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가장 핫한 힙합 앨범을 꼽자면 씨잼 [킁]과 이센스의 [이방인]이 가장 많이 꼽힐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두 앨범의 우열을 가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포커페이스]에 메들리가 수록되지 않았었으니까요.
네. 전 씨잼의 [메들리]가 있었다면 2019년 한국 힙합의 No.1 앨범은 [킁]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2019년 한국 힙합의 No1. 싱글은 [메들리]입니다.
왜라고 생각하는 분과 거부감이 드는 분들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샘플클리어를 못해서 실리지 못한 곡을 이렇게 띄운다는 의문도 들 것이며, 누가 말하든 단정 짓는 말에는 가시를 품고 있고 사람들은 그 가시를 느끼기 마련이니까요. 아마 그 가시에 반응해서 “왜? 뭐 때문인데?”라는 마음이 드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한국 힙합을 아낄 수록 그런 마음은 더 들거고요. 좀 유연하게 갈게요. 가볍게 유튜브부터 볼까요?
빅쇼트의 씨잼 [킁] 리뷰입니다. 저의 감상과 매우 비슷하고 제가 훌륭하다고 하는 지점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만으로는 이 해의 No.1 앨범이 되기에는 조금 모자라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이 있잖아요. 플로우와 라이밍. 부드러운 발음을 통한 신선한 한국말의 활용.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의식. 테마. 그 주제의식을 정확히 표현하는 플로우와 라이밍, 한국말의 활용. 좋은 피쳐링.
[이방인]에 대한 설명이냐고요? 네. 하지만 [킁]에 대한 설명이기도 해요.
?? 그니까 저 둘의 장점은 대체로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있다는 겁니다.
그니까 [메들리]를 듣고 나면 [킁]이 다시보입니다. 아니, 다시 들립니다. 무슨 소리냐? 똑같은 노래가 왜 다시 들리냐? 근데 그래도 됩니다. [메들리]는 [킁]과 함께 존재하니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햄릿의 3장이 소실되어 발견되지 않았다 칩시다. 그래도 명작으로 존재하다가, 3막이 발견되고 몇 번이고 해석되고 회자되었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 때문에 이야기 전체가 다시 읽힌다고 말하는 건 불가능할까요?
전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가능하다는 말론 부족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메들리]는 그런 곡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느냐는 아래 음악과 함께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밑으로는 가사를 제 임의대로 구분했습니다.
> 시간아 그건 실수야 > 미안할 짓을 왜 왜 > 난 항상 그래 > 지킨 건 나 자신뿐이야
말하는 대상은 “시간”이고 전달하는 말은 “그건 실수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자조적으로 “미안할 짓을 왜 왜“ 이어서 “난 항상 그래 지킨 건 나 자신 뿐이야” 라고 말합니다. 화자는 "나"입니다. 해석할 부분이 적죠. 하지만 이 가사들은 바로 뒤를 해석하는 근거가 됩니다.
> 나는 못해 넌 나를 믿어줘 > 나는 못해 넌 나를 믿어 믿어
화자는 무언가를 못하고 ‘넌’ 나를 믿으라 합니다. 뭘 못할까요? 믿는 거겠죠. 나를 믿는 것. 그 자체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실수를 하고 ‘항상’그러며 지킨건 "나"뿐이니까요.
> Mama just killed a man > Put a gun against his head > Pulled the trigger now he’s dead
유명한 퀸의 노래를 인용해서 말합니다. “he”는 “나”라고 보는 해석이 꽤나 유명하죠?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이전에는 “너”에게 말했는데, 이번엔 “너”가 “mama”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겠네요.
> Mama I don’t wanna die > I just wanna be with Lucy > In the sky with fuckin diamonds
마마 난 죽고 싶지 않아요. 난 그냥 루시랑 있고 싶어요 하늘에서 다이아랑 함께. 루시를 꺼무위키에 쳐보니 빛이라고 나오네요. “나”는 하늘 밑에서 빛이라도 받으며 태닝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요?
유명한 해석으로 의역하면 마마 난 죽고싶지 않아요. 난 그냥 LSD나 마시고 싶어요.
이게 더 자연스럽겠죠. 이건 비틀즈를 인용한 거죠.
> 완벽하게들 다 뭔 오해를 해 > 가끔은 사고 같아 유명해진 게 > 성공이란 친구를 다 잃는 거래 > 그런 게 뭔 말 인지 난 모르길 바라
다들 완벽하게 전부 다를 오해합니다. 언어의 사용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완벽하게 오해를 하는데 다들 오해를 하고 전부 다를 오해합니다. 이 풀어 말하기 어려운 말을 “완벽하게들 다 뭔 오해를 해”에 꾸겨넣습니다. 아뇨. 꾸겨넣었다고 하면 실례죠. 이 언어는 “이렇게 쓰는 거야” 라고 말하는 듯이 씁니다. (펀치라인입니다?)
그 오해의 이유는 유명함입니다. 그리고 “성공”입니다. 근데, “성공이란 친구를 다 잃는 거”라네요. 그런 게 뭔 말인지 모르길 바란다는 "나"는 성공을 모르고 싶은 걸까요? 아님, 친구를 다 잃는 걸 모르길 바라는 걸까요? 아니면, 친구를 다 잃는 성공을 알고 싶지 않은 걸까요?
> 취한 여자들이랑 밤새 또 깨있어 > 오 마실수록 이뻐지게 돼있어 > 하루 종일 맛이 가있는 날도 꽤 있어 > 쟨 못 참고 또 한 알 했네 내일 걸 > 더 큰 죄로 죄를 덮을 거야 내일도 > 비뚤어질수록 여자들이 꼬여 더 > 오늘 너 말고도 만날 사람이 또 있어 > 자랑스러운 게 아냐 그냥 너무 재밌어
마실수록 이뻐진다는 건, 술로 인해 이뻐진다는 걸 뜻하겠죠? 이걸 앞의 가사를 가져오면 술로 인해 이쁘다고 “오해”한 거겠네요? 나 또한 “다들”에 포함해도 될까요?
그리고 그걸 죄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취한 여자들이랑 밤새 깨있는 것도 마실수록 이뻐지는 것도 하루 종일 맛이 가는 것도 못 참고 한 알을 더 하는 것도 바른 일은 아니라 죄라고 분명히 직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죄를 받아드리는 태도는 죄로 죄를 덮는 카드 값을 다른 카드 값으로 메꾸는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짓”입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삐뚤어질 수록 여자들은 더 꼬입니다.
이것도 자랑스러운 건 아닙니다. 그냥 재밌는 거죠. 아시다시피 재미는 올바름이나 해결책과는 무관한 말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어때요?
재밌는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상황을 해결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러면 안된다는 충고나 밑을 채워주는 게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게 재밌는 사람에게는 충고도 밑을 채워주는 것도 민폐입니다. 왜냐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자체가 재밌는 거고 재밌는 거 자체가 목적이니까요.
> 오오오오오오 > 오오오오오오 > 내 죄를 용서하소서 > 어디로 갈까 죽어서는 > 볼 수 있나 황탁을 또 한번 > 시계탑 아래로 바로 가면 > 칠린 할 것들 미리 말고서 > 침을 발라 펍 펍 패스
그러면서도 죄를 용서해달라고 빕니다. 죽음을 상상하고 자신이 죽은 뒤엔 어딜갈까 생각하다 자신의 죽은 황탁이라는 친구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교회일지도 모르는 시계탑 아래에서 다시 무언가를 피울 생각을 합니다. 이쯤되면 죄를 용서해달라는 건지, 용서 받든 말든 떨을 피우겠다는 건지 판단이 흐려집니다.
> 구름 위처럼 쩔 자욱해 > 비와이 얼굴에 뿜어버리게 >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 간지 빼고 나면 나는 거지네 > 간지 빼고 나면 나는 거의 폐인 > 자기 날 깨워줘 내일 > 난 죽을 것 같아 왠지
흐려진 판단처럼, 구름 위처럼 떨이 자욱하네요. 장난스럽게 다른 친구 얼굴에 뿜어버리고 할렐루야 아멘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간지를 빼면 거지고 폐인이라 말합니다. 이 가사에서 간지를 무엇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요? 약을 먹는 것? 여자가 많이 꼬이는 거?
“재밌는 거”죠. 여자를 많이 만나는 게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했고 그냥 “재밌는 거”라고 말했고 “약을 먹는 것”도 삐뚤어져서 여자가 많이 꼬이게 된 일의 부분에 불과합니다. 집합을 못해도 아실 겁니다.
무엇 보다도 앞서 “재밌는 거” 빼고는 그 무엇에도 "나"는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친구를 잃는 거란 “성공”에도 사고 같은 “유명함”에도 말이죠.
그러니, "나"의 간지는 “재밌는 거”입니다.
그런데 또 다시 죽음을 느낍니다. 실컷 “간지”나는 “재밌는 거”를 하다가도 자면 일어나지 못할 것처럼 “자기”에게 내일 깨워 달라고 부탁하네요. 여기서 “취한 여자들이랑 밤새 또 깨있어”라는 가사가 더 의미를 획득합니다. "나"가 밤새 깨있는 건, 취한 여자들이랑 있고 술을 마셔서 일까요? 아니면 자면 내일 죽을 것 같아서 일까요? 여기서 “Mama I don’t wanna die”가 겹쳐지네요. “mama”만 “자기”로 바뀌었을 뿐, “나”가 원하는 건 “don’t wanna die”가 아닐까요?
또, 바로 전 가사에서는 죽음 -> 황탁과 떨하는 상상 이었고 이번에는 비와이 얼굴에 떨에서 나온 연기를 뿜는 상상 -> 죽음이네요. 아름답죠. 그리고 슬프죠. 약과 죽음이 계속 함께 하니까요.
!! 이 가사 구분은 제가 임의로 한 게 아니냐구요? 탁월한 지적이십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임의로 했지만 잘 들어보시면 이 구분대로 플로우가 바뀌는 걸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네. 제가 임의로 했습니다만, 정말 제가 임의로 한 걸까요?
> 후회가 없게 사는 게 남는 게 > 어땠는지 이제는 뭐 헷갈려 꽤 > 원래 난 어땠는지도 오해가 돼 > 코카인에 폭행에 three some 오 예예
후회 없게 사는 게 남는 거라고 말했는데, 자신은 그런지 어떤지 헷갈려하는 "나"가 있습니다. 그걸 너머 원래의 "나"는 어땠는지, “내가 후회 없게 사는 게 뭔지” 혹은 “그냥 원래 나”가 뭔지도 “오해”가 됩니다. “코카인에 폭행에 three some”이 "나"일까요? 혹는 내가 바랐던 “후회 없게 사는 게” 되는 걸까요?
그건, “완벽하게들 다 뭔 오해를 해”버린 것들 아닐까요? 실제로 누군가 씨잼을 설명하면 “코카인에 폭행에 three some”으로 설명할 수 있겠죠. 근데 그 제 3자의 설명과 "나"와 내가 바랐던 “후회가 없게 사는 게”겹치네요? 왜냐면 “코카인에 폭행에 three some”을 언급한 게, 제 3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도 아니고 "나"잖아요?
그럼 아까말했던 “오해”를 했다고 하는 제 3자인 “들” or “다”는 "나"일 수도 있겠네요?
비약이라고요?
암시했잖아요. "he"라는 제 3자가 "나"일 수 있다고 퀸의 가사를 이용해서. 자, 그럼 완전히 같다고는 말 못해도 "나"도 그 일원일 수 있겠다고는 할 수 있겠네요.
> 외롭지 않아도 널 떠올리는 날 > 떨리는 가슴 위에 눈감은 널 눕히는 날 > 그걸 떠올리는 밤 > 준비할 거야 아마 yellow dia 가 > 어울릴 거 같아 이리 와 > 내걸 다 뺏어가
외롭지 않아도 널 떠올리는 날을, 떨리는 가슴 위에 널 눕히는 날을 외롭지 않아도 널 떠올리는 나를, 떨리는 가슴 위에 널 눕히는 나를
“나”는 외로울 때만 널 떠올리고 떨리는 가슴 위에 눈감은 널 눕히는 날을, 나를 떠올린다고 했습니다만, 정확히 ‘무엇’을 떠올리는 걸까요? 확실히 답이 될까요?
그럼 무엇 말고 “떠올린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봅시다. 옆에 있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을까요? 옆에 있는 건 그냥 떠올리면 됩니다. 떠올리는 건 지금 없는 거죠. 있었다 없어졌든, 애초에 없는 것이든요. 혹은 ‘치웠’을 수도 있겠네요.
“아마 yellow dia 가 어울릴 거 같아. 이리와. 내 걸 다 뺏어가.”
다이아몬드는 사랑과 헌신의 상징입니다. 옐로우 다이아몬드는 그 이상입니다! 노란색은 지식, 지성 및 지혜를 나타내는 색상입니다. 활기차고 낙관적 인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재미 있고 고상한 색상입니다. 노란색 다이아몬드 반지는 행복하고 사랑에 빠진 삶의 시작 또는 지속을 상징합니다.
라고 합니다. 그럼 이 “yellow dia”가 어울리는 건 "나"입니까? "너"입니까?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구분은 애초에 모호하기 때문에 구분하려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느끼니까요.
말씀드렸지만 이 가사는 "나"가 "너"에게 말하고 있는 가사입니다. 앞서 충분히 "나"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너"는 과연 누구일까요? 죽고싶지 않다고 말했던 대상인 “mama” 혹은 날 깨우는 “자기” 그건 혼란을 겪는 "나" 일수도 정말 제 3자인 “완벽하게들 다 뭔 오해를 해”의 “들”or”다”로 대변되는 "he" 일수도 있겠네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요? 하나하나 봅시다. “자기 날 깨워줘 내일”의 “자기”는 누구일까요? 아니 애초에 “자기”란 뜻은 애정표현으로의 “자기”가 있고 “자기”자신이라는 의미가 있죠. 의도가 전혀 없을까요?
아까 “들” or “다”로 대변되는 ‘he’는 나일 수있다고 말씀드렸죠?
정리하면, "너" - “자기” - "나" - “들” 이렇게 될겁니다.(절대 =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말씀드렸던 구분하려는 행위자체에 의미가 없어지는 지점이 설명되니 - 표시를 해도 어색하지는 않을겁니다.
슬쩍 하나를 추가해볼까요. 이전에도 다이아에 관한 언급이 있었죠?
“ I just wanna be with Lucy In the sky with fuckin diamonds”
네. 아깐 의역했지만, 다시 보면, 나는 단지 루시랑 하늘에서 다이아랑 함께 있기를 원해요. 쯤 될까요? 이런 구절들이 가사의 수준을 끌어올려줍니다. 전혀 다르게 말했던 게 나중에 가선 이야기의 복선처럼 다시 읽히니까요. “나”와 “Lucy”가 있고 “diamonds”가 변주된 거죠. 이러면 “너”는 “Lucy”가 될 수도 있겠네요.
결국, “Yellow dia”가 어울리는 건 "나"와 "너" 모두가 됩니다. 그런 “나”는 “내 걸 다 뺏어가”라고 합니다. “Yellow dia”는 누구나 어울리지만 “나”는 “너”에게 “내 걸 다 뺏어가”라 했으므로 “yellow dia”는 이제 “너”가 가져갔을 수 있겠네요.
> 오랫동안 널 치울게 > 다시 본 날 멋지게 > 기억이 널 또 만질 땐 > 말로 설명하지는 않았으면 해
사실 처음 들을 때, “오랫동안 널 지울게”라 들었습니다. 그리고 “치울게”라는 가사를 확인한 순간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이토록 섬세한 한국어 활용을 하는 랩퍼는 없습니다. 지운 건 다시 쓴다 해도 이전과 다릅니다. 그러나 치운 걸 가져오면 같은 거죠. 그리고 지운 건 사라진 것이지만 치운 건 언제든 치우기 전으로 복원할 가능성이 있음을 내포합니다.
또, 지웠다면 혼란스러워 할 필요 없습니다. “널” 정말 지웠다면 고민할 필요 없잖아요. 근데 치우면 다르죠. 공부해야지 하려고 스마트폰을 치워도 스마트폰은 아른 거리잖아요. 고민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널” 언제든 데려올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지금의 “yellow dia”가 어울리는 심지어 가졌을 수도 있는 “널” 떠올리기만 하며 “코카인에 폭행에 threesome”으로 설명 되는 “나”를 ‘탕아’라 한다면, 치운 “널” 데려올 “나”는 ‘돌아올 탕아’라 불러도 손색은 없겠네요. 왜냐면,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여전히 “떠올리”고 “다시 본 날 멋지게” 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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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저는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 말했고 “너”와 “나”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이 가사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과거의 나와 변화한 나, 남들의 시선 과 나의 시선,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순수한 사랑을 했던 나와 쓰리썸을 하는 나, 하느님을 믿는 나와 하느님을 따르지 않은 나. 그리고 약을 하지 않았던 나와 약을 하는 나.
무엇이든 여러분의 여러분의 마음대로 상상할 여지가 있는 곡입니다. 가사 안의 언어들의 관계는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합니다. 이건 뭐고 저건 뭐고 라고 설명하지 않고 닮아있는 언어, 가사를 인용하면 “어울릴” 것 같은 언어들이 조화롭게 서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을 통해 [킁]을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기존 [킁]의 곡들이 비교적 “나”와 “너”에게 ‘무엇’을 말하는 지가 명확했다고 한다면, [메들리]는 그 관계 자체를 보여줍니다. 씨잼은 [메들리]가 앨범에서 가장 찌질한 곡이라 샘플 클리어가 된다고 해도 넣지는 않겠다고 말했지만, 찌질했기 때문에 더 솔직했고 [킁]의 안내곡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별개로 [메들리]의 가사는 [킁]보다 [초월]이라는 비와이의 곡의 씨잼 파트에서 더 잘 들려주고 있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죠.
끝으로, 왜 등장하지도 않은 탕아 얘기를 막판에 꺼냈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첨언 합니다. [메들리]라는 곡 자체와 씨잼의 모습이 이야기와 닮아 있어서 넣어보았습니다.
돌아온 탕아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닮았죠? 하지만 닮았을 뿐, [메들리]의 “나”는 아직 돌아오진 않았죠. 씨잼이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 영원히 “널” 버릴 수도 있죠. “다시 본 날 멋지게” 돌아올 것처럼 하고 안 돌아올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돌아오지 않는 탕아’가 되어 있을 수도 있는 ‘돌아올 탕아’를 환대하고 싶습니다.
--- 여담입니다만, 2019 No.1 한국힙합 싱글의 경쟁작은 [이방인]에는 없습니다. 저스디스의 [gone]이 경쟁작이었죠. 재밌는 건, [메들리]와 [gone]의 방향이 정반대를 향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번 더 말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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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이란 말 때문에 댓글 달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상징을 썼나 싶은 부분이 없어서요. 아마 상징이라 쓰신 부분은 너 - mama 와 같은 부분을 말하시는 거겠죠..? 그런데, 그렇다면 제 생각에 그건 상징이 아닙니다. 이 부분들을 이건 신입니다라고 하면 상징이 되지만 지금은 가사 내에서 하는 일이 비슷하다 수준이죠.
이를테면, 이런 영상이 있다고 쳐봅시다.
영상적인 이야기를 하면 무릎 꿇고 있는 남자를 매우 멀리서 찍은 화면 - 바닥에 앉아 양파를 써는 남자를 멀리서 찍은 화면 과 같은 화면에서 구도가 같다고 얘기하는 거죠. 이걸 그게 뭐가 닮았냐는 지적은 유효합니다만, 상징이 어떻다 말하는 건 유효한 답이 아니죠. 만약 한발을 더 나아가 "이것은 참회를 뜻합니다~ 어쩌구"와 같은 식으로 말하면 참회라는 상징에 대해서 말 할 수는 있겠지만 본문은 그런 글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힙합 곡으로 바꿔 말하면 최근 비와이의 [가라사대]의 가사 구조는 간단히
하느님
비와이
나머지랩퍼
와 같은 식으로(하느님 아래 비와이 아래 나머지로) 자신의 swag을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비와이는 그 관계는 계속 유지하면서 주님 - 하느님 - 그 와 같은 식으로 같은 하느님을 다른 언어로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흔히 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비와이의 앨범 내에서 "주님"이랑 "그"는 같은 말이겠구나 알아 듣죠. 그걸 보며 비와이에게 하느님이란 무엇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해석이 들어가기 때문에, 상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될 수 있지만, "주님"과 "그"가 같은 말입니다 라고 하는 건 상징을 말했다기엔 좀 모자라죠.
만약 씨잼의 [메들리]도 친절하게 주님이나 하느님, 그, 여호와 처럼 직관적인 말로 풀어 쓴다면 이 곡의 가사적 재미가 사라질겁니다. 저는 이게 이렇게 비슷해서 재미가 있다지. 이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or 상징적이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깊이있는 분석 재밌게 잘봤습니다 중간에는 좀 어려워서 따라가기 힘들기도했네요
저에게도 [킁]은 올해의 힙합앨범정도로 좋게 들은앨범인데요 처음 들었을때의 그 특유의
퇴폐한, 황폐하고 황량한 바이브에 약빤, 소위 dope한 바이브가 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행위나 표현의 옳고그름을 떠나서 예술로서 봤을때 너무나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씨잼을 좋아한다거나 힙합을 특히좋아한다거나 한건아니라
메들리라는 곡은 이글에서 처음들어봤는데 이 곡도 너무너무 좋네요..!
사실 이런 곡 분석이라거나 올려주신 킁 리뷰 영상? 같은건 제가 해석하는 좋음이 무의식적으로 남의 설명에 따라가는 느낌이라 잘 안보는 편인데
이 글은 꽤나 잘 읽혔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아 그림자는 나의 패션 스탈~~ 가사는 그렇게까지 곱씹어 보지는 않는 편인데.. 잘 읽었습니다. 요즘 씨잼 스타일이 확실히 독보적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저 역시 킁도 좋았고요. 다만 색채가 너무 짙어서 앨범 구성이 단조롭다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다음 작에서 보완해서 나올 수 있다면 너무 기대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