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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9/04 12:30:34
Name 댄디팬
Subject [일반] 루사의 추억(+자기 소개) (수정됨)
안녕하세요 댄디팬입니다.

피지알을 10년째 눈팅하다가... 이번에 가입을 하게 된 사람입니다.
피지알은 좋은 글이 많은 커뮤니티라 눈팅하는 내내 즐겁고 배울게 많았는데
거기에 뻘글을 하나 투척하게 되어 죄송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댓글만 달기는 뭣하고... 글이 많은 커뮤니티에 가입을 했으면 글을 하나쯤 남겨야하지 않을까하는 글을 써봅니다.
근데 오랜만에 글을 쓰니 참 어렵네요.

# (짧은소개) 저는 2013년부터 MVP오존을 응원해왔고 지금은 젠지를 응원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댄디 최인규 선수이고, 지금은 쇼메이커와 룰러, 크라운을 좋아합니다. 스타크래프트는 김준영, 신희승, 이영호 순으로 응원했었네요. 아 물론 임요환과 홍진호 선수는 응원의 레벨을 넘어(?) 응원했었습니다.


# (글)

이번 마이삭이 부산에 상륙하기도 전에 내가 살던 강원도 강릉과 양양은 수해를 입었다. 3시간에 260미리가 내렸다고 한다. 루사가 하루 900미리 정도로 내렸으니 3시간에 260미리면 정말 엄청난 수준이다.

피해상황을 좀 더 알고 싶어 기사를 검색하니, 안나온다.(현재는 일부 나옴) 작은 동네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언론은 계속 마이삭과 매미를 비교한다. 루사를 비교하는 말도 있지만 대부분 매미다. 타지에 나와 살면서 매미를 언급하는 사람은 봤지만 루사를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못봤다. 아마 루사가 오고 매미가 온데다가, 사람이 많이 사는 영남지방에 영향을 더 많이 미친 것이 매미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동지방, 특히 강릉에 살던 사람들에게 루사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루사가 온 날은 금요일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미칠듯이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운동장이 호수처럼 변해버리고, 승합차의 바퀴마저 잠기기 시작했다. 아파트보다 1~2미터 낮은 곳에 마련된 밭은 흙탕물 수영장이 되었고, 주민들은 아파트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마대자루를 날라 입구를 막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거나말거나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아파트는 물에 의해 둘러싸이게 되었다. 어디를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이상한 말이 돌기 시작했다.
오봉댐이 터지면 어쩌지?
오봉댐이 터지면 우리 아파트는 5층까지 잠긴대요.
그러면 차들이 성냥갑처럼 둥둥 떠다니면서 아파트랑 부딪힌대요.
그러면 아파트가 무너진대요.

온갖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무엇이 사실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우리 가족은 10층에 사는 친한 가족에게 하루만 머무르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고 족보(...)와 통장, 인감도장 등을 들고 10층으로 대피했다.
어차피 빠져나갈 수도 없는거 무너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잠기지나 말자라는 심산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날 밤 10층에서 라디오를 켜놓고 뉴스에 귀를 쫑긋 세웠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거리에는 물의 흔적만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바다가 가깝다보니까 물이 쉽게 빠진 모양이다. 그런데 그 흔적은 심상치 않았다. 강릉 남대천 둔치는 정말 거대한 생물이 짓이기고 간 것처럼 시멘트들이 부서져있었다. 아직도 그 박살난 둔치의 모양이 잊혀지지 않는다. 논과 밭, 가축 피해도 상당했다.

루사가 휩쓸고 간  뒤, 이상한 소문이 잠시 돌았다. 아마도 도로공사였던 거 같은데(북강릉IC으로 이어지는 도로인듯 하다) 공사를 하면서 거대한 구렁이를 죽였네, 산을 뚫어서 산신이 노했네하는 소문들이었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2002년에는 이런 소문들도 제법 많았다. 비합리적인 생각이지만, 충격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루사가 터지고나서 몇년 뒤. 나는 아버지와 강릉 오거리 부근에 있는 유행정에 갔다. 유행정에는 1936년 병자년 포락(수해)을 기록한 글이 있었다. 수해에 휩쓸리다가 나무를 붙잡고 산 사람 이야기도 있었다. 그 당시 강릉에는 전염병이 도는 등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때문에 강릉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나는 재해(특히 수해)는 병자년 포락이었다. 하지만 이제 강릉사람들은 '루사'를 기억한다.

마이삭이 지나갔다. 루사에 비하면 별 피해 없었다. 다행이다.

루사의 추억은 다른 녀석에 의해 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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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20/09/04 12:53
수정 아이콘
저는 다른 지방이긴 한데, 둘 모두에 강타당했지만 루사가 더 크게 머리속에 남아있네요.

언덕 아파트였는데 강 쪽 지하도로 침수로 진입로 차단되어 일주일간 급수 정지, 소방차에서 물 정량 배급(?) 받으며 일주일 가량을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침수도로 옆 아파트에 살던 삼촌네는 1층이 침수되어 전주민 대피하는 바람에 저희 집에서 9명이 일주일을 지냈었죠.

하필 루사로 인한 폭우가 시작되는 날이 사촌동생 돌잔치여서 가족 모두가 모여있다가 큰일 날뻔 했습니다. 건물 천장에서 비가 새길래 부실공사인가? 하고 나가봤더니 하늘에 구멍이 뚫려있던 상황...
댄디팬
20/09/04 16:14
수정 아이콘
아찔하네요... 그래도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입니다!

물 배급하시니 말씀인데 지금 저희 집은 물이 열흘동안 안나온다는데 배급도 아직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하네요...
20/09/04 13:34
수정 아이콘
영동지방 거주민을 뵙는군요. 제가 사는 울진은 작년 미탁에 이어 올해 마이삭 까지 2년 연속으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작년엔 550mm가 쏟아 부어서 읍내는 물론 도로 곳곳이 쓸려가 버리는 등 엄청난 피해를 보았지만 동해바다와 태백산맥에 끼인 이 좁은 땅에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그저 지방의 지나가는 뉴스로만 보도되었고, 피지알 자게에서조차 무시를 당하는 댓글을 보았을땐 그저 씁쓸한 웃음밖에는 안나왔습니다.
저는 루사가 왔을때 군복무 시작하고 훈련소에 있을 때인데 강릉이 태풍으로 문자 그대로의 물게락(현지 사투리로 현장감 UP)이 났다는 소식을 교동사는 큰이모께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을 강릉에서 다니며 단오때 남대천에 야바위 구경하러 나가고 수능 100일 전에 야자 튀고 강문에 나가서 백일주 마시던 기억들이 야간사격훈련 중에 떠오르더군요.
댄디팬
20/09/04 16:11
수정 아이콘
개락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반갑네요! 진짜 수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해랑사
20/09/04 13:34
수정 아이콘
역대 재산피해액 1위가 루사라고 하니...

저같은 경우에는 군시절(동원사단)이였는데...
참고로 동원사단은 매년 동원훈련 참여하는 예비군들을 위해 약 1주일전부터 가서 훈련 준비를 합니다.

그 해에는 강원도 산속이 동원훈련지였기 때문에, 산속에서 땅파고 텐트치고... 며칠간 개고생했는데,
동원훈련을 2일 전쯤? 태풍 루사가 와서 산속에 쳐놓은 텐트 다 날려버렸습니다 -_-;

태풍 온다고 그날 밤 근처 부대 어떤 건물로 피신해서 잠자려는데, 하필 거기가 군간부들을 위한 여름 휴가장소였는지,
밤새도록 노래방에서 노래부르고... 저희가 거기 있었는지 몰랐겠죠? 알고도 그랬다면 진짜...

암튼 태풍 지나가서 다시 훈련지로 가서 정비하느라 진짜 죽는줄 알았습니다.
댄디팬
20/09/04 16:15
수정 아이콘
어우... 진짜 슬픈 이야기인데 동원훈련 연대소속이었던지라 반갑기도 하고 그러네요...
20/09/04 13:42
수정 아이콘
루사...매미와 함께 잊을 수 없는 태풍이었죠
아마 저희집도 전기 복구에 며칠 걸려서 라디오만 들었던 거 같은..
2000년대 이 후 사회적으로 태풍, 폭설 피해를 방지하고자 뭔가 작업을 많이 해서 그나마 이정도인가 싶습니다.

불알친구가 가정을 이루고 첫 임신 초반에 안좋게 보낸 이 후
다음 임신에서 태명을 지어달래서 한국에서 가장 쌨던 태풍이름으로 하라고
'루사'라고 지어줬었네요.

지금 벌써 초딩이 되어 진짜 다 부시고 다닙니다.

아, 참고로 친구 성씨가 '우'씨입니다.
댄디팬
20/09/04 16:16
수정 아이콘
초성이 시급합니다 크크크크크크 대박이네요
스타본지7년
20/09/04 13:55
수정 아이콘
저는 동해 사람입니다(지금은 아니지만). 정말 도로가 솟아 있고, 물도 안나오고, 학교도 안가고... 참 지금까지도 또렷하네요. 워드프로세서 시험 치러 갔다가 연기되었다고 하고.. 삼화 쪽에 600mm 넘게 왔단 소리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댄디팬
20/09/04 16:17
수정 아이콘
700미리가 2위 정도 되는 기록이니 600이면... 동해는 도시가 오밀조밀한 느낌이라 피해가 발생하면 더 타격이 클거 같습니다
스타본지7년
20/09/04 16:19
수정 아이콘
진짜 박살이 났었죠. 묵호 쪽인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간판들이 날아가다 서로 부딪혀서 더 가관인 풍경을..
우리아들뭐하니
20/09/04 13:5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안나는데 루사때 18전비 기상대에서 정시관측으로 시간당 100mm넘는 수치가 (기억상 300이었던것같은데 확인하려 찾아보니 그정도 왔었다던 기록이없네요) 3시간 동안 올라오더니 그다음부터 업데이트가 안되더군요. 그리고 기지가 잠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댄디팬
20/09/05 11:12
수정 아이콘
18전비 가는 길에 살았았는데 그게 잠긴 건 또 몰랐네요... 아이고... 친구집이었는데...
이른취침
20/09/04 17:21
수정 아이콘
그 때 저도 삼척에 있었습니다.
하늘이 뚫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군요.
비를 맞으면 아플 정도...
그리고 한 이틀뒤에 말라서 흙먼지가 날리는 게
딱 서부영화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같다는 생각을...
댄디팬
20/09/05 11:12
수정 아이콘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텐데요 정말...
20/09/04 17:22
수정 아이콘
그날 등교했는데, 등교하자마자 휴교 ㅜㅜ
Friendshiping
20/09/05 00:28
수정 아이콘
강릉 시내에 등교 시킨 학교가 몇 없었다고 들었는데... 동문이실수도
댄디팬
20/09/05 11:10
수정 아이콘
등교는 좀 있었는데 점심까지 기다리게 한 곳은 한 곳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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