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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1/09 16:27:13
Name 강력세제 희드라
Subject [일반] 폴란드 여행기 6일차 - 브로츠와프 (data & scroll 주의) (수정됨)
브로츠와프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습니다. 새벽 5시 30분 쯤 눈이 떠졌길래, 곤히 잠든 아내를 호텔에 두고 혼자 거리로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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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길 건너로 바로 보이는 브로츠와프 중앙역(Wrocław Główny)건물. 이때 시간이 새벽 5시 48분. 그런데도 벌써 날이 환히 밝았습니다. 이 길이 여러 트램 노선이 교차하는 곳이다보니 여기저기 트램 전기공급선이 거미줄 마냥 어지러이 걸려있습니다.

대략 67만명 정도의 인구인 브로츠와프는 인구 기준으로 바르샤바, 크라쿠프에 이어서 폴란드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로, 돌노실롱스키에(Dolnośląskie: 번역하면 저지대 실롱스크) 주의 주도이기도 합니다. 10세기 전후 피아스트 왕조가 폴란드를 지배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브로츠와프를 포함한 실롱스크(Śląsk, 독일어로는 슐레지엔(Schlesien)) 지역은 폴란드 왕국의 영역이었으나, 이후 보헤미아 공작의 칩입을 지속적으로 받다가 1335년부터는 보헤미아 왕국의 영토가 되고 말았습니다. 16세기 전반에 보헤미아가 오스트리아의 지배권에 들어가면서 슐레지엔 역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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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지배하의 슐레지엔(실레지아) 지도. (출처 나무위키)

브로츠와프에 독일인들이 다수를 점하게 된 것은 이보다도 훨씬 더 예전이었습니다. 1241년 몽골의 침입으로 이 일대가 초토화된 이후 재건을 위해 독일인들이 대규모로 유입되었고, 13세기 중반부터 브로츠와프는 독일어 이름인 브레슬라우(Breslau)로 불리며 다수의 독일인들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도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1740년부터 벌어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 와중에 브레슬라우를 포함한 슐레지엔 지역은 오스트리아에서 프로이센으로 지배권이 넘어가게 됩니다. 슐레지엔은 석탄과 철을 비롯한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었던 지역으로, 이들 자원을 토대로 상공업 중심지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슐레지엔을 차지한 이후 프로이센은 이를 기반으로 더한층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결국 독일 통일의 위업까지 이룰 수 있었습니다. 브레슬라우는 독일 통일 이전까지 베를린, 쾰른에 이어서 프로이센의 세번째로 큰 대도시라는 위상을 유지했으며, 막스 보른(1954년 노벨 물리학상), 프리츠 하버(1918년 노벨 화학상),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알츠하이머병 규명), 디트리히 본회퍼(신학자, 반나치 활동가), 오토 클렘페러(지휘자),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붉은남작, 1차대전 에이스) 등의 '독일' 위인들을 배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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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이후 독일 영토.(출처 미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뮤지엄 홈페이지) 단치히(그단스크)와 포첸(포즈난), 그리고 브롬베르크(비드고슈치) 등을 다 신생 폴란드 공화국에 넘겨준 상태지만, 브레슬라우를 포함한 슐레지엔 지역(붉은 원)은 패전 이후에도 여전히 독일 영토로 남아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차대전의 패배 이후에는 결국 이 노른자와 같은 브레슬라우와 슐레지엔을 소련의 압력 하에 폴란드에게 내줄 수 밖에 없었고, 이 일대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은 현재의 독일 영토 내로 모두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다시말해 중세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독일'로 정체성을 갖고 있던 브레슬라우와 슐레지엔이 폴란드 영토 브로츠와프와 실롱스크로 복귀한 것은 8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셈입니다. 그리고 독일인들이 추방되고 남은 빈 자리는 역시 소련(현재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편입된 리비우 일대의 동부 폴란드인들이 집단 이주해서 채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호텔과 브로츠와프 중앙역 사이의 대로인 '요제프 피우스트스키 원수거리'(Ulica Marszałka Józefa Piłsudskiego)를 따라 한 450미터 서쪽으로 걸어가면 냉전 시절 폴란드의 어두운 과거를 기념하는 유명한 조각 작품인 'The Passage'를 만나게 됩니다. 정식 명칭이 '익명의 통행인을 위한 기념비'(Pomnik Anonimowego Przechodnia)인 이 작품은 1981년에 시작되었던 계엄령 기간 동안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총 14구의 등신대 청동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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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교차로 동쪽의 점점 땅속으로 가라앉는 7구는 계엄령 기간 동안 체포되거나 실종된 희생자들, 다시말해 자유를 잃어버린 폴란드의 평범한 민중들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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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서쪽의 점점 솟아오르는 7구는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 다시금 자유를 회복한 폴란드인들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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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sage의 건너편에는 이 도시의 중요한 문화시설 중 하나인 '브로츠와프 카피톨 뮤지컬 극장(Teatr Muzyczny Capitol Wrocław)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알록달록한 조각은 이 극장의 상징 조형물인 '아를레키노'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이너이자 조각가인 알레산드로 멘디니 (Alessandro Mendini, 1931~2019)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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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ssage에서 북쪽으로 350미터 정도 이동하면 과거 브레슬라우 성벽 밖 해자를 중심으로 조성된 '해자공원'(Fosa Miejska)이 나옵니다. 유럽 대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중세 해자들 중에서 여전히 물이 채워진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몇 안되는 케이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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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공원 인근의 '그리스도의 성체 성당'(Kościół Bożego Ciała)과 볼레스와프 1세 기념상(Pomnik Bolesława Chrobrego).

'그리스도의 성체 성당'은 14세기 중반 구호기사단(Knights Hospitaller)에 의해 건설된 유서 깊은 건축물이지만, 2차대전 도중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후대에 원형 그대로 복구한 것이라고 합니다. 볼레스와프 1세는 1025년 폴란드 최초의 국왕으로 대관했던 인물로 이곳에 주교구를 설치함으로써 이 도시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독일황제 빌헬름 1세의 동상이 서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2차대전 이후 독일 색채를 지우기 위해 첫 폴란드 국왕의 기념상을 이 자리에 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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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공원 인근 스비드니차 거리(ulica Świdnicka)의 고풍스런 아파트먼트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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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브로츠와프 오페라극장.(Opera Wrocławska) 건축당시에는 브레슬라우 오페라극장((Oper Breslau)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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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 옆으로 이어지는 구시가지 산책로(Promenada Staromiejska)를 걷다가 발견한 절대반지(?). 이 거대한 반지 모양의 조형물은 '비톨트 필레츠키 기병대장 기념비'(Pomnik rotmistrza Witolda Pileckiego)입니다. 비톨트 필레츠키(1901~1948)는 폴란드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자발적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이후 홀로코스트의 실체를 연합군 측에 알려지게 했던 주인공이었습니다. 기념비 뒷편 가장 우측의 건물은 브로츠와프 오페라극장, 그 옆 십자가 지붕의 건물은 '성 스타니스와프와 성 도로타, 성 바츠와프 성당'(Kościół pw św. Stanisława, św. Doroty i św. Wacława), 성당 좌측 붉은 벽돌 건물은 성당 부속 사제관. 그리고 왼쪽 검은 지붕 건물은 195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의 생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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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타니스와프와 성 도로타, 성 바츠와프 성당'(Kościół pw św. Stanisława, św. Doroty i św. Wacława). 줄여서 성 도로타 성당이라 부르는 이 성당은 1351년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3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4세 사이의 평화조약을 기념하여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이 도시와 관련된 세 민족을 수호하는 세 성인(성 스타니스와프-폴란드인, 성 도로타-독일인, 성 바츠와프-보헤미아인)을 봉한한 성당이며, 2차대전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이 도시의 몇 안되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6시 45분 정도의 이른 시간이었지만, 새벽 기도객들을 위해 성당 문이 열려있어서 잠시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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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브에서 올려다 본 높이 25미터에 이르는 성 도로타 성당의 교차 볼트 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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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로타 성당의 외관은 처음 건축 당시의 단순하고 직선적인 후기 벽돌 고딕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으나, 내부는 17/8세기 재건축을 거치면서 바로크 양식의 인테리어가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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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Plac Wolności). 프로이센이 지배하던 시절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조성된 큰 광장이었으나, 현재는 이 도시의 문화 중심지로 변모하였고, 지하에는 대규모 주차시설이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왼쪽의 붉은 건물은 2015년에 개장한 최신 시설의 콘서트홀이자 브로츠와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국립 음악 포럼'(Narodowe Forum Muzyki im. Witolda Lutosławskieg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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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음악 포럼 건물 앞에 설치된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 두상(Głowa Orfeus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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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 서쪽 끝 국립 음악 포럼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난쟁이 음악가들(Krasnale Muzy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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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음악 포럼 건물에서 서쪽으로 길을 건너면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정치가인 이그나츠 파데레프스키(Ignacy Jan Paderewski, 1860~1941)의 기념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파데레프스키는 19/20세기 전환기를 대표하는 피아노 비르투오조이자 작곡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대서양 양안을 오가며 폴란드 독립자금 모금을 위한 콘서트를 수차례 여는 등 독립운동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는 1차대전 이후 독립한 폴란드 공화국의 초대 총리와 외무부장관을 겸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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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음악 포럼에서 해자 너머로 보이는 브로츠와프 지방 법원 건물(Sąd Okręgo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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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 북단에 자리잡은 브로츠와프 왕궁(Pałac Królewski we Wrocławiu). 왕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박한 이 건물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로부터 슐레지엔을 빼앗은 이후, 자신이 순행할 때 머물 별궁으로 1750년에 조성한 것입니다. 지금은 브로츠와프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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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오페라에서 한 블럭 동쪽으로 걸어가면 브로츠와프 인형극 극장(Wrocławski Teatr Lalek)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892년부터 1894년에 걸쳐 완성된 네오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로, 애초에는 이 도시의 상인협회 건물로 완성되었으나, 2차대전 이후부터 인형극 극장으로 전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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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 극장 입구 기둥을 장식하는 남녀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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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 극장 앞의 '물의 난쟁이들'(Krasnale Wodne) 분수.

인형극 극장과 구 시가지 성곽 해자 사이에는 '코페르니쿠스 공원'(Park Mikołaja Kopernika)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브로츠와프와 코페르니쿠스는 직접적인 관련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이 도시에 짙게 배인 독일 색채를 씻어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거리나 공원 등에 폴란드 위인들의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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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의 코페르니쿠스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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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공원의 명물로 꼽히는 '페가수스를 탄 아모르'(Amor na Pegazie) 조각상. 연인들이 함께 이 조각상 주위를 한 바퀴 돌면 그 사랑이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에 이 도시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은 곳이라고 합니다.

잠을 깬 아내의 호출로 서둘러 호텔로 돌아가 조식을 함께 먹은 다음, 둘이서 함께 트램을 타고 '대성당 섬'(Ostrów Tumski)으로 향했습니다. 말 그대로 브로츠와프 대성당(정식 명칭은 브로츠와프 세례자 요한 대주교좌성당, Archikatedra św. Jana Chrzciciela we Wrocławiu)이 자리잡고 있는 섬(과거에는 섬이었지만 19세기에 샛강이 메워져 더이상 섬이 아니게 됨)으로, 포즈난의 '대성당 섬'이 포즈난의 기원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브로츠와프의 '대성당 섬' 역시 이 도시의 발상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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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에서 내려 대성당을 향해 걸어가던 도중 눈에 들어온 공중다리. 왼쪽의 수도원과 오른쪽의 병원을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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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을 향하는 길 오른쪽에 보이는 '브로츠와프 대교구 신학교'(Metropolitalne Wyższe Seminarium Duchowne) 건물. 1894년에 세워진 네오고딕 양식의 웅장한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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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대성당의 후면. 볼레스와프 1세가 이 도시에 주교구를 설립했던 1000년 무렵 이 자리에 대성당이 처음 세워졌다고 합니다. 벽돌고딕 양식의 현재 건물은 몽골의 침략 이후 독일인들에 의해 이 도시가 재건되던 무렵인 1244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브레슬라우는 개신교도들의 도시가 되었고, 구 시가지 일대의 주요 가톨릭 성당들이 개신교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성당 섬' 일대만은 가톨릭의 관할이 계속 유지되었기에 건축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가톨릭 성당으로 역할을 다해왔습니다. 2차대전 와중에 건물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수십년 동안 꾸준한 재건 작업을 거쳐서 1991년 비로소 지금과 같은 완전한 형태의 복원이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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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직후의 브로츠와프 대성당.(출처 위키피디아) 정면 파샤드와 벽체는 비교적 옛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첨탑의 금속부분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지붕이 무너지면서 내부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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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대성당의 네이브(Nave, 중앙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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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대성당의 중앙제단과 후면 스테인드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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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대성당 하층부 벽면 스테인드 글라스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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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대성당 남쪽 벽 상층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2차대전으로 완전히 내려 앉은 지붕을 후대에 개축했기 때문에 천정 볼트 쪽이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줍니다.

후대의 재건 작업 덕분에 브로츠와프 대성당이 갖게된 큰 장점은 북쪽 탑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덕에 다른 유명 성당들처럼 수백개의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수고 대신 너무나도 편하게 탑 위를 올라가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1인 요금이 대략 만원 정도여서 좀 비싼 느낌도 있었지만, 막상 탑 위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전망은 그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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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전망. 우측에 보이는 큰 성당 건물은 '성 십자가 및 성 바르톨로메오 참사회 성당'(Kolegiata Świętego Krzyża i św. Bartłomieja). 중앙 약간 좌측 섬에 있는 건물은 '모래섬의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성당'(Kościół Rzymskokatolicki pw. NMP na Piasku), 좌측 멀리 보이는 첨탑은 '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Kościół Garnizonowy Bazylika Mniejsza pw. Św. Elżb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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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를 조금만 더 남쪽으로 돌리면 저 멀리 브로츠와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폴란드 전체에서 다섯 번째 높은 건물인 스카이타워(Sky Tower)가 눈에 들어옵니다. (51층, 212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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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전망대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전망. 바로 앞 붉은 건물은 좀전에 지나왔던 '브로츠와프 대교구 신학교'. 대성당 섬 동쪽은 대전 이후 세워진 현대식 건물들이 주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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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전망. 언덕이나 구릉조차 찾아보기 힘든 광활한 폴란드 평원의 지평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오른쪽 저 멀리 보이는 첨탑은 '성 미카엘 대천사 성당'(Kościół pw. św. Michała Archanioł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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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전망대에서 동남쪽으로 바라본 전망. 앞서 공중다리가 걸려 있던 성 엘리자베트 병원과 성 엘리자베트 수녀원. 오른쪽 오데르 강 위에 걸린 다리는 앞의 것이 '평화의 다리'(Most Pokoju), 멀리 있는 현수교는 '그룬발트 다리'(Most Grunwaldzki)입니다. 강 우편에 두 다리 사이의 건물은 돌노실롱스크 주정부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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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전망대에서 승강기를 타고 내려오면 아래쪽에 꽤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서 '마리우시 미코와예크'(Mariusz Mikołajek, 1958~)라는 폴란드 화가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주제로 그린 회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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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공간에서 대성당 맨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나선형계단. 승강기가 없었더라면 이런 계단을 수백개 끙끙대며 올라가야만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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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대성당의 정면 파샤드. 두 탑의 모양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데, 1759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탑 상층부를 20세기 초에 복원하는 과정에서 경비가 부족해서 남쪽(우측) 탑의 일부를 장식이 생략된 간소한 형태로 복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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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회 성당 앞 광장에서 바라본 브로츠와프 대성당. 첨탑의 높이는 금속제 뾰족탑 포함해서 98미터이고 북쪽 탑 전망대의 높이는 약 60미터입니다.  

브로츠와프 대성당에서 서쪽으로 대략 150미터 정도의 지척에 '성 십자가 및 성 바르톨로메오 참사회 성당'(Kolegiata Świętego Krzyża i św. Bartłomieja)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성당은 1288년에 건설이 시직되어 최종적으로 1484년에 완성된 건물로, 이 도시의 가톨릭 성당들 중에서는 대성당 다음의 높은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성당은 구조적인 면에서도 굉장히 특징적인데, 유럽 전체로서도 몇 안되는 복층 구조의 종교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즉 성 바르톨로메오에게 봉헌된 1층과 성 십자가에 봉헌된 2층이 동일한 평면 구조를 공유하는 별개의 성당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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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 성당의 외관. 복층 구조의 독특한 특징에 걸맞게 벽면 높이가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내부 구조가 매우 궁금했는데, 하필 내부 공사로 인해 출입이 금지되어서 아쉽게도 외관만 훑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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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 교회 앞 광장의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Pomnik św. Jana Nepomucena). 성 요한 네포무크는 14세기에 활동했던 보헤미아 출신의 성직자로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밝히라는 보헤미아 왕의 압력을 거부하다 프라하를 가로질러 흐르는 블타바 강에 던져져서 순교한 인물입니다. 보헤미아 수호성인의 모습을 담은 이 조각상은 한때 이곳이 보헤미아 왕국의 영역이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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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다리'(Most Tumski)를 건너기 직전 오데르 강 너머의 풍광. 오른쪽 탑은 1908년에 건축된 유서 깊은 실내 전통시장인 '할라 타르고바'(Hala Targo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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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섬'에서 '모래 섬'(Wyspa Piasek)방향으로 바라본 대성당 다리. 다리 건너 보이는 벽돌 건물은  '모래 섬의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성당'(Kościół Rzymskokatolicki pw. NMP na Piasku).

같은 자리에 있던 목제 다리를 대체해서 1889년에 건설된 이 다리는 우리나라 남산타워 앞의 난간 구조물처럼 수많은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며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채우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자물쇠들이 난간에 채워지면서 다리에 과도한 하중이 가해져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 현재는 자물쇠를 채우는 것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에 세워져 있습니다.

다리 양쪽에도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난쟁이 조각들이 하나씩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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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섬 쪽 입구에 있는 난쟁이는 '파괴자 난쟁이'(Krasnal Łamacz)라는 이름처럼 자물쇠를 채우면 끊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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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섬 쪽 입구의 난쟁이는 자물쇠에 담긴 사랑을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사랑의 수호자 난쟁이'(Krasnal Miłostróż)라는 멋진 이름을 갖고 있지만, '자물쇠에 치여서 힘들어 죽겠으니 그만 좀 채워라'라고 말하는 듯이 힘들게 주저 앉아 있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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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다리를 건너서 모래섬 쪽에서 바라본 대성당 섬. 중앙의 참사회 성당과 우측의 대성당의 첨탑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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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섬에서 오데르 강 너머로 보이는 건물은 '브로츠와프 대학교 문헌학 연구소'(Instytut Filologii Polskiej - Wrocław) 건물입니다.

모래섬 서쪽에는 '달리오바 섬'(Wyspa Daliowa)이라는 아주 작은 섬하나가 붙어 있는데, 이곳에 설치된 인상적인 조형물 하나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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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zeźba Nawa'라는 이 조형물의 이름은 우리말로는 '중앙회랑(Nawa) 조각(rzeźba')' 정도로 번역될 것 같은데, 전통 교회 건축물의 중앙회랑(nave)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는 2016년 브로츠와프가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으로 소위 '대성당들의 도시'라는 이 도시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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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각도에서 찍으니 '교회 회랑'이라는 이 작품의 타이틀이 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옵니다.

모래섬에서 구시가지 광장 방향으로 오데르 강을 다시 건너 '오솔리네움'(Ossolineum)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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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는 다리 서쪽으로 보면 멀찍히 강둑에서 열심히 빨래를 하는 난쟁이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름하여 '오데르 강의 세탁부 난쟁이'(Krasnal Pracz Odrzański). 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다섯 난쟁이 중 하나인데, 정말 의외의 장소에 놓여있습니다. 가까이 접근하기가 불가능하여 줌으로 겨우 끌어당겨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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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리네움'(좌측 붉은 건물)과 안뜰. '오솔리네움'의 정식명칭은 '오솔린스키 국립 연구소'(Zakład Narodowy im. Ossolińskich)로, 폴란드의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문화 및 학술 연구소로 손꼽힙니다. 원래 이 연구소는 1817년 서지학자이자 수집가인 유제프 막시밀리안 오솔린스키 백작(Count Józef Maksymilian Ossoliński 1748~1826)에 의해 동부 폴란드의 주요 도시였던 르부프(Lwów, 현재는 우크라이나의 리비우)에 설립되었습니다. 3국 분할에 의해 폴란드가 지도상에서 사라졌던 그 당시에 폴란드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거점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2차대전 이후 폴란드는 독립을 쟁취했으나, 르부프를 비롯한 동부 폴란드의 상당 부분은 소련(현재는 우크라이나)의 영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르부프 일대의 많은 주민들이 독일인들이 추방된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브로츠와프로 집단 이동하던 즈음, 오솔리네움 역시 방대한 컬렉션의 일부를 옮겨 와서 이 도시에 새로운 터전을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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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리네움 안뜰을 지키고 있는 '실레시아의 천사'(Angelus Silesius) 청동상. 2007년에 세워진 이 조각상은 이 도시(당시는 브레슬라우) 출신의 독일 신학자이자 시인 요하네스 셰플러(Johannes Scheffler 1624~1677)를 기리고 있습니다. 그는 '실레시아의 천사'라는 뜻의 라틴어인 안겔루스 실레시우스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폴란드 인문학의 전당 한 가운데 독일 시인의 기념비를 새롭게 세웠다는 사실이 흥미로운데,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문학과 사상의 보편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솔리네움 바로 옆에는 브로츠와프에서 가장 화려한 교회라고 손꼽히는 '가장 거룩한 예수 이름 성당'(Kościół Najświętszego Imienia Jezus, 이하 예수회 성당)이 위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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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이 성당은 브레슬라우가 신교도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시기인 1689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69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당시 이 도시에서 프로테스탄트에 비해 수세에 있던 가톨릭은 예수회를 중심으로 부흥을 꾀하였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성과물이 바로 이 성당과 그 직후인 1702년에 설립되었던 예수회 아카데미인 '레오폴디나'(Leopoldina)였습니다. 지금도 폴란드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브로츠와프 대학교(Uniwersytet Wrocławski)의 전신이 바로 이 '레오폴디나'였습니다. 레오폴디나의 설립 이후 이 성당은 자연스레 대학부속성당의 역할을 겸하였습니다. 2차대전 와중에도 경미한 피해만 입었었기에, 이 도시의 성당들 중에서 가장 원형(특히 내부)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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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성당 나이브에서 바라본 중앙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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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1층 아치와 2층 발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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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성당 내부에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안치된 미칼렌젤로의 '피에타'를 원본 그대로 복제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안토니오 반니라는 조각가가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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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성당의 화려한 천정화는 오스트리아 바로크 회화의 거장 요한 미하엘 로트마이어(Johann Michael Rottmayr 1653~1730)가 작업한 것으로, 그림 속 천국에 자리잡은 여러 인물들 사이에 당시 예수회에 직접적인 후원을 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인물들을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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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성당 중앙제단 쪽에서 바라본 천정화와 후면에 설치된 그랜드 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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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성당 바로 옆에는 브로츠와프 대학교 본관 건물이 있습니다. 이 대학의 전신인 예수회 아카데미 레오폴디나를 위해 세워진 건물로 1728년에 시작되어 1739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건물 내부에는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된 두 개의 강당들인 '레오폴디나 홀'(Aula Leopoldina)과 '마리아눔 오라토리움'(Oratorium Marianum), 전망대로 사용되는 '수학 탑'(Wieża Matematyczna), 이 대학의 유구한 역사를 담은 '대학 박물관' 등의 볼거리들이 있는데, 허기에 지친 마나님의 타박으로 내부 관람은 아쉽게도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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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건물 앞에는 흥미로운 청동 조각상 하나가 서있습니다. 전라의 젊은 남성이 펜싱 칼을 들고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브로츠와프 대학으로 유학을 왔다가 유흥에 빠져 가진 모든 것과 옷가지들까지 잃어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칼 한 자루 뿐이었다는 젊은 대학생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이 조각상이 들고 있는 칼은 워낙에 도난당하는 일이 잦다고 하는데, 도난 당할 때마다 새로운 칼을 제작해서 손에 들려주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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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남자 조각상 앞에는 우산을 들고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난쟁이(Krasnal Szermierz) 조각상이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다섯 난쟁이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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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대학교 본관 출입문의 화려한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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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 대학교 본관 현관 앞에는 이 도시 곳곳에 산재한 1,000개 가까운 난쟁이 조각상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조각상 중 하나인 '교수 난쟁이'(Krasnal Profesor)가 서있습니다. 사람들의 손길을 하도 타서 모자 부분이 반질반질해졌습니다.

폴란드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슬슬 올라오는 느끼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칼칼한 국물이 너무 땡긴다는 아내의 요청을 접수하여 급히 한식당을 수배했습니다. 브로츠와프 인근에다 상당한 규모의 공장을 건설한 LG 등등의 영향으로 이 도시에는 주재 한국인이 제법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보니 한식당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 위치인 브로츠와프 대학교 본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Oseyo(오세요)라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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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김치찌개, 저는 제육볶음을 주문했는데, 두 가지 합쳐서 대략 40,200원. 이번 여행 동안 폴란드에서 먹은 식사 중에서 꽤나 비싼 편의 식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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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요' 식당의 인테리어. 이 때만해도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지만, 식사를 끝낼 때쯤에는 거의 테이블이 꽉 차있었습니다. 근데 한인이라고는 우리 부부만... 나중에 구글 후기를 보니 브로츠와프의 현지인들 대상으로도 인기 식당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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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 한쪽 벽면에는 5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는 한국 연예계의 다양한 흔적들로 도배가 되어있었습니다. 윗 사진은 그 중 극히 일부입니다. 추억의 '마루치 아라치'까지... 이걸 다 어떻게 구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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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요' 식당 바로 길 건너에는 과거 도살장이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이를 기념하여 골목 가운데에 '도축된 동물들을 기리는 조각상'(Pomnik „Ku czci Zwierząt Rzeźnych”)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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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골목답게 '도축업자 난쟁이'(Krasnal Rzeźnik)가 도끼를 들고 도살장 문에 기대어 있습니다. 가장 초기에 만들어진 다섯 난쟁이들 중 하나이며, 브로츠와프 시민들 사이에는 이 난쟁이는 사실 채식주의자라는 우스개가 있다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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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는 과거 실제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Dawne więzienie miejskie)이 있는데, 건물 한 쪽 창틀에는 이 건물의 옛 용도를 보여주는 불쌍한 난쟁이 청동상이 하나 놓여있습니다.


감옥 건물 창틀의 '수감자 난쟁이'(Krasnal Więziennik)

브로츠와프 곳곳에 1,000개 가까운 난쟁이가 세워진 시발점은 단순한 관광상품의 목적을 넘어서서 폴란드의 반 공산주의 저항정신을 표현했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일군의 저항가 그룹이 도시 건물 벽면에 고깔모자를 쓴 난쟁이 그림을 그리며 당시 서슬 퍼렇던 공산정부의 검열과 압제를 풍자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이후인 2001년 슈비드니츠카 거리에 이들의 저항운동을 기념하는 난쟁이 동상(Papa Krasnal)이 세워졌는데, 이를 모방하여 도시 곳곳에 그 장소의 특징을 담은 난쟁이들이 자발적으로 세워졌습니다. 현재 정확한 숫자 파악이 힘들 정도라고 하는데 대략 1,000개 정도가 세워졌고, 지금도 꾸준히 그 숫자는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난쟁이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를 구할 수 있나 본데, 도시를 돌아다니다보면 이 지도를 들고 난쟁이들을 찾아다니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도살장 골목에서 한 블럭 남쪽으로 내려오면 구 시가지 쪽의 대표적 종교건축물인 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Kościół Garnizonowy Bazylika Mniejsza pw. Św. Elżbiety)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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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벽돌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14세기 중에 완성된 건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처음 건축되었을 당시에는 130미터에 이르는 아주 높은 첨탑이 세워져있었다고 하는데, 수차에 걸친 파괴돠 재건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현재 복원된 탑의 높이도 91미터에 이르며, 300여개의 나선계단을 올라가면 75미터 높이에 설치된 탑 전망대에서 멋진 전망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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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이 가장 크게 파괴된 것은 2차대전의 전쟁통이 아니라 1976년에 있었던 대화재였다고 합니다. 그 여파 때문인지 바실리카 앞마당에는 불을 끄기 위해 달려가는 소방수 난쟁이(Krasnale Pożarki)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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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카 앞마당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디트리히 본회퍼 기념비'(Pomnik ks. Dietricha Bonhoeffer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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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 ~ 1945) (출처 dietrich-bonhoeffer.net)
20세기 중반 독일을 대표하는 루터교 목사 겸 신학자이자 반 나치 저항운동가였던 그는 1906년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값싼 은혜를 배격하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도를 강조했던 신학자였던 본회퍼는 반 나치운동의 선봉에 섰던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의 핵심인물이었으며,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도 가담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치 전체주의에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종전을 불과 한달 정도 남겨둔 1945년 4월 9일에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영국 성공회에서도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순교자의 한 사람으로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벽면에 봉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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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회랑(nave)에서 제단 쪽으로 바라본 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의 내부. 바실리카는 종교개혁 이후 브레슬라우가 프로테스탄트 신교도들의 영향권에 속하게되었던 1525년부터 독일인들이 이 도시에서 추방되었던 1945년까지 무려 400년 동안 루터교회로 사용되었습니다. 1945년 이후 다시 가톨릭 성당으로 원복되었고,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바실리카'의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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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의 중앙제단과 후면 스테인드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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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반에 제작되었던 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의 그랜드 오르간은  '슐레지엔의 목소리'((Die Stimme Schlesiens)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뛰어난 사운드를 자랑하던 명기였지만, 불행히도 1976년 대화재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긴 시간 동안 파괴된 옛 악기를 완벽하게 복원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 결실이 바로 윗 사진에 담긴 화려하고도 장대한 오르간입니다. 무려 3,500개에 달하는 파이프를 장착하고 있으며, 외관을 장식하는 조각들은 모두 24K 금으로 도금처리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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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카 한 켠에 안치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흉상. 안그래도 유럽에서 가장 독실한 가톨릭 신앙심을 자랑하는 폴란드 국민들 사이에서 자국이 배출했던 이분에 대한 사랑은 실로 어마어마했는데, 이 바실리카 뿐만 아니라 폴란드 여행기간 방문했던 거의 대부분의 로마 가톨릭 성당들이 이분과 관련된 그림이나 사진,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 등등으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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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 앞에는 작은 아치형 문으로 연결된 두 채의 오래된 건물들이 있습니다. 원래 사제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해당하는 폴란드어 이름인 '야시와 마우고샤'(Jaś i Małgosia)라는 애칭을 갖고 있습니다.

저 아치형 문을 빠져나오면 바로 구시가지 광장(Rynek)입니다. 브로츠와프 구시가지 광장은 무려 13세기 초에 조성되었는데, 중세에 만들어진 올드타운 광장으로는 크라쿠프에 이어서 폴란드 내에서 두번째로 넓은 면적(약 40,000제곱미터)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구시청사와 신시청사를 비롯한 일군의 건물 군집이 알박기라도 하듯이 광장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크라쿠프 광장에 비해 개방감은 크게 떨어지는 편입니다.


브로츠와프 구시가지 광장의 대략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고지도. (출처 위키피디아) 그래서 과거 브레슬라우 시절 독일인들은 이 광장을 '고리'(Der Ring)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번 폴란드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던 여러 계기들 중 하나는, 우연히 youtube를 통해 접했던 국적 불명의 유럽 여학생들이 참여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커버 댄스 영상이었습니다.



여학생들의 춤솜씨는 대단치 않았지만, 이들이 춤추고 있는 배경이 너무 예뻐서 이곳이 어딜지를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댓글 하나로부터 이곳이 브로츠와프 구시가지 광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폴란드 여행을 결정한 계기 중의 하나가 되었죠.

광장 중앙에는 무슨 행사를 위한 가설무대를 설치하느라 여러 장비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또 광장 한 모서리를 차지하는 대형 건물인 폴란드 산타데르 은행이 공사용 비계로 뒤덮여있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많은 관광객들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함께 광장 요소요소의 아기자기한 매력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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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북서쪽 모서리 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 방향을 차지하는 건물군. 중앙에 '야시와 미우고샤'가 자그맣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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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북동쪽 모서리에서 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 방향으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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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커버 영상의 배경이었던 광장 북쪽의 건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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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동쪽을 차지한 건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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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동남쪽에 위치한 '페닉스 백화점'(Dom Handlowy Feniks). 1904년에 완공된 건물로 브로츠와프 최초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던 당시로서는 최신식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2차대전 때 입은 피해를 성공적으로 보수한 다음 현재까지도 백화점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잿더미에서 부활했음을 기념하여 백화점 이름을 '불사조'(Feniks)로 바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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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중앙 블록의 북서쪽에 위치한 브로츠와프 신시청사(Urząd Miejski Wrocławia). 현재는 시장 집무실과 시의회만 남아있고, 나머지 행정 및 민원 관련 사무실들은 몇 개의 다른 시청사 건물들에 분산되어 있다고 합니다. 신시청사라는 이름이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 역시 1864년에 완공된 문화재급 건축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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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바라본 구시청사(Stary Ratusz). 브로츠와프 구시청사는 종교건축물이 아닌 세속건축물로는 유럽 전역을 통틀어서도 후기 고딕양식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13세기에 공사가 시작되어 250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규모가 확장되었으며,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6세기 중반 무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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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서 바라본 구시청사. 시계탑의 높이는 66미터 정도입니다. 구시청사는 2차대전 와중에 광장일대 건물 대부분이 폐허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기적적으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는데, 특히 폭격기에서 투하된 대형 폭탄 하나가 지붕을 뚫고 건물 내부로 떨어졌으나 다행이도 불발탄이어서 파괴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시민 미술 박물관'(Muzeum Sztuki Mieszczańskiej)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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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청사 남쪽 출입구 계단 위에는 술꾼 남편과 잔소리하는 아내의 재미있는 조각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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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청사 남쪽 출입계단 옆에는 '아기곰 분수'(Fontanna Niedźwiadek)가 입으로 물을 뿜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시민들이 자유롭게 목을 축일 수 있게끔 1902년에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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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서 바라본 구시청사. 오른쪽에 고깔을 쓴 것 같은 돌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프렝기에시'(Pręgierz)라는 기둥인데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치욕의 기둥'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중세 시대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 앞에서 죄인을 저 기둥에 매달아놓고 매질을 가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절단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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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청사 동쪽에는 폴란드 문학가 알렉산데르 프레드로(Aleksander Fredro, 1793–1876)의 동상이 있습니다. 원래 이 동상은 이 도시가 아닌 르부프에 설치되었던 것인데, 2차대전 종전후 르부프 일대의 폴란드인들이 이 도시로 집단 이주하면서 함께 이전해왔다고 합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동상을 철거하고 대신 이 동상을 설치했습니다.

광장에는 각양각색의 난쟁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예상치도 못한 장소에서 마주치는 익살맞은 모습의 난쟁이 조각상들이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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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가게 창문에 앉아서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권하는 난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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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보다 더 작은 난쟁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관광객 난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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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하반신장애인으로 구성된 이 난쟁이 트리오는  '장벽 없는 브로츠와프(Wrocław bez barier)' 캠페인의 홍보대사들인데, 장애인들에게 불편을 주는 건축적 장벽이 없는지 찾아내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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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을 겸하는 레스토랑 앞에 자리잡은 개와 건배하는 난쟁이.

난쟁이들 중의 몇몇은 실존 인물들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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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들고 서있는 이 난쟁이는 폴란드의 유명한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레셰크 치혼스키(Leszek Cichoński)를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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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난쟁이는 폴란드의 배우 스타니스와프 볼스키(Stanisław Wolski, 1948–2021)를 모델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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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 서쪽에 '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가 있다면, 광장 동쪽에는 '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Katedra św. Marii Magdaleny)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3세기에 완성된 고딕양식의 이 건축물은 종교개혁 직후인 1523년부터 독일인들이 추방되었던 1945년까지는 루터교회로 사용되었습니다. 2차대전 때 심하게 파괴된 것을 긴 시간에 걸쳐 복원하였는데, 첨탑을 비롯하여 아직도 완전한 복원은 완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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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 내부 모습. 브로츠와프에는 '대성당 섬'에 있는 '세례자 성 요한 대성당'이 엄연히 대주교좌성당(Katedra)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지척에 있는 이 성당 역시도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 교회 소속이 아니라 '폴란드 가톨릭 교회'(Kościół Polskokatolicki)라는 로마 가톨릭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별개의 교단 소속이어서 따로 대성당의 명칭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 교단은 교황 권위 부정, 성직자 독신 폐지, 평신도 교회 운영 참여 등등 굉장히 혁신적인 성격의 가톨릭 교단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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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의 브레슬라우 구시가지 모습.(출처: 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 홈페이지) 중앙 살짝 우편에 '성 엘리자베트 바실리카', 중앙 살짝 좌측에 '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 좀 더 좌측으로 '성 빈첸시오와 야고보 대성당', 가장 좌측 아스라히 보이는 것이 대성당 섬의 '세례자 성 요한 대성당'. 이 사진을 보면 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의 쌍둥이 탑 위에 금속제 첨탑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첨탑 복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지상 약 45미터 높이에는 쌍둥이 탑을 연결하는 일명 '참회자의 다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보는 도시 전망도 멋지다고 하는데,  250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야한다고 해서 패스....

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은 음악회를 비롯하여 문화행사를 위한 공간으로도 자주 활용된다고 하는데, 마침 이날 오후 늦게 쇼팽 작품들을 연주하는 피아노 리사이틀이 있다고 해서 쇼팽의 고국을 방문한 기념으로 티켓을 예약했습니다.  티켓 가격은 1인 60즈워티 (한화 약 23,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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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팜플렛. 쇼팽의 유명곡들로 구성된 프로그램도 괜찮고 피아니스트도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나라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분 같아서 기대가 되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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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렛 사진과 얼굴이 다른 젊은 연주자가 걸어나와서, 갑자기 연주자와 프로그램이 변경되었다고 이야기하며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쇼팽과 친구들'이라는 연주회 타이틀과 달리 오리지널 쇼팽 곡이 한 곡도 없었다는 점. 쇼팽의 선율을 모티프로 편곡한 재즈 스타일곡들이 몇 곡이어지다가 샹송 '고엽' 선율을 패러프레이즈한 자작곡으로 1시간 살짝 안되는 연주회가 끝났습니다. 왠지 제대로 눈탱이를 맞은 느낌이었지만, 다른 관객들이 그닥 불만을 갖는 것 같지 않았고, 또 팜플렛 한쪽에 깨알 같은 글씨로 연주회 연주자와 프로그램은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다고 적혀있었기에 찍소리 못하고 그냥 대성당을 빠져나왔습니다. (연주자 사진은 허락을 받고 찍었지만, 온라인 공개는 안될 것 같아 얼굴을 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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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함과 함께 대성당을 빠져나오니 정문 앞에서 '폭주족 난쟁이'(Krasnal Wentyl)가 반갑게 인사를 하네요. "어이~ 호구 왔는가!!"

어느덧 저녁 6시. 슬슬 허기가 몰려옵니다. 원래는 골롱카를 잘 한다는 비어펍 겸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어지만, 핏자와 파스타가 땡긴다는 아내의 요청을 접수하여 급 구글맵으로 이틸리아 식당을 수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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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에서 북쪽으로 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Pizzeria San Giovanni'라는 식당을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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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핏자와 알리오 올리오에 탄산수와 하우스 맥주를 더해서 총 식대는 대략 39,000원 정도. 맛은 쏘쏘...

저녁을 먹고 오데르 강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슬슬 북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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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도중 지나치게 된 '성 빈첸시오와 야고보 대성당'(Katedra greckokatolicka św. Wincentego i św. Jakuba). 1240년 무렵 처음 건설된 성당으로 14/5세기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고딕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2차대전 동안 크게 파괴되었고, 이후 재건되었는데, 저 위의 과거 시가지 사진과 비교해보면 첨탑의 모양이 단순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성당 또한 '성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과 비슷한 이유에서 '대성당'(Katedra)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졌습니다. 로마 가톨릭 소속이 아니라 동방교회 전례법을 따르는 동방 가톨릭교회인 '그리스 가톨릭교회'(Kościół Greckokatolicki) 소속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 브로츠와프에는 로마 가톨릭 대성당, 폴란드 가톨릭 대성당, 그리스 가톨릭 대성당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성 빈첸시오와 야고보 대성당'은 '브로츠와프 대학교 문헌학부'(Instytut Filologii Polskiej - Wrocław)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데, 건물 앞 작은 광장에는 과거 이 대학 재학시절 '학생연대위원회'(SKS-Studencki Komitet Solidarności)를 조직하여 반 공산주의 저항운동과 학생 인권 옹호에 나섰던 레나타 오톨린스카(Renata Otolińska, 1958~ )를 모델로 한 난쟁이 동상이 확성기와 SKS회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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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타나 오톨린스카 난쟁이 동상. 저명한 교육자이기도 한 그는 현재 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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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학부 건물 바로 길건너에는 1908년에 완공된 실내전통시장인 '실내 시장'(Hala Targowa) 건물이 현재도 전통시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운좋게 파괴를 모면한 건물로 역사적 건축물로 보호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미 폐장시간인 18시 30분을 넘긴 시간이어서 내부를 살펴보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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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9시 50분 무렵 오데르 강변에서 바라본 '참사회 성당'(좌)과 '세례자 성 요한 대성당'(우).
가운데 노락 벽면 건물은 브로츠와프 대주교 궁전(Pałac Arcybiskupi).

해가 완전히 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듯하여, 벤치에서 쉬겠다는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근처 몇몇 곳을 둘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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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작은 녹지 공원 안에 자리잡은 'UPA와 NKWD, 그리고 게슈타포 희생자를 위한 기념비'(Pomnik Ofiar UPA, NKWD oraz Gestapo). 1939년부터 1947년 사이 UPA(우크라이나 독립군)와 NKWD(소련 국가보안부)그리고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에 의해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푸틴 러시아에 대한 연대의식으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일시 봉합된 측면이 있지만, 1943/44년 '볼히니아 학살' 당시 대략 10만명 정도의 폴란드인들이 UPA에 의해 희생되었을 정도로 두 민족 사이의 감정의 골은 대단히 깊은 편입니다.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의 갈등은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은 최전성기에 지금의 우크라이나 영토인 흑해 연안까지 지배하고 있었는데, 당시 폴란드인들의 폭압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코사크의 지도자인 '타라스 불바'(Taras Bulba, 대장 부리바)의 이야기는 러시아 문호 니콜라이 고골의 동명 소설과 그 소설에 기반을 둔 율 브린너와 토니 커티스 주연의 영화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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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종로3가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던 '대장 부리바'의 신문지면 광고. (출처 토마스모어의 영화방 블로그) 시대가 시대인 만큼 '불바'가 일본식 발음 '부리바'로 바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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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원 내에 있는 하베르리 두니코프스키(Xawerego Dunikowskiego, 1875~1964) 두상. 폴란드의 대표적인 조각가이자 화가이며, 나치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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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왕관 모양의 원통형 건물의 내벽은 1794년 타데우시 코시츄시코(Tadeusz Kościuszko, 1746~1817)가 이끄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저항군이 러시아제국과 맞서서 승리했던 라츠와비체(Racławice) 전투를 담은 대작 파노라마 그림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2번에 걸친 분할에 의해 거의 흔적만 남은 상태였는데, 코시츄시코가 이끈 봉기는 초반에 이 전투를 비롯하여 연승을 이어나갔으나 결국 러시아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연합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이후 3차 분할에 의해 폴란드는 150년 동안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파노라마 그림 역시 원래 르부프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시간대 별로 인원 제한으로 관람이 가능한데, 관람시간과 동선을 도저히 맞추지 못해서 아쉽게도 파노라마 실물을 직접 보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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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르 강변의 '벽돌 요새'(Bastion Ceglarski). 과거 브레슬라우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 구조물의 일부로 16~17세기에 건설되었습니다.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이 때는 철책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막혀있었습니다.

21시가 되어가자 강변에는 야경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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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야경을 즐기고 있는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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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시 10분 무렵 '대성당 섬' 쪽으로 촬영한 사진. 아직도 완전히 어두워지진 않았습니만, 참사회 성당과 세례자 성 요한 대성당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대성당 섬의 가로등은 전기등이 아니라 아직도 가스등을 사용하고 있다는데, 저녁이 되면 전통복장을 입은 관리인이 거리를 다니면서 가스등에 불을 붙이는 장면도 색다른 볼거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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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시 30분 '대성당 다리' 쪽으로 촬영한 사진. 아직도 해가 완전히 저물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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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시 40분 정도가 되어서야 드디어 제대로 된 밤이 되었습니다.

오데르 강의 바람도 점점 차가와지기 시작했고, 또 슬슬 체력의 한계도 오는 것 같아서 호텔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호텔로 가는 도중에 구시가지 광장을 다시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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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 북쪽 건물군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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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청사의 서쪽면과 '치욕의 기둥'.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조명이 꺼진 것인지는 몰라도 기대했던 것보다 구시청사를 대상으로 하는 조명효과는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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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청사 시계탑(우측)과 신시청사.(중앙) 우측 구시청사는 조명이 없어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스비드니츠카 거리를 서둘러 걸어가는 중에도 여러 난쟁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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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가게 창틀에 걸터 앉은 채로 반지를 들고 프로포즈하는 이 난쟁이의 이름은 '제추시'(Krasnal Zeccu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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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의 수많은 난쟁이들 중 가장 유명한 난쟁이들에 속하는 '시지푸스 난쟁이'(Krasnale Syzyfki). 파파 난쟁이가 세워진 이후 가장 먼저 세워진 5개의 난쟁이 청동상 중 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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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거장 바로 앞에서 우연히 이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1,000개 가까운 브로츠와프 난쟁이들의 시조가 되시는 '파파 난쟁이'(Krasnal Papa)이십니다.

이때 시간이 22시 20분.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겨우 씻고 바로 골아떨어졌습닌다. 전날 밤 늦게 도착해서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해서 브로츠와프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오늘 하루 뿐이었는데, 이 도시의 매력을 구석구석 제대로 살펴보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루 정도 더 머물면서 여유롭게 살펴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아무튼 내일 아침에는 이 매력만점의 도시를 떠나야만 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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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나비
25/11/09 16:45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부럽네요 저는 아직 외국을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외국에 나가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주변국은 언어적 장벽이 있어도 이미 나가있는 한국인이 많아서 괜찮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 계신 폴란드나 다른 유럽 국가들은 언어적 장벽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번역기 돌려서 여행해도 괜찮을까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저도 한번 나가고 싶긴 합니다..
강력세제 희드라
25/11/09 17:07
수정 아이콘
폴란드는 아직 한국 관광객이 많지 않아서 한국어 서비스를 기대할 수는 없구요. 웬만한 대도시 관광지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긴 했습니다. 저도 뭐 영어가 능통한 수준은 절대 아니지만, 기본적인 단어 나열과 손짓 발짓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긴 문장을 해석해야할 경우에는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파파고는 폴란드어 번역 서비스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유럽 도시들 중 가장 한국어 친화적인 도시는 체코 프라하였던 것 같습니다. 공항에서부터 한글 안내가 기본 제공되었고 제가 방문했던 거의 대부분의 식당이나 관광지에서 한글 안내문과 한글 메뉴판이 제공되었다고 기억합니다.
배추나비
25/11/09 17: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오호..언젠가 유럽 갈 날이 온다면 체코 프라하 기억해두겠습니다.
폴란드는 지금 밤이겠군요. 좋은 밤 되시고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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