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1/04/18 18:11:59
Name kapH
Subject [일반] 나는 비가 오는 날이 좋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 좋다.
비가 오는 것을 가끔은 냄새로 먼저 느낄 때가 있다.
공부든, 게임이든, 책이든 간에 집중하고 있다보면 열려진창문 틈새로 젖은 내음이 올라온다.
콘크리트 젖는 냄새, 흙 젖는 냄새, 풀잎 젖는 냄새가 뒤섞인 비오는 냄새에 나는 창문을 쳐다보게 된다.
이어폰에는 이런 날 어울리는 처량한 노래를 걸어놓고, 자판기에서 뽑은 싸구려 커피를 홀짝이며 습도 높은 날엔 유난히 잘 빨린 담배연기를 빗 속으로 날려보내고 있자면 역시 나는 비에 어울리는 남자야, 라며 같지도 않은 허세를 떨 때가 있다.

나와는 달리 비를 싫어했던 너가 생각난다.
나처럼 비오는 풍경을 보고 있을지, 아니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산에 짜증을 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예고된 봄비에, 하지만 쌀쌀해진 날씨에 얇은 봄옷을 입고와 춥다며 내품에 안기어 같은 우산을 쓰고 총총거리던 너의 모습, 소나기에 새로 산 가방은 지켜야 한다며 품에 안고 고집스레 뛰어가던 너의 모습, 장마철 나의 자취방에 들어오며 양말이 젖었다고 투덜거리던 너의 모습, 스산해진 가을 저녁 내리는 가을비가 적신 낙엽을 밟던 너의 모습, 차디찬 겨울 내리는 비를 내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카페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너의 모습, 그리고 우산이 다 막지 못한 빗방울에 젖은 너의 머리칼, 머리칼.

이 빗속에서 아마도 너는 나의 생각을 하지 않을거라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비오는 날 너와 같은 구름 아래 서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너와 같은 비를 맞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더 너를 생각하는 나를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너와의 접점을 찾는 나를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씁쓸해진 채 구겨버린 종이컵을 휴지통에 던져 넣고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나는 비가 오는 날이 싫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낼름낼름
11/04/19 00:21
수정 아이콘
저도 비오는날이 좋습니다!
빗소리도 참 좋고...
11/04/19 09:40
수정 아이콘
저도 비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대부분 비오는 날을 싫어하죠..

글을 읽고 나니 기형도 시인의 글귀가 생각나네요..


-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8532 [일반] 충격적인 동물 생체실험? [446] 나이로비블랙라벨9630 11/04/19 9630 2
28531 [일반] 나의 노래 [2] 늘푸른솔솔4166 11/04/19 4166 0
28530 [일반] 어제 강원도지사 후보 TV토론회에서 엄기영씨가 무너지데요. [49] 팔랑스9704 11/04/19 9704 0
28529 [일반] 애플, 삼성을 아이폰 아이패드 카피로 고소 [76] 단 하나8824 11/04/19 8824 0
28528 [일반]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만들겠습니다. [28] 엄마,아빠 사랑해요6189 11/04/19 6189 1
28527 [일반] 최소 비용으로 치즈 케익 만들기 [7] epic20208 11/04/19 20208 1
28526 [일반] 한국 축구 대표팀 세르비아, 가나와 붙는다 [10] 케이윌5529 11/04/19 5529 0
28525 [일반] 헤어지는 방법 [17] 츄츄호랑이6884 11/04/18 6884 3
28520 [일반] 양승호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 본 신뢰구축의 문제점 [58] 논두렁질럿7459 11/04/18 7459 0
28519 [일반] 나는 비가 오는 날이 좋다 [2] kapH4022 11/04/18 4022 0
28518 [일반] f(x), 에이핑크의 뮤직비디오와 애프터스쿨,김완선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13] 세우실6147 11/04/18 6147 0
28517 [일반] (스포주의) 나는 가수다 합류된 3인 [90] 타나토노트10421 11/04/18 10421 0
28515 [일반] 일본 애니메이션 계의 거장 한분이 가셨군요. [14] swordfish6621 11/04/18 6621 0
28514 [일반] 누구나 다 겪는 그 흔한 첫사랑 [12] 여노4885 11/04/18 4885 0
28513 [일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폭탄 터지면 집값 좀 내려갈까? [55] 나이로비블랙라벨6603 11/04/18 6603 0
28512 [일반] 내가 아닌 나 [10] 글곰4454 11/04/18 4454 0
28511 [일반] 임진왜란 해전사 - 5. 적의 소굴을 쳤으나... [31] 눈시BB7508 11/04/18 7508 4
28510 [일반] YG가 또 다시 2NE1으로 파격행보를 개시하네요. [36] 타테이시아8310 11/04/18 8310 0
28509 [일반] 별 다를 것 없는 하루 [4] 탈퇴한 회원4768 11/04/18 4768 0
28506 [일반]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83] 엄마,아빠 사랑해요10557 11/04/18 10557 0
28505 [일반] 여러분들은 어떤 타자를 기용하시겠습니까? [159] 강한구6880 11/04/18 6880 0
28503 [일반] pgr의 학생분들...모두 시험 잘보세요~ [11] 라울리스타4469 11/04/18 4469 0
28502 [일반] [중계글] 이청용 선발 FA컵 4강 볼튼 : 스토크 [123] Bikini4709 11/04/17 470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