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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12 18:10
일본 메이지유신으로 기존에 정권을 잡고 있던 무사계급이 모두 갈려나감
청 개항해줘서 무역하게 해줬더니 양놈들이 마약이나 유통시키고, 그거 막았더니 군대 이끌고 북경에 쳐들어옴 루키즈님이 당시 양반이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라면 개항을 하시겠습니까? 개항을 하면 일본/청 둘 중 하나는 100년쯤 뒤에 성공했다 할 수 있으니, 조선도 50% 확률로 근대화 해서 잘 나갈 수 있음 하지만 그걸 결정한 루키즈님은 신분제 폐지로 갈려나가던가, 양놈들이 와서 때려죽이던가 둘 중 하나지만, 결국 죽는 운명임 한가지 가장 중요한게 빠졌네요. 청 : 원래 은본위제도임 양놈들이랑 거래를 해도 그냥 거래대금으로 은화주고 받으면 됨 일본 : 조선, 청나라와 무역할때도 은으로 거래할정도로 은광개발을 많이 해놨음 (중국 - 조선 - 일본 삼국무역에서도 조선은 청에서 받아온 물물을 일본에 주고 은을 받아왔죠. 그 은을 다시 명청과 거래에 사용했고..) 포르투갈이던 네덜란드던 조선이랑 무역은 하고 싶은데, 뭘 주면 되죠? 쌀? 포목(조선의 주요 거래 수단)? 인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하멜표류기가 대 히트를 친 이후에 본문에 나오는 코리아호를 만들정도로 조선에 관심이 있었는데, 결국 적극적으로 조선과 거래를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막부의 방해 같은게 아니라 그냥 거래할 필요가 별로 없어서 입니다.
15/02/12 17:12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겁니다. 빨라봐야 일본보다 늦었으니까요.
크게 달라지려면, 일본처럼 먼저 교류를 해서 앞선 문물을 조선이 쥐고 일본에 전해주는 형태가 가능했어야합니다.
15/02/12 17:13
아무래도 사람이란게 if시나리오에서 잘 된 사례만 생각하고 잘 안 된 사례는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모르는 일이겠죠.
마속이 등산을 안했어도 제갈량이 북벌에 성공했을지는 의문이듯이...
15/02/12 17:17
본문에 들어온 기술 좀 생긴다고 갑자기 특정 사회가 막 발전하고 이러긴 힘듭니다. 사회를 크게 발전 시킬만한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인데, 본문에 언급된 기술은 주로 무기술들이라 그닥.. 그거 조금 발전 시켰다고 청나라나 일본 쳐들어갈 것도 아니고요.
15/02/12 17:24
스스로 그 물건을 어느 정도 비슷하게나마 만들어낼 수 있는 정도의 기술 레벨이 되기 전에는 선진문물을 받아도 별로 자국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그저 오파츠에 불과하다고만 들었는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하멜 일행이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15/02/12 21:50
하멜 일행이 관가에서 돌이나 줍던건 다 이유가 있죠.
들고 왔다던 물건은 유리병, 만화경, 자명종 등등이니 그것만 가지고 무언가를 이루기는...
15/02/12 17:57
저희 부모님이 늦은밤에 이 프로를 보고 계시면
제가 옆에 쓱 다가가서 5분 보고 있다가 반론만 10분을 넘게 쏟아내게 만듭니다;;
15/02/12 17:39
헛소리 자제 좀... 중국은 훨씬 옛날부터 서양과 교역했고 국력도 조선보다 훨씬 강했음에도 끝내 밀렸는데 고작 표류자 하나 건진다고 뭐가 될 리가...
아, 방송사에 대한 얘기입니다.
15/02/12 17:46
예전에 어떤분이 올린글을 봤는데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서양과 동양이 격차를 보이게 된 건
사상차이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영국같은 나라는 노동력이 부족해서 그걸 상쇄하려고 연구를 해서 산업화를 이루었고 중국은 그런거 안해도 노동력이.워낙 풍부해서 사회에.필요치않아서 그렇게 되었다. 윗분중에.오파츠 이야기하셨는데 중국의 사상이나 당시 사회성 상 선진문물이 들어와도 오파츠화 된것이고 일본같은경우는 섬나라라서 고립된탓인지 선진문물 도입에 적극적이어서 결국엔 산업화를 이루죠. 한국도 중국처럼 될수도 혹은 일본처럼 될수도 있지만 프로그램의.의도나 논지는 일본같이.산업화를 우리 자의적으로 할수있지않을까? 하는거 같습니다.
15/02/12 17:56
그런 설명도 설득력은 있지만 영국 같은 나라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진건 도시에서 '공장'을 돌리기 시작하면서부터죠. 즉, 가내 수공업을 벗어나는 단계에 이르러 노동력이 요구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이 그런 상황이었나 의심스럽죠.
15/02/12 22:10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태동한 원인으로 영국 사회가 혁신이나 기술 발전에 유리한 사회·문화적 토양을 제공했다는 게 가장 지배적인 설이다. 다시 말해 창의적인 장인들이 발명해낸 혁신적인 기계들과 일찍이 발달한 자본주의적 사고가 결합한 사회·문화적 요소가 산업혁명을 촉발했다는 주장이다. 가장 최근에는 역사가 데이비드 랜즈가 방대한 통찰을 담은 저서 <국가의 부와 빈곤>1)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의 한 특징인 기업가 정신의 연관성을 논한 막스 베버의 옛 이론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에 미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에게서 차용한 제도적 요인에 의한 경제 분석을 가미했다. 그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1688년 ‘명예혁명’으로 의회 기능이 강화된 새로운 제도가 탄생한 덕에 자유와 사유재산권 보장의 길이 열렸다. 그 결과 영국은 투자 안전성이 강화되면서 어떤 나라보다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데 유리한 사회가 되었다. 요컨대 서구는 놀라운 길을 걸었고, 그 중심에 영국이 있다는 역사관이다.
재평가받는 아시아의 역사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던 이런 믿음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반성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경제개발 비교사의 거대 서사(Grand Narrative)가 지닌 ‘유럽중심주의적’ 성격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저명한 인류학자 잭 구디는 최근 출간한 두 저서에서, 거시적 관점을 토대로 ‘유럽 문명의 기적’(European Miracle)이란 개념을 폐기하고 대신 ‘유라시아 문명의 기적’(Eurasian Miracle)에 대해 설파한다. 그에 따르면, 과거 동서양의 격차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의 격차만큼 크지 않았다. 아프리카와는 달리, 유럽과 아시아는 둘 다 ‘청동기시대의 도시 혁명’이라는 공통된 모태에서 탄생한 문명이기 때문이다.2) 결론적으로 서구 자본주의가 점차 전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으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선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동양과 서양은 경제·문화적 발전의 주도권을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번갈아 잡아왔다. 때때로 동양이 서양을 능가한 시대도 있었다고 잭 구디는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시각은 근거가 빈약하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경제학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도 아시아, 그중에서 특히 중국의 위상을 재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1800년 이전에 중국 중심의 세계 구조는 유럽 중심의 세계 구조보다 훨씬 강력했다. 서구가 선두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아래링크에서 있는 구절을 복사했습니다. 16~17세기 정도면 청도 힘이있던 시절이고 우리나라는 청만큼은 아니지만 발달된 문명이었습니다. 단지 유교 문화권이고 소중화라는 틀에 갖혀 있던 시기이니 개항 되더라도 안될 가능성이 높았겠죠. 될놈은 되고 안될놈은 안되듯이 ; 어차피 역사에 if는 아무 쓸모없는 거지만 교역이 계기가 되서 발전 할 가능성도 없다곤 못하는거니까요. 그래서 if 라는 상상을 하는 거겠죠. 어차피 방송이니까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단 긍정적으로 풀어주는게 시청자들 입장에서 몰입도 되고 '아 이때 개항이 되었으면 우리나라도 빠른 산업화를 이루었으면 좋았겠다' 이런 긍정적인 상상을 하게끔 노린것도 있겠죠. 방송이니까요. 역사를 조작한건 아니고 있는 역사를 가지고 여러방면에서 생각해볼수 있는거까요. http://maphyth.tistory.com/51
15/02/12 23:36
해당 분야를 설명하는 틀을 크게 둘로 나누면
1. 소프트 파워 탓 2. 하드 파워 탓 이렇게 갈립니다. 데이빋 렌즈라든가 하는 양반이 가장 최근 1번을 대표하고 있긴 하지만 1번 자체는 아주 오랫동안 지겹도록 반복된 이야기구요, 최근 대세는 2번 쪽으로 꽤 많이 기울었지요. 댓글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군터 프랑크 같은 양반도 2번파의 일환이구요. 2번 론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들은 흔히 캘리포니아 학파라고 부르는 데이빋 웡 & 케네스 포메란츠입니다. 특히 포메란츠의 문제작인 대분기 (the Great Divergence)는 상도 여러개 받고 이미 일찍부터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 되어있으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케네스 쨔응은 설득력있게 2번론을 주장하는데 그건 한 마디로 말하면 영국의 승리는 그냥 지리상의 이점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겁니다. 식량생산의 증가가 인구증가를 넉넉히 추월하는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지지 않는한 산업혁명은 열 번 고쳐죽어도 일어나지 않는 현상인데 오직 당시의 영국만이 그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여건이 됐고 그건 인도와 신대륙에서 가져온 식량 수급 + 목화 덕분이었다는 거지요. 이 이론을 중국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18세기 후반까지, 심지어 19세기 초반까지 거의 모든 경제적 지표에서 영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들을 능가하던 청나라가 끝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식민지 개척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오구요. 가능한 식민지 후보가 동남아시아 플렌테이션 정도였는데 청나라 조정이 이 가능성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게임이 끝나버려서...'-';; 여튼 이렇게 2번 론의 시각으로 보면 위의 프로그램에서 주장하는 바는 사실 진지하게 고려될 가치가 없는 가십류 정도일 뿐입니다. 유교가 어떻고 소중화가 어떻고 하기 전에 그냥 뭘 해도 안 될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요.
15/02/12 20:17
아주 원론적으로 교류가 늘면 좋지 않겠느냐의 가능성을 아~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고작 표류인 하나 건져서 그렇게 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비약이고 개항 좀 더 일찍 한다고 뭔가 많이 잘 나가게 됐을 거라는 것도 엄청난 비약이죠.
그리고 상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당시 조선에 왜 와서 걔들이 무역하겠어요?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깝고 기반도 잘 잡힌 중국에 가죠. 걔들이 실험적으로 와보기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조선에 걔들이 살 차도 없고 비단도 없고. 걔들 물건 살 은도 없고.
15/02/12 22:14
그렇긴 하죠. 크크
어차피 역사 if 니까요 흐흐. 근데 무역은 옛날 신라때나 고려때 인도하고도 하고 그래서 무역을 하긴했으면 물품같은건 어떻게든 거래를 했을겁니다. 우리나라 도자기나 이런게 청보다 좋았거든요. 뭐 인삼이나? 찾으면 몇개 있긴있을듯 합니다.
15/02/12 17:40
당장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문제보다는 다른 문물에 대해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소중화 사상으로 좁은 땅덩이에서 아웅다웅 하고 있는 것 보단 낫겠죠.
15/02/12 17:44
너무 비약이 심한것처럼 보이네요...
하멜 일행의 리스트를 봐도 대부분 뱃사람에 군인인데 무슨 이들에게서 선진문물을 뽑아내어 부국강병을 이룬다... 까지는 너무 억측아닐까요
15/02/12 17:50
하멜에서만 이 아니라 네덜란드가 우리나라와
교역을 하려했다. 이를 일본막부에서 막았다. 이래서 개항을 못한거도 있으니까요. 하멜일행에서만 기술을뽑느게.아니라 이들을 잘대해주고 네덜란드와 개항을 했다면? 하는게 저프오그램의 논지인거 같아요
15/02/12 18:38
저사람들한테 잘대해준다고 해서 네델란드와 개항이 되고 선진문물이 쑥쑥 들어와서 나라가 쭉쭉 커나갈거라는 희망찬 예상도 설득력면에서 크게 다를건없죠.
애초에 큰 의미를 두기에는 힘든 사건같은데 무슨 결정적 기회를 놓친것처럼 말할필요 없어보입니다.
15/02/12 22:21
아랫분들 말씀 처럼 거래를 한 일본도 흑선으로 인해 급격한 산업화를 이루게 된거니 조선이 개항을 했다고 하더라도
쭉쭉 커나가긴 힘들거 같습니다만, 최무선이 화약을 만들듯이 개항을 하게되어 누군가가 무언가를 발명할수도 있는거니까요. 이것도 어차피 if 라 아무의미 없지만 말입니다. 흐흐
15/02/12 17:51
국력의 발전은 일개 군사기술 몇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역 조금 한다고 바로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도 아니죠. 아마도 이런 식의 놓쳐버린 기회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일본의 성공적인 개화 때문인 거 같은데 이미 19세기 조선과 일본은 국력 차이가 났고 개화 시기도 주요한 변수였겠지만 그게 일본과 조선의 차이를 만든 유일한 변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되려 조선 중기 이후 토지의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상황이었고 이를 문제시삼거나 타개하려고 정부차원에서 노력이나 했는지 의문인 상황이 일개 네덜란드 선원 몇명 따위보다 더 치명적이었죠. 정조 사후 정치 시스템이 무너지고 당시 찾아온 평균 기온 저하에 효과적인 대처도 안 되었을 뿐더러 국가의 잠재력이라고 봐도 될 문해율도 19세기 당시 청과 일본에 비해 10%이상 낮았습니다.
15/02/12 17:54
별로 관련 없는 이야기. if로 따지면 차라리 흑선이 일본이 아니라 조선으로 와서 개항은 시켜놓고 남북전쟁으로 개입 못 하는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
난학이니 뭐니 하면서 외국인들이랑 교류 했다는 막부도 흑선 내항 한방에 털리고 정부 전복되었는데 고작 하멜따위로 역사가 바뀔리가 없죠. 일본이 본격적으로 근대세계에 편입하게 된건 난학이 아니라 개항 때문입니다.
15/02/12 18:07
pgr에도 역덕후님들 많으셔서 이런 얘기는 그냥 결과론적인 소리에 불과한거라는거는 두말하면 잔소리겠구요.
개방해서 다 산업화를 이루었으냐면 그런것도 아닌게 당시 가까운 청나라의 예도 있고, 아프리카의 우간다는 16세기부터 포르투갈과 교역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포르투갈의 노예전초기지가 될 뿐이었죠. 교역 시작하고 조선=네덜란드 식민지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죠. 그리고, 당시에 외국문물을 안받아들였냐면 그것도 아닌게 박연 있잖아요. 쓸만한 외국인은 다 썼습니다.
15/02/12 22:27
재평가받는 아시아의 역사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던 이런 믿음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반성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경제개발 비교사의 거대 서사(Grand Narrative)가 지닌 ‘유럽중심주의적’ 성격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저명한 인류학자 잭 구디는 최근 출간한 두 저서에서, 거시적 관점을 토대로 ‘유럽 문명의 기적’(European Miracle)이란 개념을 폐기하고 대신 ‘유라시아 문명의 기적’(Eurasian Miracle)에 대해 설파한다. 그에 따르면, 과거 동서양의 격차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의 격차만큼 크지 않았다. 아프리카와는 달리, 유럽과 아시아는 둘 다 ‘청동기시대의 도시 혁명’이라는 공통된 모태에서 탄생한 문명이기 때문이다.2) 결론적으로 서구 자본주의가 점차 전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으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선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동양과 서양은 경제·문화적 발전의 주도권을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번갈아 잡아왔다. 때때로 동양이 서양을 능가한 시대도 있었다고 잭 구디는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시각은 근거가 빈약하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경제학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도 아시아, 그중에서 특히 중국의 위상을 재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1800년 이전에 중국 중심의 세계 구조는 유럽 중심의 세계 구조보다 훨씬 강력했다. 서구가 선두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http://maphyth.tistory.com/51 님 글에 어느정도 동의합니다. 개항한다고 다되는 건 아니죠. 음..그렇지만 저 프로그램에 말하는건 그냥 희망찬? 즐거운 상상을 해보자 뭐 그런거 아닐까요. 역사에 if는 의미없지만 말입니다.
15/02/12 19:05
조선보다 일찍 개항한 나라가 수십개는 되지만 그중에 성공한 나라는 오직 일본 하나뿐이죠.
그 하나의 단독케이스가 우리나라에 가장 가까운나라라 그게 전부인거 같게 느껴지지만..
15/02/12 20:33
사람 하나 달라진다고 국가가 통채로 뭔가 바뀐다고 할 만큼 조선이 시스템이 없는 국가가 아닙니다.
역사를 대할 때 사람 한 명에 너무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아요.
15/02/12 21:13
그 상당한 수준이 의외로 굉장히 별 거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일이 벌어질 정도의 일이면, 그 사람이 없어도 시기나 규모의 차이가 어느정도는 있겠지만 결국엔 벌어졌고 안 일어날 일은 그 사람이 있어도 안 일어납니다.
15/02/12 21:47
그게 착각이라는 얘기입니다.
이게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라면 모를까, 국가단위, 그것도 근대화나 혁명 등의 엄청난 사건을 동반한 변화는 그런 사소한 차이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흔히들 말하죠. 누가 있었으면 바뀌었을까? 아마 시대적인 한계와 도출해야는 결과물이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결국 정도만 바뀔 뿐, 시대의 흐름은 변함이 없습니다. 반대로 예수가 없었으면 기독교가 없었을까요? 지금의 기독교는 없었을지라도, 그와 비슷한, 혹은 유사한 형태의 무언가가 생겼을 겁니다. 어떠한 커다란 변화의 흐름은 굉장히 많은 다수로 인해 축적된 자본과 사상과 지식과 노력과 시대상황 그리고 상당히 많은 운이 겹쳐서 태어나는 것이지, 한 개인의 유무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15/02/12 22:24
글쎄요. 알렉산더가 없었어도. 징기즈칸이 없었어도. 혹은 히틀러, 무솔리니가 없었어도.
그게 아니면 이순신이 없었어도 '딱히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뭐 역사에 대한 생각은 각자의 자유니까 제 생각을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냥 제 견해는 그렇습니다.
15/02/12 21:20
많이들 말씀하신대로 결국 시스템의 문제고 조선이 서양 문물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냥 이런 기술 있다고 해서 그게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회가 가지는 기본적인 거부감도 있고... 이앙법은 중국 한대에서 시작돼 고려 말기에 알려졌다고 하는데 조선은 언제 이걸 조선 후기에 가서야 제대로 도입했죠. 가장 기초적인 식량 생산문제에서도요. 지금 현대도 기존 관습, 사상을 못버리는데 그때는 더 했겠죠. 우리가 미국 소트프웨어 산업이 뛰어난 걸 알면 뭐해요....우리나라는 못 따라가는데요. 몰라서 못 한 게 아니죠. 결국 인프라가 따라갈 수 없었던 인프라지요. 유럽이 가능했던 건 아메리카를 통째로 꿀꺽 해서 그런거고. 일본이 좀 예외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섬나라라는 특수성때문인지.
15/02/12 21:49
일본은 뭐 이전부터 서양과 교역을 했었습니다.
나가사키가 그 중심 무역항이죠.(괜히 대항해시대 전통적으로 나가사키가 등장하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일본 사회에 영향을 준 가나가와조약은 1854년 이루어집니다. 미국 군함에 의한 무력 개항이었죠. 그런데 강제 개항을 주도한 미국이 빨대 꼽고 쪽쪽 빨아먹으려고 했는데 오잉?? 본국의 상태가?? 미국 시빌워(남북전쟁) 발발 1861년이죠. (당시 영국은 1856~1860년 2차 아편전쟁을 벌이고 있었..) 일본 메이지 유신이요? 유신세력에 의해서 막부가 무너진게 1867년입니다. 일본은 기존 정치체제인 막부가 무너지고 전국적으로 혼란한 상황에 그냥 외부에서 개입할만한 세력이 없었던것이죠.
15/02/12 22:39
54년에 개항을 했는데 30~40년 만에 조선은 물론 중국, 러시아하고도 맞짱을 뜰정도로 빠리 성장한 일본이 정말 놀랍네요.
몽골 침략때 [신풍] 도 그렇고 미국군함에 의해 강제 개항 당하고 털려야 하는데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털지못하고 정말 운이 좋은 나라인듯합니다. 거기다 강제 개항한 미국하고 태평양 전쟁을 치루기도 하고 일본도 정말 대단하긴 합니다.
15/02/12 22:00
소현세자 관련 if이야기를 볼 때마다 효종이 더 안타깝습니다.
어떤 임금이 그 시대 그 자리에 있었어도 효종보다 임금노릇을 더 잘해내기도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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