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할 국(鞫)의 자원을 살펴보았을 때, 오른쪽에 있는 큰소리 굉(訇)과도 관련이 없었고, 왼쪽에 있는 가죽 혁(革)과도 관련이 없었다. 이 한자의 구성 요소는 입 구(口), 다행 행(幸), 사람 인(人), 말씀 언(言)이며, 口가 竹으로 바뀌고 幸과 뭉개져서 革이 되었다. 《설문해자》에서는 이 중간 단계를 보고 鞫이 竹의 소리를 딴 형성자라고 했다.
鞫이 竹의 소리를 딴 것이 아니라면, 진정 竹의 소리를 딴 한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竹의 자원부터 살펴보자.
竹은 갑골문부터 나타나고 있으며, 댓잎이 아래로 늘어진 대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자다.
왼쪽부터 竹의 갑골문, 금문, 진(晉)계 문자, 초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두 가지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데, 금문 중에는 드물게 두 가지가 떨어져 있는 형태도 있다. 전국시대에는 두 가지가 떨어지며 그 형태가 소전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竹의 갑골문에는 논란이 있는데, 이 형태가 나아갈 염(冉)의 옛 형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冉의 갑골문, 금문 1, 2, 진(秦)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지금의 冉은 멀 경(冂)을 두 이(二)가 가로지르고 있으나, 금문에서는 왼쪽과 오른쪽에 따로따로 아래로 드리워져 있어서 마치 竹의 댓잎이 두 겹으로 된 것과 같다. 小學堂에서는 竹과 冉의 갑골문을 구별해서 싣고 있으나, 몇몇 학자들은 위의 竹의 갑골문으로 제시된 한자를 竹이 아닌 冉의 갑골문으로 보고 있다. 일설에는 冉까지도 竹에서 유래한 한자로 보기도 한다.
갑골문과 금문에서 竹은 인명, 지명, 국명으로 쓰이며, 상나라의 제후국으로 기록된 고죽(孤竹)으로 추정되는 죽후(竹侯)가 나타난다. 이런 용법으로 보건대 갑골문의 竹이 정말 竹인지 아니면 冉인지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竹(대 죽, 어문회 준4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竹+二(두 이)=竺(천축 축): 축학(竺學: 불교의 가르침), 천축(天竺) 등. 어문회 준특급
竹+巩(굳을 공)=筑(악기이름 축): 축(筑), 격축(擊筑) 등. 어문회 준특급
竹+馬(말 마)=篤(도타울 독): 독실(篤實), 돈독(敦篤) 등. 어문회 3급
筑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筑+木(나무 목)=築(쌓을 축): 축조(築造), 건축(建築) 등. 어문회 준4급
竹에서 파생된 한자들.
형성자는 대개 뜻을 나타내는 형부가 부수인데, 竹이 성부인 한자들은 예외 없이 모두 竹이 부수다. 筑은 竹이 형부이기도 하고 㺬이 부수가 아니므로 이상하지 않지만, 竺과 篤은 각각 二와 馬가 부수 글자고 따라서 《설문해자》에도 二부와 馬부에 실려 있음에도 《강희자전》에서는 竹부로 옮겨 놓았다.
竺은 본디 篤, 즉 도탑다는 뜻의 한자였고, 지금은 음이 다르지만 상고음으로는 둑(tu:g),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후한 시기에는 독(touk)으로 같았을 거라고도 추측한다. 어떤 한자의 음을 다른 두 한자의 초성(성모)과 중·종성(운모)·성조를 따다 표기하는 반절법으로 보면, 竺에는 지금의 음인 축 외에 독에 해당하는 동독절(冬毒切: '동'의 초성과 '독'의 중·종성을 합한 음, 즉 '독')도 있다. 지금 竺은 인도의 다른 한자 표기인 천축이라는 낱말에 쓰이는데, 천축 외에 천독(天篤), 연독(身毒 - 신독이 아님)이라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축과 독은 한자음에서 서로 통하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축이나 연독이나 모두 고인도이란어의 *síndʰuš가 이란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온 것데,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 신두(Sindhu)의 어원이기도 하며 경계 강을 뜻한다. 천축, 천독, 연독 모두 한나라 시대 기록에서 등장하며, 현재 주로 쓰이는 인도란 말은 당나라의 현장 스님이 처음 썼다.
《설문해자》에서는 竺을 두텁다, 篤은 말이 천천히 간다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이미 선진시대 문헌에서도 竺은 매우 드물게 쓰이는 데다 거의 다 고유명사로 쓰이고 있고 두텁다는 뜻은 篤이 도맡고 있다. 그래도 《이아》 역시 竺을 두텁다는 뜻으로 설명했고, 글자 자체에서 이중이니 두텁다는 뜻이 바로 나오는 竺이 篤과 견주어 보면 우선하는 것 같다. 한편 竺은 毒과 음이 비슷해 증오하다는 뜻으로도 쓰인 적이 있다.
竺이든 篤이든 竹은 소리를 나타내고 뜻은 二나 馬에 있기 때문에 竹은 뜻 없이 단순한 성부로 보인다. 그러나 이 한자들은 중국티베트어족에서 두꺼움을 뜻하는 *tuːk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어떻게 얇고 가는 대나무와 두꺼움이 비슷한 소리로 표현되는 것일까? 어떤 인터넷 자료에서는 역시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징포어로 죽순을 뜻하는 makru와 竹이 관련이 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파생 관계로 보면 築이 筑에서 나온 한자이고 《설문해자》에서도 그렇게 분석했지만, 유물에서는 아직 筑이 나타나지 않은 반면 築은 전국시대의 금문에서 나타난다.
왼쪽부터 築의 제계 금문, 초계 문자, 고문, 소전. 출처: 小學堂
초계 문자와 고문은 지금 쓰는 築과 다른 형태인데, 《자원》에서는 이 글자를 칠 복(攴)이나 흙 토(土)가 뜻을 나타내고 도타울 독(䈞)의 소리를 가져온 글자로 본다.
왼쪽부터 䈞의 초계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䈞 역시 亯(누릴 향|형통할 형)이 뜻을 나타내고 竹이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로, 竺처럼 篤으로 대체되어 쓰이지 않게 된 한자다. 천축을 뜻하는 한자로 살아남은 竺과는 달리 완전히 죽어버렸지만, 그래도 전국시대 유물에서 발굴되어 자신이 한때 살아 있었음을 입증했다.
築은 성부는 筑·䈞, 형부는 木·攴·土로 쓰여 온 것으로, 소리는 '축'이며 뜻은 나무나 흙이라는 물체 또는 침이라는 행위와 관련이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찧다[擣]라는 뜻으로 풀이하는데, 주석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흙을 다질 때 쓰는 공이로 풀이했다. 흙을 다루니 土가 들어가고, 나무로 만드니 木이 들어가며, 치는 행위에 쓰이니 攴이 들어가는 것이다. 어느 것으로 풀이하든 건축과 관련된 도구임은 매한가지며, 따라서 지금의 뜻인 쌓음이나 건축이 인신되었다.
한편 筑은 《설문해자》에서는 축이라는 중국의 고대 현악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하고, 巩(굳을 공)은 잡는다는 뜻으로 보았다. 竹은 이 악기를 연주할 때 쓰는 죽제 술대를 가리킨다.
중국 고대의 악기인 축. 출처: 北京王府井乐器城
築은 원시중국티베트조어에서 “쌓다, 건축하다”를 뜻하는*tsuk ~ tsik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건축을 뜻하는 티베트어 rtsig, 버마어 hcauk도 같은 어원이 된다. 다른 설에서는 *truk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데, 이 설에서는 정복하다를 뜻하는 티베트어 rdug, 돌진하다를 뜻하는 버마어 tuik가 동계어가 된다.
“두텁다”나 “쌓다”나 竹의 소리만 따고 뜻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둘 다 원시중국티베트어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둘 다 인류의 생활에서 일찍부터 함께한 말일 테니 그 자체에서 한자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정작 그런 뜻과는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대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竹이 그 두 말과 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竹에서 소리를 가져온 것이니.
요약
竹은 댓잎이 늘어진 대의 가지 모양을 본뜬 상형자다.
竹에서 竺(천축 축)·筑(악기이름 축)·篤(도타울 독)이 파생되었고, 筑에서 築(쌓을 축)이 파생되었다.
원시중국티베트어에서 두텁다나 쌓다를 뜻하는 말이 竹과 소리가 비슷해 竹이 들어가는 형성자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