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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9/04 22:13:44
Name 불륜
Subject [일반]  아버지와 바둑
  아버지께서는 지독한 바둑광이셨죠...

아주 어릴적 식사준비됐다고 기원으로 모시러 간 기억이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처음으로 바둑돌을 쥐게된 계기도 아버지였고 빠져들게 된 계기도 아버지였죠...

배울때 기본은 단하나 상대를 잡으면된다... 땅따먹기식으로 무조건 돌격앞으로 그러면서

축도 끝까지 다 가보고 안되는 수도 끝까지 다가서 다 잡아먹히고 씩씩거리면서 아버지와

많은 대국을 뒀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면서 어린시절에 바둑으로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냈었죠...

처음에 돌을 깔고 싶은대로 깔고 두다가 9점 8점 7점... 낮아지는 치수를 보면서 아버지도 얼른

요꼬맹이가 얼렁 치수가 맞아져서 맞수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한번도 정선으로 둬보지는

못했지만 아버지를 가장 쉽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바둑인가봐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그 뒤론 주위에 바둑두는 사람들도 없고 혼자 기원 가기에도

그닥이라서 바둑을 잊고 살았는데..... 고스트바둑왕이라는 만화책을 보고 다시 인터넷 바둑을

둬보기도 하고 기웃거려보기도 했는데... 예전 같은 애정이 생기진 않더군요...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pgr에 작은 바둑붐이 일어나서 다시 아버지가 생각나고 다시 두게되는

계기가  됐어요... 다시 두다 보니 이제 확실히 알겠네요....


내가 원한건 바둑이 아니라 아버지라는걸...

아버지와 다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걸 아버지가 어렸을때처럼 잘했다고 머리를 부비적거리는 느낌이라는것을......

아버지가 보고싶다는걸...

사람은 지나고 나서야 꼭 아는일들이 있나봐요... 지나지 않으면 모르는 일.....

멍청하죠... 한번도 아버지를 꼭 안아드리지 못했고 사랑한다는 말도 못했네요...

나이가 들면서 저도 남자라서 남자의 인생 아버지의 인생 아버지도 이렇게 살아오셨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고 해야할까요 어릴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도

이제 어른이 되니깐 다 이해가 되네요...

더 미안하고 더 보고싶은 아버지 .......

바둑은 아버지의 향기일까나요... 저한테는요......

혹시 아버지께서 바둑을 두실줄 안다면 오늘 수담한번 나누시면서 이때까지 못했던 얘기나누시는건

다들 어떠신지.... 아니시면 지인과 수담 나누시는건 어떤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해주신 디미네이트님께 감사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아 그리고 바둑 리그전 재미나게 하고 있는데 더 많은 관심 가지셔서 다들 신나게 해봅시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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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뚜루
09/09/04 22:30
수정 아이콘
어머니께서 하신 말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아들아, 니가 지금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지만 나중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면 모든게 다 후회스럽게 아쉽기만 할꺼다.
그러니 아버지가 니 눈앞에 있을때 싫더라도 내색하지 말고 잘 해 드려라"

사람은 자신이 키웠던 애완동물들이 죽고나면 후회하고 슬퍼하고 훗날 그리워 하는데, 하물며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얼마나 후회스럽고 힘들겠습니다. 아직은 제가 철이 덜 들어서 그런것인가 아니면 부모님이 살아계서서 그런가 부모님께 잘 못해드린게 있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 제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 겠네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09/09/04 23:19
수정 아이콘
저와 같은 경로로 바둑을 배우셨군요...
읽는 동안 찡했습니다...
요즘은 아버지와 실력차가 너무 나기도 하고 바둑에 대한 관심이 식어서 집에 내려가서도 아버지와 바둑 한판을 잘 안두어 드리는데...갑자기 아버지께 너무나 죄송스러운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잘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fd테란
09/09/05 01:0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탈퇴한 회원
09/09/05 03:3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Amy Sojuhouse
09/09/05 15:40
수정 아이콘
좋은글....저도 같은 경로로 바둑을 배웠죠.
아마 지금은 제가 대략 넉점을 접어드려야 하지만 그냥 호선으로 승률을 맞춰 드립니다.
바둑을 아버님께 배우신 이땅의 자식분들은 모두 아버님의 기우가 되드려야 하죠. 그럼요...
디미네이트
09/09/06 10:11
수정 아이콘
뒤늦게 읽게 되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난번 시합 관전할 때도 들은 이야기지만, 새삼 글로 보니 또 다르네요. 저는 아버지랑 이런 접점이 없어서, 나중에 뭘로 아버지를 추억해야할지... 그저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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