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o Domini
“그러니까, 정확히 몇 년으로 가려는 거야?”
S의 질문에 해묵은 점퍼 차림의 K가 의자를 당기며 바짝 다가앉는다.
“설명이 필요하겠군.”
둘은 서로 비슷하다. 30대 중반의 주름살 없는 매끈한 얼굴. 하지만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얼굴 근육의 유연한 변화가 없는 까닭이다. 수백 년 전, 기어이 인류는 암을 정복했지만 미지의 영역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증거다. 쉬이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연스럽고 변화무쌍한 인공피부 개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어쩌면 둘이 비슷하게 보이는 건 외모 때문이 아니라, 40년 이상 대학 교수직을 맡은 탓에 가지게 된 80대 특유의 건조한 어투 때문일지도 모른다.
“목표 지점은 기원 전 6년이야.”
“왜? ‘그 장면’은, 기원 후(A.D)에 일어난 일이잖아? 라틴어로 ‘Anno Domini’니까. 지금도 우리는 그 날을 시작점으로 하는 서력을 사용 중이고. 뭔가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는 걸까?”
“있지. 머릿속이 온통 양자물리학뿐인 네가 모르는 여러 사실들이. 들어 볼 텐가?”
“물론이지.”
커피를 머금은 K는 서류 더미들이 무질서하게 점령하고 있던 책상에 잔을 내려놓았다. 사실 엉망인 곳은 책상만이 아니다. 원래 용도인 연구실이라기보다는 고물상에 가깝다. 수영장 크기의 바닥에는 두꺼운 케이블들이 방 이쪽과 저쪽으로 얽히고설켜 발 디딜 곳 찾기 어렵다.
“내가 떠나면 여긴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주면 좋겠어. 시내에서 떨어진 곳이긴 해도 10년 전보다 8배는 올랐을 거야. 자네 퇴직금보다 많을 걸?”
S가 웃었다. 실소였지만 여전히 표정은 없다.
“지난주에 자네가 서류 보냈잖아. 법적으로 이미 여긴 내 소유야.”
“아, 그랬었지.”
“그리고 여기 안 팔 거야.”
“왜?”
“지난주 행정실에서 내년에 있을 내 은퇴식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깜짝 놀랐어. 진짜 몰랐던 사실인데, 학부 명예교수는 고맙게도 퇴직금을 더 준다더군. 대학 후원회에서 공로금이 나오는 모양이야. 어림잡아 평교수의 2배래. 교수공제회 연금까지 받으면 앞으로 120년 정도는 끄떡없을 것 같아.”
“축하해. 그런데, 참나, 자네도 세상 돌아가는 데에는 정말이지 관심 없군. 어떻게 그런 걸 모를 수 있어? 진즉 알았으면 이 연구실 운영비를 더 내놨을 거고, 저쪽 방의 기계 완성 시간도 단축되었을 텐데.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야? 요즘 유행하는 바이러스라든지.”
“이런 황당한 걸 만들자고 한 자네보다는 정상일 테니 걱정하지 마시게. 실은 이 집, 안 파는 게 아니라 못 팔아. 생각해 봐. ‘인류 최초의 타임머신이 딸린 집 팝니다.’ 이렇게 광고를 내야 할 거란 말일세. 이 나이에 복잡한 일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야.”
“그러니까 팔기 전에 해체하라고 했잖아? 제발 말 좀 들어.”
“됐어. 귀찮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혹시나 K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포기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만약 돌아온다면 그곳은 여기일 것이다. 하지만 돌아올 가능성은, 두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공동 제작한 타임머신의 기능을 생각한다면 0에 수렴한다.
두 손바닥을 삭삭 비비며, 드디어 K가 본래의 교수다운 자세를 갖췄다.
“잡설이 길었군. 이제 강의를 시작해 볼까나. 먼저 ‘그’는 언제 태어났을까?”
“아까 말했잖아. 서기 1년? 아니, 약간의 오차가 있으려나? 그렇다면 그 앞뒤로 1, 2년 정도겠지. 그런데 아니라며? 기원 전 6년?”
“그래. 그건 지금으로부터 6,302년 전, 한때 유럽이라 일컫던 지역의 한 수도사이자 학자의 오류였어.”
“오호.”
하나뿐인 수강생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한 것을 느낀 K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틈에 S가 다시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7살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벌써 72년째 친구로군.”
“이봐, 명색이 교수 주제에 강의 중 잡담하지 마. 그런 학생은 질색하면서.”
K의 뇌 속에 삽입된 2.5g 무게의 인공 프로세서가 작은 귀뚜라미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인공피부가 아니었다면 미간이 선명한 주름의 미간이 드러났을 것이다.
“‘Anno Domini’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6세기경에 로마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야. 자신의 저서 ‘부활제의 서(書)’에서 사용했지. 알다시피 이 말의 뜻은 ‘그리스도의 해’야.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를 로마 건국 754년이라 했어. 하지만 당시에는 정확한 연대 측정법도, 문헌학자도 없었지. 왜냐하면 당시는 세계 공통의 표준 역법이 필요치 않던 시대였기 때문이야.”
“알아. 인류가 시간을 ‘발견’한 건, 그러니까 과거로부터의 특정 지점을 산출하기 위한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한 건 서력 이후 한참 뒤니까.”
“진도가 빠른 학생이군. 그러한 이유로 훗날 그리스도가 탄생한 정확한 연도를 계산하고자 하는 여러 연구들이 있었지. 그중 가장 믿을만한 결과를 낸 건 17세기 즈음의 연대학자들이었어. 실제로는 약 4년 빨리, 기원 전 4년에 탄생했다는 결론을 내렸지. 아직까지도 그게 정론이야. 물론 나도 나름대로 연구했어. 그들에게는 심심풀이였겠지만 내겐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 다행히도 나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했어.”
“모르던 사실이군. 그런데 기원 전 6년으로 간다고? 혹시 찾을 시간이 필요해서? 2년 동안이나?”
“당시 베들레헴 지방의 면적과 예상치 못한 오차까지 고려했을 때 그래야 안전할 것 같아. 걸어다녀야 하거든.”
S가 농담을 던진다.
“언제나 오차가 우리를 골치 아프게 하는군.”
“오차는 태어난 날짜에도 있어.”
“12월 25일이 아니야?”
“절대로 아니지. 잠깐만 기다려. 커피를 좀 더 마셔야겠어. 이상하게 춥군.”
K가 연구실 구석으로 향한다. 여성의 몸매를 본 떠 만든 유려한 곡선형 몸체의 자판기 버튼을 눌렀다. 친환경 펄프로 만든 컵이 떨어졌고, 쪼르르 소리를 내며 K의 인생 마지막 커피가 채워졌다.
“루가복음 2장을 보면, 출생 직후 아기 예수를 포대기에 싸 말구유에 눕혔다는 구절이 있어, 같은 장 8절에서는 흥미로운 구절이 있지. ‘그 근방 들에는 목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요즘에야 자연 출생한 ‘진짜 양’은 품종보존청 사육장에나 가야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가축들을 들판에서 방목을 했어. 하지만 12월의 베들레헴 지방은 날씨가 추워 양을 풀어놓지 못해. ‘겨울’이 존재했던 시대니까. 보통은 우리에 가둬놓지.”
“그럼 언제야?”
“더 들어봐. 사실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한 건 354년 로마 교회였어. 그리고 그 날로 정한 가장 큰 이유는 274년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정한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탄생일’이기 때문이었지. 또한 12월 25일은 기독교 외의 이교도들의 ‘브루말리아 축제일’이기도 했고. 거기에 로마의 신 새턴을 축하하는 ‘새터날리아 축제’가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행해지던 때였어. 복잡한 이야기를 다 빼고 간단히 정리하자면 12월 25일이 성탄절이 된 것은 당시 로마 교회가 택한 일종의 타협이었던 셈이지. 다시 말해 1년 중 축제를 열기에 가장 적당한 날을 ‘고른’ 것뿐이야.”
S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분석된 날짜는 따로 있겠군?”
“그게 문제야. 이런저런 추측과 가설이 있지만 정확한 날짜는 아무도 몰라.”
“그렇다면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설마 베들레헴의 모든 마구간을 뒤질 셈이야?”
“걱정하지 말게. 이건 60년 전부터 세웠던 계획이야. 대비책은 가지고 있어.”
어련하시겠지. S는 침묵을 지킨다.
“기원 전 6년으로 날아가자마자 예수의 부모를 찾을 생각이야.”
“마리아. 그리고 남편의 이름이 아마.”
“요셉이지.”
“그렇군.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어.”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마리아와 요셉이라는 이름은 당시 상당히 흔한 이름이었거든. 마치 현 인류의 얼굴처럼 말이야. 신약성서에만 3명, 혹은 4명의 마리아와 2명의 요셉이 등장해. 물론 당시의 결혼 적령기였던 10대 중후반의 ‘목수’ 요셉과 아내 마리아로 한정한다면 일이 조금은 수월해지겠지.”
“기왕이면 아내가 혼전에 임신한 집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군.”
“그래도 문제가 많아. 요셉이 목수였다는 것 자체가 정확한 게 아니야. 기독교 전승일 뿐이지. 아니, 애초에 직업의 개념이 없었어. 일이 있을 때 목수에 가장 적합한 손재주를 가진 이웃을 찾아가는 시대였거든.”
문득 찾아온 오한에 몸을 떨며, K는 점퍼 안쪽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을 수 있게 설계된 납작한 장치를 꺼냈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시간여행 후 이 언어번역기가 고장 나는 거야. 이게 문제가 생기면 우선 말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이 나이에 히브리 방언을 처음부터 배울 수는 없을 테고.”
“벙어리 시늉이라도 해야겠군.”
“그것도 문제야. 지금에야 생소한 개념이지만 당시 장애인과 병자는 많았고, 그들 대부분은 사람 취급을 못 받던 시대였어. 당시 유대교의 교리 상 장애인은 조상이나 가족, 혹은 그 자신이 뭔가 야훼께 불경한 죄를 지어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중이라고 생각했거든. 장애인에게는 침을 뱉거나 돌팔매질을 하는 게 당연한 시대였지. 혼전 임신한 여자도 마찬가지야. 성서의 말이 사실이라면 꼭꼭 숨겨놨겠지.”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S의 표정 변화 때문이다. 행여 이 일이 잘못됐을 때 K가 겪을 모진 고난이 상상되자 얼굴에 감정이 흘러났다.
“괜찮아. 이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니까. 아무 일 없을 거야.”
S의 눈동자는 여전히 떨리고 있다.
“자네가 그리울 거야. 고마워.”
따뜻한 K의 말에도 S는 여전히 말이 없다. 친구의 어색한 침묵에 K는 연신 커피를 홀짝일 따름이다.
“기분은 어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나온 별날 것 없는 질문이다.
“담담해. 오랜 세월 오늘만 상상했잖아. 이제 확인할 차례야. 여태 내려오고 있는 인류 최고의 축제일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스도는 실제 인물일까? 정말 세상에 강림한 신일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일 수 있을까?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수 있을까?”
“우습군. 지금도 타임머신을 개발 중인 수많은 회사들 모두 거창한 이상을 말하고 있잖아. 그런데 고작 ‘그냥 궁금하니까.’ 이 이유로 시작한 우리가 가장 먼저 만들어냈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
“인류가 이룬 수많은 학문적 성취와 발견은, 기실 아주 사소한 계기에서 시작된 것들이니까.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단지 그뿐이야. 어쨌든 그냥 담담해. 테스트 과정을 건너뛸 수밖에 없다는 게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성공률 100%의 실험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냥 잘 되길 비는 수밖에. 아이러니하지만 지금 만나러 가는 그 사람에게 빌어야겠어.”
“걱정 마. 잘 될 거야. 그래야 이 연구실을 공짜로 받은 나도 마음이 편할 테니까.”
“다시 부탁해. 내가 떠난 후 여기를 해체해 줘.”
결국, 작은 도리질로 S가 진심을 전한다.
“이대로 둘 생각이야. 혹시라도 자네가 다시 돌아온다면 왠지 여기일 것 같거든.”
“아니, 미련은 없어. 미련이 있다고 해도 돌아올 방법이 없다고. 우리의 한계는 시간을 거슬러 특정 시간과 장소에 나를 이동시키는 장치를 만든 것까지야. 그다음은 만들지 못했어. 하지만 만들 수 있었다고 해도 그러지 않았을 거야. 다시 현재로 돌아올 경우 생길 수 있는 혼란과 변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거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자네는 알겠지?”
굳이 S의 반응은 확인하지 않은 채, K는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이제 가야겠어.”
밖으로 나선 둘은 백색뿐인 긴 복도를 지나 유리문 앞에 섰다. 생체 신호를 파악한 보안장치가 입장을 허락하자 소리 없이 좌우로 문이 열린다.
순백의 널찍한 방이다. 중앙에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애드벌룬 모양의 기계가 있다.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K는 기계에 앉았다. 이미 놓여있던 가방을 열어 성서, 예비용 인공지능 칩과 응급수리 킷, 갈아입을 옷을 점검하고 있을 때, 무미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천정에서 들린다.
- 생명유지 장치를 포함한 각 파트별 최종 점검이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아무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쿠션에 기댄 K가 긴 한숨을 뱉는다.
“준비 완료.”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계기판의 START 버튼을 누르면 인류 최초의 시간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남다른 감흥을 말하는 대신, K는 계기판을 꼼꼼하게 살피며 다시 한 번 모든 상황을 재점검했다.
“좋아. 완벽해.”
S가 팔을 뻗어 인류의 오랜 인사법을 청한다.
“잘 가게.”
“뒷정리를 부탁해.”
“그러지.”
“제발 여기는 팔아버려.”
손이 떨어질 때가 되서야 K가 답했다.
“알아서 할게.”
기계 옆 관제실로 들어선 S는 두꺼운 창문 너머로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다. 눈이 송아지마냥 그렁그렁해진다. K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렸다.
-잘 있게, 친구여.
따라가기라도 할 것처럼 유리창에 손을 얹는 S였다. 기어이 눈물이 흘렀을 때, K는 사라졌다.
‘그 사건’은 마구간이 아닌 진흙 벽돌의 어느 가난한 집에서 곧 일어날 예정이었다. 양 떼를 이끄는 목동도, 몰약과 향료를 준비한 동방의 학자 세 사람도,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 장식의 근거가 된 영광스러운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거대한 별도 없었다.
출산 소식을 들은 몇몇 이웃들이 보였다. 야훼께서 곧 태어날 아기와 산모를 지켜주실 것이라며 덕담을 주고받는 노인들이 보였고, 막상 치르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농을 했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남정네도 있었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모두가 기대한 청명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당장 집안으로 들어가 확인이라도 할 것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이 문으로 향했다. 마침 집안에서 황망한 걸음의 아낙이 등장했다. 기세가 어찌나 맹렬했던지 하마터면 문설주에 부딪힐 뻔했다. 노련한 솜씨로 명성이 자자한 오늘의 산파인 모양이다.
모두의 기대 가득한 시선을 만끽하던 아낙이 경망한 손짓과 함께 자신의 활약상을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 호들갑이 결론에 이르자 승전보 같은 환호성이 터졌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저마다 품 안에서 빵과 과실주를 꺼냈다. 누군가 주 야훼의 권능을 노래하는 민요를 선창했고 이는 곧 합창이 되었다. 기쁨 가득한 가락에 이끌린 다른 이웃까지 조촐한 축제에 합세하면서 골목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두 해를 넘긴 길고 고달픈 여정이 끝났다. 모든 것을 지켜봤지만 K는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청남색의 밤하늘이 유난히 높던 날 정도로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았다. 훗날 한 줄 정도는 추가할지도 모른다.
오늘 왕이 오셨다.
-Anno Domini [完]-
* 자료 참조 : 아시모프의 바이블 (아이작 아시모프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