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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1/01 15:36:22
Name 도뿔이
Subject [일반] 모욕적 갑질과 구조적 갑질
아마 최근들어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중 하나가 '갑질'이라고 봅니다.

갑질이라는 키워드로만 검색해도 수많은 사건들이 나오는데요..
아마도 가장 유명한 갑질사건이라면 역시 '땅콩회항'으로 촉발된 한진 일가의 행태겠죠.

유명한 갑질사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모욕적이라는 겁니다.
피해자가 모욕적으로 느낄만한 언어와 행동으로 문제가 된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무런 모욕적 요소가 없는 갑질들이 더 많고 그게 더 문제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은 잘 다뤄지지도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적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려고 합니다.

항공업계의 라이벌답게 대한항공의 한진일가가 열심히 사회면을 오르내리는 사이에
아시아나 항공도 갑질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아시아나 기내식 대란'이라는 사건입니다.
사실 사건 자체는 꽤나 알려져 있습니다만.. 기내식 때문에 운행이 지연이 됐다느니
기내식이 지급이 안됐다느니 하는 부분들이 이슈였지 이 사건이 갑질사건으로
알려져있진 않았죠.
사건의 발단은 아시아나의 박삼구 회장이 하청업체들에게 '투자'를 요구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마이너스의 손'으로 유명한 박삼구 회장은 손을 대는 투자들이
족족 망하면서 알짜 계열사들을 팔아치워야됐고 이걸 수습하기 위해서
하청업체들에게 '투자'를 요구한것이죠.. 이걸 당시 기내식 업체는 거부를 했고
박삼구 회장은 투자를 약속한 다른 업체로 바꿔버렸습니다.
그 업체는 물량을 소화할 역량이 없었고 그 사단이 벌어진 것이었죠..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이 바뀐 기내식 업체의 하청 업체 대표가
'자살'을 했습니다. 그 분은 이 사건이 너무 미안해서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최근엔 현대자동차의 2차 벤더 대표가 자살을 하고 이 사건이 뉴스를 탔습니다만
이 사건이 이슈가 되기엔 큰 뉴스들이 너무 많았죠. 저는 그 분의 처지가 동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기사를 찾아보고 댓글을 읽어보니 현차 욕, 1차 벤더 욕, 노조욕 등등
특정인 또는 집단이 책임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더라구요..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저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작은 금속 가공업체를 다니고 있고 직종 특성상
당연히 을 of 을입니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으니 연례 행사가 시작될겁니다.
저희 회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2차 벤더이고 이 업체의 물량이 회사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이때가 되면 '단가 협상'이라는 것을 합니다.
저야 그냥 현장직 직원이니 거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않지만 작년인가 본
공문에는 대충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최저임금 상승 등등 요인으로 인해 너네 단가 깍아야됨"
공문인만큼 꽤나 정중하게 적혀있긴 했지만요..
저기 당신네 회사 정직원중에 최저임금 받는 사람이 있었나요?...
아니 임금이랑 자제비 상승은 너네만 있나요?...
당장 최저 임금 때문에 8년차인 내 임금도 오르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까라면 까야죠..

그리고 제가 말한 이 일이 극단적 선택을 하신 현차 2차 벤더 업체에게 매년 일어난 일이고
우리 회사는 그래도 올인 구조는 아니고 거래를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진 않아서 버티고 있지만
그 회사랑 그 사장님은 결국 손익 분기점 아래로 내려가버렸던 거였습니다.

이게 누구의 문제일까요?

대기업 오너의 입장
매년 비용이 오르네.. 내 모가지도 조금은 올라야 되는데..
이걸 그대로 가격에 반영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1차 벤더에게 단가 깍자고 해야겠다..

1차 벤더
아.. 단가 깍자고 하겠네.. 우리 몫이 최소한 유지는 해야지..
2차 벤더에게 단가 깍자고 해야겠다..

이렇게 가면 가장 밑에 있는 업체들은 미치는거죠.. 전가할 대상이라곤 직원밖에 없는데
어차피 최저임금 비스무리하게 주고 있는데 임금도 못깍고...
아!! 사람을 줄이면 되겠다... 정도일수 밖에요..
그리고 바로 여기가 제가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사이드 이팩트도 있습니다. 아무리 갑을 관계라지만
이런 일방적인 단가 하락에 어느 정도의 보상이 필요하기도 한데..
제가 본걸로는 보통 '품질'이 주어지더군요..
대부분의 공산품 품질 기준은 빡빡하게 되어있고 사실 조금 완화한다고 해도
최종 제품의 품질에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게 계속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 구조를 자세히 보시면 이런 구조적 갑질의 수혜자에는 '고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구조가 가격 상승을 억제하거든요... 우리가 매번 너무 오른다고 욕하던 상당수 제품들이
이 구조가 없었으면 더 올랐을 거예요..

이런 갑질들을 보면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고가는 일들도 상당수 많습니다만
(제가 본건 대표적으로 대금 묶기가 있습니다. 어떤 업체는 1억을 묶어놓고나서부터 결제해주더군요..)
이 자체가 어느 순간(아마도 imf이후?)부터 겅제 구조에 포함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가'족'같은 기업들이 그런 행태를 취할수 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죠...

이런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딱히 누군가 다뤄주지도 않고 다뤘다고 해도 국민적 관심이 별로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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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나
21/01/01 15:44
수정 아이콘
예전에 이런 글(http://sonnet.egloos.com/7488603) 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만, 단가를 위해 마른 수건에서 물 쥐어짜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제조업에서 당연시되는 일인거 같습니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을쪽에서) 해결하려면, 링크로 드린 글의 예시에 첨부된 사례가 있지만 '슈퍼을'이 될 수 있어야겠지요. 갑쪽이 꼭 이 슈퍼을에게서만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던가.

을이 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협상에서 아무 주도권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을에게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동차 공정 정도 되는 기계부붐 제조에서 더이상 '슈퍼을'이 될 만한 무언가가 남아있을지는 회의적이긴 합니다.
도뿔이
21/01/01 15:52
수정 아이콘
생산에 필수적인 부분이라면 사실은 직접 운영을 하는게 맞겠죠..
예를 들어 저희 회사는 현차랑 거래하는 물량(정확히는 여기도 2차벤더)도 있는데
우리가 돌리는 라인이랑 같은 라인이 현차 내부에도 있습니다. 다만 여긴 실질적으로 물량을 치진 않고
이런 라인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겉치레만 하고 있는 수준이구요..
계층방정
21/01/01 17:31
수정 아이콘
얼핏 들은 얘기로는 하청을 주는 영역은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이윤은 많이 나지 않기 때문에 직접 운영하는 영역에 비해 직원의 생산성이 낮으므로 임금도 낮게 줘야 하는데, 같은 회사에서 일이 다르다고 다른 임금을 주는 게 어렵기 때문에 하청기업이 따로 존재하는 거라고 그러더군요.
VictoryFood
21/01/01 16:13
수정 아이콘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답이 없는 경우가 많죠.
이게 국내 경제 안에서만 해당되는 문제라면 어찌저찌 해볼 수도 있겠으나 해외 경제와도 같이 묶이게 되면 우리만 하청업체 이익 챙겨주다가 손해날 가능성도 높구요.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원청이 연구개발을 통해서 혁신을 하고 그 혁신으로 줄인 비용을 하청에게 넘겨주는 식이겠죠.
결국 그런걸 못하는 원청은 도태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원청도 다른 나라 원청들에 비해서 경쟁력이 딸리니 원청이 망한다고 다른 국내 원청이 생기지도 않으니 망해라 할 수는 없고요.
여러모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틀림과 다름
21/01/01 16:57
수정 아이콘
다뤄주지 않는것은 아닌걸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 MB시절이었습니다.
그때 A라는 회사를 다녔었는데요.
A회사의 사장님한테 (우리 위의 업체에서) 단가관련하여 갑질을 하는지, 부당한 요구를 하는지 설문서가 왔었습니다
철저히 비밀로 해주겠다고 했지만 우리 사장님은 그 문서를 보고는 코웃음을 치며 대충 "그런거 없다"는 식으로 작성하고
정부기관에 냈습니다
정부기관에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일선 기업에서는 협조를 잘 안해주더군요
해줘봐야 도움을 받기는 거녕 도리어 우리 위의 업체한테 도리어 찍힐까 싶어서 그렇죠
21/01/01 17:13
수정 아이콘
사원이면 모를까 사장이면 위에서 해결해줄거야 하는 기대는 안하는게 현명한거죠
틀림과 다름
21/01/01 20:03
수정 아이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거죠 뭐..
플러스
21/01/01 17:48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대로 다뤄주기는 하는 것이 맞겠네요.
효과는 실질적으로 없겠지만, 정부기관에 제대로(?) 협조하는 노력과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업체가 없다면 그러한 업체들도 상황에 일조한 셈이 되겠네요
틀림과 다름
21/01/01 20:04
수정 아이콘
네 저도 그 말에 공감합니다

글쓰신분의 생각처럼 "딱히 누군가 다뤄주지도 않고 "는 아닌거죠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하고 있습니다.
초지동
21/01/01 21:31
수정 아이콘
공정위인가 어디였던거 같은대요
하도급관련 매년 설문처럼 나왔던거 같내요
금액도 쓰고 자금회수 기간도 썻던거 같내요
실제로 그설문에 작성하면 벌금같은걸 부과했던거 같은대
다들 생각하시다시피 회사 밥줄 끊기기 싫으면 그냥 다 좋은쪽으로 써줄수 밖에없죠
틀림과 다름
21/01/01 21:34
수정 아이콘
네 맞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mb시절부터 한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글쓰신분의 생각처럼 정부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계시니 제가 반문댓글 단겁니다
단비아빠
21/01/01 17:50
수정 아이콘
최저임금 상승률에 맞춰서 각종 하청 단가도 인건비 비중은 무조건 함께 상승시키도록 법으로 강제화하는거죠
단가를 깍는다니 말이 됩니까..
그리고 한번 단가를 정하면 무조건 4년 동안 단가를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필요합니다.
플러스
21/01/01 17:55
수정 아이콘
둘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긴 하네요.
뭐 하청업체 후려치기가 워낙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실이니 이런 주장도 이해가 되긴 합니다
21/01/01 18:52
수정 아이콘
항상 하는 말이지만 소비자가 비싸게 사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도뿔이
21/01/01 19:20
수정 아이콘
가격 책정면에서 BtoC기업중 가장 자유로운 애플도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걸 보면.. ㅠ
머나먼조상
21/01/01 19:28
수정 아이콘
(수정됨) 기내식은 처음알았네요
아시아나가 지금까지 안망한게 더 신기할정도네요
문제는 개같이하면 혼자 망해야하는데 관련 기업들이 다 죽어버린다는거네요 참...
도뿔이
21/01/01 19:48
수정 아이콘
이미 망했습니다. 실질적으로는요..현재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고
(아마도) 대한항공에 인수되면서 사라질 운명이죠..
본문에 언급한 마이너스의 손 박삼구 회장이 정말 삽질에 삽질에 삽질만 한 탓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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