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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10/22 09:54:05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메이지 유신을 만든 4명의 영국인

예전에 책을 하나 읽었는데, 일본의 근대화, 이른바 메이지 유신은 영국 외교관들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내용의 책입니다 <메이지 유신의 무대 뒤>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아무튼 메이지 유신을 가능케했던 이 영국인들이 일반적인 생각을 훨씬 초월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데요, 이들에 대해 간력히 소개 해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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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루터포트 올콕 경(Sir Rutherford Alcock, 1809~1897)

원래 의사 출신이었던 그는 1844년 아편전쟁으로 인해 개항된 중국의 푸저우 성에 영사로 부임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탁월한 행정 및 외교 능력을 발휘하여 1846년 상하이로 다시 발령 받게 되고 중국과 영국간의 무역을 관장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1855년에는 광저우 영사로 부임하고 그곳에서 영국 조차지를 진흥시키고 영국의 무역이익을 증대시키는 데 심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무역이익을 위해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파머스턴 경에게 재차 '무력행사'를 해야 한다는 서신을 보내게 되고 이것이 제2차 아편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아무튼 이렇게 화려한(?) 스팩을 가졌던 올콕은 1858년 일본에 부임하였고 일본 에도(현재 동경)에 주재한 최초의 영국대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이미 탁월한 능력을 선보인 그는 일본의 정치상황을 순식간에 파악하고 영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본의 국내정치에 깊숙이 개입합니다. 


영국은 원래 일본이라는 시장을 확보하고 확대하기 위해 일본의 중앙정부로 승인했던 막부를 지지하는 방침을 택하고 있었는데 1863년 사츠마-영국 전쟁을 계기로 그는 막부에 대해 실망, 내지 적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막부에 대한 여러 반감이 사실 '존왕양이'보다는 막부의 '무역독점'에 있었다는 점을 제빨리 파악하였기 때문이죠. 사츠마가 전쟁에 패하자마자 아주 열정적인 개국론자가 된 것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영국의 무역확대를 위해서는 막부가 아니라 각 '번'(영주)들과 직접 상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존왕양이' 과격파가 득세한 죠슈도 무력행사로 '개종'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쵸슈에 대해서도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 등과 연합해 포격을 가하게 되고, 쵸슈를 굴복시킵니다. 


그런데 이 원정 직후 그는 '대일정책 각서'라는 것을 작성합니다. 그 요지는 막부 지배를 대신할 '웅번연합정권'이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가 여러 차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각 번들의 자유무역을 통제하려고 하자, 그는 막부의 독재를 제약하고 번들의 자치권을 확대해야 영국의 이익이 확대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물론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동시에 내정간섭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는 무력으로 막부를 타도하는 것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웅번의 무역 참가를 보장하는 조치를 원했던 것입니다. 상호 양보와 타협을 통해 내란과 전쟁을 피해가면서 막부가 정권을 웅번연합에게 이양하는 것, 또는 마굽가 웅번연합 속으로 융화되는 것을 일본에서 정치적 개혁의 이상적 형태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야 혼란을 피하면서 시장을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막부는 웅번연합 등의 권고를 무시하고 '도쿠가와 절대주의'를 지향했습니다. 막부 입장에서 이거는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죠. 합법 정통 중앙정부가 지방의 반역자들에게 양보해야할 이유 따위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국 대사의 이러한 조치는 각 번들의 모험심을 부추기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콕은 귀국 명령을 받고 새로운 인물이 무대 위로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해리 스미스 파크스 경(Sir Harry Smith Parkes, 1828~1885)

HSParkes.jpg


그는 이력은 정말 화려합니다. 1차 아편전쟁, 2차 아편전쟁, 북경함락 등의 굵직한 사건 등에서 모두 활약했고, 시암(태국) 왕국과도 조약을 체결하는 등, 완전히 동아시아통이었습니다. 중국에서도 광둥, 홍콩, 톈진, 베이징, 상하이 등 수많은 도시에서 일을 했고, 태평천국과 중국(청나라) 정부 간의 중재도 시도하는 등, 대단한 정치적 감각을 지녔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는 1865년 올콕의 후임으로 일본에 부임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민한 정치감각으로 일본의 국내정치의 대세가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 파악합니다. 그리고 그는 동시대 영국인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프랑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와 일본에서 같이 일하고 있던 레옹 로슈(Leon Roche)를 싫어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막부의 절대주의를 부추기면서 자유무역을 훼손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외교관 레옹 로슈는 막부를 지지하는 대가로 온갖 특권을 따내고 있었습니다. 막부에 병기참, 제철소 등을 건설해주는 대가로 '생사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따냈고 신식 군대와 장비를 제공하면서 막부로 하여금 프랑스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들여오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파크스는 프랑스의 이러한 행위를 방관한다면 일본은 곧 프랑스의 영향권에 떨어질 운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그러한 행위는 영국의 '자유무역' 신조에도 반하는 행위였고요. 


이에 따라 파크스는 점점 쵸슈와 사쓰마에 기울게 되고 이들의 反막부 행위를 묵인하거나 또는 지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와 함께 활약한 또 다른 사람이


에른스트 메이슨 사토우 경(Sir Enrnest Mason Satow, 1843-1929). 

YoungSatow.jpg


그는 탁월한 일본어 실력으로 파크스 휘하에서 매우 중용되었던 젊은 외교관이었습니다. 그의 실력은 한문으로 아래와 같이 시를 쓸 줄 아는 정도였습니다. 



그는 아주 뛰어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여러 유력자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젊은 날의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사이고 다카모리 등이 있었습니다. 파크스가 그림을 그리면 그 그림의 디테일을 연결시키는 게 바로 사토우의 역할이었죠. 그는 아주 정력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의 유력자들과 만나면서 의견을 나눴고 또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지인들과도 상당한 친화력을 발휘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그의 아내가 일본인이었을 정도였습니다. 


Satow's Japanese Wife

Photograph


그리고 그가 쓴 기고문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도 했는데 그가 일본의 영국 신문 The Japan Times에 기고한 글이 현지인들에게 <영국책략>이라는 글로 알려지면서 엄청난 폭풍을 가져왔습니다. [<영국책략>에는 도쿠가와 막부는 수많은 영주 중의 한명일 뿐이며 왕이 아니면서 왕처럼 행세한다...따라서 권력은 천황에게 돌아가고 수많은 영주들로 나뉘어 있는 일본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영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었고 파크스도 이렇게 까지 극단적이게 나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토우도 이 글을 영국인들이나 읽는 신문에 사견(personal opinion)으로 기고한 글이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들은 이를 바로 번역하고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사쓰마번은 사토우의 <영국책략>을 영국의 공식적인 대일정책이라고 믿고 외압을 이용해서 막부를 쓰러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쿠가와 막부는 막부 주도의 개항에 대한 천황의 칙허를 얻어냄으로써 사쓰마의 명분을 빼앗아버렸고, 명분이 사라진 사쓰마는 정치적 술수를 이용한 '평화적' 쿠데타에서 '군사적' 쿠데타로 노선을 선회합니다. 


파크스는 처음에 군사적 급진주의에 회의적이었지만 쵸슈-사쓰마 연합이 우세해지고 천황 주도의 정부가 막부보다 안정적일 것이라는 판단이 서자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에 이릅니다. 대신 조건으로 도쿠가와 요시노부(마지막 쇼군)에 대한 처분을 최대한 관대하게 하라라는 압력을 넣습니다. 도쿠가와를 너무 궁지로 몰아넣으면 일본 정국이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쵸슈-사쓰마에서는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파크스가 아주 명백하게 이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하자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오쿠보 도시미치는 언제 사형을 주장했냐는 듯이 급 선회했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이들 둘의 눈에는 '도쿠가와와 유럽'밖에 안보인다면서 혀를 차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대 뒤에서 활약했던 상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 1838-1911)

Thomas Blake Glover.jpg


그는 Jardine Matheson & Co라는 상사의 직원이었습니다. Jardine Matheson & Co는 19세기 극동아시아 최대의 상회로서 아편전쟁으로 때돈을 벌었고 사업은 인도, 홍콩, 보르네오, 싱가포르, 상하이, 광둥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대 국제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아무튼 그는 1858년 녹차 무역을 위해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다양한 종류의 '불법무역'을 활성화시킵니다. 외국과의 무역을 막부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밀무역은 당연히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그는 무기류의 불법판매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사쓰마나 쵸슈에 많은 무기를 이런식으로 판매했습니다. 


그의 적극적인 밀무역(즉, 무기 공급)은 사쓰마나 쵸슈의 유력인사들과의 친분을 맺는데 도움을 주었는데 이 덕분의 그는 유신을 주도한 주요 인물들과 대부분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자회사의 선박을 이용해 1863년 쵸슈의 젊은 유력자 5명(이토 히로부미가 그 중에 한명)을 비밀리에 영국으로 보내고 1865년에는 사쓰마의 젊은이 15명을 영국으로 보냅니다. 당시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불법이었고 사형에도 처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회사의 자본과 네트워크로 쵸슈와 사쓰마에 상당한 특혜를 주었고 메이지 유신이 성공한 이후 일본은 제국 해군을 위한 첫 철기선 군함을 들여오는 사업권을 그에게 주면서 호의를 되갚습니다. 


그 후 글로버는 계속 일본에 머물면서 미쓰비시, 기린(KIRIN)맥주 공장 등의 설립에 깊숙히 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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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이야기를 보면 일본 국내정치 못지 않게 영국의 영향력이 정말 대단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대영제국이 괜히 대영제국이 아닙니다. 관가와 민간에서 극동아시아 깊숙히 개입해서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었다는 게...

특히 동시대 영국의 평범한 중산층 입장에서 일본은 듣도보도 못한 아주 멀리 있는 미개한 야만국에 불과했는데,

영국의 상인들과 외교관들은 일본의 국내정세를 손바닥 안처럼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군사력과 역량은 거의 중국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에 일본은 감사해야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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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괴발
19/10/22 10:08
수정 아이콘
인도조차 식민지로 만들 역량이 있었던 영국이
저 정도까지 파악해놨던 일본은 식민지 만들 생각을 안 한 것도 요상하네요.
정세를 생각하면 식민지 만들기엔 딱인 상황이었던거 같은데...
이미 침발라놨던 미국의 눈치를 봤으려나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하심군
19/10/22 10:10
수정 아이콘
거리가 가장 크죠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가성비도 떨어지고요.
개발괴발
19/10/22 10:40
수정 아이콘
사실 거리로 따지면 영국->호주, 스페인->필리핀 도 무지무지 멀었는데
값어치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식민지화했을거에요.
미국과 싸울 정도까진 아니다 싶지 않았을까요.
그러고보니 일본 집어삼키기엔 러시아 신경도 쓰였겠네요.
19/10/22 16:21
수정 아이콘
인도 식민화가 본궤도에 오른 이후로 영국의 식민정책은 공격적인 확장정책이라기보단 이미 가진것을 지키는데 더 힘을 쓰는 쪽으로(이미 충분히 가졌을 뿐더러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나름 벅차므로) 선회했습니다. 물론 이후로도 이집트나 아라비아 남부 등지에서 세력을 확장하긴 합니다만, 전략적 측면에서 보면 인도로 통하는 지중해-인도양 루트의 안보확보에 보다 가까운 측면이 컸죠.
19/10/22 16:24
수정 아이콘
실제로 영국의 인도 통치는 일본의 조선 통치처럼 하나의 총독부를 통한 일괄적인 직접지배라기보단 주요 요충지 위주로 확보하고 나머지 곳곳엔 현지 군주들을 남겨놓고 간접지배를 병행하는 형태에 가까웠죠. 아마 막대한 인구와 영토의 인도를 지배하기 위해선 그런 형태가 현실적인 한계였을 겁니다. 빅토리아 시리즈같은 게임상에 잘 구현돼 있죠.
개발괴발
19/10/22 17:14
수정 아이콘
만약 위에 댓글로 설명하신 바와 같이 식민정책이 선회하지 않았다면,
일본의 경우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식민화가 진행되었을 것 같네요.
주요 요충 몇군데를 조차/획득하고 나머지 영역의 다이묘들을 간접지배하는 방식으로요...
어떤 면에서는 영국이 배가 불렀던 것도 일본입장에서 상당히 다행한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오스맨
19/10/22 11:23
수정 아이콘
영일동맹이 생각보다 뿌리깊군요
닭장군
19/10/22 12:33
수정 아이콘
그래서 영일만친구라는 노래도 있죠
19/10/22 12:49
수정 아이콘
영일이만 친구면 저는 안되겠네요 흑흑
닭장군
19/10/22 12:50
수정 아이콘
인터넷친구로 만족하세요
블랙번 록
19/10/22 12:43
수정 아이콘
초대주한영국 공사 박해리 ..
11년째도피중
19/10/22 12:54
수정 아이콘
이토가 저 양반을 통해서 영국엘 갔군요.
흥미있는 내용 잘봤습니다. 아우렐리우스 님 게시물 늘 잘보고 있어요.
퀀텀리프
19/10/22 13:25
수정 아이콘
일본은 청과 조선을 이기는 길을 서구에서 보았고
청과 조선은 중화주의를 벗어나지 못한것이겠죠.
여름별
19/10/22 20:03
수정 아이콘
와 좋은 글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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