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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6/04 00:52:32
Name fd테란
Subject [일반] 2011년 어느 늦은 밤 - 행복의 조건 -
글이 길어져서 한꺼번에 다 안올라가네요
부득이하게 둘로 나눠서 올립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27.


머리를 묶고 파자마를 입은 자매님이 문을 열어줍니다.

'뭐 이렇게 빵집이 안보이냐 저 끝에 시장까지 갔다 왔네.
너는 먹지 말고 이따 룸메님 드려라. 이거 미안해서 원...아직도 안왔음?'

'응, 아직도 안왔어. 고마워 잘 먹을게!'

'너 먹지 말고 룸메님 드리라고!'
'잘먹을게!

일어나서 준비한다고 한지가 거의 한시간쯤 다 된거 같은데 아직도 파자마차림에 화장도 안한거 같습니다.
에라이, 집에 들어오길 잘 했네요.
대충 아무렇게나 가방을 던져놓고 컴퓨터책상 의자에 걸터 앉습니다.


'아, 원래는 니네집에서 자고 가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가방에 츄리닝 바지도 하나 넣어온건데
이건 뭐 룸메님도 없고 괜히 갖고 왔다 저거.'
'맞나? 찜질방에서 입고 자지 그랬어? 거기 괜찮더나?'

'찜질방 알바도 아닌데! 찜질방 시설 별로 였던거 같다. 그냥 아저씨들 잠만자다가는 사우나 그런거 같아.
어제 찜질방 가는데 웬 후드티입고 모자 눌러쓴 여자랑 엘리베이터 같이 탔거든.
그 여자한테 찜질방 몇층이냐고 물어봤는데 5층이라고 대답하고 버튼 눌러주대?
그리고 그 여자는 4층 모텔에서 혼자 내리더라.'

'키읔키읔 왜 설레더냐?'
'그래 조금 설렜다 왜?'

자매님은 슬슬 화장을 준비하시고 저는 어제  제대로 못한 집구경을 합니다.

'오빠 여름 향기 봤나?'
'잘 모르겠는데 근데 왜?'

'그 손예진 나오는거 있다 아이가. 거기서 손예진이 플로리스트로 나오거든.
나도 그거 보고 예전에 플로리스트 될까 생각 해봤었다.
근데 알아보니깐 너무 어려울거 같더라.'

'플로리스트? 그러니깐 니가 새벽에 도매시장가서 꽃 받아오고 물 주고...
근처 노총각 은행원이 매일 꽃한송이씩 사가다가 어느날 고백하고 뭐 그런거?'

'아이다 고백은 무슨! 아무튼 너무 힘들거 같아서 포기했다.


'플로리스트고 뭐고간에 니는 현모양처부터 되기가 틀렸다.
싱크대에 이 빈그릇은 누가 먹은거냐 설겆이가 안되있네?'

'오빠는 먹고 바로바로 설겆이하나! 그럴 수도 있는거지?'

'당연히 먹었으면 바로 씼어야지, 현모양처 될려면 청소,빨래,정리정돈 하다못해 설겆이라도 잘해야 되는데
이게 뭐냐 애시당초 영 글러먹었네.'

'아이다! 난 돈많고 잘생긴 남자랑 꼭 결혼할거다.'

'그래 꼴 보니깐 애 둘 딸린 이혼남이랑 결혼하면 딱일거 같다.
아저씨 좋아하니 딱 그리로 낚이겠네. 아니면 내년에도 여기서 룸메랑 살고 있거나!'

'악담 하지마라! 내년에는 결혼해서 30평아파트에서 살거다!'
'왜 바다보이는 아파트? 제발 그래 주세요.'


대충 시덥잖은 잡담을 하며 책상에 앉아서 책상을 살펴 봅니다.
꽃혀있는 책들은 거의 전공서적이네요. 소설류나 자기개발서 책들도 몇권 보입니다.
세상에 2006년도에 선물한 '달콤한 나의도시'가 아직도 꽃혀있네요.

'여기 무역 어쩌구는 뭐냐? 룸메 전공이 무역이야?'
'아이다, 내 전공이다 나 복수전공했다 몰랐나?'

'복수전공이나 했었냐? 난 처음 알았다 하나만 제대로 잘 하지.
그러니깐 어중간 하지. 친구 취직 잘됐다고 배아퍼 하기나하고!'

'뭔데 진짜! 아 맞다 나 그 취직 잘된 친구한테 마음의 정리를 내렸다.
회사 취직하면 거기 남자들 소개시켜달라고 마구마구 조를거다.'

'이야! 대단하다. 그게 하룻밤만에 그렇게 정리가 나셨어?
소개팅? 니가 정말 사람이냐? 하하'

'소개시켜줄때까지 빨리빨리 졸라야지. 어제 오빠가 친구한테 그 편지쓸때 '잘되도 버리지말라고' 그렇게 말했다매?
그 이야기 들으니깐 웬지 좀 편해진거 같다. 나도 그렇게 할라고!'

'뭐 어찌 됐건 잘 해결됐으니 다행이네. 근데 회사남자 소개팅 시켜달라고 해결을 보다니...하하!'


자매님이 옷갈아입고 화장하시는 동안 어제 보다 만 최고의 사랑을 볼까하다가 내용도 기억 잘 안나서 집에 가서 보기로 생각하고...
집을 이리저리 구석구석 흩어 봅니다.
벽에는 인형이 꽤 많네요. 침대에는 커다란 티거인형과 곰돌이 푸 인형도 있습니다.

여자 둘만 사는 집에 칫솔도 참 많구요.
친구들이 자주 놀러와서 딱 한번쓰고 안 쓰는 칫솔들이 많다고 합니다. 과연? 모르겠네요.
책상 발 밑을 보니 부르마블이랑 커다란 체스판도 있습니다.
다시 슬쩍 빈둥거리다가 책장을 봤는데 빨간색 다이어리가 꽃혀있습니다.

뭔지 한번 펼쳐봤습니다.


'안된다!!'

빨간 다이어리를 잽싸게 뺏어가더니 다시 원래 제자리로 꽃아 놓습니다.

'뭔데?'
'내 일기다. 보면 안됨!'


일기를 책상 위에 저렇게 당당히 꽃아놓는 사람도 있나요?
그것도 룸메랑 같이 살고 친구들도 자주 온다면서 아님 나 보라고 냅둔건가?
보고싶은 욕망이 울컥울컥 하지만 그래도 얌전히 책을 꽃아 넣습니다.

자매님은 아 진짜 옷 입을게 없다 한개도 입을게 없다.' 중얼중얼 거리더니 옷을 골라입습니다.
설마 여기서 갈아입는건가? 그럴리가 없죠. 화장실로 가서 갈아입습니다.
에이 안되겠다 도저히 궁금해서 못참겠네요.

그냥 빨간 다이어리를 꺼내서 들춰봅니다.
정말 보지 말아야 할 내용이였다면 아예 뺏어가서 지 옆자리에 두고 있었겠죠.
손바닥 만한 다이어리에 페이지당 두쪽씩 다이어리가 써져 있네요.
매일매일 쓴거 같지는 않습니다. 글씨가 너무 작아서 읽기 좀 힘들긴 하네요.


정독은 하지 않고 몇장 넘겨보면서 쓱쓱 흩어보니깐

휴지 한통 다쓰고 울었다.
동현이랑 만나서 데이트 했다. 막가랑 데이트 했다.
최근 일기에는 긍정오빠라는 사람이 몇번이나 등장하네요.
긍정오빠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가장 최근 페이지에 자주 나오는거 보니 가장 마음에 있는 인물이겠네요.
긍정오빠가 최근 좋아한다는 그 둘째 오빠야 같기도 합니다.

근데 막가랑 데이트라니 막가는 제 옛날 닉넴인데 언제 데이트했지?
내가 아닌 또 다른 사람인가?


자매님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소리가 나옵니다.
얼른 제 자리에 책을 꽃아 넣습니다.
옷을 입고 이제 본격적으로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화장하는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다가 미친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미친소리인줄은 알겠는데 진짜 이러고 있으니깐 한 20년은 같이 산 친남매 같네.'
'키읔키읔 맞제? 오빠, 나 화장 눈 삐뚤어졌나 좀 봐줘.'

그렇습니다.
모든건 제 잘못입니다.


안경을 쓰지 않아서 눈화장이 삐뚤어졌나 볼려면 시선을 30cm 정도 맞춰야 합니다.
이놈이 작년 찜질방에서 계란을 한입 먹여주고서 나머지는 지 입속에 갖다넣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더니
오늘은 또 이런짓으로 삶의 시련을 겪게하네요.

만약 이게 절 가지고 놀려고 하는 어장스킬이라면 자매님은 태평양,대서양,인도양을 합쳐놓은 것 보다
어마어마한 어장을 갖고 있는 해적왕일겁니다.
근데 차라리 어장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잘 모르겠는데? 뭐 괜찮지않나? 소개팅 하러가는것도 아닌데 뭘 그래 신경쓰냐.'
'안된다. 이따 저녁에 연극보러 갈건데 예쁘게 하고 나가야지.'

누구랑 보러가는지는 안물어봤는데 아마도 여자일거 같습니다.
그렇게 또 한참을 낑낑대서 화장을 다 마치고 위에 걸칠 옷을 고르고 집을 나섰습니다.
가기전에 룸메한테 민폐끼쳐서 미안하다고 쪽지를 한장 남기고 갈려고 하는데...

자매님이 극구 말리더군요. '오빠 글씨 못알아봐 나정도는 되야 알아보지. 그리고 룸메 남친이 보면 오해한다.'
뭐 거창한 내용이라고 오해할꺼까지 에이 뭐 그냥 쪽지쓰던거 구겨서 호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섭니다.

'야, 집주소도 알겠다, 회사도 알겠다. 전화번호도 알겠다.
지금 내 손에는 니 사진도 있거든? 삐딱선 타면 너 정말 매장이다. 나 갈때까지 잘해라?'

'뭐래! 빨리 가자! 버스시간 안늦었지?'
'지금 한시니깐 밥먹고 가면 딱 괜찮을거 같다. 부산와서 밥구경 한번도 못했다.
부산에 왔으니 돼지국밥 먹어야겠지? 밥먹으러 가자.'



28.


자매님은 치마를 입고 또 하이힐을 신고 나왔네요.
뒤에서 다리를 슬쩍 봅니다. 종아리 아래로 빨갛게 단풍이 물든거 같습니다.
뭐 이제는 나이도 먹을만큼 먹어서 저런거 가지고 기죽고 그럴 짬밥은 아니지만...
그래도 레깅스로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치마입고 길거리를 활보하는모습이 당당하고 이뻐보여서 좋네요.

오래보고 있으면 들킬거 같아서 얼른 시선을 위로올립니다.

해운대 가서 밥먹고 갈까 하다가 그냥 근처에서 밥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집 근처가 그냥 모텔천국이라서 그런지 밥먹을 데 많네요.
모텔이 이렇게 밀집된 곳에는 밥 먹을때가 왜 이렇게 많을까요?
꼬꼬마인 저로서는 그냥 미스테리 합니다.

'빵집 찾으면서 올때 근처 국밥집 몇개 있던데...'

'이 근처 밥집은 많다. 근데 이 동네에서는 밥을 거의 먹어본적이 없어서 어디가 맛있는지 모르겠다.
내 지지난주에 전화하면서 아침에 울었을때 저기 골목에서 울었다.'

'난 아침에 가출했다고해서 얼마나 멀리갔나 했더니 집에서 백걸음이나 떨어졌나?
동네 슈퍼에 라면사러가는것도 가출이겟네 진짜!'

'진짜 그때는 우울했다. 아 저기 앞에 서울뚝배기 있는데 저기가서 밥먹을래?'
'저거 설렁탕집 아니냐? 우리동네에도 있는건데, 그래 저기가서 먹자.'

'근데 진짜 동네에 모텔 많다.  
예전에 서울에서 학원다닐때 친구랑 모의고사 보고 고기부페 가서 밥먹고 술먹은다음에...
둘이 알딸딸 하게 취해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 건너편에 술집들이 많은거야.
'물망초' '들꽃' 막 그런 술집들 있잖아?'

'맞나? 그래서?'

'마침 장사할려고 준비를 하는지 맞은편에서 문이 열리면서 막 거기 누나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거든.
근데 옆에 친구가 이런말을 하더라고!'

'뭐라고 했는데?'

'저 언니들 춥겠다. 얼마나 추울까. 진짜 와 그때는...
나도 한참동안 그 친구랑 같이 많이 춥겠다 얼마나 추울까
그렇게 버스올때까지 장사준비하는거 쳐다보다가 버스타고 집에왔다.'

'맞나? 그 언니 되게 순수하네.





부산에서 설렁탕을 먹게 될 줄이야...
그것도 서울 뚝배기 체인점!!
빨리 밥을 먹어야 해운대에 가서 바다 구경이라도 하죠.
돼지국밥은 나중에 또 먹을 기회 있겠죠.

설렁탕 두개를 시키고 자리에 앉습니다.

'부산와서 밥구경 처음 한다. 진짜 이러니깐 최후의 만찬같다.'
'뭔데! 아 티비 크다. 티비는 저 정도는 되야 볼 맛이 나지!'

'맞나? 저거 몇인치나 되지. 돈백만원 정도 주면 저런거 하나 살걸.
돈벌어서 뭐하냐. 티비나 사지. 연애도 안하는게'

'아빠가 결혼할때 혼수안보태준다고 내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돈모으고 집세내면 남는거 없다. 완전 쪼들리다.'

'어휴, 그런 가난뱅이 자매님한테 이렇게 멀리까지와서 하루종일 얻어먹기만 하니
이거 영광스러워서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뭐 또 언제 이런일 있다고 괜찮지?'

'당연하지! 마지막이니깐 해주는거다!'

설렁탕이 나왔습니다.
이틀간 밥구경을 못해서 그런지 참 맛있네요.
국물이 들어가니깐 좀 살거 같습니다.


'야, 머리위에있는 그 하늘색 머리핀은 어디서 사는거냐?'
'이거? 남포동에서 샀는데 왜?'

'남포동 어디?'
'그냥 남포동 돌아다니면서 가판대 같은데서 샀는데!?'

'학교다닐때 니 생일선물 머리핀 살려고 남포동을 막 돌았었거든.
근데 별로 마음에 드는것도 없고 막 커플들 사이에 껴서 가판대에서 고르기가 쉽지 않더라고
가게에 들어가도 영 눈에 안보이고 깡통시장까지 갔는데 거기는 더 없고...
백화점을 갈까 했는데 그때는 시간도 늦고 생각도 잘 안났어.'
에라이 그래서 그냥 책사고 케잌사고 꽃 사서 줬었거든.'


'맞나? 나도 오빠생일때 고시원에 미역국 끓여서 같다 줬잖아.'
'그 인스턴트 3분요리 미역국? 또 시계랑 뭐 있었더라.'

'아, 진짜! 내가 직접끓인거라니깐! 그런거 끓여서 갖다준적 생전 처음이였는데! 아무한테도 해준적 없다.'
'맛이 너무 훌륭해서 지금까지 인스턴트 미역국인줄 알았거든. 마지막에 알게되서 참 감동이네.
근데 그게 니가 미역불려서 막 볶아서 참기름넣고 끓였다는 거지?'

'진짜라니깐 그정도는 할 줄 안다! 왜 사람말을 못믿냐!'


엄마말고 여자사람이 끓여준 미역국이 인스턴트 요리인줄 알았는데...
마지막에라도 알게 되서 참 다행입니다. 그게 수제요리였다니!!
자매님이 토렌트 사용자라는것 만큼이나 아주 신선한 충격입니다.
수제초코렛 수체빼빼로 받아본적없지만. 수제 미역국은 받아본 셈이네요.


밥 먹는 속도가 제가 월등히 빠릅니다.
원래 밥먹을때는 속도를 같이 맞춰줘야 하는데 여자사람이랑 단둘이서 데이트를 별로 안해보니 이런 불상사가 생깁니다.

'뭔 밥을 그렇게 빨리 먹어?'

'미안미안 천천히 먹어라. 여자들이랑 데이트 할때는 밥먹는 속도를 같이 맞춰줘야 하는거구나.
이래서 연애같은건 글로 배우면안된다. 이런 일상생활에서 매너를 배워야지. 오늘 좋은거 하나 배우고 간다.'

'고맙지? 잘 배우고고 가.'
'너무 고맙다. 왜 아주 수업료라도 내고 가줄까?'

'아니 그건 필요없어 난 쿨한여자니깐!
그러고보니 친구네 커플이 돈까스를 먹는데 남자애가 다 먹고 돈까스 한 조각을 남기는거야.
그래서 왜 한조각 남기냐고 여자애가 물어봤는데 남자애가 '너랑 같이 먹을려고' 하는기라.'

'야 그건 더 웃기지않냐. 한조각남기고 여자친구 먹는거 빤히 쳐다보는게 더 압박일거 같은데?'
'하하하 그런가. 나 다먹었다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순간 자매님이 화장실 간 사이에 설렁탕 값 미리 내면 진짜 멋진 사람 되는건가요?
자매님이 화장실에서 나옵니다.

'이왕 얻어먹기로 한거 아침밥까지 얻어먹어야겠지?''
'알았다 알았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핸드크림을 바르고 입술에 립스틱인지 뭔지 바릅니다.


'아 맞다, 작년에 준거 그거 발라볼만하냐?'
'아 그거...내 입에는 뭐 들어간거 발라야 된다.'

'립스틱 괜히줬나. 여자들한테 선물 줄때 보통 뭐 줘야 되냐?'

'그냥 이것저것 많은데 악세사리 같은거 좋아하고 특히 귀걸이 같은거
그냥 악세사리 같은거 주면 잘 들고 다닌다.'

'그런거 취향 많이 타지 않나? 줬는데 맘에 안들면? '

'어지간해서는 다 끼고 다는데 또 화장품같은거 좋아한다.
가서 점원한테 물어보면 기본으로 된거 잘 추천해준다. 향수같은것도 좋고...
겨울에 모자 하나 받은거 있는데 그건 도저히 쓰고 다니지 못하겠더라.'

'여자 친구들끼리 뭐 선물 주고 받는건 있냐?'

'부산 친구들이랑은 그냥 생일때 만나서 모여서 노는걸로 끝이고 충주 친구들이랑은 주고받는데...
저번에 명은이 생일때 미경이랑 선물을 줬거든 근데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하는거야.
그래서 다음 생일때는 상품권을 줬거든. 근데 미경이 생일때도 상품권 주고 내 생일때도 상품권 받았다.'

'하하, 그런건 보통 부모님 선물 현금으로 드리는거랑 똑같지 않나?'


여자 선물 뭐 줄지 고민하시는 분들! 간단합니다.
상품권 상품권이 최곱니다.
밥을 다 먹고 지하철역으로 나왔습니다.
길도 잘 모르면서 앞서 가지말라고 자매님이 구박하네요.


'아 저번에 최원묵이 전화왔었거든.  
근데 맨날 전화하면 헛소리한다. 맨날 부산올까? 부산올까? 이런소리하고...'

'진짜 그러다 나처럼 오면 어쩔려고?'

'개는 맨날 말뿐이다. 항상그래. 또 언제 밤늦게 전화해서 막 헛소리 하고 그러길래...
귀찮기도 하고 졸린데다가 별로 할 말도 없고 해서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전화기 켜놓고 침대에서 자버렸거든.
근데 자고 일어나니깐 휴대폰 배터리가 꺼져있는거야.
핸드폰 키니깐 통화시간이 2시간50분 나왔더라.'


'그거 미친놈이네. 자는사람 전화기에대고 세시간이나 혼자서 횡설수설 했다는거야?'

'아니, 개도 나중에 잤다더라. 룸메가 그거보고 전화세 많이 나왔다고 꼬시다고 하대.
하긴 내가 전화건것도 아닌데 상관없다!'


저도 저지만 전전남자친구님도 참 한결같습니다.


'이렇게 보니깐 생각보다 별로 안커보인다?'

'하하, 지금 다리 벌리고 서있는거 안보이냐? 슬픈 이야기 하나 해줄까.
우리동네 버스는 천장이낮거든. 근데 부산버스는 천장이 높더라고.
그리고 서울 지하철은 지하철 문턱이 부산지하철보다 높아.

그래서 동네가면 머리로 버스 천장 다 쓸고 다니고 부산에서는 지하철 타고 내릴때마다
머리 한두번씩 박지 않게 엄청 조심해서 다닌다.'

'키읔키읔 그게 뭔데 웃기다!'

'이거 진짜 슬픈이야긴데 이게 웃기냐?
진짜 부산에서 살기도 했고 자주 오기도 했는데 맨날 가는데가 똑같네.
아직도 한번도 태종대도 못가보고 오늘 오면 보수동 책방골목도 가볼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네.'


29.

드디어 해운대입니다.
지하철 입구를 나오는 순간 돌풍이 불어 제낍니다.
날씨는 좋은데 바람이 엄청 부네요.
일단 해운대로 가기전에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습니다.


'얼레? 3시 50분차가 아니라 5시차에요?'
'네! 5시 버스에요.'

이별의 시간이 한시간 더 늦춰졌습니다.
표를사고 해운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부산상호저축은행이 보이네요.
자매님이 저기다가 일년짜리 적금 넣었는데 만기 한달인가 두달 납두고 망했다는 그 은행입니다.
원금은 이제 다 받았고 이자 2% 정도 준다는데 엄청 속쓰려 하십니다.
그리고 제 2은행에 적금넣은것도 망했다고 합니다. 마이다스의 손입니다.
저런애들은 절대 주식하면 안됩니다. 다시한번 위로를 건넵니다.


'내가 중학교때 심장 수술할때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간호사 누나들이 대변도 받아주고 소변도 받아주고 그랬었거든.
수술한 의사는 맨날 와서 '야 김간호사! 수술할때 저놈 고추봤냐?' 이런식으로 막 성희롱이나 지르고!

그때 볼거 못볼거 다 보여준 이후로 한 삼년간은 엄청 느낌 좋았거든.
내가 오늘 느낌이 딱 그때 중학교때로 돌아간거 같다.'

'맞나? 그때가 오빠 제일 좋았을때야?'

'아니다 그때는 내 인생 최강의 암흑기지.
아빠 돌아가시고 중학교 삼년내내 수술하고 아 진짜 눈물나온다.'

오늘은 아니지만 부산에서 곧 있으면 모래 축제를 하나 봅니다.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네요.
오랜만에 해운대를 오니 옛날 건물들은 안보이고 다 무슨 옷가게나 음식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알던 해운대가 아닌거 같습니다. 몇년밖에 안됐지만 그때는 좀 더 투박하고 약간 더 정겨운 느낌이였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해운대에는 참 사람이 많네요.

드디어 바다가 보입니다.

'하이힐 신었으니 모래에 들어가면 안되겠지?'
'응, 그냥 걸으면서 바다 구경이나 하자! 앗 태극기 아저씨다.'

'오, 티비에서 본적 있는거 같다.  
자전거에 태극기 꽃고 다니는 그 할아버지 맞나?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입니다? 이런데서 티비에 나온 사람을 다 보게되네'

'응 맞다. 사람 진짜 많네.'


이제 곧 있으면 6월이라 그런지 백사장 이곳저곳에서 비치발리볼 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시원하게 상의탈의하구요. 자세히 보니깐 외국인 같기도 합니다.
저만치 걸어가니깐 모래로 쌓은 큰 산이 보입니다.

'모래 축제 할려고 저렇게 쌓아놨나 보네.
옛날에 동네 뒷산에서 막 흙쌓아놓은데 있으면 올라가서 놀고 그랬는데...'

'맞나? 저거 보니깐 예전에 썸남이랑 여기서 '로맨틱 아일랜드' 본거 기억난다.'
'썸남? 썸남이 뭔데? 로맨틱 아일랜드? 그거 이선균 나온 영화 아니냐? 그거 개봉한지 얼마 안되지 않았나? '

'그게 언제적 이야긴데! 오현석이랑 헤어지고 나서 얼마 안되서 썸남이랑 그거 봤다.
그리고 썸남이 썸남이지!'

'그래?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열심히 살았구나.
근데 영 소득이 없네. 여기서 앉아서 바다 구경이나 하자'

썸남이라는 말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아, 그런걸 썸남 썸녀라고 하는군요.


바닷가를 걷는데 머리를 핑크색이랑 연두색인가? 암튼 염색한 엄청 이쁜 남자 둘이 서있습니다.
진짜 이쁘게 생겼네요.

'오빠 나 지금 저 두남자들이 게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미쳤지?'
그 말을 들은 제가 우뚝 섰습니다.

'가서 물어보고 올까?'
'안된다. 미쳤나? 하지마라!'

'진짜 물어 볼 수 있는데? 어릴때 되게 키큰 사람이 보이쉬한 옷 입고 있던적 있었거든.
옆에 사람들이 남잔지 여잔지 너무너무 궁금해하고 나도 너무너무 궁금해해서 물어봤거든.
근데 여자더라. 물어봐주고 올까?'

'하지마라!'


진짜 물어봐줄 수 있는데...
근데 물어보면 한대 맞나요?



'내가 어제부터 지금까지 한 말이랑 행동들을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여기오면 분명히 어느정도 자폭할 줄은 알았거든? 근데 진짜 이정도로 자폭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말하면서도 이게 무슨 엽기적인 상황이냐 싶다가 그 다음은 막 내가 측은해지는거야.
근데 이정도까지 오니깐 막 속에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진짜 미친거 같아. 도대체 이게 뭐하는 상황인지. 여기서 뭔 짓을 하고 있는건지...'

자매님 또 웃기만 하네요.
뭐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냥 바다 이야기 롯데자이언츠 유니폼입고 아빠랑 야구하는 꼬맹이 이야기
월급이야기 재테크 관련이야기 친구이야기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그냥 늘 그랬던 일상이야기 평범한 이야기들.


'오빠, 저기 재네들 오늘 처음 만난 사이 같지 않나? 완전 어색해보이지 않나?'
'그냥 친구들끼리 놀러온거 아냐? 열댓명 대보이나? 왜?'

'딱 보니깐 오늘 처음 만나서 노는 애들 같다. 아닌가? 아 광안리 정말 많이 갔었는데...'
'광안리 바다 보러? 아니면 남자들 꼬시러?'
'뭐 바다보러 간것도 있고 남자들 만나러 간것도 있고 암튼 자주 갔었다.'

오 걸렸다.

'진짜? 광안리에서 남자 만난 사람들중에 제일 좋은거 얻어먹은적은 뭔데?'

'회 얻어먹어봤다. 보니깐 거기 남자가 광안리에서 횟집을 하고 있는거야.
그래서 친구들이랑 회 얻어먹고 그랬던적 있다. 여름에 명은이랑 미경이랑 놀러오면 광안리 가기로 했다.

'그래? 니가 에이스야? 막 남자들 몰려오게 하는 뭐 얼굴 마담 그런거?'

'원래 그런거 안해도 가만히 있으면 남자들이 알아서 놀자고 한다.
그리고 에이스 같은거 절대 아니다. 난 말도 잘 못해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기만 한다.
부산 친구들 중에서는 어제 봤던 성미가 젤 이쁘고 충주 친구들은 미경이가 젤 이쁘다.'


'그럼 니가 2인자라는 소리네? 오 2인자 박명수 뭐 그런건가?'
'2인자 아니다. 그냥 나라도 혼자서 이쁘다고 생각하고 사는거지. 2인자 그런거 아니다!'

'그래도 한군데도 고친데 없잖아? 네츄럴 본 이현숙?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중딩때부터 지켜봤으니 내가 너 성형 안했다고 인증시켜줄게!'

'미쳤나? 누가 내 생긴꼬라지 보고 성형했다고 할건데? 웃기지 마라!'
'음 그런가? 하하 아냐 이뻐 성형 수술 하고 싶냐? 어디?'
'글쎄, 한다면 코랑...피부 박피 뭐 그런거 하고 싶다.'

'음 그래? 코가 큰..가? 작나? 피부는 뭐 사람만나는 직업도 아닌데 잘 모르겠다.'
'내 코다 크다 놀리지 마라!'

그만하면 충분히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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