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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8/14 10:57:07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수정됨)
내일이면 광복절입니다. 1910년 대한제국은 강압에 의해 일본제국과 합방조약을 체결했고 한반도인들은 무려 35년 간 일본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미국의 원폭투하와 소련의 참전으로 일본이 항복하고 8월 15일 한반도는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소련과 미국에 의해 한반도는 양분되었고, 그 분단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시간을 더 되돌려서, 한 번 살펴봅시다. 

때는 1896년 - 아관파천 

당시 고종, 또는 애국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조선대신이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미 그때면 너무 늦은 것이었을까요?

사실 세력균형 측면에서는 청일전쟁 후 이때가 가장 적절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던 시기였습니다. 

청일전쟁 이전 청국은 조선을 사실상 보호국화하여 위안스카이가 감국정치를 시행하였고, 이는 이토히로부미가 총감으로 재직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청일전쟁을 계기로 청국 세력이 조선에서 완전히 구축되었고, 그 자리에 일본이 들어와서 무력으로 한반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도 잠시, 러시아와 프랑스, 그리고 독일은 그 유명한 삼국간섭을 시행하여 일본을 위협하였고, 일본은 대만과 배상금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러시아의 위협에 의해 일본이 완전히 위축되었다는 것은 조선인들도 잘 보았던 것이고, 친러파가 득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명성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살해됨으로써 조선 주재 외국 외교관들은 일제히 일본을 비난하였고, 조선에서 일본의 지위는 오히려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종은 신변의 안전을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아관파천입니다. 

한편 청국은 러시아가 일본을 위협하는 것을 보자, 러시아와 상호원조동맹을 추진하게 됩니다. 일본이 추후 중국이나 러시아영토를 침범한다면 상호원조를 시행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로써 청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 사이에는 묘한 균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와중 조선 정부는 민영환과 윤치호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파견하여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 그리고 비밀협상을 추진합니다.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조선 군대가 신뢰할 만한 병력으로 훈련될 때까지 국왕의 보호를 위한 경비병 제공
2. 군사교관 제공
3. 고문관들. 국왕 측근에서 궁내부 일을 돌볼 고문 1명, 탁지부 고문 1명, 광산과 철도 고문관 1명 등 제공
4. 조선과 러시아 두 나라에 이익이 되는 전신선의 연결, 전신문제 전문가 1명 제공
5. 일본 빚을 청산하기 위한 300만 엔의 차관 제공

그런데 이는 민영환의 구두요구로, 서면요구가 아니었고, 당시 담당자 로바노프는 서면으로 다시 제출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물론 이는 핑계였고, 사실 이 요구를 받아들이건 러시아로서도 부담되는 것이기에 (특히 차관 부문) 완곡히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민영환은 로바노프에게 다음과 같은 메모를 전해주었습니다. 

“조선은 몇 해 전 러시아와 함께 두 나라를 긴밀한 우호관계로 삼는 비밀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지원을 믿고 있기 때문에 1894년 이래 일본이 요구했던 모든 것에 대해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계획을 이행할 수 없음을 알고 격노했습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조선인 반역자들과 함께 10월 8일의 범죄를 자행하도록 했습니다. 조선인들은 그 일이 잘못된 것을 깊이 느끼고 러시아에게 도움을 기대해 이렇게 5개 항의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는 단독으로 그 책임을 떠맡기를 조선이 기대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러시아가 도와준다면 조선 정부는 더욱 확고한 토대 위에 있게 될 것입니다.”

“돌아가신 조선의 왕후는 러시아 쪽에 기울었기 때문에 친일파에 증오를 산 결과 죽음을 맞았습니다. 동양 신문들은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에 공동의 영향력을 행사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그와 같은 협정은 갈등을 유발할 것입니다. 조선은 그런 협정에 의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국가적 재앙을 배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민영환과 윤치호는 니콜라이 2세를 직접 알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 자리에서 민영환은 대담하게도 로바노프에게 건낸 메모의 내용을 직설적으로 반복했습니다. 

이하는 윤치호 일기의 내용

"민영환은 로바노프 공에게 제출했던 메모를 그대로 다시 반복했다. 황제는 주의 깊게 들었다. 내가 “어떤 조선인 반역자들”이라고 말하자 황제는 “대원군”이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조선인이 바라는 것은 안정된 정부입니다. 조선인은 지난 3년 동안 생명과 재산의 안전감을 느껴 본 적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지금 조선이 안정된 정부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러시아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일본이 공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 조선인 관리들 사이에 당파적 음모를 조장하게 될 것이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심각한 분규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협정에서는 전쟁이든 평화든 조선은 고통만 받는 입장이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그와 같은 협정에 결코 동의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황제는 머리를 흔들면서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공동 영향력이 언급될 때마다 “아니,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나저나 니콜라이 2세가 조선사람이 반역자 어쩌고 하니까 바로 대원군이냐라고 하는 것도 신기하긴 합니다) 

그 다음날 민영환과 윤치호는 당시 동아시아 정책의 실질적 책임자였던 재무부대신 위테를 만나서 또 이어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위테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하는 윤치호 일기의 내용 

“러시아는 일본이나 다른 어떤 나라가 조선을 공격하거나 문제를 야기하지 못하도록 대처해 조선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매우 단호합니다. 그러나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될 때까지는 러시아가 매우 서서히 이런 정책을 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러시아 외부가 극동문제를 조정하는데 취할 수 있는 어떠한 조처도 잠정적일 것입니다. 현재 일본은 러시아보다 100배나 약하지만 조선에 가까이 있어서 조선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종국에서는 틀림없이 러시아가 우세해 질 것입니다. 귀하께서 요청하신 문제에 관해 (1) 군사교관들은 제공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2) 고문들 문제에 대해 우리는 한성주재 러시아 공사관에 장교들을 증원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이 당신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3) 차관은 조선의 재정상태가 조사될 때까지는 제공될 수 없습니다. 조선의 재정은 세관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러시아는 세관에 더 영향력을 행사해 믿을만한 담보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4) 경비병 문제는 조선 국왕이 스스로를 보호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그 분을 보호해줄 수 있겠습니까?(들어보시라!) 내가 만일 그분의 자리에 있다면 대원군을 위시한 모든 내 적을 처벌할 것입니다.”

차관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못했지만 소정의 군사교관 파견은 성사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이 몰랐던 것은 당시 러시아는 중국과도, 일본과도 계속 협상중이었다는 사실이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러시아에 직접 맞설 수 있는 힘을 아직 기르지 못했고, 또 러시아도 조선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 암담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과 집중을 해야 독립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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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4 10:59
수정 아이콘
다른걸 다 떠나서 조선내부적으로다가 너무 개판이라 정책적 일관성을 가지고 가기 너무 힘들다는게 모든 if의 가정을 어렵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은 저시대까지는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한 전제왕권의 마지막 시기라고 보는데 조선 말기에 들어서서 왕권이 제대로된 무력을 가져볼수가 없었지요..
aurelius
20/08/14 11:04
수정 아이콘
사실 그게 가장 크긴 하죠... 정부가 정부 기능을 수행못하고, 왕과 모든 각료들이 각자 따로 돌았던 막장 그 자체.... 하아...
패트와매트
20/08/14 11:04
수정 아이콘
대원군이든 고종이든 명성황후든 개별로 잘못한건 까더라도 직접 나라말아먹었다고 까는 건 좀 꺼려지긴 합니다. 그만큼 주변상황이든 물려받은 내부상황이든 힘들었다고 보이니... 그런의미에서 이시대 대체역사소설이 다른시대에 비해서도 참 보기 힘들더라고요
Je ne sais quoi
20/08/14 11:05
수정 아이콘
대원군을 안다는게 신기하네요. 다른 나라의 협상 내용까지는 몰라도 외교의 경험이 있으면 그런 분위기는 감지할 수 있어야 할텐데(그러면 이권을 내주고 러시아를 끌어들일 수도 있었을 거고), 그 정도 정보력을 가지지 못했겠죠.
aurelius
20/08/14 11:42
수정 아이콘
당시 러시아의 외국정세보고 프로세스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크크. 조선은 어디에 있는 나라고 거기 어떤 사람이 세력을 잡고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는 어떠하며 또 러시아는 조선에서 어떤 이익을 수호해야 하는지 이런 식으로 15분 브리핑 했을런지... 러시아가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이 엄청많고 뭐 불가리아, 세르비아, 러시아령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중앙아시아, 중국, 그리고 온갖 열강들의 사정까지.... 각 국가와 지역 브리핑만 해도 양이 엄청날텐데, 대원군을 기억했다는 것은 기억력이 꽤나 좋았던 모양입니다.
로즈헤어
20/08/14 14:12
수정 아이콘
(수정됨) 당시 동북아를 방문했던 유럽인 여행자나 선교사들 기록을 보면 그동안의 쇄국정책 때문에 안좋은 쪽으로 되게 유명했던 모양이더라고요.
깊이있는 평가는 아니고 "섭정으로 있던 왕의 아버지가 최근까지 나라문을 걸어잠그고 유럽인은 잡아죽였다더라. 지금도 호시탐탐 섭정자리를 노린다더라" 이런 식의 가십에 가까운 이야기들
독수리가아니라닭
20/08/14 11:16
수정 아이콘
저라면 강화도 정도를 99년 정도로 조차해 줬을 거 같습니다.
20/08/14 11:19
수정 아이콘
저는 이미 1884년 갑신정변실패이후로는
이미 식민지는 결정됐다고봅니다
러시아던 일본이던 미국이던...

1890년대 바로옆일본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었나보면 알수있죠
사실 1910년까지 버틴게 용한수준 아닌가싶어요
aurelius
20/08/14 11:37
수정 아이콘
보호국 내지 위성국은 가능성 높지만 반드시 식민지로 귀결되는 상황은 꼭 필연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20/08/14 11:31
수정 아이콘
미래를 아는 현재 입장이라면 닥치고 미국빨기

미래를 몰랐어도 원교근공 메타로 갔다면..
aurelius
20/08/14 11:37
수정 아이콘
당시 미국이 조선에 전혀 무관심했다는 게 함정... ㅠ 그리고 당시로서는 힘을 적극적으로 투사할 수단도 부족했고요. 조선도 미국을 끌어당기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점도 알고 있었죠.
20/08/14 11:40
수정 아이콘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었다면
영어시간에 빠따(아니구나.. 배트)로 맞지 않았을텐데 ㅠㅠ

물론 당시 미국도 아무 도움 안되는 극동의 못사는 나라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도 팩트
재간둥이
20/08/14 14:09
수정 아이콘
조선책략에서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조선도 그렇게 하려고했지않나요? 초반엔 미국도 조선에 관심갖고있었으나 생각외로 매력없는 나라라 이권만 빼먹고 손절한것으로 알고있네요 ㅠ
강미나
20/08/14 11:53
수정 아이콘
조선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기회는 갑신정변 실패 후의 10여년인데 이거 말아먹고 동학 터진 다음부턴 답이 없죠.
이 시기에 나라 운영을 제대로 해서 동학농민운동이 터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일본의 개입이 늦어졌으면 혹시.... 싶습니다.
20/08/14 12:24
수정 아이콘
일단 국제적으로 제대로 된 정보를 수급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하다는 데서 제대로 된 결정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봐야죠.

그런데 이런 외교력, 대외 정보력 부족은 단지 구한말 뿐이 아니라 조선왕조 시기 그냥 종특같은 거여서...
산밑의왕
20/08/14 13:46
수정 아이콘
조선왕조 600년간 조선이 중국, 일본 외의 나라의 정보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건 결국 마지막 100년정도인지라 뭐 어쩔수 없죠.
하늘 같았던 청나라가 그렇게 쉽게 서양세력에 굴복하고 일본이 러시아 싸대기를 때릴줄이야...
20/08/14 14:37
수정 아이콘
솔직히 뭘 해도 다 방법 없고 단 하나의 엔드게임은 러일전쟁때 뒤도 안보고 러시아에 올인쳐서 러시아가 이기게 하고, 위성국으로 버티다가 소련 성립때 손절치는 단 하나의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펠릭스30세(무직)
20/08/14 14:42
수정 아이콘
대원군 실각이 1860년대이고 청일전쟁이 1890년입니다.

그리고 고종은 그 30년간 놀랍게도 별로 한 게 없죠. 진짜 한게 없습니다. 한게 없으니까 역사책의 언급도 훨씬 짧아지고 사람들이 잘 못느끼지요.
패트와매트
20/08/14 14:49
수정 아이콘
철종사망이 1863년이고 대원군이 1873년까지 10년 집권했다고 보는데 잘못된 정보네요
펠릭스30세(무직)
20/08/14 14:57
수정 아이콘
이래서 머리가 나쁘면 죽어야..... 암튼 논지는 대원군 집권 기간보다 고종 친정 기간이 몇배는 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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