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세 관련글로, 재외 한국인 언급도 있습니다만 국내정치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댓글 달아주실때도 이 점 유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지시각 4월 15일, 수단의 민병대 조직 RSF(Rapid Support Forces)가 수단 정부를 상대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수단 정부군과 RSF는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이 전투가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대 수단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국의 식민지이던 수단은 1956년에야 비로소 독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립이 끝이 아니었으니...
영국의 분리를 유도하는 통치는 수단 내 남북갈등을 조장해왔고, 결국 독립하자마자 수단은 내전이 터지고 맙니다.
이 내전은 무려 72년까지 거의 15년 이상을 끄는 장기전이었습니다.
한 편 정치면에서는 1969년 자파르 니메이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장기집권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슬람주의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았던 니메이리는 이란 혁명 이후 점차 이슬람주의로 기울게 되고
결국 수단 남부는 이런 정책에 반발, 또 다시 내전이 터집니다(...)
한편 니메이리는 결국 85년 외유중에 벌어진 쿠데타로 인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물이
쿠데타로 쫓겨나는 결과가 벌어지고, 그대로 외유중이던 이집트에 망명하며 눌러앉게 됩니다.
(이후 귀국해서 정계복귀를 꾀하기도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09년 사망합니다)
이렇게저렇게 겨우 좀 민주적인 정부가 돌아가나 했지만... 제3세계가 그리 쉽게 민주화가 될 리가 없었습니다.
겨우 정치가 좀 안정되나 했지만, 89년 NIF(National Islamic Front)를 등에 업은 오마르 알바시르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또다시 수단은 독재자의 손에 떨어지게 됩니다.
알바시르는 니메이리가 혜자로 보일 정도의 철권통치를 시행했습니다. 알바시르의 집권기가 이 글의 주제는 아닌지라
간략하게 넘어가겠습니다만, 반발세력은 계엄령으로 밀어내고 체포 구금, 군 동원 등 그야말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반대파를 탄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무엇보다도 니메이리 시절부터 이어지는 내전에서 학살을 자행하며 추정되는 사망자수는 무려 190만명에 이릅니다.
또한 샤리아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으로 타 종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여성차별 등도 횡행했습니다.
한편 오랜 세월을 끌어온 내전은 결국 국제사회의 압력과 국력 소진 등등 여러 요인으로 2011년 남수단 독립 찬반투표가 있었고
여기에서 압도적으로 독립 찬성파가 승리함으로써 결국 남수단은 수단으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
이렇게 전횡을 일삼던 알바시르 정권에 대해 2019년 더이상 참지못한 민중들이 시위를 일으켰고 이 시위는 점점 더 규모를 불려갔습니다.
시위대는 군에게 시위 참가를 요구했고 결국 경찰과 군까지 등을 돌리게 되고, 4월 군의 쿠데타로 인해
알바시르는 권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바로 이 쿠데타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번 내전의 주인공들입니다.
압델 파타 알브루한은 군부의 1인자였으며(사진 오른쪽 인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는 신속지원군(Rapid Support Forces, RSF)의 1인자였습니다.
신속지원군은 원래는 알바시르 시절 창설된 준군사조직으로, 다르푸르 분쟁 당시 알바시르의 지원 하에 반정부세력과
충돌한 집단입니다. 이 당시 학살 의혹도 있는 여러모로 좀 구린 집단인데, 그 수는 약 10만명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알바시르 축출 당시 알브루한과 다갈로는 협력해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만, 정권 이양 과정에서 이 둘은 또 힘을 합쳐
군부정권을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알브루한은 군부 1인자로서 정권의 1인자로 행세하고 다갈로는 RSF의 1인자로서
정권 내 2인자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다만 무력을 지닌 두 세력이 공존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준군사조직을 그대로 둔다는 건 정권 유지에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필연적으로 RSF를 군부로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여기서 알브루한과 다갈로는 의견이 갈리게 됩니다.
군부 1인자인 알부르한은 당연하게도 RSF를 조속히 군부에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며
다갈로는 정반대로 RSF를 군부에 완전히 통합하는데는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도 정권 운영이나 대러정책 등등 많은 이슈에서 이견을 보이던 알부르한과 다갈로의 사이는 눈에 띄게 악화,
결국 최근 들어 이 둘의 대립은 매우 첨예해지고, 다갈로는 휘하 RSF를 수단 전역에 배치하면서
양 측의 충돌은 초읽기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15일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UN을 비롯한 각국은 양 측에게 일단 정전합의를 종용중입니다만...
양 측은 휴전 합의를 3차례 했습니다만 3차례 모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전투는 여전히 계속되는 중입니다.
현재 각국이 최소 3시간에서 1일 정도의 휴전합의를 종용하는 것은 물론 수단의 평화도 있습니다만
각국의 수단 체류중인 자국민을 대피시키기 위한 것임이기도 합니다.
다만 현재까지 휴전합의가 하나도 안지켜지면서 독일은 자국민 대피계획을 일단 중단한 상태이고
미국 역시 상황을 주시중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전세기를 동원하기로 했습니다만...
현지 상황이 설령 전세기를 띄운다고 한들 자국민 대피가 그리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교민들은 안전이 확보되면 대사관에 모이려고 하지만, 가는 길에 안전을 담보하기 힘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이게 현지의 상황이기 때문이죠. 기사에 따르면 수단에는 총 25명의 한국인이 체류중이라고 합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직 5일이 지났을 뿐입니다만, 이미 수단의 상황은 대리전의 양상으로 흘러가는 중입니다.
본래 친러적 입장을 견지하던 RSF에는 러시아가 바그너 그룹을 통한 우회지원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으며,
이집트는 수단 정부군(군벌), 리비아는 RSF측에 지원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중입니다.
수단의 역사가 쿠데타와 내전으로 점철된 역사이긴 합니다만, 이번 사태는 과거 수단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것과는
양상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우 내전이라고 해도 민병대 수준의 소규모 저항세력과 군, 혹은
수단정부가 우회적으로 지원하던 조직과의 충돌이었다면, 이번 사태의 경우 명실상부한 군사조직 2개가
정면충돌중이라는 점입니다.
RSF는 준군사조직으로 출발했습니다만 10만명이라는 규모에서 알 수 있듯 이미 단순한 준군사조직이 아니라,
군에 흡수가 가능할 정도의 무장조직이라고 볼 수 있으며(게다가 인용기사에서 알 수 있듯 자체적인 자본력도 있습니다)
이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단기적 충돌이나 국지적 내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