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12/05 16:15:59
Name realwealth
Subject [일반] 행복은 쾌락인가 (수정됨)
인생의 의미는 원래 없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 싶어서,
유력한 후보인 행복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고 있습니다.

우선 행복이 무엇인가? 에 대해 정의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를 읽었는데, 신선하고 재미있었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좀더 알아보고 싶어서,
최인철 교수의 ‘굿라이프’를 읽고 서로 비교하면서
조금 더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굿라이프’에 대한 독후감이라고 보면 될 것 같고,
인생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행복의 기원’에서 말하는 행복에 대해 살펴봅니다.
원문 그대로 적습니다.

-----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 하는 것은 행복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

본능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얼마나 움직이는지 과소평가하며 산다.

인간은 100%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관 또한 다분히 목적론적이다.
그에게 삶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추구하며 그것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때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행복이라고 보았다.
인간 행위의 종착지는 결국 행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 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목적론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 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현대인의 삶이 행복과녁을 제대로 못 맞추는 이유가 쾌락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서양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가치 있는 삶이 곧 행복이라는 해석을 해왔다.
그 결과, 행복을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정확히 말해 ‘가치 있는 삶 good life’이지 ‘행복한 삶 happy life’는 아니었다.
우리가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초엘리트주의적 행복관의 잔재 때문에 좋은 삶과 행복한 삶이 뒤엉켜있다.

행복은 가치 value 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첫째, 이 둘은 같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선택과 관심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그 칼날로 기름기를 제거하고 나면 행복의 살코기로 남는 것은 주관적인 즐거움과 기쁨이다.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 이런 연구들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된다.

--------------

재미 있고 Insight도 많이 얻었지만,
아쉬웠던 부분은

1. 행복이 쾌락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잘 납득이 안되었다는 점.

혼자 음악을 들을 때,
산꼭대기에서 풍경을 볼 때,
옛날 즐거운 생각을 할 때,
아이가 웃는 것을 볼 때,
등등 굉장히 다양한 경험과 감정에서 행복을 느끼는데,
너무 단편적이고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2. 가치 있는 삶/좋은 삶(good life)을 추구하면,
행복한 삶(happy life)을 살지 못할 것 같은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면,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뉘앙스를
책 전반에 풍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왜 2가지를 구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쓰이는 것을 경계 했는지 이해는 됩니다.

가치에 대한 주체적 정의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연히 잘 못할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나만의 정의를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곧 나의 철학이고, 곧 자아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어차피 못할거야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굿라이프’는
행복은 쾌락에 불과한가?
가치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은 전혀 별개의 것인가?
의 아쉬운 부분을 많이 채워주었습니다.

첫번째 아쉬움(행복은 쾌락일 뿐인가)에 대해 설명된 부분을 옮겨 적습니다.

---------
진화적 관점은
인간과 동물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행복을 설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인간만이 추구하는 행복, 즉 좋은 삶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 삶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존재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계획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소위 ‘connecting the dots’라는 의미 창출 작업을 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이 작업은 순간순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관한 것이다.

삶이란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이다.
과거의 즐거움이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후회하고,
과거의 고통이 지금 생각하니 축복이었다고 감사하는 것이 인간이다.
순간의 경험들은 그 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
따라서 순간의 기분만을 가지고 좋은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대니얼 카너먼은 두 가지의 구분을 위해
경험하는 자기(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지가(remembering self)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순간을 경험하는 자기가 있고,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가 있다.

카너먼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

역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다!!!
시원하고 명쾌한 설명이었습니다.

조금 더 옮겨 적어봅니다.
마치 ‘행복의 기원’에 대한 반론 같기도 합니다.

---------
행복은 순간의 기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행복이기도 하다.
삶의 행복은 순간의 행복 이상의 것이다.

행복이 좋은 기분과 좋은 삶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좋은 기분으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은 좋은 기분과 함께 삶의 의미와 목적, 삶에 대한 품격있는 자세와 태도까지를 포함한다.

쾌락은 생물학적이고, 의미는 문화적이다.
쾌락은 현재에 집중할 때, 의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나이가 들면 쾌락보다 의미가 중요해진다.

‘맛이 좋은 음식’과 ‘좋은 음식’이 다르듯, ‘좋은 기분’과 ‘좋은 삶’은 다르다.
좋은 음식이 맛이 좋을 수도 있지만, 맛이 좋다는 것이 좋은 음식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삶이 좋은 기분을 많이 느끼는 삶일 수 있지만, 좋은 기분 만이 좋은 삶의 조건은 아니다.

‘행복’이 ‘행복한 기분’처럼 기분을 수식할 때와 ‘행복한 삶’처럼 삶을 수식할 때는 그 뜻이 다르다.
행복이라는 단어 역시 ‘기분’을 지칭할 때와 ‘삶’을 지칭할 때는 다른 뜻을 갖게 된다.

행복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을 행복한 기분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의 의미를 간과하는 실수를 범한다.

기분 관점에서만 행복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이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자극들(예를 들어 음식, 섹스, 친밀한 관계 등)에 의해서 유발되는 기분일 뿐이다.

----

그리고,
행복의 기원에서 비친
마치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은 우려? 의견?
(2번째 아쉬움)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반론합니다.

-----
좋은 삶이란, 의미가 가득한 삶이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준다.

행복에 대한 정의를 지나치게 가볍게 내리면
행복을 추구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처럼,
의미를 좋은 삶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의미에는 무거운 의미뿐 아니라 가볍고 경쾌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무거운 의미 혹은 큰 의미란
삶에 대한 목적의식과 소명의식, 자기희생, 대의 명분 같은 것을 뜻한다.
작은 의미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를 뜻한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밥을 지어주는 것,
연로한 부모님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것,
맡겨진 과제를 제시간에 해내는 것 등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경험되는 의미다.

의미 추구는 엘리트 도덕주의자의 강압적 명령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우리의 본성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홀로 있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말을 들을 때,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이런 반신반의가 혼자 있는 것이 주는 의미의 행복을 경험했기 때문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격리시킨 상태에서 경험하는 성찰의 시간이
성장과 의미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행복을 부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반면에 즐거움 혹은 쾌락은 혼자 있을 때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훨씬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행복의 기원'에서 들었던
2가지 아쉬운 점을
'굿라이프'의 도움으로,
'의미'라는 요소를 행복에 추가함으로써 해소했습니다.

두 책은
서로 적절한 보완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출간 순서대로 ‘행복의 기원’과 ‘굿라이프’를 읽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두 책에서 공통으로 강조한 내용을 적어보면서 마무리합니다.
어쩌면
행복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자 핵심 아닐까 합니다.
구분하지 않고 적었어요.
어떤 책일까요??

--------
심리적 자유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보편적으로 지지해주는 문화가 있고,
이렇게 살기 위해 세상과 문을 닫고 기인이 되어야 하는 문화도 있다.
행복이라는 씨앗은 개인의 자유감이 높은 토양에서 쉽게 싹을 틔운다.

획일적인 사고는 행복에 큰 타격을 준다.
마치 행복에도 정답이 있고, 이는 몇 개의 잣대로 압축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좋은 대학 간판, 대기업 명함, 높은 연봉.
이런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인생은
왠지 ‘행복 시험’에서 낙제한 것 같은, 그래서 불행한 삶이라는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얼마나 신경을 쓰며 사느냐다.

물론 사회의 일원으로 살며 타인의 평가와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나침판이 되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삶을 경험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살게 된다.

***행복의 주요 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점을 시사한다.

의미의 원천, 자기다움
“반성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소크라테스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제시한 것이다.

리틀의 연구(개인 프로젝트 personal projects 분석)는
인간이 경험하는 의미의 중요한 원천이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것, 즉 자기다움의 삶을 사는 것임을 보여준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가를 드러낸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일이 자기다운 일이면 의미가 경험된다.
우리가 성공, 성취, 효용, 효율 등 무엇을 이루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순간적인 기분의 행복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관련 글
https://ppt21.com/freedom/100116
https://ppt21.com/freedom/100259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다크드래곤
23/12/05 17:47
수정 아이콘
pointless 한 우주 이기 때문에 value란 관념일 뿐이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쾌락은 생물학적이고, 의미는 문화적이다.
쾌락은 현재에 집중할 때, 의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 이 구절이 행복을 아주 잘 정리한것 같네요
OcularImplants
23/12/05 17:52
수정 아이콘
나이 먹을수록 달라지죠
realwealth
23/12/06 21:36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에서도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에 가까워질 수록
행복에서 의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는 내용도 주된 내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잉어킹
23/12/05 17:53
수정 아이콘
행복 ⊃ 쾌락이죠

도파민(보상,쾌락), 세로토닌(만족), 옥시토신(사랑,유대), 엔돌핀(진통(鎭痛))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삶이 결국 행복한 삶인것 같습니다.
realwealth
23/12/06 21:3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행복을 생물학적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호르몬은 현상일텐데요. 그 요인은 무엇인지?
과연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어떻게 발생시키고 유지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냐고
23/12/05 18:01
수정 아이콘
행복은 모든 긍정적인 감정의 총집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거대한 개념이고 개인마다 가치관과 신체와 처한 상황이 다르니 아무리 분류하고 분석해도 본질을 꿰뚫지는 못하는것 같아요.
realwealth
23/12/06 21:29
수정 아이콘
먼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첨언하자면
심리학에서 행복한 감정(쾌快) 상태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긍정적인 감정들의 상대적인 비율로 측정합니다.
제 생각에 행복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결국 내가 정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타인의 의견과 선행 연구들을 참고하는 것이 효율적이겠죠. 그것이 곧 자아성찰이 아닐까 합니다.
짐바르도
23/12/05 18: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고통스럽고 빡센 일이 행복감을 줄 때가 있다는 걸 보면 행복, 고통, 쾌락의 관계는 더 미묘하죠. 대개 책들도 이 관계를 다르고. 혹시 안 읽으셨다면 <행복의 과학>, 존 메설리의 <인생의 모든 의미> 추천드립니다.
realwealth
23/12/06 21:1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읽어주셔서, 그리고 책 추천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빡센 일이 행복감을 준다면,
그 이유는 빡센 일의 과정이나 결과가 의미가 있을 때 행복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connecting the dots’ 의미 창출 작업 과정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데요.
행복, 고통, 쾌락의 관계에서 어떤 부분이 미묘한 걸까요?
23/12/05 18:27
수정 아이콘
음미해 볼만한 내용인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realwealth
23/12/06 21:29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탑클라우드
23/12/05 19:51
수정 아이콘
사정 후 현타를 감안하면 행복은 단순 쾌락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최근 행복을 느꼈던 순간이...
원거리 교제(?) 중인 아내와 잠들기 전 통화하다가
문득 그녀가 "많이 보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임을 감안하면
저는 온전한 내 편을 느낄 때 행복을 느끼는가 싶기도 합니다.
realwealth
23/12/06 21:48
수정 아이콘
인간관계가 행복에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행복의 기원의 주요 내용이기도 합니다.
23/12/05 20:22
수정 아이콘
쾌락이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뿐, 쾌락 = 긍정적 호르몬(도파민,엔돌핀, 세르토닌 등등)으로 치환한다면 행복 = 쾌락= 긍정적 호르몬이 맞다고 봅니다.

성행위시의 쾌감과,일에서의 인정받을때의 성취감과 햇살과 자연을 볼때의 소소한 행복 등으로 우리는 다 다른 행복이라 느끼는 것들도 이러한 호르몬의 분비량의 차이에 기인할 뿐이라고 봅니다.

결국 스트레스 나 고통도 호르몬괴 연관된걸 감안하면 이어져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우리는 유전자의 노예이자 호르몬의 노예...
realwealth
23/12/06 21:47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행복을 생물학적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호르몬이 현상이라면, 그 요인은 무엇인지?
과연 긍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호르몬을 어떻게 발생시키고 유지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Janzisuka
23/12/05 20:46
수정 아이콘
쾌락은 행복이 될수 있
realwealth
23/12/06 21:48
수정 아이콘
겠죠?
임전즉퇴
23/12/05 21:18
수정 아이콘
사실 쾌락으로 치면 약을 꾸준히 투여하는 것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쾌락이 아닌 진정한 행복을 논의하게 되는데.. '진정한 행복'은 결국 검증불가능한 그 무엇이죠. 말씀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을 섞어버린 것 같은데 행복이 사람 삶의 목표라는 게 그리 지당한가? 아예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되새겨보면 성인들은 직접 행복을 얘기한 경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괴로움을 없앤다고 했는데 사실 즐거움도 제꼈죠.
realwealth
23/12/06 22:3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이 목적이 될 수 있는지는
내가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걸 정의하는 것이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 곧 자아성찰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삶의 목표'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죠.

'굿라이프'에서는
일종의 제안이라고 하면서,
삶의 목표를 긍정하는 관점입니다.
다만, 삶의 목표는 지극히 주관적이어야 한다고 보고,
아이에게 매일 아침밥을 차려주는 것, 노모에게 자주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 같은 개인적이고 작은 의미에 주목합니다.
그 목표를 다루는 과정에서 적극적이고 건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최고의 선 summum bonum'으로 정의했다고 하는데,
당연히 참고해볼만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나의 선택이겠지요.

부처는 쾌락이 고통을 불러온다고 하신 것 같은데,
행복의 기원을 참고해서 해석하자면,
사람은 쾌락에 금방 적응하기 때문에 그 쾌락은 유지될 수 없고,
쾌락의 상태를 기본상태로 인식해버리게 되면,
쾌락이 유지 되지 않는 대부분의 상태는 고통이 되는거겠죠.
쾌락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고통이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의 삶은 쾌락과 고통을 순환하고, 그것이 윤회이고,
쾌락과 고통의 굴레를 끊기 위해 수행을 하고,
그것을 마침내 끊어내면, 해탈이라고 표현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 심리학처럼 실험이나 서베이 같은 과학적 방법을 활용한 것도 아닌데,
현상을 보면서 마음의 작용을 이해했을텐데,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불교가 인정받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마일스데이비스
23/12/05 22:12
수정 아이콘
맛이 좋은 음식과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오래 살아서 맛이 좋은 음식을 많이 먹기 위함이 아닙니까?? 음..
realwealth
23/12/06 22:35
수정 아이콘
딩동댕~!!
로메인시저
23/12/06 00:31
수정 아이콘
행복은 세로토닌이고 쾌락은 도파민. 세로토닌(정상파)은 현재에 만족하게 만들고 도파민(변화)은 방향성을 잘 설정할 경우 행복과 조화로울 수 있죠.
옥시토신은 사랑과 연민. 마찬가지로 세로토닌이 함께 해야 합니다.

pointless universe라는 개념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이 많죠. 사실 바꿔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해집니다. 우리는 한 점에서 시작했어요. 우리가 신 그 자체였으며 지금도 신이란 말입니다. 단지 신격을 온 우주 곳곳에 균등히 나누어 가졌을 뿐. 그러니 이 우주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해석에 의해 완성됩니다.
realwealth
23/12/06 22:39
수정 아이콘
범신론?? 인가요?
저는 생각해본적 없는
새롭고 재미있는 접근인데요,

그런데 신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효용이 있을까요?
실천적 접근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런게 궁금합니다... ^^;;;
로메인시저
23/12/06 23:44
수정 아이콘
(수정됨) 범신론.. 이긴 하죠. 온 우주에 골고루 흩어진 신이라니. 그 중 일부가 모여서 발생한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니. 당연히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이죠?
어디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영혼, 신성, 신 역시 사실 각자가 정하기 나름인 개념일 뿐입니다. 과학이 아직 밝혀내지 못한 모든 영역에서 말이죠.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효용이 있을까요? 좀 더 진심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내 처지와 온 우주가 결국은 내가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 내가 선택할 수 없던 모든 것들이 실은 역시나 과거의 내가 한 창조의 창발이라는 것. 그러한 생각과 함께한다면 과거에 대한 불평 불만 후회, 미래에 대한 막연하고 끔찍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현실을 좀 더 즐기며 충실히 살아갈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진정으로 신(다만 온 우주에 흩어져 초능력 같은건 없는)이기에, 스스로의 가능성을 가두지 말고 무한한 꿈을 실현할 가능성을 결코 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굳이 이 세계를 만들고 내가 여기 아바타에 접속한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즐겁게" "행복하게" "탐구하며" "이해하며" "일부러 잊었던 모든 것들"을 알아내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뭐, 인생은 모든 것이 고통이라며 평생 고통받다가 끝내도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 뒤라면, 조금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생기면서 현실로부터 한 발 뒤로 물러나 내려놓고 즐기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두 신이잖아요.
life does not happen to you, it happens for you.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가 나에게 준 선물입니다. 그걸 고통으로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신인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죠. 즉, 우리는 객관적으로 현실을 살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realwealth
23/12/07 16:11
수정 아이콘
(수정됨) 대략 제가 이해하기로는
1. 신의 개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신이라는 사실은 정하기 나름이다.
왜냐하면, 과학이 밝혀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정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2. 우리가 신이라고 정하게 되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곧 신이라고 정하게 되면,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인 것 같은데요.

아마 일어난 일이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유리하다는 말씀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인간은 이해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해서 설명하기도 하죠.
과학이 설명을 대체하게 되면서, 신앙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기도 하지만,
신이라는 존재, 그리고 내가 신이라고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것으로 두고, 인정하면 되지 않을지요?

신이 있든 없든, 내가 신이든 아니든,
그냥 지금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 뿐 아닐지요?
내가 신이라고 생각하든 아니든 그게 뭐가 달라질까요?

말씀하신대로 행복의 전제는 주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체성은 내가 원하는대로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 합리성이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쉽게 깨어질테니까요. 확률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쉽게 말하면 나만의 정의가 주체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정의에 신이 들어가면 뭔가가 좋아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오히려 신을 상정한 부분에 논리적으로 구멍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그냥 일어난 일일 뿐,
그냥 지금 여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극복할 것인지의 문제만 남지 않을지요?
로메인시저
23/12/07 17:0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우리가 신이라는 주장에 대한 증거나 필요성을 물으신게 아니라 효용을 물으셔서 답을 드렸을 뿐이죠.

저는 효용을 따지기 이전에 우리가 신이라는 생각이 먼저 온 케이스라, 앞서 1번에서 말했듯 각자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pointless universe가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방황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의 해석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우주를 내 내면 세계에서 완성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우리가 신이라는 것은 그 수많은 해석 중 제가 받아들인 것을 소개한 것이고요. 완벽한 객관적 진실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가 밝혀낸 우주의 과학법칙들도 좀 더 깊이 숨어있는 진리의 사영일 뿐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낸 모든 관념들은 객관이라 부를 수 조차 없습니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두는 것이 아무 생각도 안하는 것과 동치가 되진 않습니다. 스스로의 주관으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과학이 한꺼풀씩 벗겨낼 때마다 내 생각을 조금씩 수정하며 살면 그만입니다. 생각이 깨어진다는 두려움이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합니다. 대쪽같은 믿음이 아니라 그러든가 말든가라는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차피 범신론은 무신론의 다른 버전일 뿐입니다. 물질, 에너지, 의식, 공간이 신으로 환원되었을 뿐인거죠. 빅뱅이고 로고스에서 시작했다는 패러다임은 수천년간 그대로입니다. 상대가 소개한 생각에서 무엇에 핵심이 있는가를 관점을 바꿔가며 생각하신다면 더 좋은 고찰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중요한건 우리가 신이라는게 아니라, 그 주장의 효용 따위가 아니라, 이 우주를 살아가는데 있어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내 마음대로 이 세계를 정의하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의 참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게 우리가 신이라는 것일 뿐이죠.

혹자는 님과 같은 생각조차도 아무런 효용이 없고 그냥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뭣하러 온갖 실존적 의문이 가득 담긴 책들을 읽고 이런 장문의 고민을 하고 의미부여를 하고 있느냐고 말이죠. 오히려 아무런 효용이 없기 때문에 이런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꼭 뭔가 실천을 할 수 있는 생각이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생각의 자유와 행복을 제한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어차피 우리 모두는 답을 다 알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행복하게 즐겁게 자유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 뼈대에 붙일 살은 자신의 주관밖에 없습니다. 음식을 내 몸에 갖다 붙인다고 신체기관이 되질 않고, 먹어서 소화를 해야 내 것이 됩니다. 객관이란 주관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음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야 한다며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며 적응 못하는 니가 이상한 거라며 가스라이팅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죠. 한낱 인간인 내가 어떻게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냐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신이란 주장은 정말로 아무런 효용을 갖지 못할까요? 결국 관점을 뭘로 둘 것이냐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처음 말씀드린 바꿔 생각하면 모든게 간단해진다는게 그 말이죠.

어... 그리고 범신론은 우리가 객관이라 부르는 것과 충돌할 요소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realwealth
23/12/09 14:41
수정 아이콘
말씀 감사합니다.
23/12/06 09:24
수정 아이콘
굿라이프도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글과 책 추천 감사합니다. 사춘기는 원래 사십에 와서 사춘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해 번민하게 되네요. 따흑 ㅠㅠ
realwealth
23/12/06 22:4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계속 고민하고 고민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외롭지 않아요~~ 같이 화이팅!!
두번째봄
23/12/06 11:38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추천꾹
realwealth
23/12/06 22:40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읽어주셔서 추천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근 추천 있으면 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나보구나 해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412 [일반] 4분기 애니메이션 중간점검 [54] Kaestro9205 23/12/05 9205 1
100411 [정치] 한국은행이 말하는 출산율 1.5 찍는 법 [97] 인간흑인대머리남캐14236 23/12/05 14236 0
100410 [일반] 행복은 쾌락인가 [31] realwealth9925 23/12/05 9925 7
100409 [일반] 허수아비 때리기, 선택적 분노 그리고 평행우주(4.추가) [252] 선인장21653 23/12/05 21653 27
100408 [정치] 소는 누가 키워? [23] 라이언 덕후10208 23/12/05 10208 0
100407 [일반] 스위트홈 시즌2 예고편만 보고 거른이유(스포주의) [37] 마트과자9633 23/12/05 9633 4
100406 [정치] 국민연금 부족분을 , 젊은 사람들의 임금에서만 가져오는 것이 맞을까요? [114] 마르키아르14126 23/12/05 14126 0
100405 [정치] 저출산은 필연적으로 몰락을 초래하는가? [103] meson10516 23/12/05 10516 0
100402 [정치] 리버버스 + 트윈아이(대관람차) = 1조원 [17] 덴드로븀7540 23/12/04 7540 0
100401 [일반] 강아지 하네스 제작기 (1) - 불편은 발명의 아버지 [4] 니체6592 23/12/04 6592 4
100400 [일반] 뉴욕타임스 11.26. 일자 기사 번역(군인 보호에 미온적인 미군) 오후2시8353 23/12/04 8353 3
100399 [일반] 그 손가락이 혐오표현이 아닌 이유 [93] 실제상황입니다15943 23/12/04 15943 13
100398 [일반] <괴물>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지게 되는 질문(스포일러o) [20] 오곡쿠키9161 23/12/04 9161 7
100395 [일반] 달리기 복귀 7개월 러닝화 7켤레 산겸 뛰어본 러닝화 후기.JPG [36] insane11167 23/12/04 11167 5
100394 [일반] 애플워치9 레드 컬러 발표 [22] SAS Tony Parker 11029 23/12/04 11029 1
100393 [일반] 이스라엘 신문사 Haaretz 10월 7일의 진실(아기 참수설) [51] 타카이10957 23/12/04 10957 8
100391 [정치] 한국은 사라지는가 ? Is South Korea Disappearing? [40] KOZE15436 23/12/03 15436 0
100390 [일반] 피와 살점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 (10) 자살수 [6] 후추통7226 23/12/03 7226 20
100389 [일반] 서면 NC백화점 내년 5월까지 영업하고 폐점 [30] 알칸타라16156 23/12/03 16156 1
100388 [일반] [팝송] 빅토리아 모네 새 앨범 "JAGUAR II" 김치찌개6214 23/12/03 6214 1
100387 [일반] 커피를 마시면 똥이 마렵다? [36] 피우피우11512 23/12/02 11512 18
100386 [일반] <나폴레옹> - 재현과 재구축 사이에서 길을 잃다.(노스포) [16] aDayInTheLife7226 23/12/02 7226 2
100385 [정치] 정부, COP28 ‘재생에너지 3배' 서약 동참 [109] 크레토스13339 23/12/02 1333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