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양장 한국 현대사에 웃픈 일들이야 어디 한둘이겠냐만은
이상하게도 내 가족사에는 그런 일들이 많았다
특히나 6.25는 우리 가족 어느쪽이건간에 운명을 죄다 비틀어놓은 사건이었다
6.25 당시 인천 상륙작전 때문에 인민군이 철수하기 하루 전, 아니 정확하게는 철수 했다가 도로 들어와서는 숨어지내다 나온 사람들을 싹 다 잡아들여서 총살했다고 한다
사망자 명단에는 내 외증조부가 계셨고, 그 일로 증조모는 홧병으로 돌아가시니 외동딸 하나 남았다
그리고... 권력이 공백을 허락치 않는 것처럼 이런 이야기에서는 매양 수양 같은 놈이 등장한다
진부한 클리셰지만, 클리셰라는 말이 붙는다는건 그만큼 빈번하다는 말이겠지
서울에서 곗돈 들고 튀어서 고향집에 얹혀 살던 양반이 그거 참 재주가 좋은건지 재수가 좋은건지
돌아가신 형님의 재산을 위해 그 외동딸을 채 14살이 되기도 전에 재빨리 시집 보내며 어차피 출가외인이니 변변한 혼수 하나 챙겨주지 않으셨으니
외할머니 당신께서는 죽을 때까지 자기 고향집에 가지 않으셨다
그리고 모든 현대사의 이야기가 그렇듯, 그들은 지금도 잘 먹고 잘 산다
뭐,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스스로가 대단한 자수성가를 한 것이라고 자식들에게 이야기 했다는데
인간성을 버리는 능력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
이후로도 외할머니는 도련님에게 유산 문제로 또 한번 더 통수를 맞았으니 팔자가 참으로 기구하다고 하겠다
하여간 흔하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정말 대단한 호구 가족사구나 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집안 자체가 전부 호구 팔자구나 하는 수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해방 전 친할아버지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공장에 사무직으로 계셨다
학력은 높지 않아도 그럭저럭 영민한 두뇌에 일처리도 괜찮게 하고 성실한데다 키도 180대로 당시에는 훤칠한 수준을 넘었으니
해방 후 일본인이 할아버지에게 공장을 맡기셨다고 했다
다만 여기에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 공장과 할아버지네 집은 인천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나자 피난길에 올랐다가, 인민군이 들이닥친 고향에서는 글 꽤나 배운 젊은이라는 이유로 어르신들에게 떠밀려 인민 위원장을 맡았다
이 사실은 이후 할아버지의 삶을 두고두고 발목을 잡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도 종종 궁금한 사실이다
과연 할아버지를 추대했던 사람들이 그걸 정말 몰라서 그랬을까 하는
아무튼 맥아더의 작전 이후 수복된 인천에 옷가지라도 남아있으려나 하고 가봤다고 하는데......
지금도 인천에는 높은 산이 없다고 하니 뭐가 남아있으면 이상한 일이었겠지
그나마도 여기서 수난이 그치질 않아 1.4 후퇴때는 국민방위군으로 갔다가 장질부사로 죽다 살아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로 경찰 시험에 높은 성적으로 합격해서 '장택상이가 직접 호명할 정도'로 기대를 받았으나
인민위원장 딱지가 무서워 이내 신길동 비탈길 판자촌으로 숨어버렸다
그렇게 할아버지란 사람은 한국에서 죽은 채로 죽을 때까지 죽어지냈다
P.S
물론 여기서 수난이 그치면 심심할테니 세상은 우리 가족을 위한 소소한 엿 하나를 더 까줬는데
1.4후퇴 당시 여차하면 피난가기 위해 나무에 매놓은 소가 다음날 새벽에 죽은 채로 발견됐다고 한다
그걸 발견하신 분은 할머니셨는데, 상술했듯이 남편은 국민방위군으로 차출돼 자리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발견된 소는 놀랍게도 뼈와 내장 말고는 남아있는게 없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소 판 돈으로 등록금 마련하기도 빠듯한 세상이지만 당시에는 꽤 거금이었을텐데
우리의 친절한 고향 이웃들은 호구 하나 잘 잡았으니 간만에 소고기 잘 무껬지 뭐
그래도 남은건 남은거니 손에 들 수 있는대로 내장을 들고 못 들면 바닥에 질질 끌면서 집에 가는데
새벽 안개 사이로 차소리가 들려왔다
차에는 미군들이 타고 있었는데, 꾀죄죄한 여인네가 피칠갑을 하고 뭔 못 먹을 것을 들고 새벽부터 돌아다니고 있으니 이 친구들이 여러모로 사연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들 중 하나가 내려서 이리 물어봤다고 한다
다베루?
하이, 다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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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다른 사람 등쳐먹고 배부르게 사는 사람이 많은건지, 아니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는건지...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자식도 잘 키워서 풍족하게 사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세상은 그렇게 정의롭지 않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