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ttps://ppt21.com/freedom/83807
<2>
https://ppt21.com/freedom/83836
##
어르신이 나를 끌고 간 곳은 공공근로를 하는 공원같은 곳이었습니다. 담당하는 관리자분과 친분이 있는것 같더군요. "원래는 안되는건데..." 라고 선심쓰듯 명단에 넣어주었습니다. 청소를 하거나 시설물을 정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르신 뒤를 쫒아다니며 부지런히 질문세례를 퍼부었습니다. 사무국은 뭐하는곳인지, 어떻게 하면 퀘스트를 끝낼 수 있는지, 세계선이 움직이면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별 소득은 없었습니다. 어르신도 잘 모르는 눈치더군요. 일당만큼 밥값을 하라는 일침을 듣고 일단 일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간단한 일이었지만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었습니다. 깨끗한 공기를 맡으며 근육을 움직이는건 기분 좋은 일이더군요. 무언가를 이리저리 정돈하고 깨끗하게 만드는건 정신을 맑게 해주는 힘이 있는것 같습니다. 햇볕이 잘드는 벤치에 앉아서 틈틈이 휴식을 취했습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겨울 하늘을 구경했습니다. 공기에 난반사된 햇빛이 투명한 다형체 무늬를 그리며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된 것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르신이 옆자리로 다가와 앉았습니다.
"어때, 집에만 있다가 일하려니 힘들지?"
"그럭저럭 할만한데요."
우리는 같이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행운의 편지를 받기 시작했는지 물었지?"
"네."
어르신은 주머니를 뒤져서 백원짜리 동전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말없이 동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믿지 않아도 좋아. 여기에 동그라미 8개를 더한 만큼 돈을 모은적이 있었어. 지금은 모두 날아가버렸지만. 오랫동안 노숙 생활을 했었어. 그때부터 행운의 편지가 날아오기 시작했어."
"네..."
"몸은 몇배 힘들지만 지금이 좋아. 숫자 놀음이 아니라 햇볕 쬐고 땀흘리고 작은 거라도 내 손으로 무언가 하는거, 그게 진짜 살아있다는 느낌을주거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앞으로 어쩔셈인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어르신은 남산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전망대라도 가 봐. 밤 풍경은 우리 같은 빈털터리들 보라고 있는거거든."
어르신은 그날 받은 일당과 함께 백원짜리 동전을 주셨습니다.
띠링~
----------------------------------------
퀘스트 <기초던전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세계선이 9% 이동하였습니다.(24/100)
----------------------------------------
##
일당을 탈탈 털어서 국밥을 먹고 남은 돈으로 장미꽃 100송이를 샀습니다. 꽃집 아주머니가 여자 친구가 기뻐할거라고 마음에도 없는 이야길 해주셨습니다. 잠시 꽃더미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켰습니다. 달콤한 향기 덕분에 씁쓸한 기분이 정화되는것 같았습니다.
꽃을 한아름 안고 뒤뚱거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송이씩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꽃을 내미는 손을 무심히 지나쳐버리더군요. 저는 포기하지 않고 노점에서 산타클로스 모자를 샀습니다. 그걸 뒤집어 쓰고 꽃을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별난 사람 다있네 하는 표정으로 꽃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놀리는 듯한 얼굴로 꽃은 받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일까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해버렸습니다.
"메..메리 크리스마스~"
병신처럼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평소와 다른 공기가 불어오는걸까요. 묘하게 들뜬 거리와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장식 때문에 어쩐지 감상적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지막 한송이는 오늘 하루 수고한 나를 위해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하늘은 주황빛에서 연보라빛으로, 점점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갔습니다. 발길은 자연스레 남산쪽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전망대 쪽은 역시 연인들로 가득했습니다. 펜스에는 메뚜기 떼가 내려앉은듯 빽빽하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어쩐지 숨이 막히는 풍경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연인이 실재하는걸까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시내는 하나둘 불빛이 모여들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것 같았습니다. '저 수 많은 불빛중에 하나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라' 어디선가 들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불빛은 고사하고 자물쇠 하나라도 지킬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에서 종알종알 떠드는 커플의 대화소리가 우울한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들려옵니다.
"오늘도 솔로... 라고 작성."
"잠깐 잠깐. 뭐가 솔로야?"
"아하하. 미안. 피지랄12 라는 사이트인데... 모두가 외로운 클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거 같아서, 나도 동참해보려고."
"거기 약간 이상한 사람들만 모이는 사이트 아냐?
"그렇긴한데... 좀 웃기긴 해. 크크"
"그럼 나도 크리스마스인데 일해야돼...ㅠㅠ...라고 써야지."
"아하하."
"크리스마스에 솔로라니... 모두 드립으로 하는 거겠지만 말야."
"아하하, 그렇겠지."
행복하게 웃으며 인파들 사이로 사라져버렸습니다. 펜스 밖으로 밀어버리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억눌렀습니다. 역시나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어져가는 커플 옆으로 여자 한분이 펜스에 매달린 자물쇠를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뭘 하려는걸까요. 갑자기 백팩에서 흉흉해 보이는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엄청난 크기의 절단기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물쇠 하나를 싹둑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걸 전망대 바깥쪽으로 던져버렸습니다.
뭔가 엄청난 사연이 있을것 같은 여자입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더니 저를 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해서 시선을 피해 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리자 앞에서 저를 내려다 보고 있더군요.
띠링~
지긋지긋한 알림음이 들려왔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해볼 틈도 없이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조건 반사적으로 설레어 버렸습니다. 남은 장미꽃 한송이를 그녀에게 건넸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핸드폰 좀 줘보세요."
"네?"
"폰이요, 핸드폰."
"아..."
잘 조련된 애완동물처럼 빠른 동작으로 핸드폰을 내밀었습니다. 그녀는 폰을 들고 무언가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처음보는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어쩌란건지?'
그녀는 제 눈을 보고 말했습니다.
"저랑 섹스 하실래요?"
'뎅그렁~ 뎅그렁~' 중세풍 성당에서 울려오는 것 같은 장엄한 종소리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30년간 지켜온 동정을 이렇게 간단히 넘겨버려도 괜찮은걸까요. 발렌타인도 30년산이면 꽤나 먹어준다던데...저는 대답을 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핸드폰의 알림창을 클릭했습니다.
----------------------------------------
<퀘스트 SS급> 내..내가 고자라닛...
* 당신은 30살 크리스마스까지 섹스를 할 수 없습니다.
* 실패 패널티 - 죽음
* 보상 - 당신은 마법사가 됩니다.
* 세계선 변동률 +??% (??/100)
----------------------------------------
하...그럼 그렇지. 내 인생의 항상 이 모양일까요. 모쏠이 되는 능력에도 재능 같은게 있다면 저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죽는건 두렵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란 생에 대한 애착이 있는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사항이었죠. 어쨋든 이런 식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기분이듭니다. 이유를 알아도 달라질건 별로 없지만 영문도 모른채 죽는건 싫거든요.
"싫...싫은데요."
그녀는 말없이 펜스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를 기어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놀라 그녀를 난간에서 떼어 놓았습니다.
"왜...왜이래요?"
"그럼 지금 선택해요. 저랑 섹스하실래요, 술 마실래요?"
저..저기요. 이상한 선택지를 덧붙인다고 최초의 선택이 더 좋아지는건 아니라구요...
기왕 망해버린 인생, 섹스나하고 죽어버릴까 고민되는 자신이 싫어집니다.
"술..술이요."
그녀는 제 손을 끌고 출구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걸 크러시...? 매력 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