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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12/18 16:48:40
Name Artemis
Subject 우산을 잃어버린 에이스
안타까웠다.
아니, 화가 났다.
차마 GG 치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실시간 방송을 꺼버렸다.
속상함은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다음 본좌는 누구인가?"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내심 달갑지 않았다.
난 '본좌'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알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위를 휘두르던 왕이 그 권세를 잃었을 땐 매우 초라해진다.
내게 '본좌'란 말은 그랬다.
그래서 그냥 그를 나두었으면 했다.
지금의 칭송이 후에 칼이 되어 그에게 돌아오는 건 끔찍했으니까.

알고 있다.
그러한 것이 모두 최강자에게 향하는 관심이라는 걸.
관심이 있으니 기대도 하고 실망도 하게 된다.
그런 마음을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제 20대에 접어든 그에게 왠지 가혹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외롭다.

저그 진영의 수장으로서 계속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팀의 기둥으로서 팀을 책임 져야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동분서주해야 한다.
저그 진영의 에이스, 팀의 에이스, 스스로의 에이스.
지금 그가 걷고 있는 길은 이렇다.
하지만 지금 그 길은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전성기의 주기다 다소 짧다 하더라도, 나는 그의 전성기가 좀 더 오래, 좀 더 길게 지속될 줄 알았다.
그건 바람이기도 했지만, 기대이기도 했고, 확신이기도 했다.

아니, 아직 난 그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생각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숨고르기마저 외로워 보인다.

오영종이란 우산이 사라진 이후 그에게는 많은 짐이 더해졌다.
그것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든 아니든 간에, 그간 오영종이란 우산이 그에게 있고 없음은 매우 큰 차이를 차지한다.

르까프 최강의 원투 펀치.
이 둘은 각자 자기 종족의 최고의 자리를 겨루면서 팀을 떠받치는 존재였다.
게다가 개인리그, 프로리그 할 것 없이 여러 타이틀을 획득한 존재기도 했다.
어느 팀도 이런 구조는 없었다.
물론 한때 르까프는 오영종의 팀이기도 했지만, 진정 르까프란 이름이 빛을 발한 시기는 원투 펀치가 건재했을 시기다.
실질적인 에이스는 어느 누구 하나였을지라도, 두 사람이 주는 무게감은 절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그렇게 오영종이란 거대 우산 속에서 그는 정점을 찍었다.

그래, 그 이전에도 그가 실력적으로는 에이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영종이란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확실히 달랐다.
그건 '안정'을 의미한다.
기둥이 두 개인 것고 하나인 것은 매우 다르니까.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서는 것과 한 발을 디디고 서는 것과는 매우 다른 문제다.

하지만 이제 그는 모든 것을 홀로 책임져야 한다.
아직 오영종을 대체할 만한 '안정감'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어찌되었든 그는 이제 르까프의 원 펀치로서 팀을 책임져야 한다.

이 또한 에이스라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인지 모른다.
에이스란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없이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그는 '이제동'이니까.

저그의 에이스, 팀의 에이스, 스스로의 에이스.
이 모든 건 어차피 '이제동이 가진 수식어일 뿐'이다.
따라서 '이제동'을 우선할 수는 없다.

그 모든 건 이제동 안에 있지, 이제동 밖에 있지 않다.
이뤄내는 것도 버리는 것도 모두 본인의 선택이다.
어차피 그가 갈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은가.

이제 20대 초반.
아직 그가 이룰 일은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지금 작은 일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수많은 경기 중에 하나 둘 진다고 해서 그게 이제동에게 해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담금질의 기회가 될 뿐.

지금은 우산을 잃어버린 에이스일지언정 언젠가는 그 스스로가 우산이 되는 에이스가 되리라.
그렇게 난 믿고 있다.

-Artemis



p.s. 어느 송년 모임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사실 그때의 이야기가 이 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요. 다만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쓰다 그만두고, 쓰다 그만두고 해서 원래 생각했던 글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글도 좀 엉망이고요. 그래서 일단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는데, 누군가의 독려(응?)를 받고 그냥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p.s. 2 공교롭게도 최근 이제동 선수 관련글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단 댓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고요. 뭐랄까... 아직까지 스타를 보는 데 있어서 머리보다는 마음이 많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는 것과 실제 상황은 많은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냥 '응원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흠... 그렇다고 해도 글이 허접한 건 사실이군요. 이놈의 귀차니즘 때문에 심지어 일기마저도 쓰다가 그만둔 적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해서 글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는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ㅠ_ㅠ

p.s. 3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꽤 오랜만에 쓰는 글입니다. 이틀 전 유게에도 게시물을 하나 올리긴 했지만, 그것도 1년여 만입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암튼 누군가의 마수(응?)에 넘어가 요새 글을 남겨볼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입니다. 담번엔 자유게시판에 도전해봐야겠네요. 것도 이미 한 번 도전했다가 네 줄 쓰고 그만둔 적이 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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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예비역
08/12/18 16:56
수정 아이콘
이제동... 요즘 보면 안쓰럽죠.. (전 원래 저그가 안쓰러운..;;)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스웨트
08/12/18 16:57
수정 아이콘
예전에 말이죠. 프로토스가 학살을 당하던 시절에
프로토스 팬들이 희망을 걸고 응원하던 게이머가 바로 "박정석"이었습니다.
그의 닉네임인 "영웅"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꾸준한 성적(아이옵스 때는 혼자만 프로토스로 진출하죠)을 냅니다.

지금의 이제동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수많은 저그들이 학살당하는 시점에
저그팬들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이제동이다.
너만은 쓰러지면 안된다 이런식으로요.

저도 이제동선수를 아끼는 팬심으로 말하자면
이런 고난은 이제동 선수 스스로 뚫고 나가서 다시 명예를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김택용이 그랬고, 송병구가 그랬듯이요.
영웅이었던 박정석선수가 올리지 못한 성적을 당시 "박지호" "오영종"이라는 걸출한 프로토스가 나타나면서
박정석 선수가 까이기 시작했죠. 안티가 전혀 없었던 선수중 하나였는데..
이제동 선수도 그러한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라벤더
08/12/18 17:00
수정 아이콘
말씀처럼 아직 어리고, 갈 길도 멀죠~
잘 할 겁니다, 제동 선수.

여튼.. 진짜 오랜만에 쓰신 글! 담엔 자게에서 뵈요(?)
GrayScavenger
08/12/18 17:05
수정 아이콘
개념맵만 있었어도 지금쯤 임이최마동이었을 겁니다.

전 비록 플토빠이지만...
다시 한번 '테란이 어떻게 무탈 모은 이제동을 이겨?' '플토가 어떻게 네오사우론하는 이제동을 이겨?' 라는 소리로 게시판이 도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필명 멋지네요 +_+ 담엔 자게에서 뵈요(?) (2)
라구요
08/12/18 17:29
수정 아이콘
우산이 상징하는의미가 무엇일까요?.. 두가지 의미가 있는거 같은뎅... 짐과 방패...
Who am I?
08/12/18 17:37
수정 아이콘
뭔가 마음이 서글픈데요....
08/12/18 18:14
수정 아이콘
이제동 선수는 아직 10대 아닌가요?...
산들 바람
08/12/18 18:29
수정 아이콘
개념맵만 있었어도 지금쯤 임이최마동이었을 겁니다. (2)
08/12/18 18:33
수정 아이콘
개념맵이라면 이영호, 김택용 송병구와 선두권에 있을듯 합니다. 이제동 선수가 독자적으로 치고 나가지는 못했을거 같습니다.
할수있다!!
08/12/18 19:09
수정 아이콘
오영종이란 우산에 대공감입니다.
르까프 팬이라 그런지 오영종이 없는 르까프는 비록 상위권이지만 너무 불안해요;;
발컨저글링
08/12/18 19:18
수정 아이콘
에이스가 혼자인 팀과 원투 펀치가 있는 팀은 확실히 차이가 나죠.
박성준 선수가 예전에 POS를 홀로 이끌었었는데 돌이켜보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08/12/18 20:12
수정 아이콘
저는 본좌라는 명칭보다 에이스라는 명칭이 더 끌리더라구요
그래서 양대리그 우승할때의 강민보다 에이스결정전 9연승을 이끌며 팀의 에이스였던 강민의 모습에 더 끌리기도 하고....
개인적인 느낌에 본좌는 단지 순간의 포스같은 느낌이고
진짜 무게감은 에이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이제동선수와 이영호선수가 지고 있는 그 커다란 무게감처럼요...

항상 좋은 댓글을 다셔서 아이디를 기억하는데
아쉽게도 글 쓰시는 걸 통 못뵈서 궁금하던차에.........이젠 속이 후련하네요 ^^;;;;
역시 글 잘쓰시네요...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목동저그
08/12/19 01:24
수정 아이콘
근데 이제동 선수 90년생이라 사실 이십대도 아니죠;
아직 10대 후반의 소년일 뿐인데 마인드는 어른스러운 선수...
08/12/19 02:03
수정 아이콘
아, 이제동 선수가 빠른 90이라고 알고 있어서 편의상 89년생이라고 여기고 쓴 측면이 있고요, 지금이 12월이라서 약간 뭉뚱그려서 그렇게 쓴 면도 있습니다. 어차피 새해가 되면 스무 살이 되는 건 맞으니까.^^;;

라구요 님// '우산'은 일종의 '보호막'이란 뜻입니다. 라구요 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는 '방패막이' 쪽이 맞겠군요. 우산이 '짐'의 의미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어... 님// 전에도 어디선가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달아주신 적이 있어서 제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에서야 인사를 드리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잠자코
08/12/19 08:38
수정 아이콘
슬램덩크에서 북산대 능남전이었죠. 능남의 센터 변덕규가 4반칙으로 코트밖으로 내몰렸을 때 능남의 에이스 윤대협이 얼마나 힘겨워했는지 기억납니다. 오영종은 르까프의 기둥 이제동은 르카프의 에이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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