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0여년이나 [스토리가 끊기지 않고] 지속되어온 궤적 시리즈의 최신작이 지난 9월에 나왔습니다
제목은 계의 궤적이라고 되어있으나 사실상 여의궤적3와 같은 위치의 게임입니다
여느 게임이 그렇듯 이번 작품에도 좋고 나쁜 평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전투의 연출과 전략적 재미는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발전하고 있고
스토리 중간에는 종종 억지스러운 전개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제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계의 궤적에서만] 볼 수 있는 놀라운 스토리텔링 방법입니다
게임이 중반부로 넘어가는 기점에 굉장히 중요한 로맨스씬이 나오는데요
이 파트의 연출을 너무나 잘 해낸대다가
단순히 하나의 장면만을 잘 뽑은 것이 아니라
그 주변부, 나아가 핵심 스토리에까지 극적인 감정선을 퍼뜨려 놓았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로맨스씬이 나오기 전부터 꽤나 긴 시간에 걸쳐서 미리 언질을 준 데다가
아예 챕터 하나는 통째로 이 장면을 위한 빌드업에 쓰이기도 하거든요
또한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중에 나오는 스토리에 연결시키기까지 했기 때문에
혼자만 우뚝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팔콤은 음반회사라는 별칭이 있을만큼 BGM이 무척 뛰어난데
해당 로맨스씬에서 흘러나오는 일련의 BGM들은 너무나도 완벽하고 폭발적이었습니다
아마 이 씬 하나만을 노리고 만든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그만큼 장면 내 감정선의 흐름과 싱크로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굉장한 감각적 체험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해본 모든 게임 중에서 감히 최고의 로맨스씬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혹시 계의궤적을 플레이하실 예정이 있다면 아래에 첨부한 음악을 미리 듣지 않기를 권장합니다
첫 번째 BGM. 로맨스씬이 나오기 전부터 흘러나오는 마을 길거리 BGM입니다. 아무리 밤시간대의 배경음악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미스테리하고 고독한 분위기가 짙은 것은 게임의 핵심 스토리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곡의 분위기와 선율의 흡인력이 굉장하여 벌써부터 앞으로 펼쳐질 장면에 몰입하게 만들어줍니다.
두 번째 BGM. 초반부는 그동안 간직해왔던 마음을 덤덤히 풀어내는 듯 합니다. 그러다가 클라이막스인 1분 10초 부근부터 용기를 내어, 확신에 찬 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듣는것만으로도 가슴이 순수한 에너지로 벅차오르는 듯 합니다.
세 번째 BGM. 음악만 들어도 대답을 하고 있다는게 느껴집니다.
초반부는 아까랑 비슷하게 덤덤한 느낌입니다. 상대가 꺼낸 말을 듣고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는 듯해요.
그러다가 클라이막스인 1분 30초 부분... 분위기가 확 바뀌는 이 부분에서 너무나 경탄했습니다. 분위기만으로 무슨 대답을 하는지 알 것 같죠.
아직 해결하지 못한 슬픔과 외로움이 아름답게 표현됩니다.
메인 멜로디 뒤편에 들리는 반짝거리는 소리들은 밤하늘의 별, 혹은 화자가 도달하지 못한 밝은 측의 세상을 말하는 것도 같습니다.
이것 외에도 계의궤적은 전체적으로 유달리 슬픈 느낌의 OST가 많고 그 퀄리티가 매우 뛰어납니다
소위 말하는 “뽕맛”을 채워주는 전투 BGM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은 데에 비해서
서정적인 BGM 쪽에서는 거의 시리즈 최고급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마다 관심있어 하는 것, 혹은 민감하게 느끼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그냥 적당히 좋은 음악, 적당히 잘 짠 장면으로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게임 인생에서 손에 꼽을만한 경험이었고, 이 감동을 같이 느낄 사람들 또한 존재할 것이기에 이렇게 글로 정리해 올려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오 저도 마침 엊그제 계궤 엔딩 봤는데 이런 글이 올라오니 무척 반갑습니다!! 본문대로 저도 감동받아서인지 엔딩 후에 바뀌는 타이틀화면도 엄청 애틋하고 예쁘더라고요. 생각보다 스토리 전개의 밀도가 높진 않았지만 인상 깊은 연출들도 정말 많았고 그래도 어느 정도 풀린 떡밥들도 있어서 나름 만족하며 엔딩을 봤습니다. 이제 다음작품까진 또 어떻게 기다린답니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