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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16 18:00:11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서평]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몽유병자들을
sleepwalkers christopher clarkì ëí ì´ë¯¸ì§ ê²ìê²°ê³¼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책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 전쟁이 발발한지 벌써 100년도 넘었죠. 그런데 지구의 어느 곳은 이 전쟁의 결과로 여전히 신음하고 있죠. 중동이 그렇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의 혼란은 제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결과물이기도 하죠.

아무튼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바바라 턱만의 유명한 저서 [8월의 총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군주정과 왕족들의 시대였고, 제국주의의 시대였습니다. 이 책은 한편 저자가 직면한 냉전의 상황과 유사하여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죠. 두 진영으로 양극화된 세계, 군사계획의 경직성, 불필요한 군사도발에 대한 경고... 이 모든 것은 핵전쟁을 두려워했던 지도자들에게도 충분히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이 책을 읽고, 나는 [10월의 미사일]의 주역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바바라 턱만의 책이 냉전에 대한 고전적 서술이라 한다면, 이 책은 21세기 오늘날 세계와 더 유사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자국의 "세력권"을 넓히기 위한 여러 국가들, 그리고 그 국가 안에도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또는 음지에서 활약하는 "스파이 네트워크", "종교적-민족적 극단주의와 테러단체", 그리고 자국의 여론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중도성향"의 지도자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해 보다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크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첫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정치상황입니다. 저자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내부로부터 썩어들어가는 국가가 아니었고, 발칸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등 실제로 많은 개혁을 시도하려고 한 나라였다는 수정주의적 관점을 채택합니다. 암살 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실제로 제국을 "연방체제"로 개혁하고 소수민족들에게 더욱 많은 권리를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6월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산산조각 났죠.그리고 오스트리아 제국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던 것은 세르비아 정부의 비호를 받는 테러단체였습니다. 이들은 이미 이전에 테러를 통해 세르비아 정부를 전복시키고 권력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그 당시 세르비아는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9/11 당시 빈라덴을 비호하던 아프가니스탄이었고, 오스트리아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강력히 대응해야 하는 미국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죠.  

둘째, 저자는 1914년 이전 유럽의 정치상황에 주목합니다. 이는 당시 대립했었던, 또는 뒤바뀌었던 동맹체제와 "세력권"에 대한 이야기이죠. 저자는 각 국가가 의사결정을 일사불란하게 하는 단일체가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각국의 세력관계뿐만 아니라 각 국가 안의 다양한 부처나 유력자들의 갈등, 이들의 개인의 야망 또는 성향, 그리고 이들의 선입견 등이 각 사건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셋째이자 마지막으로 7월의 위기와 전쟁의 발발의 전개과정을 시간순서대로 추적합니다. 이는 계속된 오판과 과잉대응, 오해와 잘못들로 점철된 롤러코스터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오히려 독일의 (민간) 장관들이 "평화를 더 간절히 바랬"다는 것입니다. 반면 영국의 경우 전쟁이 아일랜드 독립운동으로부터 여론을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인식했고요.

그러나 저자는 어떤 한 국가나 단체 또는 개인을 탓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두에게 각각 적지 않은 책임을 지웁니다. 예컨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지나치게 과대망상적이었고 또 잔인했으며, 러시아는 이런 무책임한 단체에게 과도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도 러시아의 불필요한 전쟁에 동참하였고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의 문제로 끝날 일에 직접 개입하면서 판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이미 시작 된 후에는 누구도 이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제1차세계대전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전쟁의 발발은 누군가의 "범죄적" 행위 때문이 아니라 "실수"로 일어난 것이고,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몽유병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전쟁이 만든 세계에 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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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
18/11/16 18:15
수정 아이콘
저도 첫번째 얘기처럼, 오헝제국이 동유럽 소수민족들을 문화적으로 통합하는 정책을 펼쳤다고는 들었습니다.
지금 동유럽의 상황을 보면, 오헝제국과 같이 다시한번 유대감을 형성하기는 어려워 보여서 안타깝습니다.(저도 동유럽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요)
미적세계의궁휼함
18/11/16 18:42
수정 아이콘
'어제의 세계'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읽었던 오헝제국에 대한 내용이 새록새록 기억나네요. 시간이 나면 저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18/11/16 18:49
수정 아이콘
암살범의 총알이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니 오히려 2차대전의 개전보다 더 '21세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흥미로운 시선의 책 소개 감사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괜시리 1차가 아니듯이, 아무도 자신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군요...

나중에 2차 대전에서 독일군 기갑병과의 아버지가 되는 하인츠 구데리안이 '도대체 1차 대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라는 주제로 '전차를 주목하라 (Achtung Panzer)'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첫 장면을 독일군이 벨기에 국경으로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진군한 직후 벌어진 전투인 '할렌 전투 (Battle of Halen)'로 운을 뜨지요.

독일군 군부, 병사들 모두 나폴레옹 전쟁때나 보불전쟁 때처럼 하면 된다고, 전쟁의 시작과 함께 기병사단들이 국경을 넘어 프랑스군의 후미를 찔러보려고 했는데, 가장 먼저 국경을 넘은 기병연대에게 쏟아지는 벨기에군의 기관총사격. 말과 사람 시체가 뒤엉키고, 부사관과 장교들은 하던대로 하려고하는데 도저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계획대로 진군이 안되고, 순식간에 패닉이 독일군 모두에게 번지기 시작하며...
세종머앟괴꺼솟
18/11/1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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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외교관계, 인과관계도 너무 복잡하고, 범세계적인 첫경험이라 당사자들 전부 스스로가 뭘 하고 있는 건지도 명확히 모른채로 휘말려들어간..
몽유병자 비유 기가 막히네요
앙겔루스 노부스
18/11/16 20:36
수정 아이콘
제 생각으로는 결과적으로 볼 때 굳이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로시아의 책임이 크다고 보네요. 사라예보 사건에 국한해 보면,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한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 그런데, 이 문제가 사법이 아닌 국제정치의 문제가 되어버린건, 로시아가 세르비아의 뒤를 봐준다고 나서면서부터이지 싶은지라. 로시아가 뒤에 있으니, 오스트리아가 혼자서 쎄게 못 나가고 독일한테 문의해보니, 멍청한 빌헬름이 또 뒤 봐준다고 그러니 오스트리아가 쎄게 나가버렸고(물론 오스트리아는 개전전까지는 최대의 피해자였던지라 쎄게 나가는게 당연하지만) 막상 독일이 개입하기 시작하니 쫄린 로시아는 프랑스한테 문의하고, 이 기회가 아니면 독일한테 르방슈할 기회가 없다 + 만약 우리가 개입 안해서 로시아가 꼬리를 내리거나 패전해버린다면 독일을 양면에서 압박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한 프랑스가 역시 콜해버리는 나비효과가 결국 '단순 암살사건' 으로 끝났어야 할 사라예보 사건을 대전의 트리거로 만든지라, 사건국면에 한해서는 자제하지 못한 로시아의 책임이 크죠.

물론, 그 이전에, 세르비아인들이 (같은 남슬라브인들이 산다는 의미에서)자기 땅이라고 생각한 보스니아를 오스트리아가 병합해버린데 세르비아가 분노해버린 문제도 있고 그 전으로 가자면 범 게르만주의 범 슬라브주의가 하필 발칸에서 엇갈린 부분도 있고, 범 게르만주의가 왜 발칸으로 향했느냐하면,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에서 패배하여 서쪽 진출 방향을, 독일 통일전쟁에서 패배하여 북쪽 진출 방향을 잃은 오스트리아가 남은게 남쪽뿐이라 남진한 점도 있고... 로시아 입장에선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하면서 제일 먼저 좌절된 방향이 발칸 - 지중해방면이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레이트 게임이 사실상 로시아 패배로 낙착되면서 오히려 (영국의 견제가 완화되어)발칸에서 행동의 자유가 열려버린 것도 있고 등등...

제가 만약 어지간한 역사학자였다면 이 주제는 그냥 사석에서만 떠들고 공식석상에선 언급을 삼갔을거 같기도.
앙겔루스 노부스
18/11/16 20:43
수정 아이콘
아이러니컬하게도, 세르비아는 전후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오스트리아로부터 탈취함으로서 남슬라브인들의 통합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 유고슬라비아(남 슬라브인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성공하긴 했네요.

그 댓가가 저 전쟁인줄 알았다면, 그런 과정을 통해 이루고 싶진 않았을거라고 상식적으론 생각하고 싶은데, 1차대전 직후의 분위기는 반성보다는 뭔가 후비면 후빌수록 콧구멍 깊이 들어가는 코딱지에 시달리는 분위기였던지라, 결국 코를 한번 째지 않고서는 직성이 안 풀리는 흐름이었다는게 참...
불려온주모
18/11/17 12:58
수정 아이콘
2차대전은 누가 나쁜 놈인지 비교적 분명한데
1차대전은 정말 어쩌다 그렇게 된건지 알다가도 모를 전쟁입니다. 사라예보의 총성이 트리거가 된건 맞지만 그전까지 유럽 국가들은 나폴레옹 이후 백년동안 보불전쟁 말고는 국경선 좀 밀당하는 투닥거리는거 말고는 대규모 전쟁도 없었고, 보불전쟁도 프존심 상한거 말고 프랑스에게 그렇게 큰 타격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정도인데... 기관총과 참호의 등장과 맞물려 본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생지옥에 끌려간 느낌이죠. 일주일도 안되는 전투에서 양쪽 합쳐 백만명이 갈려나가는 느낌이 뭔지 상상도 안됩니다. 당시 각국 인구 생각하면 한 해에 태어나는 남자수가 오십만 내외 일텐데 그 오십만이라는 수가 멍청한 정치가의 선택과 무모한 지휘관의 돌격명령으로 일주일 사이 특정 지역에서 기관총 앞에 찢겨나가는 소식을 듣는다는게 세월호 삼백여명의 죽음 앞에서 이가 바득바득 갈리는 현대인 입장에서는 역사를 아무리 공부해도 이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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