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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7/06 00:02:37
Name 인간흑인대머리남캐
Subject [기타] 그들은 왜 열광했는가: 미움받던 옛 본좌 vs 공공의 적

스포츠에 있어서 경기력 만큼이나 흥미 요소를 주는 것은 그 선수(혹은 팀)의 스토리일 것입니다. 그가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냐에 따라
덧씌워지는 이미지가 달라져서 같은 경기라도 보다 더 흥행을 할 수 있게 해주지요. 이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힘을 갖고 있어서 경기는 아직 안했는데 대진만으로도 흥행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 의도적으로 극대화시킨 WWE가 그 좋은 예 겠지만, 여기선 프로레슬링이 아닌 E스포츠 이야기를 할 겁니다.


<06-07 곰TV MSL 시즌1 8강. 1년차 듣보잡 선수간 매치. 아무런 스토리가 없는 이들의 대결에 열광할 사람은 없다>


<04 에버 스타리그 4강. 라이벌이자 각자가 짊어진 것들이 있는 베테랑간의 매치. 이 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그러면 어떤 스토리에 사람들이 열광할까요? 전통적인 흥행 스토리엔 언더독의 기적, 필생의 라이벌 매치 등등이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화끈한 것은
"권선징악"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또한 드라마틱 하다면, 사람들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죠.




저스틴 웡(Justin Wong)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현재는 스타2프로팀으로도 유명한 EG 소속의 프로게이머죠.

이 선수가 활동하는 종목은 대전격투 게임으로,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여러 종류의 격투게임을 섭렵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는 최고수입니다.


<-Marvel vs Capcom2. Marvel 코믹스의 히어로들과 Capcom 게임의 주인공들이 맞붙는 대전격투게임.>

그 중에서 주 종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Marvel vs Capcom 2" 라는 게임(이하 mvc2)인데, 가장 큰 메이저 대회인 EVO 시리즈에서의 성적을 보면
Evolution (2001) - 1st
Evolution (2002) - 1st
Evolution (2003) - 1st
Evolution (2004) - 1st
Evolution (2005) - 4th
Evolution (2006) - 1st
Evolution (2007) - 2nd
Evolution (2008) - 1st
Evolution (2009) - 2nd
Evolution (2010) - 1st

10회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 7회, 준우승 2회라는 어처구니 없는 성과를 거둡니다. 물론 자잘한 대회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말그대로 그는 무려 10년동안 이 종목의 "본좌" 였습니다.

"압도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실력에, 사람들은 경외감을 가졌습니다. 아래 영상에서도 보듯 극한 위기 상황에서도 역전을 해내는 등의 쾌감을 주기도 하고요.


<저스틴 웡의 유명한 영상 중 하나. 상대는 3명의 캐릭터가 모두 남고 본인은 1명 밖에 남지 않은 불리한 상황에서 승리를 쟁취해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늘 그가 우승을 차지하는 구도에 사람들은 식상함과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것을 "독재"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나중에 가서는
선수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게 되었죠. 물론 경기 밖에서의 그는 매우 친절하고 매너 좋은 선수로 호평을 듣고있었지만, 막상 경기에서는 맨날 이기니
상대로서는 경쟁 의욕도 없고 관객들에게도 게임 보는 재미도 없게 하는 선수로 낙인찍히고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대회에서 그가 패배하는 날은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거리가 될 정도 였지요.

너무나도 강했던 그는, 악역 아닌 악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mvc2의 차기작 mvc3가 나옵니다.


<-Marvel vs Capcom 3. 3d로 넘어오면서 연출이 화려해지고 캐릭터 출전 폭이 넓어졌다.>

EVO도 2011년 부터 mvc2대신 mvc3를 채택합니다. 게임이 바뀌면서 그는 더이상 전작에서의 본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하던 가락은 어디가지 않는지
중소규모대회에선 종종 우승도 하고 대부분 순위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EVO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합니다. 저스틴 웡이 아니더라도 우승할 수 있는
선수는 얼마든지 있게되었으며 그는 여러 강자 중 하나 정도가 되었습니다. SS급에서 A급 정도가 된 것이죠. 스타로 치자면 이영호의 포지션이랄까요.

더이상 그는 독재자가 아니었습니다. 혼자 다해먹는다고 싫어할 이유도 없어진 것이죠. 사람 감정이란게 어디 물에 씻기듯 흘러버리는게 아닌지라
몇몇 사람은 아직 독재자 시절의 저스틴 웡에게 갖던 감정을 여전히 갖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겐 지나간 일이 되었습니다. 한물 간 이를 미워하기엔 엄청난 어그로꾼이 나타났기 때문인데요,

mvc3 시대의 진정한 악역은 따로 있었습니다!



크리스G (Chris G) 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그 역시 프로게이머로 여러 종류의 격투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뛰어난 선수입니다. 그는 mvc2 시절의 저스틴 웡처럼 딱히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긴 하는데 그  저스틴 웡의 그것과는 아예 종류가 다릅니다.

저스틴 웡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질투와 피로감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 크리스G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은 "증오"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더티 플레이어" 였기 때문이죠.


<왼쪽의 여캐 쪽이 Chris G. 이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혈압이 오르는 플레이. 위 사진에 신경질적으로 반복 새겨진 Soul fist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오른쪽 대두를 하는 쪽이 Chris G. 보자마자 어처구니 없음이 밀려들어올 것이다.>

위 영상에서도 보듯 그는 게임을 굉장히 얍삽하게 합니다. 그것도 아주 집요하게요. 버그 플레이도 아닌데 프로 게이머가 승리를 위한 시합을 하는게
뭐가 문제냐 할 수도 있겠지만(이 지적엔 동의를 합니다) 가끔도 아니고 모든 게임에서 저렇게 뽈뽈 도망다니며 뿅뿅 쏴대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아무래도 열이 뻗칠 수 밖에 없죠. 게다가 그걸로 우승도 해먹으니 얄미움이 배가 되고요. 그의 자제를 모르는 얍삽함과 원패턴에 선수고 관객이고
사람들의 짜증이 아주 극에 달하게 됩니다. 지난 날 저스틴 웡이 미움 받은 것은 그의 탓이 아니었지만, 크리스G는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본인 탓이었습니다.

모든 이를 열불나게 만든 그는 명실공히 "악역"이었지요.


<오죽하면 Chris G가 깨진 경기만 모아놓은 "Everybody hates Chris G"라는 45분짜리 유튜브 영상도 있을까(...) 영상 막판에 승리 후 소울 피스트 난사 퍼포먼스를 하는 상대 선수의 세레모니도 압권>

하지만 사람들의 짜증과는 달리 EVO 2013에서 그는 강력한 우승후보였습니다. 직전에 열리는 대회인 CEO 2013에서도 우승했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메이저 대회인 EVO 2013이 열리자 사람들의 관심 중 하나는 바로

"과연 누가 이 Chris G 에게 엿을 먹일 수 있을까" 가 되었지요,




그리고 EVO 2013 UMVC3의 패자조 준결승에서, 저스틴 웡과 크리스G가 만났습니다.

과거의 악역과 현재의 악역의 대결 구도가 되었죠. 본좌에서 흔한 강자 중 한명이 된 이와 강력한 우승후보 간 매치. 패배자는 토너먼트 탈락.
대부분의 이들은 기세가 좋은 크리스 G의 우세를 점쳤습니다. EVO 직전에 열린 CEO 2013 때 크리스G가 우승하는 과정에서 저스틴 웡을 꺾기도 했고요.

예상대로, 5판 3선승제 시합에서 크리스 G는 2승을 선취합니다. 다들 생각했겠죠.

"아, 저스틴 웡으로는 역시 안되는구나" 라고.

그리고..


<시간 없는 분들은 8분 10초, 10분 20초, 14분 30초를 보세요. 영상을 처음부터 다 보고 계시다면 어느새 주먹을 불끈쥐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스틴 웡은 영웅이 됩니다. 악당을 무찌른 영웅. 한때는 모든 이의 미움을 받았던 그가.

옛 본좌의 부활과 권선징악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영상에서 보듯 막 뛰어오르고 환호성지르고 난리났지요.
그리고 내내 울리는 챈트 "JUSTIN! JUSTN! JUSTIN!!!"

위 영상에 나오는 해설자의 멘트로도 이 경기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He came back! He still alive!!!"

"Once upon a time, the crowd did not like Justin. And now he is the hero."

저스틴 웡은 이 후 진출한 최종 결승에서 패배하며 준우승을 했지만, MVC3 종목의 주인공은 명실공히 그였습니다.

이러한 스토리의 힘 덕분에 말입니다.




아, 여담인데 저스틴 웡은 아마 여러분도 이미 진작에 그의 플레이를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왜냐면...


위 다이고 우메하라의 전설적인 영상의 상대역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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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킬칼켈콜
14/07/06 00:06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저스틴윙이 본좌, 크리스G가 악당이라면 우메하라나 풍림꼬마, 잠입 같은 분들은 어떤 이미지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플리퍼
14/07/06 01:09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하게 읽었네요 좋은 글과 정리 감사합니다
게임은 몰라도 크리스 플레이는 굉장히 짜증스럽네요 대전격투인데 한 캐릭터가 높이 뛰면 시점도 올라가서 장풍류를 대처하기 힘들것같은데 정공법으로 돌파해버리는게 속시원하네요=
이호철
14/07/06 01:16
수정 아이콘
더러운 모리둠 후덜덜
14/07/06 05:11
수정 아이콘
가슴이 뜨거워지는 글이네요.
격겜 화이팅!
14/07/06 09:17
수정 아이콘
와 준결승 3번째판.... 3캐릭 중 2캐릭이 다운 당하고 나머지 한 캐릭도 피가 얼마 없는 상황에서 그걸 잡아내네요...
처음엔 보다가 영상 잘못올린거 아니야? 했습니다 덜덜;;
14/07/06 14:05
수정 아이콘
아... 저 춘리플레이어가 저스틴웡이었군요...
전 이번 잠입선수가 우승한 CEO에서 처음 각인되었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명경기였고, 위기가 있었지만..
저스틴웡과의 대전시 세트 스코어 1:1
라운드 스코어 1:1의 상황에서
체력이 1cm도 안남은 잠입선수를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서 정타 콤보 한방이면 끝나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저런 실수를 하나 했더니
알고보니 엄청난 경력의 선수였군요...
마치 스타판의 모 선수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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