방식이지만 조선시대 상황에서 사화는 흔한 일 입니다. 지금에 관점에서 보면 안되요 그런 사화나 환국을 겪을때마다 항상 반대쪽은 싹쓸이 당했지만 선조는 싹쓸이 하지 않았어요 제대로 된 인사는 꼭 남겼어요 정여립의난으로 서인이 집권하지만 영의정과 좌의정은 동인이였고요
15/10/04 21:07
로사 님// 정여립의 난으로 동인과 서인을 아주 갈라버리고 4대사화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든 기축옥사를 만든 결과 붕당은 더 갈려서 남인, 북인, 대북, 소북으로 싸우는 원인을 제공한것도 선조고 후대의 왕들에게 비정상적인 정치 균형을 물려준건 순전히 선조의 책임이죠. 그 결과도 썩 좋지도 않았고.
사람 덜 죽여서 인사가 좋았다는건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네요
15/10/04 21:58
sand 님// 4대사화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 는 게, 이게 출처미상의 소문에 가까운 그런 거만 아니었다면 그런 주장이 어찌어찌 타당성이 있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4대사화보다 더 희생자가 크다는 것부터가 사실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당파가 갈려 싸우는 원인 제공을 선조탓으로 돌리는 건 좀 거시기한데요. 그것이 비정상적인 정치균형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정상이... 뭡니까. 16세기 개판 직전 상황이었던 외척 척신 중심의 독재상황? 과도한 중앙집권화와 마찬가지로 외척으로 권력 비중이 쏠리는 바람에 경항간 연계가 거의 끊어져 이후 세도정치의 배경을 마련해 주었다는 18세기 정조시기?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입니까. 둘 다 그때그때에 맞춰 일어난 것들일 뿐입니다.
15/10/05 00:49
sand 님// 동인 서인이 아주 갈라진건 정여립난 이전부터였어요
오죽하면 서인도 아닌 정철이 서인 수장이 되서 눈을 붉히고 동인들을 죽이려 했겠어요 선조 이전에도 붕당이라는 이름만 없었지 신료들의 세력다툼은 항상 있었고 이긴쪽이 반대쪽을 몰살시키는 경우도 항상 있었어요. 그게 4대 사화예요 마치 모든 잘못이 선조때 만들어진것 처럼 말하시네요 잘못된 정치적 균형을 물려줬다는데... 그런 잘못된 균형이라도 지킨 왕이 있긴 있나요? 광해군이 지켰다면 반정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인조가 지켰다면 병조호란때 아무것도 못 하고 항복하지 않았겠죠
15/10/04 17:58
선조나 광해군이나 고종이나 이런 임금들은 나름 갈린다고 치더라도 인조는 안 갈리더라요. 까거나 아예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니...
15/10/04 18:12
발암군주라고 까이는 선조조차 업적이 있는데 인조는 아무리 파고 들어도 업적이 없어서 재평가의 여지도 없죠. 거기에 소현세자에게 저지른 인간 이하의 짓거리가...
15/10/04 18:17
조선 중후기의 경제적 부흥의 근원을 인조 때의 정책에서 찾는 사람도 상당히 많습니다.
실제 역덕들이 많은 카페만 봐도 인조에 대한 평은 상당히 좋은 편이고요. 그냥 알려고 안 할 뿐이죠.
15/10/04 18:27
이괄의 난이야 죄다 야사 이야기를 끌고와서 진실인양 말하는 거라서요.
인조의 잘못이 있다면 이괄을 너무 믿었다는 것 뿐.. 호란이야 뭐, 누가 왕이었어도 그정도의 피해는 있었을 겁니다. 인조가 못난 건 도망을 제대로 못쳤다는 거 정도. 소현세자야 영조의 케이스도 있고.. 지 아들 미워한 왕이 인조 뿐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딱히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치부 중 하나일 뿐인 거지 이걸로 최악이라 하면 최악이 아닌 왕 없어요.
15/10/04 18:41
병권을 주고 이괄의 아들을 역모죄라고 체포시키면 이괄이 반란 안일으키는게 이상한 상황이죠. 집안이 다 역적으로 몰려 죽을판인데... 이징옥의 난의 경우도 있고 그 상황에서 이괄이 배신 안때릴꺼라고 밎고 대처안한게 멍청한거죠. 이괄은 반란일으킬까봐 아들만 잡아가도록 했는데 역모죄로 엵히면 일가가 몰살되는 상황을 만들고 이괄을 믿었다는건 누가 봐도 멍청한 결정이죠.
인사 실패로 호란을 더 키웠다는점에서 너무 안일해서 할말이 없을 정도
15/10/04 21:52
인조시기에 역모혐의 받고 조사받은 대신들이 다수 있었으나 그들이 전부 역적으로 몰려 죽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무사방면 케이스가 훨씬 많아요. 당장 강학년처럼 극형에 처할 만한 강력한 정권반대상소를 올린 사람도(광해군때 이정도 상소였으면 바로 당사자 처형하고 이조를 싹 갈아렸습니다) 당사자 유배로 끝나던 게 인조시기였습니다.
역모죄로 얽혔으니 연좌로 일가몰살 이라는 논리는 광해군 시기에나 먹히던 논리입니다. 광해군처럼 닥치고 친국에 옥사난무를 갈기는 왕이었으면 이괄의 반란은 충분히 이해갈 만 하지만 인조는 그러지 않는 왕이었고, 이괄이 배신때린 건 자기방위행위로 보기 어려운 그런 것입니다.
15/10/04 23:36
인조가 잘못한 거라면 눈 밖에 놈은 절대 믿지 말고 하루빨리 몰살 시켰어야 했는데,
이귀가 이괄이 군권까지 있으니 빨리 잡아 들이자는 걸 “이괄은 충의(忠義)스런 사람인데, 어찌 반심을 지녔겠는가. 이것은 흉악한 무리가 그의 위세를 빌리고자 한 말이다. 경은 무엇으로 그가 반드시 반역하리라는 것을 아는가?”(중략) “사람들이 경이 반역한다고 고한다면 내가 믿겠는가. 이괄의 일이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라며 이괄을 너무 믿어버린 게 잘못이겠죠. 선조가 이순신을 못 믿은 건 선조의 잘못이겠지만, 인조가 이괄을 믿은 건 역시나 인조의 잘못이겠고요. 게다가 본인은 내일의 주식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인조는 약 14년 후에 일어나는 전쟁까지 미리 예측을 해서 일을 진행해야함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원래 역사란 게 자신은 결과를 안다는 정보의 우위를 이용하여 마치 본인이 굉장히 현명한 사람인 척 하는 게 일반적이라 뭐 그러려니 합니다..
15/10/04 19:36
대중들(?)에 비해서 역사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야사는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공부를 해볼 수록 인조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는 힘드네요.
꽤 많은 전공서를 읽어봤지만 조선 중후기 경제 부흥의 근원을 인조의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네요. 간략하게나마 얘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15/10/04 20:15
지주들의 반발로 대동법이 점진적으로 확대된것이고, 광해군이 대동법 확대에 반대했다는건 금시 초문입니다.
그리고 인조때 강원, 충청, 전라도에 대동법을 실시하지만 곧 폐지 된것으로 알고 있 습니다.
15/10/04 21:24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34&contents_id=76597
보시면 광해군이 대동법을 강원도까지 확대하자는 주장에는 분명히 반대했다고 되어있습니다.
15/10/04 21:36
광해군때도 끊임없이 확대하자고 상소가 올라왔으나 광해군은 그때마다 반대하고 억제했습니다.
인조는 어찌되었던지 확대하려고 시도는 했었고요. 중요한건 시기죠. 저보다 관련 지식도 많으신거 같고 실록을 몇번 보신 분 같은데 이번 기회에 실록을 다시 한번 훑어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15/10/04 21:55
그렇군요. 제가 몰랐던 사실이네요. 실록을 몇 번 보다니요?ㅜ 그럴 실력도 않되고, 필요성도 못 느낍니다.
그저 학자들이 쓴 서적이나 읽어보는 수준시지요.
15/10/04 23:11
그럴 필요성도 못 느끼신다는 분이 의견을 주장하시는건 엄청난 근거를 가진것 처럼 확신갖고 말씀을 하시는군요.
다른건 다 그러려니 해도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낀다는 말이 되게 거북하네요.
15/10/05 08:23
왜 이렇게 삐딱하게 보시고 표현하시는지 모르겠네요.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부분은 지금 제 수준에서는 불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유식도 못 먹는 젖먹이가 밥 부터 먹을 수는 없는거니까요. 제 반론은 근거없이 제시한것은 아니지만 부족하게 알고 있었던게 사실이고,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습니다. 비아냥되는 표현같아서 기분 나뻤지만 아니겠지 싶었던 [실록 몇번 읽어보신분인듯 한데, 실록 다시한번 훒어보라는 식]의 표현이 지금 보니 비꼬는 표현이 맞았던것 같사 오히려 제가 불쾌하게 느껴지네요.
15/10/06 08:29
I and U 님// 전혀요. 오히려 님이 애초에 그런 의도 가지고 하셨겠죠. 오히려 불쾌하게 느끼신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네요. 확신을 갖고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분이 실록을 그렇게 읽을 필요성조차 못 느낀다는 표현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모욕감까지 들게하는지 이해하실리 없으려나.
15/10/04 21:43
대놓고 반대했습니다. 대동법이 성과를 보인다고 몇번씩이나 확대 건의가 올라온 걸 모두 무시했고, 대동법 위반자에 대한 처벌도 하지 않아 반쯤 사문화시킨 게 광해군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인조 즉위때 삼도대동법은 기본적으로 그 기반이 되는 시스템적 미비로 인해 중지된 거죠. 그런데 그 시스템적 기반은 광해군의 그걸 그대로 가져온거고, 광해군이 자신대에 했어야 하는 양전 등의 기본 사업을 몇번이나 건의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하는 삼도대동법이 실패할 수밖엔 없었지요. 그나마 강원도에서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양전과 인구조사 등 기본사업을 수행해 놓았기에 효종이 즉위와 동시에 대동법 확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신들은 시스템적 기반이 마련되고 내부 상황이 안정화되자 인조가 대동법 재확대를 준비하다가 실행에 옮기기 전에 죽었으니 이건 효종이 시행해야 하는 선왕의 유지다라는 걸로 대동법을 다루고 있어요.
15/10/04 20:18
위의 선조의 경우도 그렇지만 대개 논란이 되는 어떤 임금의 공과를 놓고 호평과 혹평이 오가는데, 인조의 경우는 혹평은 잘 알려져있지만 호평의 경우는 있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혹평으로 더 기울어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조의 업적을 그만큼 보는 것에 대해 좀 의문인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요.
15/10/04 22:57
뭐 굳이 실록 안보셔도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오항녕 선생 책과 논문만 읽어도 인조 찬양인데요...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습니다
15/10/04 23:06
역사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이야 인조를 놓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간다는걸 알지 일반적으로 인조에 대해 얼마나 알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인조에 대한 혹평도 요즘 인터넷 유머 사이트 등을 통해 유행이 되다보니 좀 알려진거지...다만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말했듯이 인조에는 좀 부정적인 편입니다. 그렇다고 인조만이 압도적인 최악이고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애초에 그렇게 선악으로 나누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