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네노스 황가 치하의 로마와 헝가리 왕국 사이에는 오래도록 긴장 관계가 유지되어 왔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로 대표되는 발칸 반도 서북부 일대를 두고 양 국가 사이에 반복적으로 이뤄진 숱한 분쟁이 그 원인이었다.
발칸 반도 서북부의 주인 자리를 얻기 위한 로마와 헝가리의 대립은 각자의 이익에 비춰 보았을 때 무척 구조적이고, 근본적이었다.
로마는, 영구적으로 시칠리아를 잃어버림에 따라 서방으로 국력을 투사하기 위한 유일한 발판으로써 발칸 반도 서북부 일대가 필요했다.
헝가리는, 유럽의 부가 집중된 지중해로 진출하기 위한 통로로서 항구가 있는 발칸 반도 서북부를 반드시 자신들의 수중에 넣어야 했다.
따라서 두 나라 모두 발칸 반도 서북부를 필요로 하고 있었으니, 압도적인 힘의 우열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에야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과거 마케도니아 황가가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만 하더라도, 발칸 반도 서북부는 로마의 관할 하에 있었다.
당시에 겨우 기독교화가 이뤄진 헝가리가 바실레이오스 2세의 통치 하에서 패권국으로 위세를 떨치던 로마에 도전하기란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나 마케도니아 황가가 무너지고 내부 혼란에 빠져든 로마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십자군의 시대가 열리자,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로마는 발칸 반도 서북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고, 헝가리는 숨죽이고 있던 사이에 비축한 힘을 바탕으로 로마의 빈 자리를 대체했다.
이후로 백 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마누엘 대제의 통치 아래 패권국의 지위를 되찾은 로마는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자 헝가리를 압박했다.
이에 대해 헝가리는 국왕 이슈트반 3세를 중심으로 군 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신성 로마 제국의 지원에 힘입어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결과는, 당대 최강자 마누엘 대제를 끝끝내 막아내지 못한 헝가리의 참패.
시르미움 전투, 헝가리 왕국 건국 이래 최대의 국치라 할 수 있는 전투에서의 대패로 헝가리는 발칸 반도 서북부의 주도권을 상실했다.
더불어 이슈트반 3세는 마누엘 대제에 의해 독살, 콘스탄티노플에서 인질로 있던 그의 동생 베라 3세가 왕위에 '임명'되는 치욕을 겪었다.
다행히 헝가리의 왕가가 크로아티아의 국왕 작위를 보전하고 있었던 덕분에 크로아티아 북부 일대의 통치는 허락받았으나, 그게 다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알렉시오스 2세의 대에 이르렀으니.
"아버님, 도와주십시오."
콘스탄티노플의 궁정에서 크로아티아의 여왕, 주디스가 시아버지, 알렉시오스 2세에게 간청했다.
아르파드 가문의 꽃으로 이름높은 그녀의 화사한 용모는 어느덧 유례없는 간절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헝가리는 지금, 류리크의 후손을 자칭하는 무도한 무리들의 손아귀에 넘어가 있사옵니다.
이대로 간다면 고귀한 자들이 온당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참담함이 이어질 터인즉, 아버님의 힘이 필요하옵니다."
"그대는 크로아티아의 여왕이기는 하나, 동시에 현 호엔슈타우펜 가문 당주와 군신의 계약을 체결한 봉신이기도 하다.
봉신된 이로써 주군에게 먼저 힘을 빌려야 함이 도리이거늘, 이번 일로 그대 주군에게 지원을 요청함이 온당하지 않은가?"
어느덧 나이 오십에 가까워져, 노회한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게 된 알렉시오스 2세는 꽤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그러자 주디스는,
"저의 주군은 현재 잉글랜드와의 전쟁에 여념이 없어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뜻을 전해왔나이다."
"잉글랜드라... 하긴, 근래 들어서 잉글랜드의 왕이 스스로를 브리타니아의 황제라 자칭하고 교황이 이를 추인했다 들었다.
그대 주군의 입장에서는 이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만은 없었을테지. 참으로 애석하구만. 정말이지 자네만 안타깝게 되었어."
안타깝다 말은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알렉시오스 2세의 눈빛에는 진심이라고는 조금도 실려 있지 않았다.
주디스 여왕은 이러한 시아버지의 눈을 마주하며 직감했다. 지금이 바로 시아버지를 움직일 수 있는 카드를 보여야 할 시간임을.
"저의 첫째 아들, 알렉시오스가 콤네노스 가문의 일원으로서 다음 대 크로아티아의 왕이 될 것이옵니다."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알렉시오스를 아르파드 가문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주디스의 선언.
그러나 알렉시오스 2세는 묵묵부답이었다. 마치, 주디스 여왕이 내밀 수 있는 조건이 여전히 더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듯이.
시아버지의 참전만이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주디스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말씀해주시옵소서. 기꺼이 아버님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그래, 이제야 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구나."
며느리와의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알렉시오스 2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욱 더 짙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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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승리하여 룸 술탄국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은 알렉시오스 2세.
그런 그에게, 장남 콘스탄티노스가 동방에서 거둔 승전보가 들려옵니다.
[콘스탄티노스 : 아바마마, 소자는 이번 원정으로 타브리즈를 함락시키는데 성공하였나이다.]
[알렉시오스 2세 : 잘 해냈구나. 이로써 페르시아의 이교도들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어.]
페르시아 북부의 최대 거점, 타브리즈가 콘스탄티노스의 활약에 의해 로마에게로 귀속되었습니다.
과거, 이슬람이 발흥하기 이전에나 가능했던 일이 무려 수 백 년의 시간을 거쳐 콘스탄티노스의 손에 의해 재현되었군요.
또한 콘스탄티노스는 다른 방면으로도 알렉시오스 2세를 무척 흡족하게 하였습니다.
[알렉시오스 2세 : 드디어, 장차 나와 콘스탄티노스의 뒤를 이을 적장자가 태어났구나.]
이름은 알렉시오스. 가문의 시조 알렉시오스 1세와 현재 로마의 전성기를 다시금 되찾아오고 있는 알렉시오스 2세를 본땄습니다.
후일, 로마의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면 알렉시오스 3세라 불리게 되겠네요.
한편, 지난 화 끝자락에 모습을 보였던 몽골은...
[몽골의 대칸 투르굴 : 오랜 세월, 우리는 중원인들에 의해 온갖 수모를 당하고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제는 우리가 조상들의 원한을 갚아주어야 할 때다! 푸른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들이여, 지금부터 우리는 남으로 향한다!]
금나라와 무슨 문제라도 생긴 모양인지, 서진하는 대신에 다짜고짜 중국 쪽에 인베이젼을 겁니다.
몽골 애들이 시작부터 서쪽으로 서쪽으로 세력을 뻗으면 로마 입장에서도 꽤나 고달플텐데, 그나마 다행이네요.
옥룡 DLC 출시 이후로는 이런 식으로 중국으로 새는 바람에 몽골의 서진이 지연되는 경우가 상당히 빈번해진 느낌입니다.
이 싸움의 결과는... 스샷으로 찍지는 못했습니다만 몽골이 끝내 금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몽골 제국의 동향과는 관계 없이, 룸 술탄국을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한 알렉시오스 2세의 모략은 계속됩니다.
[알렉시오스 2세 : 이 세상은 어린 아이에게 참으로 잔인하구나.]
귀족들과의 결탁이 어려워졌음에도, 어떻게든 조력자들을 구해 어린 술탄의 숨통을 끊을 궁리를 하던 알렉시오스 2세.
결국 그는 전 술탄, 킬리지 아르슬란 3세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하녀를 매수, 베개로 얼굴을 깔아뭉개는 방법으로 암살에 성공합니다.
다음 술탄 무르셀은 이로 인해 엉겁결에 술탄이 되었습니다만...
[룸 술탄국의 술탄 무르셀 : 네놈이었구나...! 전대 술탄을 암살한 이가...! 황제라는 자가 갓난 아이를 상대로 어찌 그토록 무도한 짓을...!]
[알렉시오스 2세 : 뭘, 애초에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데 법도가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일찍이 전대 술탄이 죽임을 당할 시기에 맞춰 신속하게 병력 배치를 마친 로마군의 상대가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 일방적으로 준비된 전쟁에서, 준비되지 않은 술탄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알렉시오스 2세의 잔혹함에 치를 떠는 것뿐이었습니다.
이후,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룸 술탄국은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아나톨리아의 군사 귀족들에 의해 뜯어먹히고 말았으니...
[알렉시오스 2세 : 아나톨리아 전역을 되찾기까지 정말 오랜 세월이 걸렸구나. 참으로 오래 걸렸어.]
로마노스 4세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대패한 것을 계기로 삽시간에 상실하고 만 아나톨리아.
20년이 넘는 재위 기간 중, 아나톨리아 전역은 알렉시오스 2세에게 있어 반드시 되찾아야만 하는 염원의 땅이었습니다.
특히 콤네노스 황가의 선대 황제들 모두가 포기한, 척박한 아나톨리아 내륙 고원의 수복이 그가 생각하는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아나톨리아 내륙 고원은 이슬람의 발흥으로 로마가 위기에 몰린 그 순간에도 국경을 든든하게 지켜내던 천연의 요새였으니까요.
만약 만지케르트 전투의 여파로 그 일대를 지키던 군대가 와해되는 지경에 몰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룸 술탄국은 없었을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반 평생을 아나톨리아 내륙 수복에 바친 알렉시오스 2세는, 나이 쉰에 거의 다다라서야 비로소 뜻한 바를 이뤄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렵사리 수복한 이 영토를 대체 어떻게 유지, 관리하느냐는 것.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임무를, 알렉시오스 2세는 차남 마누엘에게 맡깁니다.
[알렉시오스 2세 : 마누엘, 네가 해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아나톨리아는 우리 로마가 가까스로 되찾은 땅임을 잊지 말거라.]
그간 룸 술탄국과의 전쟁에서 숱한 공을 세워, 이제는 군부 내에서 장남 콘스탄티노스 다음 가는 입지를 얻은 마누엘.
이제는 지금까지의 공로에 비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평까지 받고 있던 그가 드디어 한 방면의 책임자로 올라서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황위 계승자를 한 방면의 총사령관으로 삼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큰 상황.
과연 마누엘은 모두의 인정과 우려를 한 몸에 받는 가운데 장차 어떤 행보를 걷게 될까요?
마침내 동방에서의 우위를 확실하게 결정짓고, 변방을 안정시킨 뒤에 콘스탄티노플에 귀환한 알렉시오스 2세.
그러나 황제로서의 그의 과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간 큰 변화가 없었던 서방의 정세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발단은, 크로아티아에서부터 먼 길을 거쳐 콘스탄티노플을 찾은 큰며느리, 크로아티아의 여왕 주디스의 방문이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여왕 주디스 : 아버님, 부디 저에게 헝가리를 되찾을 힘을 빌려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현재 헝가리는 위의 스샷에 밑줄 친 부분을 보시면 알겠지만 로만 류리코비치라는, 류리크 가문의 일원이 왕위를 차지한 상태입니다.
즉, 기존의 헝가리 왕가이자 큰며느리 주디스의 가문인 아르파드 가문이 무슨 이유에선가 류리크 가문에게 헝가리를 빼앗겼다는 것이지요.
류리크 가문의 일원이 헝가리 왕국에 대한 강한 클레임을 갖고 찬탈을 시도하긴 어려우니, 승계구도가 꼬여서 사단이 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대로 순순히 헝가리 왕위를 잃을 수 없었던 아르파드 가문은, 가문 내에서 가장 승계순위가 높은 주디스 여왕을 움직입니다.
후대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일단 주디스 여왕을 통해 왕위를 되찾은 다음에야 가문이 뭐라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나니까요.
그렇지만 크로아티아는 헝가리와 비교했을 때, 군사력 면에서 열세에 몰려 있는 처지.
헝가리의 로만 류리코비치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의 조력을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주디스의 주군,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현재 잉글랜드를 기반으로 세워진 브리타니아 제국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힘을 빌릴 수 있는 곳은 자연히, 여왕의 시아버지 알렉시오스 2세가 황제로 있는 로마일 수밖에요.
알렉시오스 2세가 내건 조건을 수용함으로서, 헝가리-크로아티아 전쟁에서의 로마의 참전이 확정됩니다.
곧이어, 로마의 서방을 책임지는 병력이 황제의 명령을 받고 헝가리와의 접경지인 싱기두눔(오늘날의 베오그라드)로 집결합니다.
[알렉시오스 2세 : 헝가리라... 이번 기회에 저 나라와의 오랜 악연을 끊을 때가 온 것 같구나.]
병력이 다 모여듦과 동시에 로마 군은 다뉴브 강을 도강, 헝가리 남부에 모인 로만 류리코비치의 병력을 타격하고,
[알렉시오스 2세 : 류리크 일족과 덴마크 국왕이 원군을 보냈다고? 흥, 그래봐야 감히 우리 로마 군에 비할 바는 아니니라.]
러시아 방면의 깃발과 덴마크 국왕의 기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그쪽 원군을 부른 듯 싶은데, 그래봐야 물량 차이가 어마어마합니다.
현재 로마의 체급에 비할만한 나라는 브리타니아 제국, 신성 로마 제국, 이집트의 아이유브 가문 정도밖에 없으니까요.
한편, 이 전투에서 알렉시오스 2세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적장을 썰어버리는 위용을 발휘합니다.
[쾨벤하븐의 시장 한스 : 부, 분하다... 적 황제를 벨 절호의 기회였는데...]
[알렉시오스 2세 : 택도 없는 소리! 짐이 이제 나이가 들었다고는 하나 아직 기력이 쇠하지는 아니하였느니라.]
일발 역전을 노리고 막무가내로 돌격을 감행한 적장이었지만, 알렉시오스 2세를 노리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헝가리 남부에서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알렉시오스 2세는 군사를 둘로 나눠 진군시킵니다.
일군은 알렉시오스 2세가 친히 진두지휘하여 북쪽, 헝가리의 수도 에스테르곰으로 나아가고,
[알렉시오스 2세 : 행여라도 로만을 사로잡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적의 심장부를 장악하는 것은 의미가 크지.]
나머지 병력은 2선급 지휘관인 테오크리토스 사령관의 지휘 아래 적 잔당에 대한 소탕작업에 들어갑니다.
[알렉시오스 2세 : 경은 크게 무리하지 말고, 이번에 패하여 흩어진 적 무리들을 각개격파하는데 힘쓰라.]
결국 전쟁은, 알렉시오스 2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크로아티아의 여왕, 주디스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헝가리, 크로아티아의 여왕 주디스 : 드디어 헝가리를 되찾았구나. 허나, 이번 일로 내 아이들이 아르파드의 성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
승리는 하였으되, 당분간 가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인 주디스 여왕으로서는 다소 착잡할 따름입니다.
*
헝가리와의 전쟁이 종결된 후, 2년이 지난 1220년 9월 4일.
알렉시오스 2세는 어느덧,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알렉시오스 2세 : 짐도... 이제는 늙었구나.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기도 하지.]
덕분에 슬슬 후계를 위한 준비에 돌입하게 된 알렉시오스 2세는, 다뉴브 강 일대의 안정을 위해 북방의 호라산 일족을 공격합니다.
수니파를 믿는 이들 일족이 겨울만 되면 얼어붙은 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내려와, 인근을 약탈하여 생기는 피해가 상당했기 때문입니다.
[호라산의 칸 기르겐 2세 : 으으... 로마의 황제가 쳐들어온다고...?! 누가, 누가 좀 알려주시오?! 이 일을 어쩌면 좋소?!]
아직 나이가 어려, 섭정의 도움을 받아 일대를 다스리던 호라산의 칸 기르겐 2세는 삽시간에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이렇듯, 당연히 이겨야만 할 것 같은 싸움에 임하여 직접 전장에 나아가는 알렉시오스 2세.
그러나 이 와중에, 알렉시오스 2세의 신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알렉시오스 2세 : 쿨럭, 쿨럭! 커헉...! 수,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가...!]
쇠약해진 몸이 차가운 공기를 쑀던 것이 원인이었을까요? 알렉시오스 2세는 진중에서 폐렴에 걸려,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병세는 삽시간에 악화되었습니다. 기침이 잦아지다못해 피를 토하게 됨은 물론이거니와, 호흡 자체를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알렉시오스 2세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급히 콘스탄티노플에 귀환하게 되었으니...
[콘스탄티노스 : ...아바마마의 상세가 지독히 위중하시다. 모두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알렉시오스 2세 : ......]
자신을 대신해 섭정을 맡은 장남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 알렉시오스 2세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힙니다.
이성적으로는 아들의 말이 타당하다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게 자신의 최후라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기에.
자신 또한 아버지, 마누엘 대제와 마찬가지로 후대를 위한 대비를 제대로 해두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를 두렵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로마가 엉망이 되었던 것처럼, 내가 죽은 뒤에도 로마가 갈 길을 잃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찬탈자, 안드로니코스에게 고통받던 유년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였을까요?
폐부가 찢어져 나가는 듯한, 가슴 속이 난도질 당하는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서도 알렉시오스 2세는 더 살고 싶었습니다.
아직, 후대에 넘겨줄 로마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끔 조치를 다 취하기 전에 이대로 허무하게 세상을 등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궁정의사 요셉 : 폐하, 폐하의 상세는 위중하여 이 시술을 시행한다고 한들 목숨을 보장해드릴 수는 없사옵니다.
다만 제가 아는 바 그대로라면 폐하께서 소생하실 여지가 조금 더 있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온데, 시행하시겠습니까?]
[알렉시오스 2세 : ......(끄덕)]
궁정의사 요셉의, 아직 검증되지 않은 극단적인 시술을 받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기적적이게도, 요셉의 시술은 성공하여 알렉시오스 2세는 목숨을 건집니다.
그러나,
[알렉시오스 2세 : ...델포이의 신전을 찾아가 예언을 받으라는 환청이 들린다. 델포이의 신전이라... 그게 아직도 남아 있던가...?]
시술의 부작용으로 일상 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약간의 정신 질환을 얻게 된 알렉시오스 2세는 곧 고대의 신비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알렉시오스 2세 : 짐은 이제부터 고대의 문헌들을 공부하겠노라. 그 안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혜가 숨어 있을 것인즉.]
이를 계기로 알렉시오스 2세는, 겉으로는 신실한 정교회 신자를 가장하면서도 그 이면으로는 옛 신의 신앙을 연구하게 됩니다.
*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헬레니즘 신앙에 심취하게 된 알렉시오스 2세.
그의 남은 인생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요?
며칠 쉬었다가 2부,
[Make Hellenism Great Again!]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