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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4/25 16:34:39
Name 대한민국육군병장
Subject [일반] 목적지라고 생각했던 곳에는 종점이 있는가
#1 어릴때부터 어른들이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물어보시면 나는 언제나 "과학 선생님이요!"라고 답을 하였다. 대단히 과학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선생님에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중1때 만난 선생님이 인격적으로 너무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서 목적지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2 그러나 나름 명문 중학교였던 곳에서 적당한(?) 고등학교로 진학하자 나의 목적지가 잘못 되었다고 느꼈다. 어쩌면 목적지에서 가질 직업인 교사가 실제 교단에서 받는 대접을 보니 내가 꿈꾸던 생활이 아님을 느꼈다. 사범대를 진학하고 교사로서 직장생활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 나니 그곳은 내가 꿈꾸던 곳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느낀 것이다. 그렇게 인생에서 처음으로 목적지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고등학교 1~2학년동안 크게 방황 아니 롤이랑 오버워치, 하스스톤만 열심히 했다.


#3 게임을 많이 하긴 했지만 공부를 놓은 것은 아니어서 적당히 유지는 하고 있었는데, 고3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과학 수업을 듣다가 처음으로 학문 자체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 일상생활에서 체감을 통해 얻은 지식, 혹은 간략하고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설명하던 과학 현상들을 수식과 유도를 통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마치 야생의 숨결 첫 인트로화면에서 게임 타이틀이 뜨면서 광활한 대지가 뜨는 충격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4 그날부터 나의 네비게이션에는 다시 한번 목적지가 추가되었다. 자연과학을 전공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자연과학 전공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대학중에서 선택지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나에게는 성적을 올려야만 하는 퀘스트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목적지가 분명했기에 가는 경로도 명확하였고, 학문 자체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인지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도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5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서 야자를 하며 1년을 보낸 결과, (하스스톤 전설 세자리수 안쪽 등극과 함께) 국내 최고 대학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자연과학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모든 고등학생들이 그렇듯이, 목적지는 '입학'이었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네비양의 목소리가 들리자 앞으로 행복하고 원하는 일만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6 술/게임과 함께한 1학년이 지나고, 교양과 저학년 전공들도 재미있어 나는 당연히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목적지의 연장선상으로, 대학원을 목적지로 경로설정하였다. 한 연구실에 감사하게도 인턴 활동을 할 기회가 생겼고, 너무 좋은 교수님과 선배님들 밑에서 학과 공부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과는 별개로, 시간이 흐를 수록 나 자신이 대학원에 맞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영어를 그리 잘하는 편도 아니면서 하루 종일 관련된 논문과 지식을 영어로 찾고, 고학년 전공 수업은 이해하지 못하고 벅차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저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 가서 포켓몬 스바나 하고 싶었다.


#6.5 이 기간에 시공의 폭풍이 갑자기 사라졌다. 지금은 롤 프로게이머가 된 한 히오스 프로게이머가 대회 직전 갑자기 대회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멘탈이 나간 것을 보고 저사람의 목적지도 사라졌구나 생각했다.


#7 결국 확실한 목적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자 우선은 목적지를 수정하기로 하였다. 물론 다른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지도를 켜고 갈만한 목적지를 열심히 찾아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한 세미나에서 나의 전공분야의 공대 버전 강의를 듣게 되었고, 새로운 목적지를 찾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자연과학은 자연 현상의 원리와 그 이유를 밝혀내는 것에 주목하였는데, 공학에서는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는 크게 관심 없고, 이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지에 포커스를 하는 점이 나에게 아주 흥미로운 끌림으로 작용했다. 어쩌면 내가 자연과학에서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이걸 배워서 어디에 쓰는 걸까 하는 의문때문이었던 것 같다.(지금 생각해보니 자연과학 없는 공학은 없다고 느끼고 저런 의문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류 기술도 없었을 것 같다)


#8 마치 뭐에 홀린 듯 복수전공을 신청하였고, 수업을 듣기 시작하였다. 뭔가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실습을 하고 계산을 하는, 실용적인 느낌이 나는 수업에서는 마치 완벽한 목적지를 찾은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식 유도와 원리 위주의 수업에서는 과연 이 목적지가 맞나 싶은 의문감이 있었다. 졸업을 해야하기도 하고 아예 못해먹거나 극혐하는 느낌은 아니었으므로 그래도 순항하는 느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9 코로나가 터지고, 대학교도 교문을 닫고 온라인에서 모든 수업이 이루어졌다. 더불어 대학원을 진학할 생각으로 미루고 있던 군 문제를 이참에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가챠 게임으로 단련된 나에게, 1번 뽑으면 다시는 리세마라를 할 수 없는 군문제에서 징집으로 입대를 하는 것은 너무 리스키해보였고, 확정 가챠를 뽑겠다는 마인드로 모집병에 지원하였다. 여기서 한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는데, 확정 가챠라도 10번 뽑았을 때 하방이 있는 것이지, 한두번 뽑으면 꽝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적당한 학교 이름값과 전공값으로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나는 여러번의 쓴 맛을 보았고, 나의 새로운 목적지는 군문제 해결로 바뀌었다.


#10 어찌저찌하여 이등병 약장을 달고 시작한 군생활에서 나의 목적지는 2가지였다. 하나는 전역, 하나는 전역 이후 복학하는 삶. 군생활 중간중간 군대스러운 어려움도 많았지만, 전역과 복학이라는 확실한 목적지가 있었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수능만을 기다리는 고3의 생활을 다시 하는 것 같았다. 또 한번의 착각이지만, 전역하면 모든 일이 행복할 것 같았다. 나의 목적지가 전역이었기 때문이다.


#11 전역을 하고 복학을 하니 코로나도 없어져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2년만에 하는 수강신청도 전부 성공하였으며 따스한 봄날이 학교를 비추고 있었다. 새로운 자취방은 한 방에서 성인 남자 10명이 지내던 곳과는 다르게 너무나 쾌적하였고, 이제 다시 공대 수업을 들으며 목적지로 운전할 준비를 마쳤다.


#12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자 과연 이 목적지가 맞나 하는 의문감이 마음 한 구석에서 다시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실습을 하고 재미난 것을 해보고 싶지만 학부 수준, 아니 고등학생 수준에 머물던 나에게는 너무 벅찬 일이었고, 그렇다고 수업을 들으면 재미가 없어 영혼없이 필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비슷하게 했던 친구들은 본과를 마치고 국가고시를 붙고 있었으며, 대학교에서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은 수특을 피거나 유학을 가는 등 저마다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열심히 운전해나가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왜 수특을 안펴냐 라는 소리가 가득하고, 의대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고등학생의 내가 가지고 있었던 학문의 흥미와 호기심은 잃은지 오래여서 정체성에 혼란만 가득해지고 있다. 최소한 의대는 타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알아서 철길이 있는 기차같은 느낌인데, 나는 매 목적지마다 새로 네비를 찍는 노가다를 하는 기분이다.


#13 마지막 중간고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인데, 아무것도 안하고 알람도 안맞추고 그대로 자고싶다. 자고 일어나면 구매하고 실행도 안해본 엘든링을 플레이하고 싶으며 아무 걱정없이 내일 즐거운 일이 기대되는 상태로 저녁에 맛있는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싶다. 하지만 집에 가면 미뤄뒀던 과제와 팀플이 한바구니라 집에 가는 것이 두렵다.


#14 나의 성격상 또 다음 목적지를 찍고 또 열심히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겠지만, 목적지를 찍고 도착하는 곳마다 만족스럽지 않으니 이제는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보는 것에 의욕이 나지 않고 자신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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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의 느낌으로 작성해서 죄송합니다. 최근 너무 힘에 부쳐 뭐라도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한탄글이 되어버렸네요...
혹시 PGR여러분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해서 이루었을 때 거기에 내가 생각하던 것이 없었던 적이 있으셨나요? 있으셨다면 어떠셨는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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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beatMIX
23/04/25 16:45
수정 아이콘
세상에는 방향은 몰라도 나아가는 것 자체는 관성과도 같은 사람이 있다더니 정말이군요 대단합니다!
서쪽으로가자
23/04/25 16:50
수정 아이콘
어찌보면 순간순간 '이게 최선일까'하는 깊은 고민을 하시는 스타일 같기도 하고, 약간의 경험 후, 깊은 경험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스타일 같으시기도 하네요.
저는 어릴 때부터 꿈꿨던 진로를 (중간에 약간씩의 방향 전환은 었었지만), '이게 최선일까'하는 고민없이 계속 달려서 어쨌든 그 진로위에서 계속 가고 있네요 (사실 대학원 때 그런 고민이 있긴했지만...). 최고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경쟁력 있는 위치라고 생각도 하고요.
육군병장님 (응?) 께서도 어서 가장 원하는 (혹은 원하는 것 같은) 길 찾으시고 나아가실 수 있길 기원합니다.
23/04/25 17:23
수정 아이콘
의대가 철길 맞지만 그 길도 나름 가파르고 힘들어서 고충이 있겠지요
뒹구르르
23/04/25 17:33
수정 아이콘
글쓴 분과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다 결국 박사까지 마치고 나름 자리를 잡고
딱히 아쉬울 거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최소한 의대는 타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알아서 철길이 있는 기차같은 느낌인데, 나는 매 목적지마다 새로 네비를 찍는 노가다를 하는 기분이다."
의사 친구들과 비교해 이런 아쉬움은 여전히 남네요 근로소득 측면에서도 좀 그렇구요 흐흐

그런데 살아보니 인생이 꼭 목적지를 찍고 네비따라 가듯이 해야하는 여정은 아닌거 같습니다
목적 지향을 위해 과정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는 우는 범하지 마세요
주위에 그런 친구들 많은데 목적지에 효율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포기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큽디다
해보지 않은 경험들 계속 새롭게 해보시고
특히 아직 학벌이라는게 스펙이 될 수 있는 나이에 이성친구 많이 만나보세요
징버거
23/04/25 17:48
수정 아이콘
그래도 목적이 있는 삶은 부럽네요.
저는 내비 찍기 귀찮아서 뭐든 나오겠지 하고 달렸더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서 당황중입니다.
23/04/25 18:16
수정 아이콘
(수정됨) 미생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다가오는 문을 열어가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저는 글 쓰신 분도 목적지에 도달했다기 보다는 하나의 문을 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무언가가 됐다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목적지에 제가 원하는 것이 없을 것을 가정하고 계획을 짭니다 되면 좋고 안되면 각 봐서 다시 하거나 포기하거나 그렇죠 그 과정에서 슬프거나 좌절하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다 그렇게 사는거죠 뭐
23/04/25 18: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몇 가지 꼰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0. 종점은 없습니다. 관뚜껑에 못박힐 때까지는요.

1. 목표와 목적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목적은 이유죠. 왜 그것을 해야 하느냐?
목표는 도달점입니다. 어디까지 가면 되느냐?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글쓴님이 언급하시는 목적지들은 곧
목표들입니다.

2. 문제는, 목적이 없는 목표는 흔들리기 쉽습니다.
일이든 무엇이든, 인간은 충분한 이유가 주어져야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나는 이걸 왜 하지? 가 충족되지 않으면
아몰랑 롤이나 켜서 칼바람이나 한 판 하자, 가 되기 쉽습니다.

3. 프랭클린 플래너를 써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기사명서와 지배가치 찾기 활동이 이럴 때 유용합니다.
사명이 곧 목적이고, 지배가치는 삶의 목적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이와 관련된 괜찮은 콘텐츠를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당장 구글 검색해봐도 잘 안 나오네요. ㅠㅠ

4. JYP가 이런 말을 했죠.
궁극의 행복은 To Have(소유)나 To Be(지위)가 아니라
To Do(행동, 혹은 일)에서 온다.
저는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To Do를 찾아야 합니다.

5. 우리 사회는 수능 고득점! 서연고 입학! 좋은 직장 취업!
같은 목표만 계속 아이들에게 주입하지
목적을 찾으라는, 효율적이지 않은 조언에 아주 인색하죠.
심지어 폄하기 일쑤입니다. 니가 배가 불렀구나? 라면서요.
슬픕니다.

응원합니다.
23/04/25 18:28
수정 아이콘
전 20대에 학부/대학원 과정 거치며 공식적으로 전공 바꾼 횟수만 3번 입니다 (생물학 -> 로스쿨 -> 보건행정 -> 보건행태).
계획적으로 바꾼거 아니고, 들어가 보니 생각과 달라서 바꾼 경우만 3번 입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전 안해본거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해본거에 대한 아쉬움은 안생기는 타입이거든요.
다양한 분야를 경험 해봤다는 점에 감사하고, 나와 잘 안맞는게 무엇인지 확인했다는 점에 만족합니다.
식물영양제
23/04/25 18:32
수정 아이콘
자신을 위한 목적지를 찍는 것보다 대한민국을 위해 아니면 인류를 위해 지구를 위해 무언가 하겠다는 목푤를 세워보세요. 내가 이 질환의 치료제는 꼭만든다 혹은 대한민국 동성결혼은 합법화한다 내지는 어떻게든 죽기전에 화석연료를 종식시킨다. 이정도로 세워두시면 도달도 힘들고 쉽사리 지치지는 않을것 같은데.

어쨋든 굳럭.
지하생활자
23/04/25 19:16
수정 아이콘
후배님 화이팅.
37이된 지금도 매번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티나한
23/04/25 20:05
수정 아이콘
여행을 가다 보면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비슷한 면이 있는데요. 우리가 패키지여행보다 자유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려서 사진찍고 차타기를 반복하는 식의 패키지여행을 재미없어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작 자유여행을 하더라도 결국 패키지여행과 비슷한 목적지들을 찍게 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도 자유여행이 훨씬 재미있고 내 것 같거든요. 그건 여행의 기쁨이자 본질이 '목적지'에 있지 않고 거기로 가는 길, 혹은 그 근처에서 헤매는 길 위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했습니다.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23/04/25 21:05
수정 아이콘
오.. 뭔가 울림이 있는 말씀이네요.
23/04/25 20:13
수정 아이콘
나아갈 수 있는 의지와 동기가 부럽습니다
-안군-
23/04/25 21:45
수정 아이콘
중학생때부터 게임개발자가 되는게 꿈이었고, 중학생때 처음으로 조악한 게임을 만들어 PC통신에 올리고, 고등학생때 아마추어 게임 개발팀에 참여하고, 20대에 게임회사에 취직하면서 꿈을 이뤘죠.
이후, 어떤 후배가 이런 말을 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배는 꿈을 이룬걸까요, 꿈을 잃은걸까요?" 라고... 그리고 20년이 더 흘렀지만 아직 그 대답을 찾지 못한채 살아가는 중입니다.
라파엘
23/04/25 21:47
수정 아이콘
수학과 물리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방학만 되면 하루 종일 수학 물리 공부만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죠.

수학과 물리를 많이 배운다는 기계공학을 전공했어요.
주변 의대생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내 선택이 틀리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석사까지 마치고 전문연으로 삼성에 들어갔습니다.

사업을 해서 의사인 친구들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며 증명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6년간의 대기업 생활 및 사업 준비를 하며 얻은 결론은 사업으로 성공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32살 겨울에 퇴사를 하고 1년을 공부하여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의사가 되고 개원을 했으며, 병원이 잘되자 또 사업을 하겠다고 법인들을 차리고 수십여명의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네요.
의사인 친구들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아이러니하게도 의사가 되어 이루었네요.

나의 길은 행복합니다. 공학도 행복했고, 대기업에서는 힘들었지만 사람 경험이 큰 밑거름이 되었고, 의사로서의 삶도 즐겁고, 사업을 성장시키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재밌습니다.

지금 나이의 님의 고민은 너무나 당연하고 건강한 겁니다.
저도 누구보다 나의 삶과 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지인들의 삶이 훨씬 발전적이고 풍요로워요.

목적지는 항상 변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보이는 새로운 세상이 있거든요.
새로운 세상이 나를 또 가슴 떨리는 목표가 있는 삶으로 안내합니다.

행복은 어떤 목적지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애플프리터
23/04/25 23:17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 삶을 살았지만, 목적지를 매번 네비에 찍었다가 지운다는 여정은 아니었네요. 그냥 별 생각이 없었어요.
목적지 없이 방황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결국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적당히 제가 좋아하면서 꽤 잘하는 직업으로 정착했습니다.
다음 생애에도 이 직업하면 좋겠어요. 다만, 목적지를 일찍 정했다면, 훨씬 좋았을거라는걸 압니다.
본인이 잘 모르겠으면, 주위의 조언을 들어도 됩니다. 여행을 예로 많이 드는데, 누구나 좋아할만한 여행지는 대부분 만족합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여행지는 직접 가봐야 알고요. 내가 경험이 많은 여행자가 아니면, 조언을 받으세요.

*나이가 들수록 게임이 현실의 도피처가 되면 더이상 안됩니다. 현실의 경험이 자양분이 되는 삶을 응원합니다.
23/04/28 08:09
수정 아이콘
이런 좋은 글을 이제 보네요
고민없이 편안하게 목적지 향해 가는걸로 보이는 사람도
똑같이 고민하고 매번 네비 다시 찍고 갑니다

다들 똑같다는 걸 알게되면 마음이 편해지고
도전을 즐기게 됩니다

어딜 가던 길이 있고 그 길은 갈림길이고
힘든결정을 해야하는것 처럼 보이지만
어느 길로 가더라도 다시 길이 나옵니다
짧다면 짧은 인생인데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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