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포항을 기반으로 하는 독립 출판사 이팝에서 나왔습니다. 세계 각 언어로 《어린 왕자》 번역을 진행하는 독일 틴텐파스 출판사와 이팝의 최현애 대표의 만남에서 시작되어, 틴텐파스판 《어린 왕자》의 125번째 언어로 '경상북도 방언'이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번역자는 최현애 대표 본인입니다. 처음에는 300부만 찍었다가, 인터넷에서 입소문을 타고 올라가 2쇄, 3쇄를 연이어 찍었습니다. 밀리의서재에서는 역자가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과 개그맨 김용명·신규진이 같이 녹음한 축약본 오디오북도 같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라북도 방언 역자를 겨우 찾아 나온 것이 심재홍 역의 《에린 왕자》입니다. 틴텐파스판 《어린 왕자》에서는 154번째 언어입니다. 이와 함께 소리꾼 임채경이 녹음한 오디오북도 같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지역 사투리로 쓰고 녹음한 책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 아직까지 한국에서 지역 방언을 보존하려는 자생력 있는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출판사가 서울로, 파주로 몰리는 이때에 포항에 자리를 잡은 출판사가 지역 특성을 잘 살렸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먹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두 책 모두 입말 사투리를 썼고, 눈으로 읽기보다는 소리 내서 낭독하기에 좋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원문에 없는 것 같은 구절을 넣기도 해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디 가스나… 꽃 말을 듣는 게 아니 였능데' 어느 날 가가 내자데 속마음을 털어놓데.”
다른 번역본에는 '문디 가스나…'에 해당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원문에 충실한 다른 번역본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도록 권하기도 하더군요.
두 책 모두 각 방언 화자가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책이 많이 팔린 게 다행입니다. 저는 눈으로 읽을 때보다 직접 들을 때 좀 더 이해가 잘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읽을 때에는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오는 단어가 들으니까 '아하! 이거구나' 싶은 경우가 있었어요. 제가 서울 방언 화자인지라 타 지역 방언을 직접 들어 볼 기회가 적다 보니 이런 음성자료가 더 큰 도움이 됩니다.
눈으로 읽을 때보다 들을 때 더 잘 이해가 되는 것은 소리 나는 대로 글을 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식겁하다'라는 단어는 표준어긴 하지만 서울 방언보다는 동남 방언에서 더 많이 쓰는 말인데, 한자어기 때문에 식겁(食怯)이라고 쓰는 게 맞지만 '시껍하다'라고 썼더군요. 이는 서울 방언 이외의 사투리를 글로 적은 역사가 짧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국어의 역사에서는 처음 훈민정음을 만들었을 때에는 소리 나는 대로 적었다가 점차 단어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배웠습니다. 이는 원래 처음 글을 쓸 때에는 쓰는 사람이 편하게 쓰다가, 점차 읽는 사람이 편하게 쓰는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경향 때문입니다.
영어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그리스 글도 한때는 쓰는 사람이 편한 '좌우 교대 서법'이라는 방법으로 썼다가 읽는 사람이 편한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