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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5/05 13: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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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겉으로 밝아보이는 사람이 가장 슬픈 이유

 어느 마을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병을 치료하고자 의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의사는 치료가 아주 간단하다고 말하며,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를 찾아가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 제가 바로 그 광대입니다."


이 이야기는 분명히 슬픈 사연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어떤 유머로서 다가옵니다.


왜 우리는 이처럼 비극적인 이야기에서조차 유머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왜 세상에서 가장 유쾌해 보이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가장 어두운 내면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불일치에서 오는 유머
브런치 글 이미지 1 겉으로 밝아보이는 사람이 가장 슬픈 이유


  많은 철학자들이 이 주제를 다뤘습니다. 니체는 인간이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동물인 이유가, 가장 깊은 고통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부 영장류, 설치류, 그리고 식육목 동물들에서도 웃음과 유사한 반응이 관찰되었기에, 이 주장은 과학적으로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덧붙인 다음 문장은 여전히 울림이 있습니다.


“가장 불행하고 우울한 동물이야말로, 예상했겠지만, 실은 가장 쾌활한 동물이다.”


 칸트에 따르면 희극이란, "팽팽하게 고조된 기대가 급작스럽게 무(無)로 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 인생에서 계속해서 벌어지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이 세상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에 계속해서 배반당하며 실망하거나 마침내는 완전히 낙담해 기대를 아예 없애버리곤 합니다. 


 부조리한 인생이 본질적으로 희극과 같다는 주장은 찰리 채플린의 명언,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로도 줄곧 알려져있습니다. 누구나 남의 이야기는 곧잘 유머로 삼지만, 정작 자신이 그 유머의 대상이 되면 참기 힘든 법입니다. 이 세상의 부조리를 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깨끗하게 무(無)로 화하거나, 더러울지라도 자신에게 놓인 유머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불일치를 해소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많은 현대 심리학 이론들 또한 유머의 본질을 불일치(incongruity)에서 찾곤합니다. 익숙하게 아는 어떤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갑작스럽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환됐을 때, 그 때 생기는 불일치의 해소를 통해 우리는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예시로, '즐라탄 유머'를 들 수 있습니다. 


즐라탄이 "네"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즐라탄에게 미래를 볼 수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어떤 유머가 왜 재미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최악이지만 굳이굳이 설명하자면, 이 유머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유명한 축구선수라는 배경지식이 있어야합니다. 갑자기 즐라탄이 "네"라고 말하는 뜬금없는 '불일치'는 그 뒤의 문장으로 해소되며 유머로서 완성됩니다.


 이런 류의 유머는 원래 영미권의 '척 노리스(미국의 유명한 액션배우) 유머(Chuck Norris facts)'가 원조입니다. 


척 노리스가 킹코브라에게 물렸다. 
닷새 동안의 끔찍한 고통이 있은 후에, 
킹코브라가 죽었다. 


 이렇듯 우리는 불일치에서 웃음을 터뜨리기 때문에, 때로는 단지 상황이 급변하는 것만으로도, 심지어 그 상황이 극도로 비극적이고 슬프다 하더라도, 부적절한 실소가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 역시 어린 시절, 뉴스에서 비극적인 사고를 접하고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습니다. 한 재난 상황에서 부모가 자녀를 미리 안전한 곳에 대피시켰지만, 정작 부모는 살아남고 자녀는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저는 이 사고의 전말을 알게된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것을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의 웃음은 제 마음속 깊은 슬픔과는 전혀 관계없이, 터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가족들과 함께 있었는데,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진심과는 다르게 웃음이 나와서 이상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 또한 상투적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역설적으로, 가장 유머러스한 사람들은 가장 불행한 삶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슬픈 광대의 역설(Sad clown paradox)’입니다.


 슬픈 광대 역설


브런치 글 이미지 2 겉으로 밝아보이는 사람이 가장 슬픈 이유

 어릿광대(Jester) 복장을 한 남성이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방문 바깥으로는 한창 연회를 즐기는 귀족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폴란드 화가 얀 마테이코가 1862년, 겨우 스물 네 살의 나이에 완성한 것으로, "스몰렌스크 함락에 직면하여, 보나 여왕의 궁정에서 무도회를 벌이는 와중의, 스탄치크"라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스탄치크(Stańczyk)는 폴란드 궁정에서 세 명의 임금을 모셨다고 전해지는, 반쯤은 전설적인, 불후의 어릿광대입니다. 사료의 부족과 실전으로 인해 그가 실존했던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당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스탄치크는 단순한 광대 이상의 정치적, 예술적 존재로 신격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스탄치크는 단지 그 시대에 흔히 존재하던 평범한 광대였을 수도 있고, 혹은 궁정의 뒷세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국왕의 비밀고문(Éminence grise)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통일된 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대 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적어도 '스탄치크'라는 이름을 가진 어릿광대가 실제로 존재했으며, 그 명성이 한 사람의 영향력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당시 궁정에 있었던 일군의 광대 집단에 대한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광대 스탄치크'의 명성이 이후 수백 년간 폴란드 민족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는 '극명한 대조'입니다. 광대 스탄치크는 모자와 방울같은 우스꽝스러운 복장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진지하면서도 사색적인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스몰렌스크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조국의 앞날에 대해 누구보다 우려스러워하고 신경써야할 의무가 있는 방 밖의 귀족들과 정치인들은 일개 천한 신분의 광대와는 대조적으로 그저 놀고 먹느라 바쁩니다. 창 밖으로는 불운의 징조인 혜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현명한 바보, 궁정의 광대(court jester)



 스탄치크의 그림은 또한, 전통적 역설인 '현명한 바보'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영리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미움을 살까봐 솔직한 마음의 소리를 꺼내놓지 못합니다. 전근대 궁정에서 그런 일은, 언로가 완전히 막혀 왕의 눈과 귀는 아첨하는 자들에게 가리워지는 불상사로 벌어지곤 했습니다. 역설적으로 궁정의 신하들이 너무 영리하기에, 임금은 바보가 됐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겉으로 밝아보이는 사람이 가장 슬픈 이유

 그러나 정말로 바보인 사람들은 사회적 관습을 완전히 무시하고, 언제나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현자가 되곤 했습니다. 델포이의 무녀가 못생기고 무례한 소크라테스에게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신탁을 내렸을 때부터, 이런 현명한 바보들은 못된 말을 해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유머 감각은 다른 법이었습니다. 비록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농담이 인간들 사이에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다가 처형당했지만, 죽음보다 가벼운 형벌을 호소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에서마저 익살을 부림으로써 연극을 훌륭하게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익살은 자신에게 평생동안의 무상 식량과 거주지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전재산인 은화 한 닢을 벌금으로 부과하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발라트로(balatro)라고 불리는 전문적인 익살꾼들을 연회에 초대했고, 이러한 전통은 이후 중세시대 영주들의 궁정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중세의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모두에서, 헐벗고 굶주린 천치들은 종종 거룩한 신앙과 관련이 있는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벌거벗은 채 맨발로 걸으며 포로 생활을 했던 것처럼, 바보들의 행동들도 다른 이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회개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로 여겨지곤 했던 것입니다. 


 궁정의 광대들은 누구나 마음껏 조롱하면서도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관을 본딴 모자와 종(Cap and bells)을 쓰고, 왕홀을 본딴 머리달린 막대기(Marotte)를 든 채, 노래를 부르고, 왕과 대신들을 놀리고, 감히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을 거리낌없이 내뱉었습니다. 이를테면 백년전쟁 시기의 한 프랑스 광대는 "겁쟁이 영국군은 우리 용맹한 프랑스군처럼 물에 뛰어들 배짱도 없다."며 슬로이스 해전의 패배를 왕에게 알렸습니다. 


코미디언의 자질


브런치 글 이미지 4 겉으로 밝아보이는 사람이 가장 슬픈 이유

 코미디언은 일반적으로 배우들에 비해 불안장애와 우울장애의 유병률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순환성 기질(Cyclothymic Temperament, CT)’로 설명되곤 합니다. 이는 내면이 우울과 불안 등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음에도, 일터에서는 끊임없이, 그리고 때로는 강박적으로, 가벼운 유머를 던지는 행위로 표출됩니다. 이들은 언제나 오늘의 인기가 당장 내일이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과 강박에 시달립니다. 


 많은 코미디언들은 가족들끼리 다소 거리감이 있는 단절된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부모간의 갈등이 심한 환경에서 어떤 아이들은, 부모를 화해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유머를 활용하는 등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웁니다. 이런 아이들의 부모는 특히 어린아이같은 세계관을 지니며, 곧잘 부모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식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코미디언들은 어린 시절부터 '학급 광대'로 유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학교의 규칙을 조롱하고 위반하며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하고 인기있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코미디언은 젊은 나날을 고통과 고독 등으로 씨름하며 보내게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무가치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여타 배우들에 비해 높습니다.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상정하기에, 역설적으로 이들은 그토록 무가치한 자신이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안은 오로지 이들이 타인을 웃기는 그 순간에만 일시적으로 허락된 것입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금 이들은 우울해지고, 언제까지고 자신들이 다른 이들을 웃게 할 수는 없을 것이란 불안에 시달립니다. 불안이 유머를 낳고, 유머가 다시 불안을 낳는 순환이 그렇게 그들을 계속해서 타고난 코미디언으로 단련시킵니다.


인간실격


브런치 글 이미지 5 겉으로 밝아보이는 사람이 가장 슬픈 이유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에서, 주인공 오바 요조는 이러한 슬픈 광대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타인의 눈에는 늘상 행복한 인물로 비치는 요조는 실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타인으로 여기며 고립적인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가문의 식사 자리에서부터, 요조는 타인에 대한 공포와 거리감을 서서히 키우게 되었고, 특히 유년기에 어머니와의 정신적 일체감이 부족한 상태로 타인에 의한 부정적인 경험을  쌓아가며,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인간 세상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겉으로 밝아보이는 사람이 가장 슬픈 이유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요조가 취한 방식은 도화(道化), 즉 익살이었습니다. 도화란 본래 가부키에서 관객을 웃기는 역할인 도우케가타(道化方)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전국시대의 일본에도 서구의 궁정 광대 역할을 하는 시중들이 존재했습니다. 


  考えれば考えるほど、自分には、わからなくなり、自分ひとり全く変っているような、 不安と恐怖に襲われるばかりなのです。自分は隣人と、ほとんど会話が出来ません。何を、どう言ったらいいのか、わからないのです。そこで考え出したのは、道化でした。 それは、自分の、人間に対する最後の求愛でした。

(생각하면 할수록 저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라, 저 혼자 완전 이상한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힐 뿐입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과, 거의 대화가 안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하는걸, 모릅니다. 거기서 생각해낸 것이, 도화였습니다. 그것은, 저의, 인간에 대한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이 소설에서 장원의 영주=임금님은 바로 요조의 아버지입니다. 어릿광대 요조는 국왕 아버지의 물질적 후원을 받는 대가로 궁정 광대의 삶을 연기합니다. 그런 그에게 궁정 바깥의 진정한 세상을 보여준 친구는 호리키입니다. 호리키는 요조에게 술과 담배와 매춘부, 그리고 좌익 사상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세상과 호리키는 궁정에서 탈출한 광대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호리키와 세상은, 궁정 출신의 광대를 고용해서 무엇하나 손해보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호리키가 요조를 용납할 때는 오로지 궁정광대의 재능과 국왕으로부터의 총애가 제대로 기능할 때였습니다. 세상=호리키는 그렇게 평상 시에는 언제든 광대를 받아들일 것처럼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즉 요조의 돈이 다 떨어지고 국왕=아버지가 사망한 이후에는 광인의 낙인을 찍고는 세상 밖 정신병원으로 추방시킵니다.


 요조는 광대로서 웃음을 파는 자신과 동일한 처지에 놓인 매춘부를 '인간도 여자도 아닌 백치나 광인', 즉 자신과 같은 부류로 보고 동질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남을 웃기는 데에만 익숙한 광대는 정작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웃어넘어가야하는지를 모릅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유부녀 츠네코의 마음을 돈을 핑계로 짓밟고는 동반자살을 시도하고, 남편을 사별한 시즈코라는 여자에게 얹혀살다가 그녀의 딸 시게코가 자신을 보며 '진짜 아빠'를 원한다고 말하자 가차없이 모녀를 버리고 떠납니다.


 츠네코는 요조로부터, '돈 같은 건 없어도 좋으니 밑바닥부터 시작하자'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섯 살 시게코는 진심으로 죽은 아빠가 돌아왔으면 싶었다기보다는 내심 이제부터 요조가 자신의 진짜 아빠가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익살을 부린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조는 어쩌면 그 모든 진심을 알면서도 타인의 익살을 표면 그대로의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편을 택합니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공포감에 너무 익숙해져 오히려 그 속에서 편안함을 갖게 된 광대는, 츠네코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대신 같이 죽는 쪽을, 시게코의 아빠가 되는 대신 도망가는 길을 가게됩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7 겉으로 밝아보이는 사람이 가장 슬픈 이유

 최후의 배신으로부터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광대가 타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심지어는 자신의 욕망마저도 갖지 않는 편이 나았기에, 요조는 일찍이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츠네코의 따뜻한 남편으로 사는 것도, 시즈코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것도 요조의 진정한 불안을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침내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것처럼 보였던 요시코가 그 순수한 성격으로 인해 세상에게 유린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요조는 세상으로부터 요시코를 구하려 노력하기는커녕,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세상으로부터 상처입은 요시코를 끌어안아주기는커녕, 아예 세상에 대한 모든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광대는 세상과 거리감을 두기에 남들을 웃길 수 있고, 세상 그 자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전통적 광대는 못생긴 외모, 천한 신분, 그리고 불구의 신체 조건 등을 가진 채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던 자들이 주로 맡는 역할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조국의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코미디언들은 여전히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며,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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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언니
25/05/05 15:19
수정 아이콘
' 상가집 다녀오고 바로 저녁 스케줄이 있었다. 그날따라 무대에 올라가서 너무 힘들었다 '
라고 인터뷰한 개그맨 생각나네요

https://youtu.be/cs8mJvbPJ9k?si=imUaV4d52YB-XTzX
메가트롤
25/05/05 15:31
수정 아이콘
잘 보고 갑니다.
고무장이
25/05/05 17: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어서, 너무 기쁠 때면 이를 상쇄하려는 반대 작용으로 불행감을 느끼는 호르몬을 통해 조절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몸의 기쁨과 슬픔의 흐름이 사인 그래프처럼 그려진다고 비유한다면, 힘든 상황 속에서 스스로 억지 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감정을 애써 만들어내야 했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억지로 만들어낸 즐거움의 크기만큼, 항상성 조절 작용으로 인해 반대 방향의 감정이 더 크게 유도되었을 수도 있겠죠. 결국 감정의 진폭 자체가 훨씬 커지는 결과를 낳았고, 이렇게 커진 진폭이 그 사람의 정신력을 갉아먹거나 해를 가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조과장
25/05/05 18:05
수정 아이콘
조그마한 현장에 소장으로 앉아있는데요
속으론 문드러져도 발주처 앞에선 해맑고
근로자 앞에선 신나해야하네요
가족들 앞에선 걱정할까 티도 못내고

안밖이 투명한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가면쓰고 살아가는 모든 분들 상처받지 마시길..

글 잘 읽었습니다
25/05/05 22:30
수정 아이콘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 라스베가스에서 콘써트를 하던 셀린디온이 부르던 My Heart Will Go On. 에 이어서, 몇년후 남편이 죽고 첫 콘써트에서 부르던 All by Myself가 생각납니다. 현재까지 그녀의 인생은 투병이후 작년 올림픽에서 부른 '사랑의 찬가'로 나아갔죠. 한 가수의 대서사시가 씌여지고 있는 중입니다.

좋은글 추천합니다.
25/05/06 01:5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5/05/05 22:37
수정 아이콘
뜬금없지만...... 누구보다 해맑고 쾌활한 모습으로 제게 웃음을 주던 이영지와 오해원이 유튜브 콘텐츠에서 둘 다 '나는 친구가 없다' 라고 말하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링가
25/05/05 22:53
수정 아이콘
많은 사람이 이러기야 할텐데, 패러다임적이며 또한 생존편향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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