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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05 00:51:23
Name par333k
Subject [일반] 옛날의 룸싸롱 여자 이야기.-完
*본 이야기는 일본의 고전이야기 '시나가와 동반자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어주석


도쿠가와: 당시 막부를 통일한 가문으로, 천하를 주름잡던 막부의 최대 세력 가문.

유곽: 에도의 요시와라(가게이름)로 대표되는, 기생들이 모여 사는 커다란 유흥술집. 현대의 대형 룸싸롱 같은 개념이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영업 자체가 몇 군데 없었기에 요시와라로 대표된다. 이들은 기생을 팔기도 했는데, 부인이나 첩으로 데려갈 때에 금전을 지급 하며, 팔려가는 여성을 '영전'한다고 보았다.

몬비: 새해 봄이 오면 손님이 주는 선물성 금전으로 새 기모노를 준비하는 것. 일종의 큰 축제처럼 여겨지며 춤꾼, 악사, 요리, 술 등을 준비해 옷을 갈아입는 행사를 진행한다. 가장 돈을 많이 낸 손님에게 첫 기모노를 풀어헤칠 권리를 주고는 했다는 설이 있다.

오이란: 유곽 여자의 창녀를 뜻하는 단어. 일반 창녀와는 다르게 함부로 유곽 밖으로 불러낼 수 없다.

다유: 가장 인기가 좋은 에이스 여성으로, 시중을 따로 드는 사람들이 딸려있을 정도. 오이란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오이란을 첩이나 부인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가장 큰돈을 냄은 당연하며 사가는 집안 또한 사회적 명망이 필요하였다. 손님을 거절할 권리가 있는 창녀.

이따가시라:  다유아래에도 여러 계급이 있는데 그중 고급 오이란을 이르는 말.





#7 꾸며진 장례식




그들의 계획은 간단하면서도 철저했다. 우선, 긴조는 정말로 죽은 것으로 꾸몄다. 오동나무 관을 짜고, 집안에 장례와 향을 준비했다. 그리고 노름판에 기웃거리는 자들 중 글 깨나 쓴다는 사람에게 글귀를 한 편 부탁했는데, 바로 오소메에 대한 긴조의 마지막 편지였다. 즉, 긴조는 동반자살에 가기 전, 오소메에 대한 마음을 마지막으로 편지에 적어놓은 것처럼 꾸며낸 것이다. 이 편지와 함께 긴조의 죽음을 오소메에게 알리고, 돈을 쥐어주며 간곡히 장례에 와줄 수 없겠냐고 부탁하면 그녀는 분명히 장례에 참가하게 되는 계획이었다. 관에는 푸르스름 하고 희멀건 분칠을 한 긴조가 죽을 때 함께 놓아주는 명패와 금전 등을 든 채 들어있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이 계획을 꾸민 사람들이 슬그머니 잠시 단 둘이 있게 해주자며 관과 오소메를 둔 채 긴조의 집 문을 밖에서 걸어버린 뒤 긴조가 관 뚜껑을 걷어차고 나와 오소메를 놀래 켜는 귀신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난 그들은 평소에는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노름꾼들이건만 이때만큼은 재빠른 행동으로 관을 구하고 향을 피우고 새로운 백의와 분칠용 화장품을 구하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틀만에 장례 준비를 다 끝낸 그들은, 드디어 오소메에게 찾아가기로 한다. 그들의 부탁이라 함은 장례에 오소메가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나, 유곽의 창부는 기본적으로 바깥에 데려나가기 위해선 돈을 쥐어주어야 했기에 금전도 두둑이 준비했다. 그들 중 대표격인, 긴조가 따르는 형님이 오소메를 직접 만나기로 결정하고 형님은 까만 색 옷을 준비해 입고 단정히 유곽에 들어섰다.




오소메는 이 까만 옷을 입은 손님이 기방에 들어오고도 전혀 웃지 않고, 자신의 말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음이 껄끄러웠다. 하지만 오소메 또한 유곽에 하루 이틀 몸 담은 여자가 아니라, 이 남자는 처음 유곽에 와서 긴장을 하나 보다 싶은 생각에 슬그머니 먼저 교태로이 목소리를 내며 손을 대려 했다. 그런데 그는 이내 슬쩍 손길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다고 느낀 그녀는 능청스레 물었다.




“어머나, 소녀가 그리도 맘에 차지 않으시나 봅니다.”


그러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남자는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실은 부탁이 있어서 이리 찾아왔습니다.”


오소메는 이제까지 창부로서만 살아왔다. 자신보다 커다란 남자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일 따위는 겪어본 적도 없었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신분으로 따지면 천하디 천한 그녀였기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이러지 마시라며 일으켜 세웠다. 부탁을 하는 사람보다 부탁을 받는 사람이 더 울 것만 같은 표정이 된 것이다.



“저는 긴조의 의형제 되는 사람입니다. 그대를 너무나 사랑했던..”



능청스럽게 긴조의 형처럼 굴면서, 그는 품에 갈무리한 편지 한 장을 꺼내어 오소메에게 읽어달라 청하였다. 오소메는 이미 이 남자가 무릎을 꿇은 시점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잃었기 때문에 별 다른 생각도 하지 못하고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긴조씨가 쓴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차분한 글씨체로 오소메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함께 동반자살을 함에 있어서 진심으로 큰 각오를 했다는 것도. 오소메는 그제야 긴조씨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한량도 한심한 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괜찮은 마음을 가진 사내가 자신 때문에 의미 없이 죽었다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조여오듯 아팠다.




한 편, 오소메의 얼굴빛이 점점 슬퍼지는 것을 눈치 챈 그는 속으로 딱 걸렸다며 쾌재를 불렀다. 그는 조심스레 챙겨온 금전주머니를 꺼내어 오소메에게 내놓으며 말했다.


“오소메씨에게 청이 있습니다. 이 친구의 장례를 지내고 있는데 혹시 와 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 친구의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비록 다시 함께 죽어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함께 죽는다 한들 이미 함께 죽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부디 가는 길 향이라도 하나 피워 주시지요.”



그러고는 마치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물론, 웃음을 참느라 그런 것이었지만 오소메는 이것을 알 길이 없었다. 결국, 오소메는 알겠노라고 대답했다.


“하면 언제 긴조씨를 뵈러 가면 될까요?”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긴조가 언제나 오소메씨의 몬비를 준비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 바, 몬비 때 입을 새 기모노를 입고 지금 당장에라도 와 주신다면야 기쁘기 그지 없을 것입니다.”



오소메는 조금 당황했다. 몬비에 입을 기모노란 새것이기도 하거니와 몬비에 돈을 낸 사람에게 최초로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안 된다고 말을 하려 하는 순간, 그는 또 다시 바닥까지 고개를 박으며 몇 번이고 부탁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오소메는 어쩌 할 줄을 모르다가 결국 제발 알겠으니 고개를 들어달라고 울며불며 간청했다. 결국 노름판의 계획은 아주 성공적으로 맞아 떨어졌고, 오소메는 이내 몬비에 입을 기모노를 입고 그를 따라 유곽을 나섰다.



긴조의 집에 도착한 뒤, 계획대로 그는 관 속에 놓인 긴조와 오소메만을 둔 채, 새벽에 경을 읊어줄 스님을 어서 데려오러 가겠노라고 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바깥에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나무로 덧대기 까지 하는 줄도 모르는 채, 오소메는 관 옆에 앉아 긴조의 집 안을 둘러보았다. 별 볼일 없는 가난함이 배어있는, 홀애비 냄새가 나는 집이었다. 앞에는 명패와 향이 놓여져 있었기에, 그녀는 재빨리 향을 붙이고 명복을 빈 뒤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편지를 읽을 때에야 울컥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새 기모노를 누구에게 들킬 까 싶어 빨리 벗어놓고 싶기도 하고, 긴조의 집이 워낙 가난해 작은 정 마저 뚝 떨어졌던 것이다.



그 때였다. 움직일 리 없는 관 뚜껑이 끼이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열렸다.






#8 돌이킬 수 없는





“꺄아악!”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관에서 멀어졌다. 벌벌 떠는 그녀의 앞에는 관 뚜껑을 힘겹게 밀어내며 핏기 없는 얼굴에 풀어헤쳐진 머리로 일어난 긴조가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문 쪽 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이미 문은 단단히 잠겨있어 흔들림 조차 없었다. 누구 없냐는 소리를 아무리 질러도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긴조는 당황해 하는 오소메의 모습이 너무나 고소했다. 그는 조금 더 과감하게 행동하기로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의 귀신이란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존재였다. 옛날 사람들은 인과응보나 귀신에 대해 철썩 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오소메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까지 있었으니 더 볼 것도 없었다. 지금처럼 귀신이 있고 없고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있다고 믿는 ‘신적인’ 대상이었기에 그 효과는 더욱 컸다.



오소메는 분이 다 지워지는 줄도 모르는 채 엉엉 울며 문을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긴조는 그런 오소메의 머리를 잡아 마루로 내동댕이쳤다. 오소메는 두 팔로 그 작은 머리를 감싸 쥐고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외쳤다. 긴조는 그런 오소메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한동안 관 속에 있었으니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는데, 이게 더 한층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같이 죽자고 하고서는 뻔뻔히도 살아있구나 오소메여..”


오소메는 차마 올려다 보지도 못하고 꺽꺽 대며 얼굴을 여전히 파묻고 있었다. 새 기모노가 어떻게 되든지 신경 쓸 겨를 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긴조는 으스대며



“고개를 들고 대답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네 년을 저승으로 끌고 갈 테다. 너 같은 년은 바로 지옥행 일 테지.”



그러자 오소메는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힘겹게 들고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긴..긴조님. 죄..죄송..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소녀가 긴조님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닥쳐라!”


“히이이익!!!”



긴조의 고함에 오소메는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긴조보다 더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긴조는 그런 그녀를 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욕정이 솟구침을 느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쯤에서 그만두어도 됬을텐데, 긴조의 머리 속에는 이정도 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가 손을 뻗자 오소메는 벽 끝까지 도망을 쳤다. 더 도망갈 곳이 없는 오소매는 이윽고 벽에 딱 달라붙어 공포에 눌려 이를 딱딱딱 부딪혔는데, 이제는 숨 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긴조는 말했다.



“용서받고 싶다면, 내 지금 여기서 널 한 번 더 안아야겠다. 귀신에게 안겼으니 다시는 남자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하면 목숨만은 남겨두마.”



긴조는 애써 웃음이 튀어나오는 걸 참으며 근엄하게 말했다. 오소메는 여전히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긴조는 그제서야 신이 나서 새로 산 오소메의 옷깃을 풀어헤치고 그녀를 탐했다. 오소메는 자신이 귀신에게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미 정신을 잃고 반쯤 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른 채 긴조는 한참이나 귀신이 된 기분을 맘껏 누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슬슬 상황이 정리되었겠다 싶어 문을 다시 열고 들어온 노름판의 형님들은 긴조의 반쯤 벗겨진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미친놈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며 낄낄대며 들어온 그들이었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금새 잿빛 낯으로 변해서 긴조를 밀쳐내었다. 긴조는 무슨 짓이냐며  뿔난 아랫도리를 겨우 추슬렀다. 그러나 그의 볼멘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그제서야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오소메를 보았는데, 그녀는 이미 정신을 잃고 기절해 있었다.



“이봐, 오소메! 정신차려!!”



노름판의 일당들은 오소메를 깨워보려 애썼다. 찬 물을 길어와 끼얹으며 뺨을 치고 몸을 흔들기를 수 차례, 그제야 오소메는 의식을 찾았다. 이미 새로 산 기모노는 완전히 버려져 있었고, 그녀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수 많은 남성들의 얼굴을 보고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또 다시 실신했다. 까만 복장을 한 험상 궂은 남성들의 얼굴을 보고 저승사자라도 생각났던 모양인지 이번엔 소피까지 지렸다.



“휴, 어찌 죽은 건 아니로구먼.”


그제서야 노름판 사람들은 긴조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런 계획은 없었던 게 아니었나. 저러다 유곽의 저 아가씨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짓을 한단 말 인가. 그러자 긴조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형님들, 제가 저 여자 때문에 차디찬 시나가와 강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생선장수 그물에 걸린 생선마냥 겨우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우리가 저 년을 생선마냥 좀 낚았기로 서니 그게 무슨 대수요? 그리고, 어차피 창부인데 돈까지 주고 데려왔으면서 그냥 보내는 것도 억울한 일 아니오? 나는 잘 못 없소!”



긴조의 뻔뻔함에 그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이내 그녀를 어떡하면 유곽으로 멀쩡히 보낼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본디 유곽 같은 유흥업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폭력의 비호를 받는 사업인지라, 아무리 별 장사의 값어치가 안 되는 여자라도 함부로 다뤘다가는 큰 봉변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여자의 상태도 너무 안 좋은 데다 의복마저 다 상했기에, 그들은 슬그머니 이쯤에서 발을 빼고 싶어졌다.




“긴조야, 험험. 우리가 돈을 내고 데려왔으니 데려다 주는 건 네가 알아서 해라. 우린 저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그러고는 마치 우리는 아무 잘못 없다는 듯이 뒷걸음질치며 각자 여러 핑계를 대며 긴조네 집을 나왔다. 긴조는 “집이 아주 물바다에 오줌바다.. 대체 이게 뭐람.”하며 투덜대고는, 아직 깨지도 않은 그녀를 자신이 들어있던 관 안에 대충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혼자 바닥에 질질 끌며 유곽으로 향했다.




유곽의 문지기는 왠 아침부터 이상한 놈이 커다란 관을 멀리서 질질 끌고 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자주 이 곳을 들락거리던 손님임을 알고 환히 반겨주었다. 긴조는 퉁명스레 유곽 안으로 들어서며, 오소메의 방 앞에 낑낑대고 여러 사람이 쳐다보는 가운데 관을 놓고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상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오소메는 흔들리는 관 안에서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함과 온 몸이 축축한 상태를 느끼고는 ‘아 드디어 내가 죽었구나.’하고 여겨버렸다. 길바닥에 부딪히며 심하게 흔들리는 관 안에서 멀미까지 느꼈지만, 어차피 죽었는데 하며 정신의 끈을 놓고 혼절해 버렸다. 결국, 유곽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목숨도 간당간당 한 상태가 된 것이다. 긴조는 오물을 뒤집어 쓴 오소메를 보고는 너무나 무서워 관을 뒤집어 오소메를 내팽개친 채 도망갔다.




그녀는 더 이상 유곽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정신이 이상해져 말도 행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유곽의 주인들은 오소메를 이렇게 한 범인을 찾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이것이 ‘긴조’라는 놈이 한 짓임을 알아챘다. 긴조는 그것도 모르고 벌벌 떨며 며칠 집 밖을 나오지 않다가, 자신을 찾으러 오는 자들이 없자 ‘오소메 정도는 어떻게 되도 별 일 없구나’ 싶어 노름판을 다시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긴조는 노름판은 구경도 못 해본 채 유곽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긴조가 집 밖에 나오기 만을 기다리며 이를 갈고 있었던 것이다. 긴조는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나으리, 제발, 제발 살려주시옵소서.”




유곽의 주인 앞에 상처투성이로 무릎 꿇은 긴조는 마치 오소메가 자신에게 빌 듯 빌었다. 유곽의 주인은 심드렁한 얼굴로, ‘오소메의 값은 족히 기백 냥 이상인데, 어떻게 하실 텐가.’ 하고 물었다. 긴조는 그 말에 입을 떡 벌리고는 덜덜 떨며 말했다.


“나으리, 저 여자가 어찌 기백 냥 입니까. 싸구려 중에 싸구려 아닙니까 말도 안됩니다 억울합니다.”



그러자 유곽의 주인은 푸하하, 하고 웃더니 이윽고 싸늘한 눈초리로 긴조를 쏘아보며 말했다.



“오소메가 지금 어떻다 한들 우리 가족이다. 나는 가족을 저렇게 만든 사람을 가만 두지도 않으며, 자네도 알다시피 유곽의 법률은 유곽의 저 대문 안에서는 도쿠가와가문의 사람이라 할 지라도 비켜나가지 못한다. 돈을 지금 당장 내놓을 수 없다면, 그 목숨을 내놓아라.”




결국 긴조는, 유곽에서 몰매 형을 당했다. 수많은 유곽의 기녀와 힘 깨나 쓰는 폭력배들이 돌과 몽둥이를 들고 긴조를 때리고 짓이기니, 얼마 가지 않아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만한 시체만이 유곽 한 가운데에 뒹굴고 있었다. 섣부른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두 명의 삶이 완전히 박살 나 버린 것이다. 유곽의 주인은 긴조의 시체를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원하는 대로 시나가와 강물에 다시 쳐 넣어라. 이번엔 낚는다 한들 고깃덩이밖에 더 되겠느냐.”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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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할을 쓴 글이 날아가서 손목에 파스 붙여가며 결국 썼습니다. 오기가 생기더군요.



마지막 편을 읽으신 분들은 기분이 편치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조금 설명을 붙이려 합니다.


원래 '시나가와 동반자살' 원어로 말하자면 '시나가와 신쥬'라는 이야기에는 전편/후편이 나뉘어 있습니다.
전편은 2편의 '무사계급의 남자가 허리가 빠져 일어나지 못했다'까지이며, 후편은 바로 3편으로 이어진 복수의 이야기입니다.
시나가와신쥬는 구전설화로서, 일본의 라쿠고(1인만담)에서 잘 쓰이는 명작 고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 이상 시나가와 신쥬의 후반부는 거의 공연에 올리지 않고 전편만이 계속 다듬어 졌습니다. 왜냐면, 바로 내용이 이러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관객들은 웃음을 찾아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시나가와 신쥬의 후편인 복수부분은 웃음만이 아닌 소름돋는 무서움과 찝찝함, 잔인함이 섞여 있습니다. 과거 일본 막부시절 무사계급이나 천민계급이 어떤 식으로 사람의 목숨을 다루었는가 생각하면 이러한 설화가 이해가 가지 않을 것도 없습니다만 메이지 유신이후 현대로 넘어오며 사람들에게 있어서 시나가와 신쥬의 후편은 듣기 껄끄럽고 불편한 이야기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시나가와 신쥬의 전편이 긴조의 우스꽝 스러움과 그 친구들의 허탈한 모습으로 우스갯스럽게 끝난다면, 후편은 그렇지가 못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시나가와 신쥬의 후편은 구전마저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 라쿠고가 별로 이야기 함이 틀리며 책마다 상반된 내용을 띄고 있다고 합니다. 이 후편의 시나가와 신쥬는 저 또한 후편의 개략적인 정보를 모아 각색한 것이지요.


즉, 본편에 쓰인 이야기는 시나가와 신쥬를 이용한 라쿠고 공연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저도 전편까지만 이야기를 각색해 쓰려다가, 후편까지 전부 이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전 후편을 모두 각색했습니다만, 다 끝내고 나니 여러모로 아쉬움도 많고 끝 맛이 영 좋지는 않은 이야기다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시나가와 신쥬 이야기 자체를 잘 안한다고 하기도 하더군요.



어쨌거나, 오늘 하루를 온전히 여기에 쏟아부었네요. 손가락과 손목이 시큰거려 죽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리플 보고 힘 냈습니다.


*본 시나가와 신쥬 이야기는 2005년 일본의 TBS드라마, 쿠도칸쿠로 연출/나가세토모야,오카다준이치 주연의 <타이거&드래곤> 10화에서 색다른 방식으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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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ipipi
13/02/05 01:04
수정 아이콘
오늘 완결까지!!! 감사히 읽었습니다. 마지막은 섬뜩하면서도 안타깝네요.
13/02/05 01:13
수정 아이콘
한시라 내일이 되어버린슬픔ㅜ
카라이글스
13/02/05 01:05
수정 아이콘
세편 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필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13/02/05 01:05
수정 아이콘
이야 너무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저글링아빠
13/02/05 01:07
수정 아이콘
대단하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3/02/05 01:1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이 글을 기다리는밤이 너무나도 길었네요^^
13/02/05 01:12
수정 아이콘
늦어도 9시이전에는 올라갈 글이었는데 6년차노트북이 한번뻗으며 한시간동안 멘붕하고 겨우한시까지 마무리했네요. 제 노트북 대신좀 패주시는게... 하...
도시의미학
13/02/05 01:21
수정 아이콘
와.. 즐거이 잘 읽었습니다.
아침점심저녁 모두 par333k님의 글로 마무리 하네요.
향기 알리섬
13/02/05 01:24
수정 아이콘
어디선가 봤던 내용인 것 같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고 있었는데, 예전에 본 일드에 나왔던 내용이었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13/02/05 01:24
수정 아이콘
2편까지는 경쾌한 발걸음이었는데 3편에선 너무나 무거운 뒷걸음질....그래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전 읽으면서도 귀신 흉내를 내서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결말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결말이 꿈도 희망도 사라져버린 회색강물속이라니....
13/02/05 01:46
수정 아이콘
와.. 기다린 보람이!!! 감사합니다!
화잇밀크러버
13/02/05 02:0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Je ne sais quoi
13/02/05 07:50
수정 아이콘
음... 잘 읽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서 깜짝 놀랐네요. 타이핑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설탕가루인형형
13/02/05 09:56
수정 아이콘
기다리다가 현기증 날 뻔 했잖아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13/02/05 10:01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
PoeticWolf
13/02/05 10:09
수정 아이콘
저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무료해서 죽을뻔했거든요 ㅜㅜ
13/02/05 10:55
수정 아이콘
결말이 섬뜩하네요...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메지션
13/02/05 11:07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뭐든 잘 풀릴때 선을 넘지 말아야 된다는 교훈을 가지고 갑니다.
오스카
13/02/05 12:1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Baby Whisperer
13/02/05 16:49
수정 아이콘
결론은... <현실은 시궁창>...?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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