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군대였을 겁니다.

휴가 나오면 인사만 하고 방으로 처박혀 나오질 않았습니다. 약속 사람 다 안하고 오로지 틀어박혀 게임만 했어요. 심지어 9박 10일 짜리 휴가도요.

부모님. 아니 저조차도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밖에 나가기 귀찮은가 보지. 휴가니까 내버려 둡시다. 설마 전역 하고 나서도 그러겠어?

그 일종의 히키코모리 생활이 2년동안 지속될 줄 알았다면. 그것이 10년 우울증 생활의 첫 징조임을 알았었다면. 말릴 수 있었을까요?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한 검은 스노우볼은 전 라인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학업. 연애. 인간관계. 건강. 꿈. 진로. 취업. 라인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덮쳐옵니다.
그리고 다 쓸어 갔습니다. 정말.

처음에는 단지 게으름으로 치부하기 시작해서 이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됬다고 느껴 학교 상담센터에 가기까지 3년. 상담까지는 그래도 받겠지만 약은 좀 그렇지 않나 하며 망설이며 보낸게 2년. 그래도 병원은 한 곳을 꾸준히 다니는게 낫지 하면서 1시간 거리에 그다지 효과가 없었던 약을 타러 1년. 거의 이십대 대부분을 이놈과 같이 보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병원도 가까이 있는 곳으로 옮겼고. 그 의사 선생님도 친절하시고. 병원도 꾸준히 다니고 있고. 이와중에 직장도 유지중입니다.

제가 왜 굳이 물어보지도 않는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우울증이 요새 부쩍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우울증도 주기가 있어 약간 더 좋아질 때도 약간 더 안좋아질 때가 반복되면서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더 심할 때가 있는데. 이번엔 좀 많이 심하네요.

그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이 회사에 있고 사람이고 거기다 매일 보는 상사. 동료이다 보니 아무리 회사 밖에서 좋아지려고 애써도 출근하면 다시 도루묵입니다.

원인을 제거하거나. 환경을 바꾸거나. 아니면 중이 절을 떠나거나 하는 많은 방법들이 하루에도 수천번씩 떠오르지만 이미 무기력해져버린 저에게는 어떤 방법조차 할 자신이 없더라구요.

수련회 마지막날 촛불식도 아니고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굳이 불편한 얘기를 여따가 쓰는 이유는.
그냥 좀. 아니 많이 답답해서 입니다.

금같은 여름휴가 4일을 온전히. 방안에서 병자처럼 누워 무기력하게 보내고 나니. 그 옛날 군대 휴가 나와서 방안에 처박혀 있던 생각이 나면서 너무 복받치더라구요. 10년동안 변한게 없나 싶기도 하고.

요새는 그 좋아하던 병원 가는 것도 싫어지고 다 피곤해 지네요.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은데 이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도 하네요.

내일은 그래도 병원을 가봐야겠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알고있는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